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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치의 희망은 있는가? 6.4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 이후 정치적 주변화에 내몰린 한국 진보정치에 대한 조롱과 냉소가 만연하고 있다. 정치전문가들 역시 수많은 주문을 쏟아내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런 조언은 대부분 '외부 시각'에 머물러 있다. 당사자들은 진보정치를 어떻게 평가하고 전망하고 있을까? 몇 차례에 걸쳐 진보정치 당사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본다. - 기자 말

NL과 PD. 진보정치를 둘러싼 여러 논쟁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개념이다. 혹자는 이를 '정파'라 부르고, 누군가는 '의견그룹'이라고 부른다. '진보정치'를 매개로 결합되어 있는 다양한 생각들은 'NL적 견해'와 'PD적 견해'로 너무 쉽게 단순화되어 버린다. 80년대 후반, 일명 '사회구성체 논쟁'에서 확립된 이 구도는 2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도 견고하게 작동하고 있다. 단순히 '생각' 혹은 '노선'만이 아니라 진보정치를 주도하는 인물들 역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과연 진보정치가 이 두 가지 생각의 흐름으로 단순하게 구분될 수 있을까? 최근 진보정치의 위기와 때로는 사망선고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이런 구도를 나름의 방식으로 넘어서려는 작은 흐름들이 나타나고 있다. 한 진보정당 당원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진보정당 30대/40대초 친목모임'(이하 '친목모임')은 소속정당과 정파를 초월해 새로운 진보정치 전망을 함께 모색하려 시도하고 있고, '진보정당을 평가해보자'(이하 '진정해')는 모임은 평당원의 시각에서 진보정당의 위기를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려는 시도다.

지난 3일, 경기도 용인에서 이들이 모였다. 3040친목모임을 처음 제안한 '금강초롱'(필명·38·진보당), '진정해'를 진행하고 있는 추공(필명·49·노동당), 6·4지방선거에 성남시의원으로 출마했다 낙선한 배준호(31·정의당), 친목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윤경준(41·비당원)씨다. 이들 역시 전통적인 기준으로는 NL(금강초롱, 윤경준)과 PD(추공, 배준호)로 구분할 수 있지만, '핵심'이 되지 못한 '주변인'의 위치에 머물러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10년간 다른 정파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가 뭔지도 몰랐다"

- 진보정당 내 다양한 정파에 소속된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모이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다. 이런 모임을 만든 이유부터 들어보자.

울산 미포만에서 태어나 노동운동의 태동기와 부흥기, 쇠락기를 모두 지켜보며 커왔다. 학생운동시절 국민승리21 활동을 시작해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 평당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40친목모임을 처음 제안했다.
▲ 금강초롱(필명·38·통합진보당 당원) 울산 미포만에서 태어나 노동운동의 태동기와 부흥기, 쇠락기를 모두 지켜보며 커왔다. 학생운동시절 국민승리21 활동을 시작해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 평당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40친목모임을 처음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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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초롱(진보당) : "나도 진보당 내에서 특정 정파에 속해 있긴 하지만 다른 정당은 물론 같은 당 내 다른 정파의 비슷한 또래들을 잘 모른다. 심지어 그들이 무슨 노래를 즐겨 부르는지조차 몰랐다. 진보정당에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는데 진보정당은 계속 분화하기만 했다.

수직적인 정파들이 서로 화합하지 못한다면, 이걸 흔들 수 있는 가로축이라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래서 3040친목모임을 처음 제안했다. 30대에서 40대 초는 각 정당에서 허리세대라 기존의 정파 축을 가장 효과적으로 흔들 수 있는 세대다. 그래서 나이도 생각이 비슷한 43세까지로 제한했다(웃음).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또래들이라 그런지 호응도 좋고 진보당, 노동당, 정의당, 녹색당 당원은 물론 진보정당 당원이 아닌 분들도 참여하고 있다."

추공(노동당) : "노동당 내부에서 진보정당의 지난 과정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몇 년 전부터 나오긴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당에서는 이런 문제의식을 실현할 공론장 자체가 없다. 그래서 나라도 먼저 연속 토론회 형식으로 평가 작업을 해보자고 생각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지방선거 이후 네 차례 정도 진행됐고 앞으로도 계속 할 생각이다. 주로 노동당 당원들이 참여하고 있고 간간이 통합진보당과 정의당 당원들도 참여하고 있다."

- 만든 사람 생각과 참여하는 사람 생각이 좀 다를 수도 있겠다. 

배준호(정의당) : "정의당에서는 정파논리가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 상황이고 후진양성을 위한 당내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주요 관심사라 다른 정당과의 모임은 사실 절박함이 없다. 그렇지만 다양한 진보정당들 간에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창구는 필요한 것 같아 참여하려 한다. 꼭 4개 정당이 통합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서로를 악마화할 필요가 있나? 기성세대는 모르겠지만 우리 세대는 소통과 공감의 욕구가 있다. '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항상 궁금했는데,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기대하는 마음이 크다."

윤경준(비당원) : "2012년 통합진보당이 분당하면서 탈당했지만 여전히 진보정당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유지하면서 살아 왔다. 정파와 정당을 초월한 3040친목모임이 만들어졌다기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다만 이 모임이 단순한 친목도모에서 끝나면 안 되고, 정견과 입장이 달라도 공존할 수 있는 공론장으로 작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파시스템 없이 서로 다른 입장이 어떻게 상호공존하고 대중과 만날 수 있을지, 이 모임에서 그 방법을 찾아보고 싶다."

진보정치의 인적 재생산, 이미 한계 왔다

- 두 모임의 강조점이 조금은 다른 것 같다. 특히 친목모임은 30대와 40대초로 모임대상을 제한한 것이 특이하다. 그동안 진보정치 1세대는 주류로 활동했고 20대는 '청년세대'라는 의미에서 주목받아 왔지만, 30대에서 40대초에 이르는 세대는 가장 진보적인 정치성향을 드러내면서도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이른바 '낀 세대'의 반란으로 봐도 되나? 

윤경준 : "반란이라기보다는 그동안 억눌려 왔던 것 같다. 우리 세대는 어쩌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 우리에겐 지하 고문실에 끌려가던 선배세대와는 다른 가벼움과 자유로움, 발랄함이 있다. 그런데 진보정당에만 들어오면 우리의 발랄함을 잃어버리고 경직된다. 왜 그럴까?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고장난 정파 시스템 때문이다. 우리 몸에 맞지 않지만, 한번 만들어 놓은 (정파) 시스템이 업그레이드되지 않으니까 거기에 맞춰갔다. 밖에서는 비판해도 막상 자기가 속한 정파조직 안에서는 말도 못하는 분위기... 결국 이런 경직성이 자기교정 능력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정파가 정치적 책임을 진 적도 없다. 쓸 만한 사람들은 정파 체계에서 질식하다가 사라지기 때문에 다음 세대를 키워낼 수 없었다. 역량 손실이다."

금강초롱 : "국민승리21 때부터 진보정당 활동을 해왔는데 민주노동당 10년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다른 정파 당원들과 정서적, 화학적 결합이 전혀 없었다. 구386세대라 불리는 선배세대가 진보운동을 처음으로 활성화한 분들인데, 진보운동의 후퇴기라고 하는 지금도 그분들이 여전히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그 기간이 벌써 20년이 넘는다. 30대에 앞장섰던 선배들이 50대가 되어서도 앞장서고 있는 거다. 우리는 그동안 뭘 했나? 나쁘게 말하면 그냥 '몸빵'한 거다."

- '몸빵'만 했다는 것은 진보정당 내에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을 말하는 것 같다. 지금 30대 초에서 40대 초에 이르는 활동가 중 눈에 띄는 사람이 매우 드문 것이 사실이다. 진보정당에서 이 세대의 위치나 이미지는 어떤가?

2006년 말 민주노동당 가입 후 2011년 진보신당에 입당했다. 2012년 5월 12일 통합진보당 중앙위 폭력사태 후 통합진보당에 입당, 분당 때 진보정의당에 합류했다. 지난 6.4지방선거에서 성남시의원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 배준호(31·정의당 당원) 2006년 말 민주노동당 가입 후 2011년 진보신당에 입당했다. 2012년 5월 12일 통합진보당 중앙위 폭력사태 후 통합진보당에 입당, 분당 때 진보정의당에 합류했다. 지난 6.4지방선거에서 성남시의원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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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준호 : "좋지 않다.(웃음) 30대, 40대 선배들을 보면 당직 생활을 하면서 생계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직업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어떤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선배들의 길을 따라가야겠다고 마음먹을 정도로 자기 갈 길을 잘 찾아 가거나 선배들에게 자리를 넘겨받는 과정을 본 적이 없다. 전반적으로 우울해 보인다. '나는 저런 방식으로 살지 않겠다, 나를 희생하고 버려가면서 (정당활동을) 하지는 않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래서 정치 활동과는 별개의 직업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윤경준 : "우리는 학생운동의 영향력이 아직 남아 있을 때 대학생활을 했고, 이게 진보정당 활동까지 이어졌다. 어쩌면 지금 진보정당을 주도하는 선배들과 학생운동을 경험해 보지 못한 후배들을 이어주는 연결 고리 세대다. 그동안 진보정치가 어려워져도 도망가지 않고 버텼다. 그러면서 자기 개발도 못하고 계속 소진만 됐다. 선배들은 여전히 '주역'으로 남아 있고 후배들은 '새로운 세대'로 주목받지만 우리는 그냥 '낀 세대'다."

추공 : "나는 낀 세대가 아니라 '주도하는 세대'에 속하지만 주도해본 적은 없다.(웃음) 그렇지만 친목모임을 지켜보면서 아쉬운 것도 있다. 구체적인 진지함보다는 아직은 친목활동 중심이다. 나름대로 자신의 정립이 있어야 기존 세대를 비판할 수 있다. (선배세대가) 보기보다 경험과 고민의 깊이가 깊은 사람들이라 웬만하면 흔들리지 않는다. (정말 세대교체를 하겠다면) 진지하게 고민해서 수없는 실패와 도전을 반복해야 한다.

사실 진보정당의 문제를 세대문제로 접근하는 건 좀 별로인데, 자꾸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의미는 분석해봐야 한다. 진보정치운동을 시작했던 주체가 지금도 계속할 필요가 있냐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명망가 리더들이 진보정치운동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했던 사람들이 계속 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

진보정당 1세대가 (자신의 자리를 후배에게 내어 주고) 다른 일을 찾거나 후배들이 실력을 키울 수 있는 장을 열어 줘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우선 후배들을 신뢰해야 한다. 일을 맡길 때 해본 사람과 안 해본 사람 중 안 해본 사람들을 시킬 수 있어야 후배들에게 책임 있는 일을 맡길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안 한다."

정파 시스템으로 인한 분열, 불가피했나?

- 세대 문제가 제기되는 주된 이유를 정파 시스템에서 찾고 있는 것 같다. 30대와 40대초 세대가 선배세대와 정서적 공감을 이루면서도 기존의 정파 질서에 지나치게 순응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것인가?

학생운동을 하다가 2006년 민주노동당에 입당, 2012년 통합진보당 분당 때 탈당해 비당원으로 남아 있다. 촛불시위에 자주 참여하면서 진보정치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고 있다.
▲ 윤경준(41·비당원) 학생운동을 하다가 2006년 민주노동당에 입당, 2012년 통합진보당 분당 때 탈당해 비당원으로 남아 있다. 촛불시위에 자주 참여하면서 진보정치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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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준 : "그렇다. (운동하던 사람들) 모두가 진보정당에 입당하고 있었던 2000년 초중반에는 '다 정당에 들어가면 운동은 누가하나?'는 생각이 컸다. 그런데 막상 (나도 진보정당에) 입당해 보니 이건 완전히 운동권 정당이었다. 운동권들이 주도하는 정당이라는 장점은 지켜야 하지만 운동문화와 경험이 없는 당원들은 숨 막혀서 도망가는 분위기가 있었다. 예를 들어 2008년 분당 이후 진보신당에 전형적인 운동권과는 거리가 먼 '촛불시민'들이 대거 입당했다. 그분들과 기존 정파들이 아름답게 결합했나?

아니었다. 갈등이 심했다. 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과 동거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물과 기름도 이렇게 섞이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문화적 차이가 있는 이들이 함께 모이게 된 것은 엄청난 성과지만 결국 그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지 못했다. 민주노동당 초기에 어땠나? 변호사나 전문가들이 자기 이익을 포기하면서 당에 들어왔다. 그런데 결국 못 버티고 대부분 다시 나갔다. 왜 이런 문제들이 고쳐지지 않았을까? 결국 정파시스템 문제다."

금강초롱 : "진보정당이 가장 실력이 있었던 시절이 민주노동당 초창기였던 것 같다. 지지계층과도 끈끈한 관계였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사안들은 대부분 그때 민주노동당이 법안 제출하면서 해결하려고 했던 것들이다. 그러나 당의 활동을 (모든 정파, 개인들의) 공동 성과로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 사실 그 많은 성과 중 어느 한 정파가 독자적인 힘으로 이뤄 냈던 것이 얼마나 되나? 별로 없었다. 그렇지만 서로 자신의 실력을 너무 높게 봤다. 분당해도 독자적으로 성공할 수 있고 나가는 사람들을 잡지 않아도 실패하지 않을 실력이 있다는. 결국 실력을 과신한 분열이었다. 진보운동은 같이 함께 하는 사람들 간에 의리가 있어야 한다. 의리가 없을 때는 느슨해지고 힘을 모을 수 없다."

추공 : "의리에서 해법을 찾는 건 위험하다. 의리 이전에 과학이 전제되어야 한다. 정파는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블랙홀이다. 외부에서 비판해도 무시하면 그만이다. 사실 분열은 자기 정체성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정파가 문제가 아니라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시스템이 없는 게 문제다. 공개 시스템이 있으면 (정파활동이) 정치적인 유연성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결국 분열은 정파 시스템 문제 때문이었지만, 합치는 것도 정파 시스템(의 혁신)으로만 가능하다.

그동안 대중정당과 정파 시스템 간의 관계를 정립하지 못했다. 대중노선이 뭐냐고 물었을 때, (현재의 진보정당들은)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대중노선은 다양한 입장들이 공존해서 민주적 합의를 구성해서 나와야 하는데 특정 정파의 이데올로기가 대중정당의 이데올로기로 되어 버린다. 패권주의도 특정 정파만의 문제가 아니라 NL이나 PD나 다 같이 가지고 있는 문제였다. 대중노선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금강초롱 : "그렇지만 죽더라도 치열하게 안에서 싸웠어야 하지 않나? 2008년 분당 때, 지지자들은 벼락 맞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특히 노동계급 내에서의 충격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추공 : "참다 참다 못해서 나간 것이다. 그 안에서 의미 있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면 남았겠지. 지금까지는 그런 가능성이 다 봉쇄되어 있었다. 다수파의 봉쇄 작전으로 아무 가능성이 없었던 아닌가? 누구든지 먼저 다수파가 되었을 때, 같이 연합하고 연대할 (대중정당) 시스템을 만들지 못했다. 민주노동당 초기에 평등파가 다수파였을 때도 못 만들었다."

배준호 : "나도 2008년 분열이 꼭 나빴다고 보지는 않는다. 변화가 필요했고, 내부적으로는 불가능했다. 충격이 필요했다. 당연한 순서였던 것 아닌가? 분열 때문에 진보정당이 쇠퇴한 것이 아니라 이미 쇠퇴한 것이 분열로 확인 된 것이다."

윤경준 :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우리 지지층을 놓고 봤을 때 크게 변한 것은 없다. 지금 10%지지율을 누가 1%씩 더 가져갈까 하는 부질없는 짓을 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여론조사에서 16%, 23% 지지율 찍을 때, 우리를 쳐다봐 줬던 그 국민들이 지지층이 될 수 있는 외연의 최대치다. 지금의 분열상이 10%를 넘는 그런 국민들의 지지를 수용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진보정치 재편? 먼저 매력적인 모습 갖춰야

- 기존 정파시스템을 비판하지만 분당에 관해서는 자주파, 평등파의 시각차이가 여기서도 반영되고 있는 것 같다. 진보정치의 전반적 위기 속에서 서서히 진보정치 재편 논의가 일어나고 있긴 한데 이것도 여전히 정파 논의 중심이다. 어떻게 지켜보고 있나?

윤경준 : "논의 자체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계속 미뤄 놓으면 2016년 총선 직전에 또 가치는 버리고 실리 중심의 접근이 이루어질 것이다. 미리 논의해보는 것은 바람직하다." 

금강초롱 : "지금은 누구랑 통합하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보다 자신들의 진보정당 활동에 대해 평가하고, 자기 성찰하는 국면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통합진보당이 좀 더 제대로 된 평가를 내놔야할 시점이라고 본다. 가장 많은 당원을 가지고 있는 진보당에게 계속 제기되는 과제가 있다. 패권적인 부분과 대북관 같은 것들. 자기 과제에 대해 나름의 대안을 보여줄 수 있을 때 진보정치 재편 논의가 빨라질 것이다. 진보당은 최근에 평가와 전망 위원회를 만들어서 토론했는데 긍정적인 출발이다. 노동당도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이런 것들이 서로를 만나가는 과정 같다."

추공 : "노동당 내에서도 통합, 재편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는 회의적이다. 내용이 반영되지 않으면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된다. 통합을 하든 재편을 하든 실력이 있어야 하는데, 평가도 제대로 안하고 무슨 근거로 통합을 하나? 노동당 일각에서는 제3지대에 당을 새로 만들고 나서 정의당과 합당하겠다는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진보당은 빠져 있는데, 왜 인천은 되고 울산은 안 되는지 설명해 줘야 한다(흔히 자주파는 경기동부, 울산, 인천 등 세 그룹으로 분류된다. 2012년 통합진보당 분당과정에서 인천 일부는 정의당으로 합류했고 나머지 그룹은 잔류했다. - 기자 말). 진보당은 종북세력으로 몰려 있으니까 그런 것인데, 너무 실리적인 발상이다."

배준호 : "옛 애인이 그립다고 다시 만난다고 해서 행복해지지 않는다. 물론 다시 만날 수 있는 조건이 있다. 그 사람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니라 다시 매력적으로 보일 때다. 지금 (진보정치 재편) 정서는 힘드니까 다시 만나자는 것이다. 새롭게 사랑을 느꼈을 때 다시 만날 수는 있지만, 외로움에 사무쳐 다시 만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돈 많은 사람이 우리에게 연애하자고 손 내미는 현 상황에서 진보정당들이 다시 만나려면 각자의 매력을 찾는 게 중요하다(7·30재보궐 선거 이후 새정치연합 일부 의원들은 정의당과의 통합을 거론했다.- 기자 말). 과거 지지율에 대한 향수? 잊고 시작해야 한다. 이 비전이면 되겠다는 판단이 들 때 재편 논의를 할 수 있다. 현재의 패배감 때문에 옛날 생각을 하는 것은 심정적으로는 이해는 되지만 진보정치 하는 사람들의 각오로는 부적합한 생각이다."

진보정치 부활, "어떤 노력이라도 시작할 때"

- 진보정치 재편은 역시 어려운 주제다. 아직 모든 것이 막연한 상황에서는 '상대'보다 '자기'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이 모임 역시 성공여부와 무관하게 의미 있는 노력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비판만 하는 조직이나 개인은 넘쳐난다. 비판을 넘어서는 대안을 가지고 있는가?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뒤 진보신당에 입당하면서 정당활동을 했다. 용인에서 협동조합 운동을 펼치다 노동당 내에서 진보정당 평가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 추공(필명·49·노동당 당원)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뒤 진보신당에 입당하면서 정당활동을 했다. 용인에서 협동조합 운동을 펼치다 노동당 내에서 진보정당 평가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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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공 : "내가 진행하고 있는 '진보정당 평가해보자'를 줄이면 '진정해'가 된다. 일단 서로 좀 진정할 필요가 있다. 당원들의 지금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탈정치'쯤 된다. 정파중심의 당운영이 만들어낸 결과다. 정파는 당연한 현상이지만, 정파가 당원을 향한 정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선의에 의존하거나 대오각성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시스템을 제도화해야 한다.

당원들이 자기 목소리를 찾는 과정은 이 제도화 과정과 맞물린다. '진정해'를 진행하면서 요구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당직자, 정파 활동가들은 평당원들도 자기 생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에게 귀 기울이고 관심을 가지는 것도 실력이다. 노동당만이 아니라 진보정당 전체의 문제다."

금강초롱 : "이제 과거 형태를 답습하거나 같은 사람들이 순서만 바꿔 나오는 시스템보다는 새로운 사람들이 진보정치의 꿈을 꽃피우는 시기가 되어야 한다. 여론조사를 보면 가장 진보적인 세대가 30대, 40대 초인데 진보정치에서 전면적으로 나선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열정과 에너지를 많은 당원들의 힘과 열정, 지혜로 운영되는 진보정당을 만들기 위해 써야한다.

그동안 실력 있는 젊은 세대들이나 진보적인 꿈을 가진 사람들이 중앙당이나 정책연구소에서 일하지 못했다. 기성정당에서 일하고 있는 진보정당 당원들도 많은데, 그 친구들이 중앙당이나 정책연구소에 들어와서 그동안 연구한 내용이나 현장 경험들을 쏟아내도록 해줘야 한다. 그런데 그런 친구들이 지금은 (진보정당에) 못 들어온다. 실력보다 정파차원의 안배에 치중한 인사 때문이다."

- 그런 대안을 어떻게 실현하겠다는 것인가? 주장만 해서 될 문제였다면 애초에 됐을 것이다. 구체적인 대책이 있나? 세력화하겠다는 것인가?

금강초롱 : "세력화? 우리가 정파를 초월한 젊은 당원들의 친목모임을 만든다고 하니까 '또 다른 정파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단 한 번도 주류가 된 적이 없다. (웃음) 필요하다면 시도해볼 생각은 있다. 우리의 시도가 올바르지 않은 길로 가게 된다면 당내에서 다양한 제어시스템이 작동할 것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새로운 흐름들조차 없다면 활력 없는 노쇠한 진보가 될 수밖에 없다. 

정파의 긍정성을 부정하진 않지만 지금의 정파 시스템은 가장 자주적이고 창조적이어야 할 진보정당을 너무 딱딱하게 만들고 있다. 진보정당 활동가들은 개인의 사리사욕보다 민중이 주인으로 서는 세상을 만들려는 목표를 더 앞세운 사람들이다. 더 늦기 전에 우리 세대부터 수동적인 자세나 정파적 경직성을 버리고 진보정치의 새로운 실험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성공여부는 알 수는 없지만 이런 흐름이 계속 나오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닌가?"

윤경준 : "두 번의 분당과정을 겪으면서 지지율 자체는 얼마 안 빠졌다고는 하지만 사람은 많이 잃었다. 실망하고 떠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나? 이런 사람들이 돌아와야 진보정당 내에서 정파혁신이든 정풍운동이든 가능하다. 지금처럼 경직된 정파가 주류로 남아 있는 상황에서는 실질적인 혁신 주체를 만들기 어렵다. 물론 떠난 사람들도 성찰할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성찰하고 힐링할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모임에서는 여러 정당, 여러 정파, 비당원들이 일단 함께 어울려 보는 엠티 같은 것도 준비 중이다. 물론 정파를 배척하려는 태도는 맞지 않다. 그들은 당에 대한 애정과 헌신성이 훌륭한 사람들이다. 다만 그 사람들이 실수하지 않을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스스로는 못한다. 우리는 그런 혁신 공간을 만들려는 거다."

배준호 : "난 좀 밝은 것부터 해봤으면 좋겠다. 당에서 활동하는 분들은 우울함 같은 것이 베여 있는 것 같다. 후배들이 따라서 살고 싶은 모델을 만들어보고 싶다. 선배들과 달리 '상처 받지 않고 저렇게 유연하게도 당활동이 가능하구나'하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게 진보정치 문화를 젊고 밝고 즐겁게 바꿔야 한다. 농담 섞어 이야기해보면, 젊은 미혼당원들끼리 만나는 미팅같은 것도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웃음) 어렵고 복잡한 문제보다 문화적인 교류부터 시작하면 좋지 않을까?"

정치는 과정보다 결과로 평가받는 영역이다. 진보정치의 위기를 둘러싼 다양한 해법들 역시 어떤 결과를 내놓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도 그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시점에서는 과정 자체가 주목받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각 진보정당 내에서 시작되고 있는 작은 흐름들은 여러 부족한 점들이 눈에 띈다 하더라도 충분히 주목받을 가치가 있다.

물론 이 집담회에 참석한 이들의 시도에 어떤 대표성을 부여하거나 무조건 정당화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어떤 '움직임'을 만들고 있다는 것은 진보정치 부활의 필요조건이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면 진보는 더 이상 진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 많은 흐름, 더 다양한 목소리에서 진보정치의 새로운 희망을 찾아보려는 시도가 부질없지 않은 이유다.

덧붙이는 글 | * 이 집담회는 박정환, 강종구, 정용일, 이상범, 김은희, 박래훈, 강시원, 안영선, 오은혜, 정규식, 김보연, 윤지선, 이승철, 홍기웅, 홍명근님의 후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속기·정리: 정경윤, 장소후원 : 용인 '당신의 부엌'



태그:#3040친목모임, #진정해, #진보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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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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