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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소재 대학들이 대학 구조 개혁을 앞두고 정원 감축안을 내놓은 가운데, 인문학을 다루는 학과가 우선 감축 대상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감축 기준을 세워놓은 일부 대학에서 취업률 등 정량 지표에 우선순위를 둬 학과별 감축 인원을 결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상경·공대 계열보다 취업률이 취약한 인문 계열 학과가 일정 부분 타격을 받는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대학 바깥에선 '인문학 열풍'이 불지만, 정작 내부에선 인문학이 평가 지표에 의해 밀려난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원 감축을 단행할 서울 소재 대학 중 학과별 감축 기준을 세워놓은 대학은 현재 국민대와 서울여대, 숭실대 정도다. 서강대는 감춘 기준에 대해선 명확히 밝히고 있지는 않으나 인문 계열의 정원 감축을 논의중이며, 2016년 입학정원을 43명 줄이는 광운대는 국어국문학과와 영어영문학과가 속한 인문대를 사회과학대와 통합하여 인문사회과학대로 개편한다. 4% 감축안을 내놓은 중앙대는 학과별 평가 기준을 9월 말쯤 확정지을 예정이다.

취업률 따라 결정되는 학과 정원

2017년까지 입학정원의 120명(4%)을 줄이는 국민대는 학과별 감축 평가에서 취업률 비중이 절대적이다. 국민대는 46개 학과 중 20개 대상으로 정원 감축을 논의 중이며, 학과별 감축 인원은 취업률 85%와 중도탈락률(자퇴, 미등록 등) 15%로 평가해서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취업률 85%엔 교육부의 대학평가 취업률과 일간지에서 평가한 취업률, 건강보험 DB 연계 취업률 등이 합산된다. 정부 지원 사업인 수도권대학특성화사업(이하 CK-2)에 신청을 했거나 취업률 상위에 오른 학과는 감축 대상에서 제외된다.

정원 감축 기준을 밝힌 국민대는 2016학년도부터 정원을 감축할 예정이다.
 정원 감축 기준을 밝힌 국민대는 2016학년도부터 정원을 감축할 예정이다.
ⓒ 고동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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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국민대 대학평의원회에 감축안이 상정되자 의원회 소속 교수들은 반발하고 나섰다. 의원회 의장인 A교수는 지난 5월 8일에 열린 의원회 회의에서 "교수회에서도 추진 방법에 대한 반대 의견이 많다"며 "감축 대상을 선정하는 데 대해 단순히 취업률만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자리에서 문과대 소속 교수 B씨는 "제시된 안으로 감축하면 문과대는 5개 학과 모두 감축 대상이 된다"며 "대학의 기능이 취업만은 아닌데... 교육이나 연구 지표가 반영된 종합적인 평가를 통해 정원 감축 대상을 선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B교수는 "문과대는 여학생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 취업률이 다른 단과대에 비해 낮은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가장 최신 발표된 지난 6월 건강보험 DB연계 취업통계조사에 따르면 국민대 문과대학 취업률은 41%로, 14개 단과대 중 12위를 기록했다. 그에 반해 상경·공과 계열 단과대 중 자동차융합대는 79.2%(1위), 전자정보통신대는 71.4%(4위), 경영대는 58.2%(6위)로, 경영대와 문과대와의 취업률 격차는 17%p에 달했다.

대학평의원회는 보다 종합적인 기준으로 감축을 결정할 것을 대학에 요구했다. 하지만 국민대는 10일 현재까지 상정한 감축안의 수정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감축 물망에 오른 20개 학과는 평가에 따라 2014년 입학 정원 대비 4~10% 내외로 감축되며, 취업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인문 계열 학과의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종합 평가'에서도 인문학은 불리

입학정원의 120명(7%)을 줄이는 서울여대는 모든 학과를 1~3등급으로 그룹화해 2그룹은 10%, 3그룹은 20%의 정원을 감축한다. 1그룹은 교육부의 수도권 특성화사업 CK-2에 지원한 학과가 배정돼 정원이 유지되거나 증원된다. 그룹 배정은 취업률이 포함된 정량평가 60%와 발전 계획 등 정성평가 40%를 종합 평가해서 이뤄지며, 총 100점 중 10%가 취업률에 배정됐다.

지난 8월 공시된 대학알리미 통계를 분석한 결과 서울여대 문과대 평균 취업률은 34.4%로, 서울여대 단과대 5개 중 5위를 기록했다. 1위인 멀티미디어대(64.3%) 비교하면 약 30%p, 4위 자연과학대(44.1%)와 비교해도 10%p 가까이 차이가 난다.

문과대 소속 인문 계열은 사학과, 기독교학과 등 기초 학문 위주이기 때문에 취업률 평가에서 불리하다. 또 평가 기준 중 '정원 대비 복수·부전공 학생 비율'도 이중전공 쏠림이 있는 상경계열보다는 인문계열이 약세일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 서울여대 전략평가팀 관계자는 지난 5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특성화 사업과 관련해 학과별 역량을 파악하고자 평가는 교육부가 특성화 사업 평가에 사용한 동일한 지표를 사용했다"며 "(학과의) 그룹 배정은 고정된 것이 아닌 매년 평가를 통해 달라진다. 또 (평가로 인해) 몇몇 학과가 소외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어, 2015학년도 학과 평가는 다른 방식으로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소숫점으로 사업 선정의 당락이 결정되는 상황에서 대학들은 정원 감축을 통해 사업 신청에 나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소숫점으로 사업 선정의 당락이 결정되는 상황에서 대학들은 정원 감축을 통해 사업 신청에 나설 수밖에 없는 구조다.
ⓒ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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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까지 입학정원의 107명(4%)을 줄이겠다고 밝힌 숭실대는 학과별 감축 인원을 확정 지을 '상시 정원 조정 평가' 계획을 세워둔 바 있다. 조정 평가에서 인문사회계는 진학 및 취업률이 평가의 40%를 차지했다.

2014년 공시된 취업률에 따르면 인문대 평균 취업률은 39.3%로, 7개 단과대 중 6위를 기록했다. 1위인 IT대학과는 약 31%p 차이가 났다. 최근 3년치 평가를 합산해 감축 대상을 결정하는 조정 평가에서 인문대 계열 학과가 우선 감축 대상으로 선정됐지만, 감축은 현재 유보됐다.

숭실대 경영평가팀 관계자는 5일 "당시 조정 평가에서 학과의 아웃풋을 평가해야 하는데 지표가 달리 적절한 게 없어, 워낙 중요하게 여겨지는 취업률에 가중치를 부여했다"면서 "상시 조정 평가를 세워두긴 했지만, 평가로 감축을 시행하진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기초 학문 위기 부채질하는 교육부의 정책

서강대도 66명(4%)의 입학정원을 줄이기로 하면서, 국제인문학부(30명)와 사회과학부(7명), 지식융합학부의 국제한국학과(3명)를 감축하는 것에 대해 논의중이다. 인문 계열 학과들이 우선 감축 대상으로 선정된 셈이다. 이에 대해 국제인문학부는 페이스북에 게시한 성명서를 통해 "이번 구조조정은 학문의 다양성을 해치자는 것"이라며 "학문적 성과보다는 취업률 등 지표에 따른 결과"라고 밝혔다.

서강대 지식융합학부 학생회는 국제한국학과 감축과 관련 지난 8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서강대 지식융합학부 학생회는 국제한국학과 감축과 관련 지난 8월 성명서를 발표했다.
ⓒ 서강대 지식융합학부 학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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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서강대는 교육부의 수도권 특성화 사업 CK-2에 선정된 경영학과, 커뮤니케이션학과 등 학과 5개의 정원을 줄이지 않기로 했다. 이는 국민대와 서울여대도 동일하다. 선정된 학과들은 매년 수억 원의 지원을 받으면서 정원은 줄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교육부 특성화 사업에 신청서를 낸 대학들은 평가에서 가산점을 받기 위해 4% 이상의 감축안을 내놨다. 문제는 대학들이 감축을 하면서 취업률 등 정량 지표를 우선해 감축 대상을 결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특성화 사업뿐 아니라 대학 구조 개혁을 대비하는 대학의 모습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취업률 등 정량 지표에 따라 학과의 명운이 결정되고, 기초 학문인 인문 계열 학과들은 그러한 상황에서 차츰 지원 범주에서 밀려나고 있다. 결국, 정량 지표에서 평가를 비교적 수월하게 받는 실용 위주 학문들로 자원의 쏠림이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학교육연구소 임은희 연구원은 지난 5일 "정부 지원 사업에서 채택되지 않으면 지원을 받기가 어려운 구조라 대학 입장에선 정부 방침에 따라 입학 정원을 줄여야 한다"며 "인문계열은 기초 학문 위주임에도 감축 평가에서 취업률과 재학생 충원률 등 정량 지표에 따라 커다란 영향을 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취업률 중심의 평가 방안을 개선하고, 사양세인 기초 학문을 살리기 위한 정부 지원책이 병행되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태그:#인문학, #대학, #감축, #교육, #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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