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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지하철의 이단아

지난 10일 오전 8시. 마지막 휴일을 즐기는 사람들로 지하철은 북적였다. 간간이 보이는 귀향객들. 그들 손에는 한 아름의 보따리와 웃음꽃이 만개한다. 그 속에 두꺼운 책을 꺼낸 남자가 보인다. 청바지에 파란 옥스퍼드 셔츠를 입고 주위를 최대한 안 보려는 듯 책 속에 코를 박고 있는 남자. 출근길에 오른 나였다. 그렇다. 나는 지금 전화를 받으러 간다.

출근 사태의 시작

이번 추석은 긴 연휴만큼 대체 휴일에 대한 기대가 컸다. 공휴일로 인해 추석 명절을 온전히 보낼 수 없던 적이 많았던 나로서는 반길만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국가적인 분위기는 대체 휴일은 꼭 쉬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절대 의심하지 않았다. 우리 회사에서 대체휴일을 안 쉰다는 것을. 오래간만에 시골에도 내려가지 않고 온전히 긴 연휴를 보낼 수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지난주 목요일까지는 그랬다. 그리고 금요일 날. 새로운 인연을 기다리며(관련기사: 너희가 헌팅을 아느냐? )  들뜬 오전 조회 시간에 청천벽력 같은 공지가 내려왔다. '대체 휴무 출근'.

대체 휴일은 그저 '고객사'를 위한 것이지요
 
사람의 표정에서 물음표가 보였다. 팀장의 말이 이어졌다.

"대체 휴무를 우리 회사 자체에서는 쉬지만, 고객사에서 우리에게 이날 일 해 달라는 메시지가 왔어요."

역시 큰 기업은 다르다. 대체 휴일임에도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위해서 나와서 일을 한다. 이게 이 기업이 오늘날 엄청나게 큰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인가? 해당 기업의 부지런함을 은근히 존경하며 되묻는다.

"팀장님, 고객사는 그럼 언제부터 출근한답니까? 저희랑 비슷하게 출근해서 같이 일한답니까?"

팀장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거기서 읽히는 표정은 뭔가 잘못됐다.

"고객사는 그날 휴무를 합니다. 저희만 나와서 고객을 상대하는 거지요."

일순간 분위기는 이상해진다. 왜 우리만 나와서 일을 해야하지?

고객사가 원하는 거니까 어쩔 수 없지요

이곳저곳에서 탄식이 흘러나온다. 온갖 고객의 불만 건에 대해 대비해야하는 콜센터의 특성상 해당 고객사에 대해 의존하는 정도가 높다. 게다가 어떤 사항에 대해 고객에게 처리를 해줘야 할 때는 고객사의 확인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확인이 이뤄질 수 없는 상황에서 단독 근무라니?

"그럼 고객들한테 설명을 어떻게 해줘야 하는데요?"

한쪽 편에 서있던 누나가 묻는다.

"그냥 두루뭉술하게 넘겨야겠죠. 고객사에서 확인이 안되니까"

팀장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대답한다.

"고객사가 원하는 거니까 어쩔 수 없죠. 우리는 아웃소싱 기업이니 위에서 하라고 하면 할 수 밖에요."

우려는 현실이 된다

연휴를 시위 떠난 활처럼 보내고 지금 나는 회사 모니터 앞에 있다. 모두들 설마했다. 심지어 나조차도 9일날 저녁까지 기다렸다. 내일 출근 안해도 된다는 문자를. 그러나 현실은 기적따위 없이 다가왔다. 두근댄다.

오늘은 어떤 클레임 앞에서 무너질지. 더군다가 고객사가 없는 상황에서 이부분을 어떻게 설명을 해줘야 할지. 벨이 울리고 전화를 받기 시작한다. 이곳 저곳에서 상급자 요청이 들어온다. 상담사가 고객들에게 만족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팀장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나?

평소 들어오는 콜량의 반도 안됐지만, 상급자를 요청하는 비율은 역대 어느때 보다 많았다. 심지어 한 상담사는 점심시간을 놓쳐 따로 시간을 내 밥을 먹었어야 할 정도였다. 고객사의 휴무로 우리는 뜻하지 않은 전쟁을 치르게 됐다. 사소한 확인도 안돼 강성 클레임 고객들로 변할 거라던 우리의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는 순간 이었다.

휴일도 돈이 있어야 쉬는 것인가

전쟁같은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 사람들은 한아름 선물을 안고 집으로 귀가하는 듯하다. 전쟁을 치르느라 만신창이가 된 난 다시 한 번 한숨을 쉰다. 정작 일을 하러 왔지만, 제대로 된 업무는 하지도 못하고 사소한 강성 고객들의 먹잇감이 됐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휴일이란 말인가.

이제는 휴일조차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돌아갈 수 없는 성격의 재화가 됐나 보다. 정부와 대기업에서는 휴일을 반드시 해야만하는 것이지만, 우리 같은 조그마한 업체들은 그림의 떡이다. 같은 노동력을 제공하고 일하고 있는데 왜 누군가에겐 휴일이 있고 누군가에겐 타의에 의한 노동을 해야만 하는가.

이번 제도의 의의가 일반 국민들 사이에 상대적 박탈감을 주려는게 목적이 아니었다면 모든 노동자들이 누릴 수 있는 권리로 바꿔나가야 한다. 첫 시행한 대체 휴일은 나로서는 다른 날보다 더 힘든 근무일이 됐다.


태그:#콜센터, #대체 휴일, #노동자, #권리, #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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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전역한 따끈따끈한 언론고시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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