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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이후 모든 국민,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까지도 세월호 이전과 달라져야 한다고 외쳤다. 그러나 5개월이 지난 지금 세월호 이전과 달라진 것은 없다. 한쪽에서 단식을 하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단식을 조롱하는 퍼포먼스를 펼치는 등 분열양상이다.

이런 현실에 대해 국사 편찬 위원장을 지낸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지난 11일 이 교수의 자택에서 만나 한국 사회의 현상과 함께 역사 교과서에 대한 견해를 들어 보았다.

다음은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와 나눈 일문 일답이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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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5개월이 되어가지만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은 제정되지 못했습니다. 이마저도 진보와 보수로 갈라져 싸우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어떻게 보세요?
"진보와 보수로 갈라져 싸운다는 것은 너무 포괄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오히려 정부·여당·거기에 동조하는 세력과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자는 국민 사이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부·여당·거기에 동조하는 세력이라고 해서 모두가 보수는 아닙니다.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의 입장에 동조하고 세월호 이후 한국이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진보라고 보진 않아요. 보수 측에도 세월호 유가족을 동정하고 뭔가 우리 사회가 변화돼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마도 세월호 참사를 겪은 사람들이라면 이런 걸 안 느끼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이 정부의 수장도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으니까 변화에 대한 위기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변화가 왔을 때 지금까지 갖고 있던 기득권이 빼앗기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은 변화의 도전 앞에서 멈칫하겠지요. 더 나아가 변화를 저해하고 방해하는 세력으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합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5개월이 되다보니 일부에서는 '세월호 피로감'을 말하고 '이제 그만 하자'는 말도 하고 있습니다. 또 광화문에서는 동조단식을 하고 있는데 그 앞에서 소위 '일베' 무리들은 '폭식투쟁'을 했다나요.

이건 인간의 예의를 벗어난 '폭력과 야만'의 행태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월호 유가족이 요구하지도 않은 내용을 유언비어로 조작하여 SNS를 통해 유포하고 있습니다. 당국은 그런 것을 모르는지, 그런 유언비어를 방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유언비어는 신뢰사회를 좀먹는 짓거리이기 때문에 그것이 정권에 유리하던 불리하던 근절시켜야 합니다.

저는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대한민국이 거듭나길 바랐는데, 그런 분위기가 점차 소멸되고 있는 느낌이라 걱정스러워요. 더 우경화되고 더 보수화될까 두려운 마음입니다."

- 어떻게 개혁해야 할까요?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어느 한 부분이 잘못되어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부패의 고리가 얽혀서 폭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남을 탓할 여유가 없습니다. 필요하면 제도를 바꾸고 관행을 바꾸어야 하는데 5개월이 채 안 된 이 시점에 벌써 '세월호 피로감' 운운하니 시작도 하기 전에 지쳐버리는 모습입니다.

개혁을 하자면 청와대부터 일반 시민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의 자신의 행태에 대해 깊은 성찰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정부가 솔선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 기득권을 내려 놓고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처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감돌았던 자숙과 변화에 대한 열망이 첨차 퇴색되고 있어서 모두들 걱정하고 있습니다."

- 세월호 참사 후 대한민국은 달라져야 한다고 모든 국민이 말했지만 달라진 것이 없는데 원인은 뭐라 보세요?
"결국 기득권 세력이 그걸 내려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미 갖고 있는 권리들 중 포기할 건 포기하고 양도할 건 양도해야 하는데 오늘날 우리사회는 모두가 권력과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다 가지려고 해요. 그건 옳지 않죠. 권력을 얻었으면 부는 포기해야 하고, 명예를 가지려면 권력과 재력은 포기해야 하는데 이걸 다 움켜쥐려는 데에서 오는 갈등이 너무 심합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변하려면 가진 자나 권력 있는 자들의 각성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 입니다.

언론도 제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언론은 그런 몰가치에 덩달아서 부화뇌동하고 굴종하고 나아가서는 그런 잘못된 가치들을 선동하고 있어요. 지도자들이 잘못하면 언론은 선지자적 역할을 해야 하는데 못하고 있어요. 대한민국의 희망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지, 참으로 두렵습니다. "

- 그런 면에서 야당의 책임도 있을 것 같아요.
"조심스럽지만 이번 추석 전후에 여론조사 기관에서 페이스북에 나타난 글을 조사했어요. '여당은 국민에게 관심이 없고 야당은 집권세력과 타협했다'는 반응이 많았답니다. 이 말은 야당이 야당다운 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죠. 야당은 비판하고 견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세력이어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고 있어요. 세월호 특별법 하나만 보더라도, 그것을 가지고 도저히 진상을 밝힐 수 없을 것 같은데도 법안에 두번이나 합의를 해줬단 말이에요. 야당이 세월호 유족이나 국민들을 대변하느냐에 대해 대단히 회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야당을 야당답게 만드는 것도 우리 국민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번 두 차례의 선거만 하더라도 야당을 제대로 지원하지 못했어요. 오늘날 야당이 더러 싸우기도 하는데 야당 지지율은 내려가고 있어요. 국민들이 격려를 해줄 수 있어야 하는데 국민들은 비판을 하지, 격려는 안 해요. 물론 여기에는 야당의 책임이 큽니다만, 야당이 제 구실을 할 수 있도록 좀더 격려하고 힘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국민의 뜻을 받들어 필요하면 투쟁력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세월호 특별법을 다른 민생법안과 연계시키는 것에 비판적 시각도 있는데.
"여당이 주장하는 민생법안이란 것이 부풀려진 민생법안이지 정말 긴급하게 필요한 민생법안이 아니라는 견해가 있더군요. 주로 야당이 주장하는 것이지만 일부 지식인들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아마 이 시기에 꼭 필요한 민생법안이 있음에도 세월호 특별법을 인질삼아 그걸 통과시키지 않는다고 한다면 잘못이죠. 그러나 야당은 여당에서 주장하는 민생법안이라는 것이 긴급하지도 않고 민생을 위한 법도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특별법과 연계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여야의 주장을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를 느낍니다."

-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문제는 국론 분열 같은데 이것을 극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이 정권이 출발할 때 화합을 강조했는데 오히려 진영논리에 서서 자기들 편을 들지 않는 사람을 배제시키고 고립시키는 정책을 펴고 있다는 지적이 있어요. 예를 든다면 역사학계에서 뉴라이트계가 몇 안 됩니다. 그런데 자기를 지지해주는 이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더 많은 수의 비뉴라이트를 배제시키고 있어요. 뉴라이트가 아니라고 국익에 손해를 끼치나요, 정권을 비판할는지 모르지만 그들도 대한민국에 충성하고 대한민국을 책임지려고 하는 분들이에요. 요는 무엇보다도 이 정권이 선거에 내세운 공약과 같이 통합, 통섭하는 정책을 세워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바 입니다."

- 정부와 새누리당은 세월호를 경제 위기론으로 덮으려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 하세요?
"그것은 책임전가에 불과하다고 봐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난 직후에 곧 등장시킨 것이 유병언입니다. 그를 활용하여 정부를 향한 비판적 안목을 가리는 데에 성공했지요. 일종의 책임전가지요. 그런 후에 나온 것이 세월호 때문에 소비심리가 위축되는 등 경제가 휘청거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며칠 전 통계청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던 지난 4월부터 6월 사이 국민의 외식비와 숙박비는 더 증가했다고 합니다. 이는 곧 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경제위축의 주범으로 몰아서 세월호 정국에서 탈출하려고 하는 '꼼수'를 부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 교수께서는 한국교회에 대해 쓴 소리도 하시던데, 세월호 참사에서 보여진 한국교회의 태도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말씀해 주세요.
"한국교회가 세월호 사건 이후 봉사를 많이 해요. 그러나 개별적으로 하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다른 종교는 교단적 차원에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드러나기가 쉬워요. 그러나 개신교는 아니죠. 안산 어느 교회에서는 세월호 문제로 국민토론회를 하는 것을 보면서 교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럼에도 한국의 많은 교회, 특히 대형교회들은 세월호가 가라앉을 때처럼 '가만히 있으라'는 메시지로 성도들을 이끌어가고 있어요. 이것 또한 부정할 수 없어요. 조금은 더 적극적으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이 박근혜 정부에 있다고 보는 사람도 많던데.
"세월호 참사의 본질이 뭐냐를 따져봐야 합니다. 세월호가 기울어서 완전히 가라앉는 데까지 3시간 정도 걸렸어요. 또 에어포켓 등을 감안하면 3일 정도 구출할 시간이 있었다고 보는 분들도 있어요. 그래서 세월호 참사의 본질은 사고가 난 후 3시간 내지 3일간 막대한 인력과 조직, 장비를 가진 정부가 왜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책임은 이 정부와 수장이 져야 하는 것 아니에요? 사고의 가장 근본 원인으로 귀일시킬 때 이 정부의 책임론을 부각시키지 않을 수 없지요. 본인도 그걸 알고 책임이 자기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교과서의 국정화, 공산주의·전체주의 국가에서나 시행"

- 지난주 뉴라이트계 역사학자인 이인호 명예교수를 KBS 이사장으로 임명해 논란입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번 인사가 단발성이 아니라는데 있다고 보는 시선도 있어요.
"이인호 선생은 제 2년 선배이기도 합니다. 대학에 갔을 때 여러 교수님들이 이미 유학을 떠난 이인호 선생을 칭찬을 많이 하시더군요. 그분이 러시아사를 공부하고 돌아와 진보적인 계열에서 역사학자로 상당한 역할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2005년 경부터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다는 분들도 있더군요. 특히 2009년 친일 반민족 행위 진상조사위에서 총 1005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를 발표하게 되었고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는 4776명을 등재하게 되었는데, 거기에 그 조부의 이름이 올라 있다고 하더군요. 많은 사람들은 이때를 계기로 해서 이인호 선생이 친일 문제에 신경을 쓰는 한편 뉴라이트 역사학에도 동조하게 됐다고 해요.

인재 풀이 적은 이 정권으로서는 아마도 최선의 인물을 고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뉴라이트 안에서 인재를 고르려고 한다면 인재풀이 너무 적기 때문이죠. 그가 과거 그의 저술에서 주장한 역사의식을 공직에서 실천하기를 기대할 뿐이지요.

그러나 문제는 이 정부가 이인호 선생 뿐만 아니라 국사편찬위원장도 이승만을 옹호하는 류영익 교수를, 이배용 교수를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으로 그리고 교학사 한국사교과서 주집필자인 권희영 교수를 한국학대학 원장으로, 뉴라이트 계통의 박효종 교수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에 각각 앉혀 뉴라이트계 인사를 포진 시킨 건 문제예요. 저는 이인호 선생이 공직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그의 할아버지의 친일행적을 변호하는 차원의 역사의식으로는 곤란하다고 생각해요."

- 지난달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국사교과서를 현재의 검인정 체제에서 국정교과서로 전환할 것을 시사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명박 정권때부터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다고 교과서 수정작업을 계속 지시했습니다. 그러다가 올해부터 사용하는 역사교과서를 검인정 체제 하에서 새로 만들었는데 여기에 7종의 교과서가 통과되었고 그 하나가 교학사 교과서입니다.

이 교과서가 통과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는데 통과됐습니다. 그리고 많은 문제점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이 교과서를 교재로 채택한 학교는 거의 없습니다. 자신의 입맛에 맛는 교과서로 아예 단일화 하겠다는 국정화 기도 단계에 와 있어서 슬픕니다.  

우선 국정 교과서는 1970년대 유신 때에 시작되었어요. 역사인식과 해석을 단일화하겠다는 것입니다. 역사가 간단하지 않은데 정부나 집권자들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역사를 끌고 가려고 이런 무리수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교과서의 국정화는 현재 세계에서 공산주의를 비롯해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시행한다고 그래요.

오늘날 러시아, 베트남, 북한 정도에서 국정교과서를 쓰고 있다고 하네요. 국정교과서로 만들겠다는 것은 오히려 교과서만큼은 전체주의로 희귀하겠다는 것이나 같아요. 민주주의 국가에서 특별히 이 정권이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도저히 용인될 수 없죠.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이런 시도 자체를 중단해야 한다고 봅니다."

- 마지막으로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오늘날 한국의 언론이 정도를 걷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가 많아요. 그리고 언론은 예언자적인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이런 때에 비록 인터넷 매체이긴 하지만 <오마이뉴스>가 언론의 예언자적 지성과 역할을 감당하기를 기대합니다.

<오마이뉴스> 독자라고 한다면 오늘날 굴종된 언론에 순응하지 않고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적은 숫자일지는 몰라도 우리사회를 개혁하고 새로운 사회로 밀고 나가는데 추동적인 힘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영광 시민 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영광의 언론, 그리고 방송이야기'(http://blog.daum.net/lightsorikwa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만열,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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