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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되도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법, 친구를 통해 배운다.
 노인이되도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법, 친구를 통해 배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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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뒤의 주말, 나와 띠동갑인 40대 즉 '4학년 친구'가 연락이 왔다.

"이번 주말 60대 유 국장님과 번개팅 어때요?"
"좋아, 좋아. 유 국장 일정 안 되면 같은 60대 강샘이랑 하자!"

4학년 친구는 20여 년 전 내 생활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방송 작가다. '6학년' 강샘도 그녀의 다큐멘터리에 함께 등장했다. 그렇게 맺어진 우리는 20여 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왔다. 신기한 것은 10살씩 나이 차이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 동질감을 가지고 각자 연령대에 관한 이야기에 깊이 공감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요즘 들어 함께 모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4학년 친구의 남편이 주말 근무를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6학년인 강샘의 남편이 낙향 후 농사를 지어 기러기 부부가 된 탓도 있었다. 5학년인 나는 주말이면 작품에 매진해왔지만 요즘은 건강이 별로 좋지 않아 주말엔 쉬기로 하고 있던 차였다.

같이 점심을 먹은 뒤 호수 주변을 산책하고, 산허리를 둘러 내 연구실에 와서 맛있는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하루종일을 같이 시간을 나누다 보면 여러 삶의 애환들이 나온다. 4학년 친구는 시부모와 친정 부모의 이야기를, 6학년 친구는 노후 문제와 기러기 생활의 애환을 이야기한다. 나는 아무래도 노인 복지 쪽 일을 더불어 하다 보니 노인들의 여러 신 풍속도와 일상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

요즘 노인들은 옛날과 아주 다르다. 자주 바깥바람을 쐬시기도 하고, 자기 취미도 갖고 친구도 만든다. 동성 친구로 관계를 이어가는 어르신도 있지만 간간이 이성 교제를 하는 어르신도 있다.

내가 가르치는 어르신 중 80대 후반의 어떤 할아버지는 70대 중반 할머니와 연애를 시작하시며 염색도 하시고 자전거도 타신다. 70대 노인처럼 팔팔하게 다니시느라 결강도 많이 하셨다. 제 90대에 접어들며 여자친구 할머니가 잘 안 만나주신단다. 할아버지는 상심에 염색을 멈추니 진짜 90대처럼 보이더라고 했다. 4학년 친구는 이 이야기를 듣고 크게 웃었다.

노인이라고 연애 못하는 시대 지났다

4학년, 5학년, 6학년인 우리들. 연령대가 달라도 나눌 수 있는 대화의 깊이와 폭은 다양하다.
 4학년, 5학년, 6학년인 우리들. 연령대가 달라도 나눌 수 있는 대화의 깊이와 폭은 다양하다.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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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선생님! 90대에도 실연을 할 수 있단 말이네요!"

반면 4학년 친구가 말한 86세의 시모는 열여섯에 시집왔을 때 소녀 모습 그대로 할아버지가 돌아가셔도 집 안에만 머물며 부군의 생전과 똑같이 밥상을 차리고, 마치 할아버지가 계신 것처럼 조신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사신다고 한다.

"내가 80대 훨씬 넘어서도 저렇게 우리 시모님처럼 순수하고 단아한 할머니로 늙을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고령화 시대의 수명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4학년 친구가 진단한 내 평균 수명은 92세였다. 6학년 친구는 88세, 4학년인 자신은 95세란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아직도 많이 남은 셈. 자연스레 노년 준비도 이야기도 했다.

노후는 건강과 경제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외로움'과 관련된 문제다. 결국 나이가 들수록 부부도 이별하게 되고, 자식들도 자주 만나지 못하며, 가족과 함께 모든 생활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더더욱 연령대가 서로 다를지라도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삶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과 취미와 소일거리를 해나가는 게 참 중요하다고 결론 지었다. 바짝 마른 6학년 친구와 한창 살집이 좋아 섹시하면서도 부티나는 활동적인 4학년 친구. 장년이긴 하지만 이런저런 나잇살이 군데군데 보이는 5학년인 나.

이렇게 우리 세 여자는 주말 햇살이 따사로운 산책길 한가운데 나무 사이에 서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우리 셋은 어린 여학생처럼 가슴에 손을 포개고 크게 심호흡을 하며 눈을 감았다. 흙과 초록의 잎 내음새와 빛 나는 가을 태양에 감사하면서. 그리고 아주 많이 다른 우리 셋이 이 땅 위에서 함께 나란히 서 있을 수 있음에 더욱 감사하면서.


태그:#고령화시대와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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