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개봉한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주연배우는 김의성이다.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이기도 한 이 영화는 개봉 당시 극심한 소외감 또는 상실감으로 무기력해져 있던 내 자신의 처지와 맞물려있기 때문인지 그 형식과 내용이 충격 그 자체였다. 영화의 제목은 젊은 시절, 우리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시대의 클리셰가 되었다.

홍 감독의 영화에는 무료한 일상 그리고 무능한 인텔리들이 단골로 등장한다. 많이 배운 사람들은 말을 잘하고 행동은 어설프다. 술과 담배를 항상 곁에 두는 것으로 일상의 무료함을 달랜다. 그런데 무료함을 달래는 방법을 잘 못 선택한 우리의 주인공, 돼지는 우물에 빠지고 말았다.

작년 추석 연휴가 시작될 무렵, <우리선희>를 내놓았던 홍 감독은 올해도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로 관객을 초대한다. 제목은 <자유의 언덕>.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하게 된다. 왜 제목이 자유의 언덕인지, 주인공으로 왜 일본인을 선택한 것인지, 영화 내내 영어로만 대화를 하게 한 이유는 무엇인지…. 그런 생각들을 하는 동안 영화는 끝이 났다. 딱 1시간 10분 만에.

일상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도구, 시간과 꿈

영화 <자유의 언덕> 포스터 모리는 책을 읽고 영선은 책을 읽는 모리를 좋아한다

▲ 영화 <자유의 언덕> 포스터 모리는 책을 읽고 영선은 책을 읽는 모리를 좋아한다 ⓒ 전원사

영화는 세 명의 배우가 이끌고 있다. 모리(카세료), 영선(문소리), 상원(김의성) 등 이렇게 세 사람이다.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주로 모리와 상원이 대화를 나눈다. 게스트하우스 바깥 카페 '자유의 언덕'에서는 모리와 영선이 대화를 나눈다. 대화 내용에 열쇠말이 등장한다. '시간'과 '꿈'이다. 모리가 읽는 책이 '시간'에 관한 것이고, 영선이 키우는 개가 '꾸미(꿈)'인데 시간과 꿈은 왠지 그 자체로 신비롭다.

시간은 인간이 만들었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 미래를 가르는 기준이 됐다.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틀은 사람이 만든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시간의 순서가 과연 중요할까요?"라는 주인공 모리의 말에서 우리는 시간을 초월하면 일상 자체에 좀 더 몰입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꾸미라는 개가 가출을 해 자꾸 길을 잃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그 잃어버린 꾸미를 시간의 순서를 거부하는 모리가 찾아준다. 꿈 속에 시간 개념은 없다.

시놉시스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권(서영화분)은 모리가 자신에게 보낸 편지뭉치를 뒤늦게 찾아서 계단을 내려가다가 그만 놓치게 된다. 편지엔 날짜가 없으니 권이 뒤죽박죽이 된 편지들을 읽는 순서대로 영화의 화면이 펼쳐진다.

영어 단어의 앞뒤만 그대로 두고 중간 알파벳의 순서가 바뀌어도 우리가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처럼 시간 순서에 위배되는 장면 배치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영화를 읽어내는데 무리가 없다. 오히려 등장인물들이 펼치는 일상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부조리한 일상, 되짚어보기

감독은 어차피 앞뒤가 딱딱 들어맞는 조리 있는 일상을 살고 있지 않은 우리네 인생의 실상을 소개하기에 더없이 좋은 방법으로 시간과 꿈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꿈 속에는 시간의 흐름이 없고 존재만 덩그러니 내동댕이쳐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꿈 속의 상황은 절실하다.

현실에서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매 순간을 기억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기억의 편린은 저 좋은 데로 편집되어 저장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타인의 인생에 끼어들 경우, 기억은 정확해야 하고 태도는 분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누구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운데 앉은 광현(이민우 분)은 처음 보는 일본인 모리에게 '한국엔 왜 왔냐', '언제 가냐', '무슨 일을 하느냐', '일은 해야 하지 않느냐'는 등의 질문세례를 퍼붓는다. '무슨 책을 읽느냐', '책 이야기를 꼭 해달라'는 영선과는 대조적이다.

가운데 앉은 광현(이민우 분)은 처음 보는 일본인 모리에게 '한국엔 왜 왔냐', '언제 가냐', '무슨 일을 하느냐', '일은 해야 하지 않느냐'는 등의 질문세례를 퍼붓는다. '무슨 책을 읽느냐', '책 이야기를 꼭 해달라'는 영선과는 대조적이다. ⓒ 전원사


'왜 왔느냐', '왜 가느냐', '왜 보느냐', '왜 말을 거느냐' 등 시시비비를 가리는 말을 하다 보면 '왜'라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결국, '왜 사니'와 같은 철학적인 의제로 귀결될 '왜'라는 꼬리의 꼬리를 무는 질문엔 대답할 가치가 없는 경우가 많다.

오고 가고 보고 말하는데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 속 질문과 대답에는 위트와 유머로 가득한데 객석은 조용하다. 나를 포함한 관객들은 상영관이 작아 인원이 많지 않기 때문에 점잖을 빼고 앉아 있었기 때문이리라.

타인의 기억 속에 좋은 추억으로 머무르고 싶은가? 그렇다면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에 감탄하며 살면 된다. 눈 깜짝 할 사이를 불교에서는 '찰나'라고 한다. 지금 생각하니 영화 <자유의 언덕>의 러닝타임, 한 시간 십 분이 찰나로 여겨진다. 일상을 다시 보며 깜짝 놀랄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하나 특이한 것은 언어다. 모리와 우리 배우들이 영어로 이야기했지만 기억 속에는 그들의 내던 목소리와 행위만 남았다. 감독이 현재와 과거를 뒤섞어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든 것처럼, 영어를 통한 소통을 통해 우리가 일상에서 거리낌없이 하는 말도 관객이 되짚어보게 하는 효과를 노린 걸까?

모리 영선 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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