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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을 상징하는 문양안에는 동학교당의 동서남북 방향 배치대로 그려져 있다.
▲ 상주동학교당 앞에 있는 동학을 문양 비석 동학을 상징하는 문양안에는 동학교당의 동서남북 방향 배치대로 그려져 있다.
ⓒ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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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상주시 은척면 우기리에는 동학교당이 있다. 교당이란 종교 단체의 신자들이 모여 예배나 포교를 하는 집을 말한다. 지난 8월 그곳을 찾았다. 상주 은척면에 위치한 성주봉 자연휴양림에서 일박을 한 뒤 돌아오는 길, 상주 동학교당을 알리는 푯말이 눈에 들어왔다.

약자들 모여 푸른 이상 나눴을 동학 교당

전날 성주봉 자연휴양림으로 가던 도중 상주 동학교당을 알리는 푯말을 봤지만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았다. 성주봉 자연휴양림에서 하룻밤을 지낸 뒤 성주봉 정상에 올라 둘러본 주변은 편안하고 아늑한 풍경이었다. 이런 곳에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가 문득 궁금해졌다.

교통수단이 변변치 않았던 옛날, 상주에서 은척까지 들어오는 길이 꽤 깊고 험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마 외부와 고립된 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일찍 구미로 내려가야 할 사정이 있었지만 동학교당을 알리는 안내판을 보니, 오늘 들리지 않으면 언제 다시 올 것인가 싶어 농로를 따라 골목 길로 들어섰다.

도로변에선 보이지 않던 동학교당의 전경이 곧 드러났다. 상주 동학교당은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20호이며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분지의 평지마을에 위치한다. 동학 남접 교주였던 김주희 선생이 1915년에 이곳에 본거를 정하고 민족 고유의 종교인 동학의 포교와 교세 확장을 위해 활동하다 1924년에 동학 교당을 지었다고 한다.

교과서에서나 봐오던 역사적인 곳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 상주동학교당 행랑채 교과서에서나 봐오던 역사적인 곳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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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의 본부 건물로 주목받고 있는 상주 동학교당은 동서남북 네 동의 건물이 사방에 배치돼 있다. 중심 건물인 북재는 성화실, 사랑채인 동재는 접주실, 안 사랑채인 서재는 남녀 교도가 각각 반씩 사용했으며, 행랑채인 남재는 남 교도가 사용했고 한다. 초가지붕이 있는 행랑채 앞에는 사람들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아주 한적했다.

기웃기웃 주변을 둘러본 뒤 행랑채 입구를 지났다. 입구를 들어서자, 너른 마당 앞의 작은 담벼락 뒤로 나무와 여러 식물로 꾸민 정원이 보였다. 사랑채 마루엔 호호백발의 연세 지긋한 할머니가 소일거리를 하고 계셨다. 널찍한 마당 주위로 보이는 사랑채는 일반 시골집들과는 다른 교당의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왼쪽 사랑채 뒤를 지나 천황각이라는 곳에 들어서는 입구 앞에 서니 고양이 한 마리가 경계의 눈초리로 째려보며 슬그머니 담벼락 밑의 구멍으로 사라졌다. 천황각 앞에 붙어 있는 한지에는 '송송백백청청립', '수수산산개개지' 와 같은 한자가 적혀 있어 마치 주문을 외게 하는 듯한 의미로 와 닿았다. '심오한 뜻이 있겠지' 생각하며 천황각을 빠져나왔다.

고등학교 때 배웠던 동학에 대한 기억이 가물거렸다. 최제우와 전봉준 정도만 떠올랐고 동학농민운동에 관련된 세부적인 내용들은 까마득했다. 집으로 돌아와 동학에 대해 찾아보니 그제야 '인내천', '보국안민' 등과 같은 용어들을 배웠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운치가 넘쳐나는 정원이다.
▲ 교당 마당의 정원 운치가 넘쳐나는 정원이다.
ⓒ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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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4점의 교기, 의례복, 전적, 가사, 판목, 인장 및 생활용품이 전시되어 있고 우리나라에서 동학계 종교유물이 유일하게 보관된 곳이다.
▲ 상주동학교동 유물관 1084점의 교기, 의례복, 전적, 가사, 판목, 인장 및 생활용품이 전시되어 있고 우리나라에서 동학계 종교유물이 유일하게 보관된 곳이다.
ⓒ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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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훑어보듯 빠른 걸음으로 교당 내를 둘러본 뒤 행랑채 앞으로 나오니 왠지 그냥 가기엔 아쉬웠다. 처음 교당에 들어섰을 때 보였던 할머니에게 다가가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상주 동학교당을 만든 동학 남접교주 김주신의 며느리인 올해 89세의 곽아기 할머니는 73년 전 이곳에 시집을 왔다고 하신다. 평범한 시골 촌로로 보였지만 실제론 격동의 세월을 살아오신 역사의 산 증인이실 거란 생각도 아울러 들었다.

19세기 후반 서양 세력의 침투와 조선 말 양반사회가 가진 내재적 위기 속에서 보국안민과 광제 창생을 내세우며 등장한 동학은 당시 새로운 이상 세계 건설이 목표였다. 곧 농민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신흥 종교라 할 수 있다.

할머니는 1941년도에 이곳에 시집을 오셨고 정정하셨다.
▲ 김주희 선생의 며느리신 89세 곽아기 할머니 할머니는 1941년도에 이곳에 시집을 오셨고 정정하셨다.
ⓒ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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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곧 하늘이라는 동학의 인내천 사상은 오늘날 같은 혼란한 시국에 딱 들어맞을 거란 생각도 아울러 든다. 옛날 새로운 세상을 만들 꿈에 부풀어 있던 약한 사람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 하늘 아래 참으로 행복했었던 곳이 바로 동학교당이 아니었을까.

100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우리나라는 수많은 변천이 있었고, 지금은 살기 좋은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회적 약자들이 많은 곳이 우리나라다. 또 여러 이유로 혼란스러운 시국에 직면해 있다.

동학교당을 떠날 즈음에 고양이가 마치 배웅을 하듯 다시 모습을 보였다.
▲ 동학교당내를 종황무진 돌아다니는 고양이 동학교당을 떠날 즈음에 고양이가 마치 배웅을 하듯 다시 모습을 보였다.
ⓒ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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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하늘이라 생각했던 동학의 정신이 지금 우리 사회의 모든 병폐를 치유해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동학교당을 떠나 골목길을 나서는 길, 교당 안에서 봤던 고양이가 또한 번 나를 바라보며 마중을 해준다. 고양이 또한 하늘 아래 소중한 생명이며 존재 이유가 있을 터. 상주 동학교당을 마음대로 거니는 오랜 지킴이가 아닐까.

교당이 있는 우기리 마을을 나오니 가까이 보이는 성주봉이 한층 더 신비로워 보인다. 다음에 아이들과 함께 이곳을 다시 찾을 땐 동학의 역사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서 아이들에게 역사의 향기를 맡게 해 줄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유통신문>과 <한국유통신문>의 카페와 블로그에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상주동학교당, #김주희 선생, #한국유통신문 오마이뉴스 후원, #구미김샘수학과학전문학원, #동학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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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빨간이의 땅 경북 구미에 살고 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체감하고 공감할 수 있는 우리네 일상을 기사화 시켜 도움을 주는 것을 보람으로 삼고 있으며, 그로 인해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더욱 힘이 쏫는 72년 쥐띠인 결혼한 남자입니다. 토끼같은 아내와 통통튀는 귀여운 아들과 딸로 부터 늘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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