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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제가 대통령 되겠다는 것 아닙니까?"

지난 2012년 12월,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후보 토론회에서 3차례나 나왔던 발언이다. 당시 양대 후보 토론으로 진행된 자리에서 당시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의 질의에 박근혜 대통령이 답변으로 했던 말이었다. 반값등록금과 원전 문제, 과학기술 등 현안에 관련된 질문에 박근혜 당시 후보가 대답으로 한 발언이었는데, 재원마련같은 구체적인 방법이나 근거를 거론하는 대신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정책을 실행하겠다는 말로 대신한 셈이다.

논리의 부족함을 당당한 태도로 대신하려고 했던 것일까? 후보토론회의 이 부분은 한 사람의 유권자로서 보기에, 후보의 당위성없는 주장에 상당히 민망한 장면이었다. 그런데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오늘 당시 발언을 돌이켜보면 더욱 민망하다 못해 그 자신감은 어디로 갔는지 상당히 궁금해진다.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당연히 지키겠다던 복지공약은 대부분 파기하면서, 갑작스러운 증세를 발표한 박근혜 정부의 모습을 보자면 말이다.

담배값 인상과 안행부 지방세 개편안 발표

정부는 지난 11일, 담배값 2000원 인상을 발표했다. 그리고 하루만에 다시 지방세 개편안을 연이어 발표하면서 증세 논란에 휩싸였다. 담배가격 인상은 국민의 건강증진을 이유로 결정되었고, 지방세는 연간 2조 원에 이르는 감면 혜택이 단계적으로 종료되면서 국민의 세부담이 늘어나게 되었다.

안전행정부가 12일 발표한 '지방세 개편방향'을 살펴보면, 지방재정 확충을 위해 지난 10년 가량 묶여있던 세금을 대폭 인상하면서 감면율을 점진적으로 낮추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주민세와 자동차세의 인상을 골자로 한 개편안은 1인당 평균 4620원이던 주민세를 2년에 걸쳐 '1만 원 이상 2만 원 미만'으로 대폭 올리며, 자동차세도 2017년까지 100% 올릴 방침이라는 것이다.

이에 국민의 비판여론이 거세어지고 있다. 담배값 인상이 금연에 큰 도움이 안되며, 단지 증세가 목적일 뿐이라는 것이다. SBS <취재파일>에서 보도된 바에 따르면 인상금액이 4500원인 것은 "세수를 최대로 확보할 수 있는 금액"이기 때문이고, 기사에서 인용된 조세재정연구원의 '담배과세의 효과와 재정' 보고서도 이를 뒷받침한다. 보고서는 발표된 인상안보다 담배값이 더 오른다면 금연율은 더 높아지지만, 정부의 세수 확보는 떨어진다는 것을 '4500원 인상시 정점을 그리는' 그래프를 첨부하여 설명했다.

"실상 이는 부족한 국세를 메우려는 목적이 크다"며 <조선비즈>는 11일 기사에서 이러한 국민적인 비판여론을 담았다. 또한 "담뱃값 인상 과정에서 국세인 개별소비세를 새로 물리기로 한 것은 담뱃값 인상의 명분, 취지와는 전혀 무관한 뜬금없는 조치라는 지적이 많다"는 12일자 <국민일보> 기사도 정부의 담배값 인상안에 의문을 제기했다.

'사실상 증세' 논란, 문제는 과정

지난 12일, 문창용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발언도 도마 위에 올랐다. 담배값 인상이 발표된 후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우회적 증세가 아니냐는 질문에 문창용 실장이 "증세가 아니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말하여 '사실상 증세 인정'이라고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일단 국민들의 비판 지점은 크게 보자면 세가지로 압축된다. 첫 번째는 '국민건강'을 내세워 증세의 변명으로 삼았다는 주장이다. SBS의 보도에서도 최대치의 세율 확보를 위한 수치가 2000원 인상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금연 홍보를 위한 방안 검토나 캠페인보다 '사재기 규제'가 먼저 발표되면서 부정적인 인식을 낳았다.

두 번째는 설득 과정이 생략되었다는 점이다. 증세가 거론되기에 앞서 국민의 의견수렴이나 세금 증가를 토대로 시행될 정책을 알리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증세를 정당하다고 받아들일 여지를 줄 절차가 사라진 상태에서 발표된 세금 인상은 큰 반발을 우려가 높은 것이 불을 보듯 뻔한데도 말이다. 문제는 증세 자체가 아니라 점진적인 논의가 빠졌다는 것이고, 결국 어떤 정책에 예산이 쓰일지 계획을 세워 투명성과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마땅하다.

세 번째는 '증세없는 복지' 공약이 파기되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기초노령연금을 '모든 노인에게 차별없이 20만 원씩 지급하겠다'던 후보시절 핵심공약도 차등지급으로 바꾸면서 '조삼모사' 논란을 낳은 바 있다. 뿐만 아니라 반값등록금 등의 공약도 이행되지 않고 있으며, 노령연금을 제외하면 뚜렷한 복지정책의 움직임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와중에 증세가 거론되니 '증세없는 복지'가 아니라 '복지없는 증세'로 전락할 우려가 커보인다는 비판도 커졌다.

'창조경제' 외치기 전에 형평성부터 갖춰야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담뱃값 500원 인상안'에 "(정부가) 또다시 담배값의 500원 추가 인상을 시도하고 있다. 흡연율 감소와 국민건강증진보다는 애초부터 부족한 세수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며 논평으로 비판한 바 있다.

거기다 "현재도 담뱃값 인상은 저소득층의 소득 역진성을 심화시키며 밀수와 사재기 등 심각한 사회적 부작용을 초래하며 물가 상승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국민건강을 챙기는 일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오늘날에는 8년전보다 더욱 경기침체가 심화된만큼 과거 자신들이 했던 발언을 돌이켜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게다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거세게 반대하면서 "이제는 민생을 챙겨야 할 때"라며 경제를 살리자고 주장한 것은 박근혜 정부와 여당인 새누리당이었다. 그런데도 서민이 체감하기에 부담이 되는 부문에서 큰 폭의 증세를 계속 시도하고, 부자감세의 기조를 이어가려는 정부의 태도는 다분히 기만적으로 보인다.

지난해에는 부동산 시장을 띄우겠다고 지방세수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취득세를 대폭 인하하고, 올해에는 전월세에 대한 소득세를 걷으려다 반발이 크자 추진을 중단하기도 했다. 이런 행보는 증세없이 복지를 하겠다고 큰소리치던 것과는 대조적이며 어떤 면에서는 일관성이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정부는 인상된 담뱃값과 세금으로 '안전예산'을 늘리겠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와 각종 사고로 안전한 환경이 화두로 떠오른 현재, 이런 주장에는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 증세도 후보시절의 공약과는 어긋나지만 복지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 더 현실적인 방안일 것이다. 높은 자살율과 저출산이 오늘날 한국의 사회적인 문제로 거론되는 실정이고, 이에 복지확충이 해법으로 절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만 학교 주변의 관광호텔 건설 규제완화, 크루즈 선상 카지노 허용법을 '민생법안'이라 포장하며 창조경제를 설파하는 자세를 내려놓고, 국민들로부터 증세의 정당성을 인정받는 일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MB정부에서 이어진 기업 법인세 감면으로 인한 세수 부족을 서민 증세로 채우려는 박근혜 정부는, 임시방편인 세금 돌려막기에 앞서 세제정의를 확립하는 일부터 추진해야 바람직하다. '창조경제'를 외치고 증세를 거론하기 전에, 부자감세 노선을 철회하고 세금징수의 형평성부터 갖춰야 마땅할 것이다.

지자체의 예산부족으로 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증세는 부득이하게 피할 수 없는 과정일 수 있다. 다만 예산 운용의 계획 수립없이 지금처럼 세수확보부터 실시하는 것은, 정부나 국민 모두에게 증세를 그저 '불편한 가시방석'으로 만드는 격이다. 또한 소득의 격차를 고려하지 않고, 불평등한 조세제도를 고치지 않는다면 국민들에게 '서민 주머니 털기'라는 인상만 심어줄 우려가 크다.

첫줄에 인용한 박 대통령의 후보시절 발언처럼, 이러려고 대통령 되려던 것은 아니지 않은가.


태그:#박근혜 정부, #담배값 인상, #서민 증세, #지방세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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