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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봤다. 시아버님 아침진지 드신지 30분이 조금 지났다. 설거지를 마치고 커피 탈 준비를 하면서 돌아보니 사탕통에 손을 얹고 얌전하게 앉아계신다. 사탕은 커피를 먼저 드시고 나중에 간식으로 드신다. 나는, '사탕을 드시고 싶은데 커피를 기다리며 참으시나보다' 생각하며 아버님께 말을 걸었다.

"아부지, 커피 다 됐어요. 사탕은 조금 있다가 드세요."
"...."
"자, 아부지 커피."

그 좋아하는 커피를 드렸는데도 반응이 없으시다. 순간 뒷골이 서늘했다. 서재에 있는 남편을 불렀다. 남편이 아버님을 일으켜 세우니 식탁 의자가 젖었다. 바지도 젖었다. 눈은 겨우 뜨신다. 눈동자가 풀리고, 다리가 풀려서 방에까지 모시는데 질질 끌린다. 침대에 눕히고 사지를 주물러 드렸다.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침을 여상스럽게 잘 드셨으니 체하신 게 틀림없다. 20여 년 전에 배운 경락을 엉겁결에 썼다. 서서히 정신이 돌아 왔지만 설사를 시작하셨다. 집에 있는 이불이란 이불은 다 꺼내서 깔아드려도 침대 커버와 이불이 모자랐다. 설사를 하실 때마다 남편은 씻겨 드리고 나는 빨래를 했다.

급체였다. 죽을 너무 조금씩 드셔서 걱정을 하는 나에게 아버님은 무척 멋쩍어 하시며 말씀하신다.

"커피는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디."

드시고 싶은 게 있다니 참 반가운 일이다. 얼른 커피 한 잔을 갖다 드렸더니 맛있게도 드신다. 그리고는 빙그레 웃으신다.

군불 땔감을 만드느라고 톱질하시는 아부지
▲ 톱질하시는 아부지 군불 땔감을 만드느라고 톱질하시는 아부지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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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부터 아버님께서는 변비 아니면 설사로 뒤를 잘 못 보셔서 고생을 하셨다. 변비는 혼자만의 고생이지만 설사를 하시면 남편은 지극정성으로 아버님을 씻겨드린다. 한 여름에도 춥다고 하시는 아버님께서 함께 식사를 하시거나 거실에서 담소를 나누면 아무리 찜통 같은 더위에도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제대로 못 틀고 지낸다.

34도를 웃도는 더위에 아버님과 목욕탕에서 씨름을 하고 나오는 부자를 보면, 아버님은 개운해 보이는데 남편은 지치고 땀 범벅이다. 그런 남편이 참 대단해 보여서 한 마디 한다.

"당신 참 효자예요."
"효자는 무슨, 아버지는 나를 28년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쳐주셨는데. 나는 이제 겨우 8년 했구만."

남편은 교직에 있으면서 입버릇처럼 한 말이 있었다. 아버님 90세 되면 명예 퇴직이라도 하고 홀로 계시는 아버님 모시러 낙향한다고. 우리아이들 대학교육도 덜 마쳤는데 정말로 아버님 90세 되던 해에 교직을 사퇴하고 아버님을 모시겠다고 혼자 낙향했다.

황토집을 새로 지어 부자가 오순도순 재미있게 사시더니 올해 봄부터 혼자 씻을 수 없고, 거동조차 불편해 하시는 아버님의 손발이 됐다. 그런 정경을 마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하여 아픈 몸을 이끌고 나도 낙향했다.

그 날 이후 아버님께서는 정신은 굉장히 맑으신데 소변이나 대변이 나오는 것을 못 느끼신다. 혼자 걷지도 못하신다. 할 수 없이 귀저기를 채워드렸다.

문제는, 성격 깔끔한 남편이 귀저기를 갈 때마다 씻겨드리느라고 진땀을 빼는 것이다. 그리고는 지쳐서 나가떨어진다. 나이 70이면 적은 나이가 아닌데!

노인용양전문병원으로 가신 아버님

마침 노인요양전문병원에 근무하는 이웃에 사는 집안 동생이 요양원과 노인요양전문병원은 다르다며 아버님을 노인요양전문병원으로 모실 것을 권유했다. 참고로, 요양원은 의사가 없고, 노인요양전문병원은 6개 과목 이상의 전문의가 근무를 하고, 간호사와 간병인들이 있다.

아버님께 상의를 했다. 요양원과 노인요양전문병원의 차이점을 말씀드리며 노인요양전문병원에 입원하시는 것은 어떠시냐고. 흔쾌히 입원하시겠다며 혼자 말처럼 말씀하셨다.

"치료 받으면 회복할 수 있으까!"

사람인데 나이 백살인들 삶에 대한 애착이 왜 없을까! 연세 98세임을 되돌아보며 가실 날이 가까웠음을 감지하시는 것 같아 그 모습이 참 애처로웠다. 이제 좀 재미나게 살아보려고 했는데, 며느리와 함께 산 지 겨우 세 달 남짓 됐는데 아버님께서는 노인요양전문병원으로 들어가셨다. 나로서는 무척 아쉽고 죄송스럽다. 이런 나를 보며 아버님께서는 오히려 며느리 건강을 걱정하신다.

"몸은 괜찮은 겨? 언제 또 병원에 가? 귀찮게스리 뭐하러 매일 와."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입원실 문에 들어서는 아들 며느리를 보면 반가워하시는 기색이 역력하다. 입원하시고 건강이 많이 회복 되셨지만 휠체어를 안 타려고 하셔서 걱정이다. 그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는 게 싫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 것 같다. 

오늘도 지팡이와 아들에게 의지해 병원 벤치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계신다. 나는 커피 한잔을 뽑아다 드렸다. 커피를 받으시며 98세 노인이 소년처럼 활짝 웃으신다. 그 모습이 참 이쁘다.


태그:#허무, #삶의 애착, #커피, #노인요양전문병원, #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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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시원한 청량제,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쓴 책 : 김경내 산문집<덧칠하지 말자> 김경내 동시집<난리 날 만하더라고> 김경내 단편 동화집<별이 된 까치밥> e-mail : ok_0926@daum.net 글을 써야 숨을 쉬는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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