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
"자, 떠나자 고래 잡으러 신화처럼 춤을 추는 고래 잡으러~ "

동해바다로 고래나 잡으러 가자는 가수 송창식의 노래는 그 창법만큼이나 당시 청년들에게 숨통을 틔워주는 소리였고, 현실 속에서 암울한 밤을 지새우느니 차라리 새로운 세상을 찾아 떠나보자는 의미일 것이다. 그만큼 고래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무한한 동경의 세계요, 사라지지 않는 신화의 주인공이다. 뿐만 아니라 거친 파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절대 강자요 우리 젊은이들이 배워야 할 강인한 의식의 외침이다.

'울산'하면 떠오르는 것

현대 중공업과 자동차를 비롯한 정유회사 등 울산의 반을 차지하는 공단? 신불산, 가지산 등 1천 미터가 넘는 봉우리가 9개가 있는 '영남 알프스', 그 유명한 민요 '울산 아가씨', 동아시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간절곶? 문무대왕암과 주상절리……. 등등 울산하면 떠올릴 수 있는 관광지나 유적지, 전국적으로 이름난 곳이 참 많다.

그러나 난 그 중에서 굳이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고래'를 꼽고 싶다. 울산 울주군의 반구대 암각화에는 선사시대에 이미 고래를 사냥하여 먹이와 사냥도구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울산의 선조들은 이미 까마득한 과거부터 고래와 삶을 같이 해왔고 울산 서민들의 삶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신라 법흥왕 때 불교가 전해지며 살생을 금지하는 영향으로 고래잡이가 잠시 쇠퇴하기도 했고, 조선시대 또한 부정한 관리들과 토호세력들이 백성들의 삶을 착취하는 행태가 만연하자 고래잡이가 아예 사라지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근대 조선 땅이 동서양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되면서 동해안의 고래잡이는 외부인들에게 그 터전을 내어주게 된다

장생포 고래박물관 이야기

장생포 고래박물관은 울산 남구 매암동의 장생포 해양공원 내에 있다. 지상 4층과 지하 1층으로 되어 있으며 2004년에 착공되어 2005년 5월에 개관을 하였다. 박물관 입구에서부터 약 6미터에 이르는 범고래 뼈대가 그 모양을 간직한 채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박물관 1층에는 고래체험관이라든지 고래잠수함이 있고, 실제로 고래를 잡던 진양호 포경선 내부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2층엔 각종 고래의 골격들이 전시되어 있고, 고래의 종류와 서식지, 습성, 먹이, 고래잡이의 역사가 간략히 소개되어 있다. 3층엔 포경관련 서적들과 포경할 때 사용하는 작살과 각종 밧줄, 고래 당기는 기구 등이 사용하던 그대로 전시되어 있어 고래를 어떻게 잡았는지, 그리고 잡은 고래를 어떻게 해체 했으며, 해체한 고래는 어떻게 소비되는 지를 간략하게나마 알 수 있다. 고래를 잡은 후 기름을 짜내는 착유 시설 또한 당시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필자가 사는 곳이 울산인지라 고래박물관은 아이들과 자주 방문하는 곳이다. 지난 8월 30일에 방문했을 때는 박물관 곳곳에 설치된 조형물과 이에 대한 설명문을 자세하게 읽으며 고래와 고래잡이의 역사, 고래의 생태 등에 대해 공부를 했다. 앞으로 장생포 고래에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 박물관에서 공부한 내용을 여기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아래 내용은 각 층별로 전시되어 있는 고래의 골격과 그림으로 보는 고래의 생태와 포경의 역사 등을 참조하여 소개한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러시아, 일본, 미국, 프랑스, 독일 등이 동해안의 고래잡이에 열을 올렸다. 그들에게는 아시아 동쪽의 한반도가 대륙으로 향하는 발판이며 한편으론 바다로 그 세력을 뻗칠 수 있는 천혜의 반도이기도 하다. 더구나 한반도 주변의 어장은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어장이었다.

참고로 한반도에서 서식하는 고래를 보자면, 동해안의 밍크고래, 참돌고래, 낫돌고래와 남서해의 상괭이와 밍크고래, 제주연안의 남방큰돌고래 등이 있다. 이를 좀 더 세분하자면 전 세계의 고래는 80여 종이 서식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약 35종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풍부한 고래자원은 서구 열강의 침략과 일제지배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남획되기 시작한다. 1941년부터 1944년까지 일본 동양 포경주식회사의 기록에 따르면 귀신고래 1306마리, 참고래 5114마리, 혹등고래 128마리 등등해서 총 6578마리가 포획된 것으로 나타난다니 일제시대의 조선은 사람, 동물, 지하/수산자원 할 것 없이 모든 것들이 착취와 강탈의 대상이 되었음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한반도의 고래잡이

우리나라에서의 고래잡이는 광복 이후 민족자본에 의해 우리의 고래잡이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1946년에 최초 조선포경주식회사가 설립되고 이후 추가로 고래잡이 회사들이 설립되어 50년대엔 고래잡이 배가 20척에 이르게 되었단다. 1960년대에는 고래잡이의 전성기를 맞이하는데 100톤 중형급 디젤기관을 장착한 고래잡이 어선이 출현하는 등 한일 양국 간의 한일 어업협정 발효로 고래자원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게 되는 등 본격적인 포경산업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한반도에서 고래잡이가 시작된 이래, 이곳 울산의 장생포는 대표적인 포경항구를 유지해왔다. 위에 언급했다시피 선사시대에도 그 사료가 있으며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도 고래는 이곳 장생포의 대표적 수산자원이었다.

광복 이후 장생포는 1970년대 말 최전성기를 이루고 20여척의 포경선과 1만여 명의 인구가 상주하는 등 큰 마을로 변모하였다. 그러다 1980년에 이르러 무분별한 포경으로 포획 량이 줄고 일부 종의 멸종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에서 상업포경 금지를 결정하면서 고래잡이가 중단되고, 그 후 인근에 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포경에 종사한 주민 대부분이 이주하여 마을은 점점 쇠퇴하게 되었다. 장생포의 고래잡이가 한창이던 70, 80년대 6500여 명에 이르던 주민 수가 현재는 3천 명 정도로 줄었다. 지금은 울산광역시에서 장생포의 고래잡이가 울산을 대표할 수 있는 상징이라고 판단, 울산의 지역문화와 연계시키려는 여러 가지 노력을 해 나가고 있다.

박물관 2층에 서양과 우리나라의 고래잡이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오른쪽 사진은 박물관 중앙에 자리한 범고래 전체 골격으로 길이가 약 8미터 가량된다.
▲ 우리나라 고래잡이의 역사 / 범고래 전체 골격 박물관 2층에 서양과 우리나라의 고래잡이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오른쪽 사진은 박물관 중앙에 자리한 범고래 전체 골격으로 길이가 약 8미터 가량된다.
ⓒ 김승한

관련사진보기


하루 평균 8시간 잠을 자는 고래

고래는 하루 평균 8시간 정도 잠을 자지만 의식을 잃을 정도로 깊은 잠을 자는 건 아닌데, 뇌가 좌뇌와 우뇌로 나뉘어져 있어 수면 중 뇌를 번갈아 가며 어느 정도의 근육을 움직이는 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에 수면동안 질식하는 일은 없단다.

고래는 큰 종일수록 수명이 긴 경향이 있다. 수염 고래류 중 대왕고래, 참고래는 약 100년 이상, 소형인 밍크고래는 약 50년 정도의 수명을 갖는다. 이빨 고래류 중 가장 큰 향고래는 암, 수 모두 65-77년 정도, 들쇠고래는 수컷이 45년, 암컷이 62년 정도 살고 쇠돌고래와 까치고래는 비교적 수명이 짧아 15-20년 정도 산다.

큰 종은 수명이 60~100년이면 인간의 수명과 매우 비슷하다. 큰 종이 오래 사는 건 아무래도 큰 몸집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영양분을 비축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더구나 바다에서 그 큰 덩치를 위협하는 물고기들은 흔치 않을테니 살고 싶은 만큼 사는 건 아닌지...

고래류는 포유류이므로 육상의 포유류와 짝짓기, 태아 발육 및 육아가 비슷하다. 젖 먹이기 동안은 임신을 하지 않고, 대개 1마리의 새끼를 출산한다고 하며, 수유기간이 1년 이상이라도 젖을 때가 약 반년 전에 다른 먹이도 동시에 먹는다고 한다.

고래의 크기는 먹이의 다양성에 따라 같이 변화해 왔다. 고래는 여름에 플랑크톤과 같은 먹이가 대량 번성하는 북극 가까운 지방에서 먹이를 섭취하고 에너지를 축적한 다음, 겨울철에는 새끼를 낳아 기르기 좋은 따뜻한 저위도 지방으로 장거리 여행을 되풀이 한다. 이런 활동을 위해서는 다량의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큰 몸체가 필요한데, 대왕고래와 같이 최대길이가 약 33미터, 체중 179톤에 이르는 지구 역사상 가장 거대한 종류도 있다.

고래의 번식과 성장에 대해서 그리고 대왕고래의 예를 들어 길이와 무게를 다른 종들과 함께 비교해 놓고 있다.
▲ 고래박물관 2층 고래의 번식과 성장에 대해서 그리고 대왕고래의 예를 들어 길이와 무게를 다른 종들과 함께 비교해 놓고 있다.
ⓒ 김승한

관련사진보기


고래의 헤엄치는 속도는 고래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모든 동물이 평상시보다 위험에 직면했을 때는 더 빨리 헤엄친다. 보통 유영 시엔 20~50킬로 미터 정도인데 위급시엔 60킬로미터 이상으로 헤엄친다고 한다. 그 예로 범고래가 유영 시엔 55킬로미터 정도에서 위급시 64킬로미터까지 빨라진다는데 사람들에 의한 생명의 위험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렇게까지 빨리 헤엄칠 일은 없을 것 같다.

고래의 종류는?

수염고래류와 이빨 고래류로 분류하는 생물학적 분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크기에 따라 고래와 돌고래로 분류한다.

고래 : 밍크고래(8m, 60년), 귀신고래(15m, 70년), 참고래(23m, 70년)

돌고래 : 큰머리돌고래(4m, 40년), 참돌고래(2.56m, 30년), 상괭이(2m, 30년),
            쇠돌고래(2m, 30년)

고래는 우리나라 농가의 소와 비슷해

고래는 예로부터 농가에서 기르던 소와 같다면 너무 편애하는 걸까? 농민들에게 있어 소는  가족과도 같다. 평생 주인을 위해 논밭을 갈아 주다가 죽어서는 그 몸의 모든 부분을 주인에게 선물로 주고 간다. 고기는 각종 부위로 해체되어 먹을거리로 이용되고, 쇠뿔과 뼈는 농기계의 일부분으로 탈바꿈을 한다. 뿐인가 소꼬리나 도가니 등을 비롯한 많은 부위의 뼈다귀마저 농사에 지치고 기력이 쇠한 이들에게 보양식으로 탈바꿈을 한다. 소는 살아서도 인간을 위하고 죽어서도 온 몸으로 인간을 위해 죽는다.

갖가지 고래의 뼈가 전시되어 있으며, 고래의 각 부위가 우리 삶에 어떤 도움을 주고 가는지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 고래박물관 2층 갖가지 고래의 뼈가 전시되어 있으며, 고래의 각 부위가 우리 삶에 어떤 도움을 주고 가는지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 김승한

관련사진보기


고래도 어떤 면에서는 이와 비슷하다. 비록 소처럼 사람들과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 하는 것은 아니지만, 포획당한 고래는 어느 부위 하나 버릴 것 없이 음식과 농기구, 무기, 기름 등으로 사용되고 만다.

고래의 기름은 석유가 일반화되기까지 난방과 조명용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태울 때 연기가 나지 않아 실내에서 사용하는 고급연료이다. 그리고 고래는 수염과 잇몸, 콩팥, 지느러미, 뱃살, 위장, 껍질과 창자까지 다양한 요리로 선보이고 있어 살코기를 주로 먹는 다른 동물들과는 많이 다르다. 고래는 그 크기만큼이나 사람들에게 넉넉하고도 배부른 선물을 주고 가는 것이다.

울산의 장생포에는 고래박물관뿐 아니라, 고래생태체험관, 고래 문화마을, 고래 바다 여행선 등의 관광시설이 있을 뿐만 아니라 매년 고래 축제를 열어 '문화와 예술'로서의 울산도시와 고래를 연계시키고 있다. 게다가 장생포에 오면 갖가지 부위의 고래 맛도 즐길 수 있어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탈바꿈되고 있다.

주말 한 번 시간 내어 울산의 장생포에 들러보자. 고래박물관 바로 옆에 서면 시원하게 부딪히는 파도를 볼 수 있다. 이곳에서 우리나라 고래잡이의 역사와 고래의 생태도 알아보고, 고래 고기도 한 점 먹어보자. 고래는 한반도에서 우리의 선조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해왔다. 장생포 앞 바다의 거친 파도를 보며 신화 속의 고래를 한번 외쳐보자.


태그:#고래, #고래박물관, #장생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