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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지역 청년 농사꾼 모임은 정기적으로 모여 농사를 돕고, 농사 노하우를 공유한다.
 원주지역 청년 농사꾼 모임은 정기적으로 모여 농사를 돕고, 농사 노하우를 공유한다.
ⓒ 박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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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생각해보세요. 400평 땅 한 해 일궈 200만 원 나온 거예요. 다른 농사도 있긴 하지만 옥수수밭에서 나온 건 웬만한 월급쟁이 한 달 봉급도 안 되죠. 여기서 경비를 빼고 나면..."

강원도 원주시 매지리에서 농사를 짓는 임승규(31)씨가 11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그는 3년 전 귀농했다. 직업 군인이었던 그는 군에 있을 때부터 낙향을 고민했다. 그러던 중 농사꾼 아버지가 농산물을 도매업자에게 헐값에 넘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임씨는 더 참을 수 없어 귀농을 결심했다.

임승규씨처럼 귀농한 젊은 농사꾼 여남은 명이 지난 4월 임씨 밭에 모여 청년 농부들의 애환을 주고받았다. 원주 지역 젊은 농업인 모임에서 회장을 맡고 있는 임씨가 서로 안부를 묻기 위해 삼겹살 파티를 마련한 덕분이다.

임씨의 아버지가 당한 '농산물 가격 후려치기'는 농업인 사이에선 '밭떼기'로 불린다. '포전(圃田)거래'라고도 하는데, 밭째로 농산물을 선매해 중간 이득을 챙기는 도매상인들이 쓰는 거래 수법이다. 젊은 농업인들은 이런 매매 관행에서 벗어나 블로그 등으로 판로를 개척하고 있다.

"대부분 어르신들은 곡식을 제값 안 쳐주는 업자에게 넘겨버려요. 손해를 볼 수밖에 없죠. 하지만 젊은이들은 손수 지은 농작물을 인터넷으로 판매하니까 손해는커녕 수입이 배로 늘었죠. 옥수수 하나를 업자에게 팔면 300원인데 인터넷으로 팔면 두배를 받을 수 있어요. 소비자는 대형마트에서 1000원에 살 거 600원에 사니 서로 좋은 거죠."

귀농해도 '투잡 '하는 현실, 도시 생활 그립기도

"시골에는 '빚 안 지면 부자'라는 말이 있어요. 전업농을 하기엔 불안하니까 어쩔 수 없이 '투잡'을 하죠."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귀농한 김건호(28)씨는 주말 농사꾼이다. 원주시 호저면 무장리에서 소를 키우는 그는 평일에는 제약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한다. 소 농가 운영만으로는 빠듯한 생활을 벗어날 수 없어 '귀농-투잡족'이 됐다.

김씨는 축산을 본업으로 삼기는 어렵다고 했다. 소를 키워 얻는 수익이 변변치 않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농민 1인당 평균 연 농업총수입은 2757만 원이다. 농자재 구매 등에 들어가는 농업 경영비(1846만 원)을 빼면 순소득은 912만 원에 불과하다. 김씨가 '투잡'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임승규씨는 잘 풀린 '귀농 사례'에 속한다. 첫해 농사 수입이 500만 원에 불과했지만 꾸준히 블로그에 써오던 '농촌 생활기록'이 인터넷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입소문을 탔고, 누리꾼들이 구매 의사를 밝혀오는 등 온라인 판매의 길목을 트면서 이후 연 매출이 5배로 급등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불안정한 수입만 생각하면 이따금 도시가 그립다고 했다.

임승규씨는 귀농 3년차 농부다. 농사꾼 아버지가 업자에게 헐값에 넘기는'농산물 후려치기'를 당한 것을 보고 귀농을 결심했다.
 임승규씨는 귀농 3년차 농부다. 농사꾼 아버지가 업자에게 헐값에 넘기는'농산물 후려치기'를 당한 것을 보고 귀농을 결심했다.
ⓒ 박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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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 파티에서 막걸리 두어 사발을 마신 젊은 농사꾼들은 술자리 분위기가 무르익자 농촌 생활에서 겪는 애환들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부모님을 도와 버섯 농사를 짓는 곽상규(25)씨는 또래 동료가 없어서 농사 일이 적적하다고 말했다.

"여긴 주변에 다 할아버지, 아저씨들이잖아요. 같이 일하면서 대화할 친구 하나 있으면 좋을 텐데, 그게 아쉽죠."

곽씨의 희망은 실현되기 쉽지 않아 보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청춘 세대(20~39세) 중 약 3%만이 농업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30대 이하 젊은 귀농인은 1253명에 불과해, 다른 연령대에 비해 낮은 수준을 보였다.

청년들이 시골 생활을 기피하는 주된 이유는 적은 수익과 불편한 환경 때문이다. 자녀 학업 문제와 병원, 마트 등 편의 시설이 부족한 것도 농촌생활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들이다.

"'거기 전기는 들어와?' 귀농하자고 하니까 아내가 한 말이에요. 농사 짓는다고 하면 두메산골에서 살 거라고 상상해요."

김유섭(36)씨는 '촌구석'이라는 이미지만 떠올리는 농촌 기피 현상을 꼬집었다. 김씨는 도시에서 만난 부인과 결혼한 뒤 귀농해 매지리에서 감자 농사를 짓는다. 그가 아내에게 시골로 내려가자고 제의했을 때 부부싸움이 벌어졌다고 한다. 수입이 불안정한 시골생활을 아내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농사라는 게 수익이 매년 차이가 나고, 연봉이 정해진 것도 아니니 계획적인 지출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불안해해요. 그러니까 대개 농촌으로 오는 걸 꺼리는 거죠."

귀농 적응 실패한 젊은이들... 역 향수병 호소도

임승규씨에게 귀농을 하려는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부탁하자 "솔직하게 말해도 될까요?"라고 되물었다.

"무작정 귀농하진 마세요. 농촌에 돈 생각하고 오면 안 되죠. 다짜고짜 귀농하면 빚밖에 안 남아요. 농사에 실패하고 도시로 되돌아간 경우를 많이 봤어요."

농협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귀농·귀촌을 시도했다가 도시로 돌아간 재이주자들은 주된 이유로 '일자리 부족'(34.6%)과 '부족한 소득'(26.9%) 등 안정적 소득원 마련의 문제를 꼽았다.

원주지역 청년농부들이 모처럼 모였다. 젊은 농업인 모임 회장 임승규씨가 자리를 마련하고, 서로 손수 기른 상추, 고추 등을 가져와 삼겹살 파티를 즐기며 담화를 나눴다.
 원주지역 청년농부들이 모처럼 모였다. 젊은 농업인 모임 회장 임승규씨가 자리를 마련하고, 서로 손수 기른 상추, 고추 등을 가져와 삼겹살 파티를 즐기며 담화를 나눴다.
ⓒ 박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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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금 없이 귀농한 젊은이들은 영농비 부족을 호소하는 동시에 변변치 못한 소득으로 경제적 자립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문화시설이 부족한 농촌에 적응하지 못한 젊은이들은 도시를 그리워하는 '역향수병'에 걸리기도 한다. 시골이 주는 자유와 나무와 산으로 둘러싸인 전원생활을 꿈꾸며 귀농한 농사꾼들의 삶은 평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일부 청년들이 시골로 내려간다. 청년들의 유입으로 귀농·귀촌 현상이 모처럼 활기를 띠면서 생명 산업인 농업과 나라의 근간인 농촌이 생기를 띠기도 한다. 그러나 젊은 농업인이 털어 놓은 애환 속에선 장밋빛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귀농의 이상과 농촌의 현실 사이엔 그 격차가 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태그:#청년 농사꾼, #원주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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