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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해미읍성의 남문인 진남문
▲ 진남문 서산 해미읍성의 남문인 진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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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 읍성은 낮은 산과 평지를 아우르는 평 산성으로 축성한 성이다. 사적 제116호인 충남 서산 해미 읍성은 지난 8월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순방지로, 마지막 미사를 집전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교황이 이곳을 순방한 것은 해미읍성이 곧 천주교의 성지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천주교도가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서산 해미 읍성은 고려 말부터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덕산에 있던 충청 병마도절제사영을 해미로 옮기면서, 조선 태종 17년인 1417년부터 세종 3년인 1421년까지 축성했다. 과거 충청도의 전군을 지휘하던 병마절도사영성이기도 하다. 큰 돌로 아래를 쌓고 위로는 작은 돌로 쌓으면서 안쪽을 흙으로 채웠다.

지난 8월 28일 찾아간 해미 읍성. 성을 한 바퀴 돌아봤다. 동, 서, 남 세 곳에는 성문을 조성하고 북쪽에는 해자와 함께 암문을 냈다. 원래 해미 읍성은 성 밖 둘레에 해자가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북쪽의 해자만 복원했다. 성의 둘레는 1800m,  높이는 5m 정도다. 원래 성곽 위에 여장과 옹성 등이 있었다고 전해지지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북암문의 앞쪽에 복원한 해자
▲ 해자 북암문의 앞쪽에 복원한 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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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의 성지...교황 방문 이후 관광객 줄이어

해미읍성 곳곳에서 순교의 아픔을 만날 수 있다. 아치로 조성한 진남문 안으로 들어서면 정면으로 길이 나 있다. 안쪽에는 호서좌영(湖西左營)이란 현판을 단 동헌의 정문인 누각이 보인다. 그 동현을 가기 전 좌측으로 복원한 옥사가 있고, 그 앞에 회화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수령 300년 정도가 됐다는 회화나무 한 그루. 이 나무는 현재 충청남도 기념물 제172호로 지정이 되어 있으며, 1790년부터 1880년에 이르기까지 옥사에 수감된 천주교 신자들을 끌어내 동쪽으로 뻗어난 가지에 철사 줄로 머리채를 매달아 고문을 한 현장이다. 순교의 현장을 찬찬히 돌아본다. 얼마나 많은 아픔이 저 회화나무에 아롱진 것일까?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 당한 현장
▲ 회화나무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 당한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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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나무 뒤편의 옥사. 오래 전 해미 읍성을 찾았을 땐 볼 수 없었다. 천주교도를 투옥하고 문초했던 옥사는 터만 남아있는 것을 발굴 작업 후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1935년에 간행 된 '해미 순교자 약사'의 기록을 토대로 복원한 옥사는, 내옥과 외옥이 있었으며 각각 정면 3칸 건물로 남녀 옥사가 구분돼 있었다고 한다.

천천히 회화나무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본다. 지금이야 저 나무가 저렇게 푸른 잎을 달고 서 있지만 아마도 그 당시에는 곳곳에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지 않았을까? 옥사 안으로 들어가 보니 마당 한가운데 형틀이 놓여있고, 관광객들이 그 위에 넙죽 엎드려 장을 치는 체험을 하고 있다. 웃음소리가 너무 커 죄스런 마음이 든다.

사람 향해 자리개질 했던 돌다리, 섬뜩하다

자리개란 곡식을 타작할 때 사용하던 기구다. 짚으로 만든 굵은 줄인 자리개로 곡식 단을 묶어 타작하는 것이다. 즉 곡식 단을 굵게 묶어서 어깨 위로 올렸다가 힘차게 내리쳐 단에 묶인 곡식들을 기구에 내리친 다음 낱알을 털어내는 식이다. 해미읍성 서문밖에는 이런 자리개 돌이 있다.

이 자리개 돌은 자리개 질로 사람들을 때려죽이던 순교의 형장이다. 서문 밖 수구 위에 놓여있던 돌다리. 이 돌다리 위에서 자리개 질로 많은 생명을 죽였던것이다. 이 자리개 돌은 서문 밖 순교지에 보관 중이던 것을 생매장 순교 성지인 여숫골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현재 볼 수 있는 자리개 돌은 모조품이다. 

내옥과 외옥으로 지어진 옥사 앞에 놓인 형틀
▲ 형구 내옥과 외옥으로 지어진 옥사 앞에 놓인 형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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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개질로 사람을 처형했다는 자리게돌
▲ 자리개돌 자리개질로 사람을 처형했다는 자리게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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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개 질. 한 마디로 사람을 이 넓적한 돌 위에 패대기 질을 쳐 죽였다는 소리다. 그 돌 앞에 서서 잠시 머리를 숙인다. 얼마나 큰 고통을 당했을까? 살아있는 사람을 자리개 질로 죽였다는 것이 상상이 가질 않는다. 더 이상 그곳에 서 있을 수 없을 것만 같다. 해미 읍성. 종교적인 박해로 아픔을 당한 곳. 교황이 다녀간 후 많은 사람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해미 읍성을 돌아보는 것은 좋지만 좀 더 경건한 마음들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e수원뉴스와 트스토리 바람이 머무는 곳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해미읍성, #서산, #순교지, #회화나무, #자리개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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