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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정리됐다. 11일부터 새정치민주연합 내외에서 터져나왔던 '이상돈 비대위원장 내정설'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어느 정도'라고 단서를 단 까닭은 박영선 대표가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사실이었다고 한 대목은 박 대표가 '이상돈 비대위원장'을 분명히 추진했기 때문이다. 이에 새정치연합 소속 의원들은 박영선 대표의 공식 퇴진까지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왜 하필 이 교수인지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다. 박근혜 정부 출범의 혁혁한 공을 세운 '개국공신' 이상돈 교수는 12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새정치연합 내부 여건이 성숙되면..."이라는 조건을 달고 고사하는 분위기다. 본인이 거부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대선 결과에 안도한다"는 인사가 야당 비대위원장?

2012년 1월 30일 오전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이상돈 비대위원이 박근혜 위원장과 환담하며 마이크를 돌리고 있다.
 2012년 1월 30일 오전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이상돈 비대위원이 박근혜 위원장과 환담하며 마이크를 돌리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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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 박근혜 후보 캠프 내부의 위기는 없었나?
이상돈 : 사실 여러 차례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 우선은 선거를 100일 정도 남겨둔 시점에서 나온 박 후보의 '인혁당 발언'이었다. (중략) 민주당에서는 호재를 만났다는 듯이 집요하게 공격하고 (중략) 당시 박 후보 표정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으니까. - <시사저널> 2012년 12월 28일 자 중

이 인터뷰는 2012년 12월 20일, 박근혜 후보 당선 직후에 진행됐다. 대선 직후, 이상돈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을 만든 사람들' 중에서도 간판 인사로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했다. 대선 당시 그는 박근혜 후보 당선을 위해 전력으로 노력했다. 

인터뷰 이후 1년 9개월 남짓 시간이 흘렀다.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새정치연합을 둘러싸고 큰 뉴스가 터져 나왔다. 박영선 원내대표(국민공감혁신위원장)가 중앙대 이상돈 명예교수에게 비상대책위원장직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고, 그가 수락했다는 것이다.

비대위원장이 지니는 무게감은 상당하다. 야당의 간판인 것이다. 그런데 '이상돈'이라는 이름이 제1야당 비대위원장 리스트에 올라왔다는 데 당내에서도 놀라는 분위기다. 외부 인사에게 비대위원장직을 요청할 수는 있지만 그 대상이 지난 대선 '박근혜 공신 중 공신'이기 때문이다. 그는 박근혜 후보의 안색까지 살피던 위치에 있었다. 당장 11일 새정치연합 당 내 개혁성향 54명의 의원들이 "이상돈 교수 영입을 즉각 중단하라"며 성명을 발표했다.

그런데 박영선 대표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상돈 비대위'를 생각했을까. 일각의 분석처럼 당의 외연 확장을 위해 진보-보수 성향의 공동비대위원장 체제를 확신한 것인가. 그래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보수 성향 비대위원장 후보로 이상돈 교수 외에는 없었나?

2012년 9월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정치쇄신특위 전체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 후보 왼쪽은 안대희 정치쇄신특위 위원장, 오른쪽은 이상돈 위원.
 2012년 9월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정치쇄신특위 전체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 후보 왼쪽은 안대희 정치쇄신특위 위원장, 오른쪽은 이상돈 위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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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당선을 위해 온 힘을 다했던 이 교수를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는 당연히 문재인 후보를 비판했고, 박근혜 후보가 TV 토론에서 이정희 후보로부터 '전두환 6억 원'과 관련해 난타 당하자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이정희 후보의 (6억 원 관련) 그 말은 지난번 1차 토론에서의 발언과 2차 토론 발언하고 완전히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것"이라며 박근혜 후보의 호위무사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대선 직후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이 교수는 "(박 후보 당선으로) 벌써부터 더 바쁘겠다는 말을 건네는데 아직 이렇다 하고 밝힐 수 있는 것은 없다"며 "선거 결과에 안도하고 있고 미련이나 후회는 없다"고 소회를 밝혔다.

CBS 라디오 <김미화의 여러분>에 출연해 "대선 보신 소감"을 묻는 김미화씨의 질문에 "소감이라기보다 진인사대천명하는 기분으로 담담하게 지켜보았습니다. 생각보다 좋은 결과가 나와서 다행으로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박 당선인이 젊은 세대로부터는 높은 지지를 받지 못한 원인을 묻는 질문에는 "제가 우연한 기회에 몇 번 고등학교 역사교과서를 봤는데 1960~1970년대에 관한 서술, 불공평할 정도로 박정희 정권에 대한 비판적인 서술의 영향도 있었다고 봅니다"고 답했다.

지난 대선 당시 이 교수는 '진인사대천명'하는 마음으로 선거를 지켜봤고, 그 결과에 안도했다. 당시 대선은 박근혜-문재인의 양자 초박빙 구도였다. 그로부터 정확히 1년 9개월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이 교수는 새정치연합의 비대위원장직을 제의받았고 이를 거절하지 않았다.

'박근혜 7시간' 언급으로 결별한 이상돈,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외부인사 영입과 관련 "진보와 개혁보수의 공동위원장 체제가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이것이 2017년 대선의 승리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고 강조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외부인사 영입과 관련 "진보와 개혁보수의 공동위원장 체제가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이것이 2017년 대선의 승리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고 강조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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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개국공신으로 꼽혔지만 결과적으로 이 교수는 부름을 받지는 못했다. 언제부터인가 박근혜 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하기 시작하는가 싶더니 지난해 말 국정원 대선개입 정국에는 '성역없이 진실을 밝혀야'한다고 주장해 여권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결정적으로 박근혜 정부와 결별하게 된 발언은 지난 8월 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나왔다. 이날 인터뷰에 출연한 이 교수는 '박 대통령 7시간 미스터리'에 대해 "(세월호 침몰 당시) 특히 대통령이 그 시점에 뭘 했는가 하는 것, 이런 것이 국민의 알권리에 포함된다고 봅니다"고 말한 뒤 "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많은 인명이 희생돼야 했는가에 대해서는 성역없이 진실을 밝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쯤 되면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현재 박근혜 정부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인 '박근혜 7시간 미스터리'에 대해 위와 같이 거침없는 발언을 하는 지식인은 드물다. 그런데 박 정부가 가장 듣기 싫어할 만한 말이 이 정권의 개국공신 입에서 거침없이 터져 나온 것이다.

지난 2년여 시간 동안에 이 교수가 보여준 정치적 스탠스는 상당히 혼란스럽다. 박근혜 후보 당선을 위해, 박근혜 당선인의 성공을 위해 인터뷰했던 이 교수는 어디로 가고, '박근혜 의 남자'라는 완장은 내려놓은 채 '박근혜 7시간은 국민의 알권리'라고 주장하며, 이 사회의 '합리적 보수'라는 간판을 달고 새정치연합 주변에 서 있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박영선 대표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지난 8월 4일 새정치연합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하면서 박 대표는 "(비대위원장이란) 독배를 마시라고 하니까 마시고 죽겠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한 달 반의 시간이 흘렀다. 박 대표는 죽지 않고 살길을 찾아 이상돈 교수를 만났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박 대표의 독배가 이 교수에게 전달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야당의 비대위원장은 물론 야당의 몫이다. 그러나 당원이나 야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정서까지 무시한 채 인사를 진행한다면 그에 따른 무거운 책임 역시 야당이 져야 할 것이다. 이미 이상돈 교수 내정설에 따른 당내 후폭풍이 시작됐다.

우여곡절 끝에 당내 분위기가 정돈된다 하더라도 이번에는 지난 대선 당시 야당에 희망을 걸었던 48%의 목소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박영선 대표가 역린, 건드리지 말아야 할 부분을 건드린 것이다. 수단과 방식 모두 적절하지 못했다.

박 대표는 이상돈 교수에게 독배를 넘기지 못한 채, 그녀 스스로 약속한 독배를 들이키지도 못한 채,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태그:#이상돈, #박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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