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프로 <띠동갑내기 과외하기>의 한 장면.

예능 프로 <띠동갑내기 과외하기>의 한 장면. ⓒ MBC


불과 백 년 전만 해도 인간의 평균 수명은 40세 안팎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백 년이 흐른 후 우리는 평균 수명 80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앞 세대보다 30년의 세월을 더 살고, 앞으로는 그 이상 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앞 세대가 만들어 놓은 인생의 궤도는 수정될 처지다.

일찍이 단테는 그의 서사시 <신곡>에서 '중년이란 젊은이다운 희망의 빛이 사라진 어두운 숲에 들어가는 것'이라 정의했다. 요즘엔 마흔 살 보고 늙었다고 하는 이는 거의 없다. 최근 종영한 <꽃보다 청춘>에서 중년 남자들이 여행을 떠났듯, 이 시대에서 청춘은 단순히 나이의 적음이 아니라 길어진 젊음을 향한 시간의 역주행을 대변하는 단어가 됐다.

그렇다면 젊음을 향한 시간의 역주행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배움이다. '배우고 때로 익히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고어는 그저 학생들에게 필요한 말이 아니라, 신체는 물론이고 정신의 노화를 막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강구해야 하는 100세 시대 청춘들의 필수 과제인 것이다.

추석 특집으로 방송된 MBC 2부작 <띠동갑내기 과외하기>(9월 8일 8시40분, 9월 12일 10시 방영)에서는 스타들이 평소에 갖고 있던 배움의 갈망을 그들보다 12년 이상이나 어린 진짜 청춘들을 통해 해소하고자 한다. 나날이 성장하는 아들들 앞에 당당한 엄마가 되고 싶어 영어를 배우고 싶은 김성령, 기타를 사놓았지만 정작 진도를 나가지 못했던 이재용, 늦은 나이지만 여전히 SNS 등 젊은이들의 소통에 관심이 많은 송재호, 그리고 팬들과 중국어로 소통을 하겠다고 약속했던 김희철 등이 배움의 당사자로 등장한다.

이들을 지도편달하기 위해 '띠동갑', 그것이 12살에서부터 24살, 36살, 아니 그 보다 한참 더 어린 젊은이들이 선생님으로 등장했다. '띠동갑'인 남자 연예인이라고 하자 김성령은 그녀가 평소 관심 있는 연예인을 떠올리며 가슴 설레 한다. 하지만 정작 그녀의 앞에 일면식도 없는 성시경이 등장하자 높임말도 아니고, 그렇다고 말을 놓지도 못한 채 평소 그녀가 써본 적도 없는 묘한 '~구'를 연발하는 사태에 직면한다. 그런 난감한 처지에서 성시경은 '애교'로 때우지 말라고 근엄하게 학습을 밀어붙인다.

그나마 김성령은 띠 동갑이 한번 돌아가니 나았다고 할까? 기타를 배우기 위해 고심하는 이재용 역시 그를 가르칠만한 띠동갑 연예인들을 검색까지 해보았지만, 정작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그의 아들 뻘인 중학생 손예음이다. 여릿한 몸매에 끼니나 챙겼을까 자식처럼 걱정을 보이기도 했지만 손예음이 기타를 튕기자 이재용의 눈빛은 감탄으로 변했다.

아니, 이재용도 그나마 나은 편이다. 할아버지 세대의 송재호를 찾아온 신세대 선생님은 손녀보다도 어린, 무려 60살이나 차이가 나는 아역 배우 진지희다. 당차고 똑똑한 소녀 진지희는 60살이 많은 제자를 능수능란하게 요리했다. '중후한' 아이돌이 되어가는 김희철과 개그맨 정준하 앞에는 동화 속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이 파랑 머리를 나풀거리는 아이돌 지망생 지헤라가 등장해 중국 무술까지 내세우며 선배 아이돌을 쥐락펴락했다.

출연자들이 선택한 배움의 대상은 아마도 중년과 노년의 세대들이 가장 배우고 싶어하는 것들과 일치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대부분이 생업의 압박으로, 혹은 제대로 된 기회가 없어, 그저 희망사항에 그치고 있는 것들이다.

바로 그런 것들이 <띠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선 예능의 대상이 됐다. 식당에 가서 음식을 시키는 법이라던가, 여배우에게 가장 익숙한 수상 소감, 그리고 친근한 영화 OST를 통해 이질적인 언어를 배우는 1:1 눈높이 교육은 비록 예능이지만 보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갖고 만들었다. 심지어 기계치인 할아버지를 단 한번도 '구박'하지 않고 웃는 얼굴로 '잘 하신다며' 또박또박 가르쳐 주는 손녀 또래의 교사라니!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손녀 또래 교사의 과제에 할아버지 학생은 시스타 춤까지 추게 했다.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처럼 과외를 하다 연애를 해볼 수도 있는 판타지는 아니더라도 나이가 역전된 이들 관계에서 나오는 또 다른 '화학작용'은 배움에 대한 갈망 이상의 것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런 '아기자기한' 사제 관계가 동시간대 타사 예능인 <정글의 법칙>이나 <꽃보다 청춘> 틈에서 존재감을 떨칠지는 의문이다. 과연 반복되는 배움의 콘셉트에서 신선함을 줄 게 있을까란 회의가 들기도 한다. 특집의 훈훈함을 넘어서 정규 편성으로 갈 수 있을지는 아직 의문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띠동갑내기 과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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