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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에서 바라보는 카리브해의 모습. 칸쿤으로 가는 비행기의 왼편 창가 좌석에 앉을 이유다. 제아무리 오랜 비행이라고 할지라도.
▲ 비행기에서 보이는 칸쿤 - 하늘에서 바라보는 카리브해의 모습. 칸쿤으로 가는 비행기의 왼편 창가 좌석에 앉을 이유다. 제아무리 오랜 비행이라고 할지라도.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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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바라보는 구름 아래 카리브해의 풍경이 기가 막혔다. 덕분에 귀국 티켓을 끊었다는 편지에 며칠째 답장이 없다는 사실도 잠시 잊었다. 비행기가 방향을 틀자 눈이 멀 것 같은 태양빛에 눈을 감았다. 그러자 뜻밖에도 구멍이 숭숭 뚫린 대지 위를 덮은 눈의 풍경이 떠오른다. 기억을 더듬어보자 두어 달 전, 파타고니아로 가는 비행기에서 본 풍경이었다. 얼음의 대지에서 사막을 지나, 비바람과 화산이 요동치는 정글을 뚫고 마침내 천국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뜬 기분도 잠시, 칸쿤의 공항을 빠져 나와 시내에 들어서니 다시금 막막해졌다.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던 차에 우연히 몇 걸음 앞의 일본인을 발견했다. 열대의 기후가 익숙해진 듯한 검게 탄 피부에, 소매가 없는 옷, 캐리어 대신 배낭을 멘 그녀를 본 순간 어쩐지 같은 숙소일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적당히 거리를 두고 따라 나섰다. 같은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고 나서야 나는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고, 며칠간의 보금자리가 될 그곳에서 나는 황과 택근형을 만났다.

내가 이들과 쉽게 친구가 된 건 꼭, 두 달 만에 처음으로 만난 한국인이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멕시코 북부에서 교환학생을 끝내고 귀국을 앞둔 황은 제법 스페인어가 능숙했다. 나보다도 나이가 제법 많은 택근형은 이제 막 아메리카 탐험을 시작했다. 한국을 잠시 떠나온 사람의 얼굴에서 드러나는 고뇌와 모험을 즐기는 여행자의 호기심이 동시에 묻어나는 그의 눈에서, 나는 불과 몇 개월 전의 내 모습을 보았다.

만남과 동시에 초대받게 된 이른 저녁 식사는 라면이었다. 두 달 만에 먹는 라면, 두 달 만에 하는 한국말. 아직 먹지도 않았는데 모락모락 피어나는 그 수증기가 사무치게 향기로웠다. 과테말라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여행하게 되었다는 두 사람이 부럽다고 하자, 남쪽에는 한국인이 없냐고 묻는다. 문득 억수같이 비가 쏟아 붓던 코스타리카의 어느 날, 거울 속에 무표정한 얼굴의 내가 떠올랐다. 차마 그 이야기를 할 수 없어 그냥 그렇다고 대답했다.

여행부랑자가 세 명이나 뭉치니, 이야기가 그칠 줄 모른다. 곧 누군가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는 황이 부러웠다. 이제 겨우 20대 나이에, 아메리카 대륙을 여행한 그의 젊음을 훔치고 싶었다. 한편 형은 내가 여행자 치고는 너무 많은 걸 들고 다니는 것을 신기해 했다.

아프리카에서부터 세계를 돌면서 모은 각종 기념품과 옷가지, 전자기기들, 책까지. 차곡차곡 쌓고 보니 지금껏 내가 확인한 환상이 대체 얼마나 많은 것인가 싶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그에게 칠레의 토레스 델 파이네에 가지 말라고 한 것을 후회한다. 여행자라면 가야 한다. 차곡차곡 쌓은 그 환상을 넘겨보려면 결국은 가야 한다. 때로는 그것이 조용히 허물어지는 것을 보게 되더라도 말이다.

'인간의 욕망' 그대로 옮겨온 20km의 칸쿤 해변

 - 일명 호텔존(Hotel Zone) 이라고 불리는, 카리브해를 따라 지어진 이 지역은 20km 내내 기라성 같은 호텔과 리조트들이 줄지어 서 있다.
▲ 칸쿤의 리조트 - 일명 호텔존(Hotel Zone) 이라고 불리는, 카리브해를 따라 지어진 이 지역은 20km 내내 기라성 같은 호텔과 리조트들이 줄지어 서 있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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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도 없는 도로를 달린 지 10분이 지났다. 버스가 멈춘 적이 한 번도 없었음에도 호텔과 리조트가 줄지은 길은 끝이 보이지가 않는다. 이쯤이면 되겠다 싶어 내린 곳에는 어김없이 거대한 리조트가 장벽처럼 서 있었다. 어디에도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칸쿤의 바다를 보기 위해서는 일단 호텔로 들어서야 한다. 바닷가에 긴 평행선을 그은 듯 펼쳐진 긴 모래 사장에 자리잡은 쇼핑가와 호텔, 리조트는 낡은 옷을 싸들고 여행을 가서 그 옷을 마지막인 듯 입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와서는 안 될 곳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황은 그런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존재였다. 적어도 멕시코인이라면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동양인에게 친절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칸쿤은 세계의 내노라하는 유명 호텔 150여개가 해변을 따라 늘어서 있어 무척 고급스럽고 현대적이다. 그러나 1970년까지만 해도 주민이 100여명에 불과한 작고 보잘 것 없는 어촌이었다.
▲ 칸쿤의 해변 - 칸쿤은 세계의 내노라하는 유명 호텔 150여개가 해변을 따라 늘어서 있어 무척 고급스럽고 현대적이다. 그러나 1970년까지만 해도 주민이 100여명에 불과한 작고 보잘 것 없는 어촌이었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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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하게 장식된 호텔의 야외정원을 지나야만 볼 수 있는 칸쿤의 바닷가에는 수평선보다 더 먼 시야까지 크고 작은 리조트들이 줄 서 있었다. 멀리서 보면 마치 바다 위에 떠있는 성 같은 모습이다. 도저히 가늠도 안 되는 규모의 해변을 따라 에메랄드 바다가 반짝이고 줄지어 늘어선 파라솔은 누군가를 기다린다. 비교적 한적한 해변에서도 저마다 뽐내듯이 수영복을 갖춰 입은 사람들 사이로 바의 웨이터는 바쁘게 맥주를 실어다 나른다. 동전 몇 개면 맥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바깥 세상과 완벽하게 단절된 그곳을 사람들은 호텔존(Hotel Zone)이라고 부른다.

바깥 세상과 단절된 '호텔존'의 사람들

 - 세계의 아름다운 해변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해변외에도 라스베가스를 옮겨놓은 듯한 쇼핑몰과 클럽들은 멕시코의 자랑이자 전세계인의 욕망이 한데 모여 진화한 칸쿤의 결정판이다.
▲ 칸쿤의 다양한 모습 - 세계의 아름다운 해변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해변외에도 라스베가스를 옮겨놓은 듯한 쇼핑몰과 클럽들은 멕시코의 자랑이자 전세계인의 욕망이 한데 모여 진화한 칸쿤의 결정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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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km나 되는 긴 길이를 자랑하는 칸쿤의 해변은 카리브해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옮겨놓은 곳이다. 불과 40년 전인 1970년도 까지만 해도, 어부의 통통배뿐이던 칸쿤의 바다는 카리브해의 파라다이스로 탈바꿈했다.

할리우드풍의 쇼핑몰과 클럽, 바다로 가는 길을 가로막은 시멘트 벽을 뚫고 이곳의 바다를 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이방인들뿐이다. 파도의 설렘과 밤의 흥청거림은 새벽까지 이어지겠지만, 원초적인 카리브해의 모습은 이곳에서 자취를 감춘 마야인들 마냥 찾아보기 어렵다.

새해가 막 시작된 때라 휴가객으로 붐빌 만도 하건만 칸쿤의 바다는 제법 세게 몰아치는 파도 외에는 고요했다. 해변의 길이가 20km나 되니, 한 곳에 몰리기가 쉽지 않아서였을까. 부드러운 질감의 햇살 아래 나른한 동작으로 헤엄치던 사람들도 하나 둘씩 호텔벽 너머로 모습을 감추었다. 잠시 비치발리볼을 즐기던 택근형과 황은 대체 어디까지 산책을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고개를 돌려 서쪽을 바라보니 높이 솟은 리조트의 건물이 지는 해를 반쯤 가렸다. 그러니까 이 '카리브해의 욕망' 에서는 오후의 태양을 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 조용한 해변가를 걷던 연인들이 금빛 노을 속으로 사라지려는 순간 셔터를 눌렀다.
▲ 칸쿤의 연인 - 조용한 해변가를 걷던 연인들이 금빛 노을 속으로 사라지려는 순간 셔터를 눌렀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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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걸어오는 한 쌍의 커플을 보았다. 어디 햇살 바른 곳에 모여서 놀다가 왔는지 제법 그을린 피부의 그들은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유일하게 빛났다. 근처 도시에서 주말 여행을 왔을까. 지금쯤 오늘 저녁으로 먹을, 끓인 조개를 곁들인 파스타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선명하게 찍힌 발자국 위로 거의 힘을 잃은 파도가 부서지는 사이 남자는 여자의 볼에 입을 맞췄다. 두 그림자의 주인공은 그렇게 하나가 되어 이야기를 만든다. 나는 마치 천천히 커피의 향을 맡는 사람처럼 카메라를 들었고, 황금빛 노을 속으로 두 사람이 사라지려는 찰나 셔터를 눌렀다. 다시 멀어지는 두 사람을 보며 나는 뭐라고 혼자 중얼거리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여행을 할 수 있는 남자가 부럽다. 내가 지니고 다닐 만한 것이 당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나는 이 사진을 그들에게 전해줘야 했을까. 눈물이 날 것만 같던 그 완벽한 풍경을.

간략여행정보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끝에 위치해 있는 칸쿤은 아메리카를 통틀어서 가장 유명한 휴양지로 손꼽힌다. 흔히 휴양지라고 하면 허니문을 위한 곳으로 인식하기 쉬운데 칸쿤은 비행기에서 보이는 그 해변과 멋들어진 리조트가 다가 아니다.

아직도 남아 있는 마야의 유적 톨룸(Tulum)과 정글 속의 카리브해 이슬라데무헤레스(Isla de Mujeres), 상상하는 모든 것을 재현해 놓은 워터파크 스칼렛(Xcaret), 세계 7대 불가사의 치첸잇사 등이 모두 칸쿤을 중심으로 하루에 다녀올 수 있다. 칸쿤은 멕시코를 방문하는 여행자가 반드시 머물러야 할 거점도시이기도 한 것이다.

호텔존에 있는 대부분의 호텔은 돈을 다 쓰기 전에는 호텔에서 나올 필요성을 못 느끼게 하는 올 인클루시브(All Inclusive - 일정금액을 내면 무제한의 음식과 주류, 유흥을 제공하는 서비스) 서비스를 제공하며, 밤에는 호텔존 중심가에 위치한 클럽 코코봉고(Coco Bongo)에서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다. 엄청나게 비싼 물가가 부담스럽다면 호텔존을 벗어나 칸쿤 시내에 머무를 수 있지만, 해변과 각종 부대시설까지는 버스를 타고 제법 먼 거리를 가야 한다.

좀 더 자세한 칸쿤 여행정보는 아래 링크를 참고하자.
http://saladinx.blog.me/30155857106




태그:#칸쿤, #멕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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