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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빌딩 뒤편 작은 삼거리에는 물을 뿜어 올리는 분수가 있다. '가끔'이다. 하지만 이곳 일대가 과거에도 지금처럼 한가했던 것은 아니다. 분수 왼쪽은 일제 강점기 시절 염매소(지금의 대형 할인매장)가 있었고, 염매소 아래 태평로 도로변에는 경주와 청도 등지로 가는 시외버스 정류소가 있었다. 대단한 군중 운집소였다는 말이다.

일제 강점기 때 염매소가 있었던 자리 오른쪽의 삼거리에서 분수가 물을 뿜어올리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염매소가 있었던 자리 오른쪽의 삼거리에서 분수가 물을 뿜어올리고 있다.
ⓒ 추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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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 말, 그러니까 친일파 대구 군수 박중양이 1906년 대구 읍성을 부수기 전에도 이 삼거리는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이곳에는 동장대가 있었다. 동장대는 북성로 공북문과 동성로 진동문(동아백화점 네거리)의 중간 지점에 설치된 군사 지휘소였다. 공북문과 달서문 사이의 북장대는 대구 은행 북성로지점 앞, 달서문과 영남제일관(남문) 사이의 서장대는 약전골목의 서성로쪽 끝, 남문과 진동문 사이의 남장대는 중앙 파출소 자리에 있었다. 

대우빌딩 뒤편 삼거리에서 동성로 답사 여행을 시작하는 것은 대구역 때문이다. 즉, 대구역에 하차한 타지인들을 위해 답사 출발점을 동장대 터로 잡았다는 말이다. 대구역에서 대우빌딩 뒤편 동장대 터까지는 걸어서 1분 거리밖에 안 된다.

동장대 터 일대는 1905년 경부선 철도 개통과 1906년 대구 읍성 파괴 이후부터 대구 최대의 번화가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경상 감영(대구시청), 대구 큰시장(서문시장), 약령시(약전골목)를 찾아가는 길목이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그 영화는 1960년대로 끝나고, 그 이후 급속한 현대화 흐름 속에서 이 일대는 쓸쓸해졌다.

대구 최초의 백화점이 들어섰던 건물
 대구 최초의 백화점이 들어섰던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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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아트홀이 동장대 터에서 진동문 터 사이에 들어선 것도 그렇게 이해하면 될 듯하다. 동성아트홀은 영화진흥위원회 선정 예술 영화 전용관이다. '돈 안 되는' 예술영화를 상영하려면 먼저 임대료가 싼 곳부터 찾아야 한다. 대구에서 가장 임대료가 센 동성로 중심부(한일극장에서 중앙파출소까지)는 처음부터 고려 대상이 못 된다. 예술 영화 전용관 움터로는 동성로 중에서 낡은 건물들이 그대로 곳곳에 남아 있는 동장대 터 인근이 적격이었을 법하다. 

동성아트홀은 만경관, 대한극장(남문시장 네거리) 등에서 간판 그림을 그렸던 배사흠 씨가 1992년에 세웠다. 배사흠 씨는 평생 소원이었던 극장 운영의 꿈을 동성로 1가 22번지에서 실현했던 셈이다. 그러나 극장 운영은 고전을 거듭했고, 예술 영화 전용관으로 재개업한 2004년 9월 이후에도 단 한 명의 관객마저 들지 않아 영사기를 돌리지 못하는 날이 드물지 않았다.

일제시대부터 한국전쟁까지 겪은 건물...옛날의 영화는 어디로

동성아트홀이 주말이면 100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아오는 영화관으로 제법 발전한 데는 정부의 예술 영화 진흥 정책이 큰 도움이 됐다. 동성아트홀은 여느 상영관에서는 보기 힘든 영화들을 수시로 관람할 수 있는 곳으로 차차 알려졌다. 2014년 9월 14일 현재 2736명의 회원이 등록되어 있는 동성아트홀 카페에 들어가보면 9월 4일부터 9월 17일 사이에 <족구왕>, <야간비행>, <리스본행 야간열차>, <자유의 언덕> 등을 상영한다고 게시돼 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동성아트홀에서 영화 한 편을 본 뒤 다시 동성로를 답사하는 것이 최상의 여행이다. 책을 읽고, 그림 전시회를 찾고, 영화를 보고, 연극을 감상한 뒤 거리로 나오면 세상이 달라보이는 법이다.

동성아트홀에서 앞길을 바라보면 작은 네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왼쪽은 '임대 문의'가 붙어 있는 왕년의 은행 빌딩이고, 오른쪽은 약간 다홍빛을 뽐내는 옷가게 건물이다. 은행 빌딩 앞 약식 정원에는 그곳이 진동문 터였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표지석에 세워져 있다. 대구 읍성 밖으로 나가서 동쪽으로 가려면 이곳 성문 아래를 통과해야 했다는 뜻이다.

진동문 터 표지석을 등지고 네거리 건물을 바라본다. 자태가 제법 현대적 깔끔함을 자랑하고 있다. 과연 옷가게다운 정체성을 지녔다. 하지만 동성로 1가 34번지의 이 건물이 본래부터 옷가게로 쓰였던 것은 아니다. 1970년 이래 1980년 초반까지 이 건물에는 대구 최대 제과점 중 한 곳이던 런던제과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 이전, 즉 일제 강점기 시대에도 이 건물의 위용은 대단했다. 1932년,  당시로서는 대구 최고층 빌딩이었던 이 건물에 대구 최초의 백화점인 이비시야 백화점이 들어섰다. 그 이후 일제 말기에는 아파트로 쓰이기도 했고, 6·25 중에는 헌병대 사령부로 차출되기도 했다. 그 뒤 원호청(현 국가보훈처) 건물로도 사용되었다.

진영이 있던 자리에도 건물이 빼곡하다.
 진영이 있던 자리에도 건물이 빼곡하다.
ⓒ 추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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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이 건물 4층에는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문을 연 FM방송사가 들어서기도 했다. 1971년 4월 개국한 한국FM방송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후 1975년 한국FM방송은 수성구 범어동에 마련한 새 사옥으로 이전해 갔다. 하지만 이제는 범어동으로 찾아가도 한국FM방송을 볼 수 없다. 1980년 11월 30일 전두환 군사정권이 언론통폐합을 할 때 KBS에 합병돼 버렸기 때문이다.

한국FM방송 건물을 바라보니 문득, 전두환이 군대를 이끌고 정권을 탈취한 것이 벌써 34년 전의 일이라는 사실이 실감난다. 한국FM방송도 없어졌고, 군사정권도 끝이 났다. 그런데  진동문 터 네거리에 서서 언론통폐합과 12.·12 사태를 이야기하니 답사 일행 중 젊은이들은 삼국 시대 이야기를 듣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청년들이여,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진동문 터 네거리의 한쪽 모서리 일대는 조선의 군대가 주둔했던 진영 자리이다. 진동문 바로 안에 군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적이 쳐들어올 때 곧장 출전을 해야 하고, 경상 감영과도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하니 군대 주둔지로는 이곳이 적격이었을 터다. 그러므로 진동문이라는 이름도 군대 진영 동쪽에 있는 문이라는 의미로 작명됐다.

진동문 터인 동아백화점 네거리
 진동문 터인 동아백화점 네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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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제과가 있던 건물에 묭동의류 간판이 붙어 있다.
 뉴욕제과가 있던 건물에 묭동의류 간판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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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조금 전에 본 런던제과와 더불어 1970년대 대구 최대 제과점의 위상을 다투었던 뉴욕제과 자리를 찾아간다. 물론 뉴욕제과도 지금은 없다. 패스트푸드, 편의점 등이 주를 이루는 새로운 풍속도가 전통적인 제과·제빵 업체들의 목줄을 쥐어버렸기 때문이다.

뉴욕제과의 본래 이름은 보래옥이다. 보래옥! 이름만 들어도 옛날식이다. 그래서 뉴욕제과라는 서양식의 새로운 탈을 덮어썼다. 위치도 옮겼다. 교동에 있던 작은 빵집 보래옥이 뉴욕제과라는 새 간판을 번쩍이며 한일극장 대각선 편 중앙대로로 옮겨온 것은 주요 상권의 변화에 순응하기 위해서였다.

1969년 대구 백화점이 지금 자리에 들어선다. 10층짜리 대구 백화점은 당시 대구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그 건물이 얼마나 높게 보였을지는 내부를 사용한 주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백화점은 3층까지만 사용했다. 그 위의 층들은 청구 주택건설, 영남TV 등등 일반 회사들이 썼다. 이는 당시 대구의 인구와 경제력 등을 감안할 때 백화점은 3층만 써도 넉넉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10층이나 되는 빌딩은 그 무렵 정말 어마어마한 거대 건물이었던것이다. 그래서 대구백화점 일대가 동성로의 핵심 상권으로 변해갔고, 뉴욕제과도 마침내 그 인근으로 이전했던 셈이다.

이제 한일극장을 마주 보고 선다. 도로를 건너면 동성로 최대의 번화가가 이어진다. 횡단보도 맞은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응시하고 있다. 한일극장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하다. 대구에서 항상 가장 많은 인파가 들끓는 곳, 한일극장에서 대구백화점 사이의 동성로로 들어서는 횡단보도 앞에서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잠시 망설인다.

덧붙이는 글 | 동성로 답사 내용이 너무 긴 탓에 이번 기사에 다 싣지 못하고 이어서 쓸 게획입니다.



태그:#동성로, #대구읍성, #동성아트홀, #진동문, #언론통폐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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