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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말이다. 지난 몇달 동안 취업 준비한다고 도서관에 들락거리느라 돈을 벌지 못했다. 오래 걸리지 않아 포도청에 잡혀갈 것처럼 늘 전전긍긍하며 살았다.

어느 날 페이스북 친구의 담벼락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학교 급식실에서 시간당 급여를 받는 일을 시작하게 됐다. 그동안 노동 안 한 지 너무 오래됐다" 나는 대뜸 댓글을 남겼다. "거기서 나도 할 만한 일 없을까? 뭐든 할 수 있는데" 다음날 점심,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급식실  일, 정말 할 수 있겠어? 다음 주가 개학이라 조리 실장님이 급히 사람을 뽑는대. 지금 면접보러 와."
"오케이~!"

점심을 급히 먹고 대충 옷을 차려입은 뒤 면접을 보러 갔다. 조리 실장님이란 분은 인상이 좋아 보였다.

"이런 일 해본 적 있어요?"
"네, 예전에 복지관 식당에서 일을 도운 적 있어요."
"그럼 잘 됐네요. 처음엔 서툴러도 금방 익숙해질 거예요. 보건소에 가서 보건증 만들고 다음 주부터 출근하세요."
"고맙습니다. 열심히 할게요."

얼마 만에 돈 버는 일을 해보는 건가?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도 못한 채 주말을 설레는 마음으로 보냈다. 출근하니 먼저 일을 시작하신 아주머니가 작업복과 모자를 갖추고, 손과 발을 철저히 소독한 뒤 주방에 들어가야 한다고 알려주셨다. 주방에 들어서자마자 벌써 일을 시작한 조리원들이 보였다. 첫 출근인데 통성명이고 뭐고 할 틈도 없다. 바로 채소 써는 일부터 시작했다.

"이렇게 썰어야 힘들지 않고 잘 썰어져요."
"네, 알겠습니다."

위생 때문에 고무장갑을 끼고 하는 칼질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조금만 잘못하면 장갑이 칼에 베일 것 같아 손놀림이 자유롭지 않았다. 채소가 잘 썰어지지도 않을 뿐 아니라 속도가 너무 느려서 눈치가 보였다. 요리는 누구보다 자신 있었는데 여기는 그런 차원이 아니었다. 무조건 '빨리빨리' 해야 하고 상대방의 지시를 한 번에 잘 알아들어야 일이 진행됐다. 빨리 하는 것도 적응이 안 됐지만 지시를 한 번에 알아듣는 게 음식준비를 하는 것보다 힘들었다.

보이기에는 얼마 안되지만 과일의 양도 엄청나다. 자그마치 700명 분이니까.
 보이기에는 얼마 안되지만 과일의 양도 엄청나다. 자그마치 700명 분이니까.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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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도 쉴 수 없다

700여 명 아이들의 밥을 점심시간에 맞춰 준비해야 하니 번개처럼 일해야 한다. 조리를 다 끝내면 음식을 만들 때보다 더 빨리 정리해야 한다. 그 뒤  아이들에게 배식할 급식실로 올라간다. 급식실은 1층에서 4층까지다. 한 층에서 약 200명 가까운 아이들이 밥을 먹는다.

정신없이 음식 만드는 걸 돕자마자 급식실로 가서 배식을 하는데 이건 눈코 뜰 새 없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아이들 손에 쥔 식판에 반찬을 담아 줄 때 비로소 이 일의 신성함(?)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내 아이도 학교에서 이런 분들의 노고가 담긴 밥을 먹고 있겠구나. 단체로 먹는 밥은 이렇게 완성되는구나'를 알았다.

아이들 배식을 끝내자마자 조리원들의 식사 시간이 됐다. 하도 정신없이 움직이고 땀을 많이 흘려서인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배가 고팠는데 막상 밥을 보니 입맛이 없다. 그래도 첫날인데 분위기를 좀 띄워야 할 것 같아 이 일을 소개해 준 친구와 농담도 하면서 밥을 먹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인 8명의 조리원이 모두 점심식사를 했다. 점심을 먹은 뒤 커피 한잔 마시고 일하자는 조리실장의 말에 따라 믹스 커피를 타서 마셨다.

평소 밥 먹자마자 바로 커피를 마시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때가 아니면 달콤한 휴식과 커피를 마실 시간이 다시 오지 않을 테니까. 이젠 급식실을 정리하고 남은 음식을 버린 뒤 식판을 닦는 일이 기다리고 있다. 700개의 식판을 비롯해 숟가락과 젓가락, 컵까지 닦아야 하는 일을 8명의 조리원이 손 발 맞춰가며 해야 한다.

한 가지 일을 오래 붙잡고 있을 수 없다. 하나를 끝낸 뒤 곧바로 다음 일을 해야만 시간에 맞춰 모든 일을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조리실장 및 두 세 명의 조리원은 저녁 식사까지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시간을 다투며 일해야 한다.

일이 느려지자 조리장은 "당신들이 일을 제대로 못하니까 내가 자질구레한 일까지 해야 하잖아요. 여러분이 일을 착착 제대로 해주면 나는 음식 조리만 하면 되는데..."한다. 맞는 말이다. 조리장은 자그마치 10여 년 동안 이 일을 해왔다고 한다. 웬만한 건설 현장 일보다 더 힘든 일을 10년 동안이나 해왔기 때문인지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낸다. 얼굴에는 땀이 비 오듯 흐르지만 힘든 내색도 하지 않으면서.

카레를 다 끓이고 나면 저 솥에 물을 끓여 설거지를 한다.
 카레를 다 끓이고 나면 저 솥에 물을 끓여 설거지를 한다.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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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은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모르게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했다. 힘들다는 말을 어디에 비유해야 좋을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을 만큼 정신없이 일했다.

둘째 날은 첫날보다 조금 여유 있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다. 하지만 역시 순발력이 부족하다. 며칠만 더하면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어제와 같은 일을 마쳤다.

3일째 되는 날, 배식을 다 마치고 조리원 한 분이 아이들 먹고 남은 밥솥의 밥을 전기밥솥에 옮겨 담으라는 말을 거꾸로 알아들어 전기밥솥에 있는 밥을 아이들 밥솥에다 담았다. 어쩜 이렇게 말을 못 알아들을 수 있지? 지시한 조리원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가뜩이나 바쁘고 힘들었을 텐데...

"돌겠다"는 말은 내 입에서 먼저 나왔다. 거기다 앞치마와 장갑은 조리실, 세척실마다 색깔이 다르다. 조리실은 흰색, 세척실은 빨간색이다. 그걸 잊어버리고 세척실에서 설거지하던 앞치마와 장갑을 끼고 조리실로 건너와 조리기구를 만지기도 했다. 한 조리원은 그런 나를 보고 "앞치마 바꿔 입어요!"하며 소리를 질렀다.

조리실에는 700여 명 분량의 밥을 짓는 도구가 있다. 무척 큰 솥이 두 개나 있고 동시에 밥을 지을 수 있게 만들어진 가스레인지, 커다란 오븐과 가스불이 있다. 밥을 짓기 위해 쌀을 씻는 것도 기계가 한다. 쌀을 씻고 밥을 안치고 다 된 밥과 반찬을 아이들 급식실 각층에 옮기는 일은 남자 조리원이 한다(엘리베이터로). 나에게 이 일을 소개해 준 친구는 그 일을 하는 것이다.

"첫 달은 근로계약서 안 써..."

친구는 볼 때마다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었다. 배식이 끝난 후에는 그 큰 솥에다 물을 끓여 그 물로 설거지를 한다. 자칫하다가는 데일 수도 있고 바닥에는 항상 물이 흥건하기 때문에 미끄러질 수도 있다. 자칫 하다가 산재를 당할 수도 있지만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보험혜택을 받을 수도 없다.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는 이유는 일이 워낙 힘들어 빨리 그만두고 자주 사람이 바뀌기 때문이라고 한다. 근로계약서는 한 달 동안 일을 하고 나면 그때 쓴다고 면접 볼 때 조리장이 얘기했다.

급식실 조리원의 일은 정말 손발이 잘 맞아야 한다는 걸 3일째 되는 날 비로소 알았다. 나를 뺀 나머지 조리원들은 대부분 40~50대의 아주머니다. 힘든 일이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기 때문에 악착같이 일하고 적응이 무척 빠르다. 복지관 식당에서 겨우 며칠간 100인분의 밥하는 걸 도운 경력이 있는 나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 일이다.

나는 과연 이 전쟁 같은 작업 환경에서 며칠이나 견딜 수 있을까. 스스로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미안했다. 귀가 잘 들리기만 했어도 더 빨리 알아듣고 재빨리 움직였을 텐데, 바쁘고 힘든 저 분들을 더 많이 도울 수 있을 텐데...

아니나 다를까, 3일째 되는 날, 퇴근하려는데 조리장이 부른다. 다른 조리원들이 내가 말을 빨리 못 알아들어 두 번 세 번 말해야 하는 게 힘들다고 했단다. 더 같이 일하기 힘드니 내일부터 그만 나오라고 한다. 아무리 못해도 일주일은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예상이 빗나가는 순간 오기가 몰려왔다.

"이러는 법이 어디 있나. 면접 볼 때는 분명히 청력이 안 좋아도 이해하면서 일할 수 있다고 하고선 이제 와서 3일밖에 안 됐는데 그만두라고 하다니, 너무하는 것 아닌가."

마지막 항변을 했다. 그 항변은 끝내 먹히지 않았지만 말이다. 급식실 주방을 나오면서 3일 만에 잘렸다는 억울한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마침 같이 퇴근하게 된 친구에게 "나 오늘 잘렸으니 맥주나 한 잔하자"고 했다. 함께 맥주를 마시며 말했다.

"네가 소개해 준 친구를 잘랐으니 너도 그만둔다고 해라. 난 좀 억울하거든. 거기다 너는 이 일 아니어도 다른 일 할 수 있잖아."
"아니야, 난 땀 흘리면서 일하는 게 좋아. 그리고 내가 그동안 너무 일을 안 해서 일을 해야만 해. 네 일은 유감이지만 그분들도 정말 열악한 상황에서 일하고 있으니 우리가 이해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친구의 얘기를 듣고 보니 내 입장에서만 생각한 것 같다. 나는 충분히 억울하지만 그 분들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조리 실장을 빼고는 몇 년씩 일한 조리원들도 시간당 급여를 받는다. 여자는 6300원, 남자는 6700원. 그러니 4대 보험료를 빼고 나면 쥐꼬리만한 급여를 받는다. 일하는 환경 또한 열악하기 그지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이렇게 이해하며 애써 억울함을 달래려니 그것마저 처량하다. 3일 간의 혹독한 경험에서 배운 것은 "역시 자본주의에서 먹고 살기란 힘들구나, '노동'은 그 어떤 것도 신성한 것이다"였다.

그나저나 잘렸으니 이제 어디 가서 일을 하지?  


태그:#급식실, #아르바이트, #열악한 노동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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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인터뷰집,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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