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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 "경치 좋다. 발끝이 짜릿하다. 너네들은 괜찮니?"
큰누나 : "저도 긴장돼요. 덕유산은 가을도 멋져요."
어머니 : "그럼, 가을에 또 오자."
큰누나 : "건강하세요. 여기 오는 건 문제도 없으니까."

안개가 또 산을 덮었습니다. 덕분에 아름다운 덕유산 풍경은 포기합니다.
▲ 안개 안개가 또 산을 덮었습니다. 덕분에 아름다운 덕유산 풍경은 포기합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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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 곤돌라를 탑니다. 곤돌라가 서서히 움직입니다. 어머니가 낮은 비명을 지릅니다. 경사진 비탈길이 나오니 어머니가 바짝 긴장합니다. 곤돌라가 급경사를 오릅니다. 어머니가 외마디 비명을 내지릅니다. 미소 띤 우리 어머니, 호기심 많은 소녀가 됩니다.

곤돌라가 덕유산 설천봉 (해발 1520m)에 닿았습니다. 시간을 재보니 얼추 15분 남짓 걸렸습니다. 정상인 향적봉 (해발 1614m)까지는 20분만 더 걸으면 됩니다. 덕유산은 남한에서 네 번째로 높습니다. 이 산, 곤돌라 덕분에 동네 뒷산이 됐습니다. 어머니는 덕유산이 처음이셨습니다.

소녀가 된 어머니는 안개 휩싸인 산을 바라보며 소리를 지르십니다. 어머니 입에서 감탄사가 쏟아집니다. 반면, 저와 세 아들은 시큰둥합니다. 우리 가족은 덕유산 산행이 두 번째입니다. 지난해 겨울비 맞으며 오른 산입니다. 개고생하며 오른 산, 오늘은 곤돌라 타고 편히 왔습니다.

안개가 또 산을 덮었습니다. 덕분에 아름다운 덕유산 풍경은 포기합니다. 20여 분 걸어 향적봉에 닿았습니다. 아이들이 자연스레 한 곳에 자리를 잡습니다. 지난해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사진을 찍었던 곳입니다. 막내가 짓궂은 표정을 짓습니다.

가을 깊어지면 또 한 번 덕유산에 들러야 합니다. 덕유산 산행, 아쉬움만 남지는 않았습니다. 산에서 소녀가 된 어머니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 날씨 가을 깊어지면 또 한 번 덕유산에 들러야 합니다. 덕유산 산행, 아쉬움만 남지는 않았습니다. 산에서 소녀가 된 어머니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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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은 제게 끈기를 가르쳤습니다. 지난 9일 아침,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온 가족이 늦잠에 빠져 있었지요. 갑자기 아내 스마트폰이 울렸습니다. 큰누나의 전화였습니다. 어머니 모시고 산에 가잡니다.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덩달아 세 아들이 벌떡 일어납니다. 세 아들, 추석 연휴 특별한 재미를 못 봤습니다. 때문에 아이들은 조금 고생하더라도 산에 오르는 일을 마다치 않습니다. 아내도 당황하지 않습니다. 갑자기 걸려온 전화지만 저와 세 아들은 언제든지 여행 떠날 준비는 갖추고 있습니다.

소녀가 된 우리 어머니, 덕유산에 오르다

아파트 창문 사이로 하늘을 봅니다. 날씨는 나쁘지 않습니다. 지난해 놓친 덕유산 절경을 구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명절 음식을 몇 가지 챙겨 전북 무주 덕유산으로 향합니다. 차창 밖 경치는 가을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성질 급한 몇몇 나무는 벌써 잎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덕유산이 가까워집니다. 하늘 보는 횟수가 점차 늘어납니다. 덕유산 꼭대기엔 구름이 가득합니다. 덩달아 제 마음속에도 먹구름이 낍니다. 드디어 덕유산 오르는 곤돌라 탑승장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무주리조트 스키장 옆에 있어 겨울이면 스키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는 곳입니다.

정상인 향적봉(해발 1614m)까지는 20분 더 걸어 도착했습니다.
▲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해발 1614m)까지는 20분 더 걸어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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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크게 붐비지 않습니다. 짧은 기다림 뒤 곧바로 곤돌라에 오릅니다. 다행히 어머니 입가엔 미소가 가득합니다. 어머니 눈동자는 쉼 없이 주변 경치를 담느라 분주합니다. 곤돌라 안에서 어머니 비명 소리를 열심히 듣다 보니 어느새 설천봉입니다. 설천봉이 가까워질수록 제 눈은 주변 하늘을 더 자주 훑어봅니다. 맑은 하늘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구름이 산을 넘습니다.

야속한 덕유산 날씨입니다. 하지만 설천봉에 발 디딘 어머니는 마냥 즐겁습니다. 제법 쌀쌀한 날씨에 햇볕이 없으니 더 좋답니다. 내친김에 어머니는 향적봉까지 오릅니다. 어머니에게 무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팔순을 바라보는 어머니, 씩씩하게 잘 걸으십니다.

세 아들은 이미 저 멀리 달아나고 없습니다. 어머니와 큰 누나가 나란히 향적봉을 향해 걸어갑니다.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그렇게 향적봉에 닿았습니다. 정상엔 많은 사람이 모여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북적이는 사람들 틈을 헤치고 세 아들이 한 곳에 자리를 잡습니다

곤돌라가 덕유산 설천봉(해발 1520m)에 닿았습니다. 시간을 재보니 얼추 15분 남짓 걸렸습니다.
▲ 설천봉 곤돌라가 덕유산 설천봉(해발 1520m)에 닿았습니다. 시간을 재보니 얼추 15분 남짓 걸렸습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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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고통스런 산행 뒤 사진 찍었던 곳입니다. 사진 찍는 데 막내가 재밌는 표정을 짓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작년 덕유산 산행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향적봉까지 걸었던 거리가 부족했는지 산 아래 대피소까지 걸어 내려갑니다. 그곳에서 세 아들에게 라면을 사주십니다.

어머니가 맛있게 라면 먹는 세 녀석을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산행인데 아쉽게도 좋은 경치는 구경 못 했습니다. 안개 가득한 하얀 산만 보고 왔습니다. 가을 깊어지면 또 한 번 덕유산에 들러야 합니다.

어머니와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날씨도 화창해지고 어머니 발걸음도 좀 더 가벼워지면 좋겠습니다. 덕유산 산행, 아쉬움만 남지는 않았습니다. 산에서 소녀가 된 어머니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멀지 않은 산행은 어머니와 함께 가렵니다. 마냥 즐거워하시는 어머니를 보니 절로 흥이 납니다.

지난해 덕유산 향적봉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안개와 추위에 많이 떨었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안개에 휩싸였습니다.
▲ 추위 지난해 덕유산 향적봉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안개와 추위에 많이 떨었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안개에 휩싸였습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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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덕유산, #무주리조트, #곤돌라, #향적봉, #설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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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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