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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가장자리 습기가 많은 곳에 피어나는 물봉선, 물봉선은 봉선화와 같이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라는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 물봉선 숲 가장자리 습기가 많은 곳에 피어나는 물봉선, 물봉선은 봉선화와 같이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라는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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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이 박힌 보랏빛 작은 꽃들이 초록이 강물에 보랏빛 쪽배를 띄운 듯 빛나고 있다. 아니, 아예 보랏빛 강물이다.

여름철 휴가지로 가면서 길가에서 만나던 노란 물결이 달맞이꽃의 물결이라면, 가을 초입이거나 추석명절 고향에서 만나는 보랏빛 물결은 물봉선이다. 숲 가장자리의 습지나 숲의 계곡가를 따라 피어나는 물봉선은 산이 낮으면 보랏빛이요, 조금 더 높으면 노란빛이요, 더 높으면 흰색의 물봉선을 피워낸다.

그 보랏빛 꽃을 만난 아침, 나는 마냥 꽃에 취해 있을 수는 없었다.

물봉선이 피어난 아침, 물봉선에 이슬이 동글동글 맺혀있다.
▲ 물봉선 물봉선이 피어난 아침, 물봉선에 이슬이 동글동글 맺혀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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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눈과 귀를 의심했으나, 사실이었다. 세월호 유족들의 단식투쟁을 비웃는 '일베'들의 폭식투쟁 소식을 전해 듣고, 몇몇 사진들과 동영상을 보면서 '저 죄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저러는가?'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점점 자라나 '인간이길 포기한 이들'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사람이라면 저럴 수가 없다.'

아무리 철부지 아이라도 본능적으로 해서는 될 일과 안될 일을 알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부끄러움을 모르는 시대가 된 것은, 이미 부끄러운 줄 모르는 이들 때문일 터이다.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시대는 병든 시대다.

물봉선을 찾은 손님, 이제 본격적인 가을이 시작되었다.
▲ 물봉선 물봉선을 찾은 손님, 이제 본격적인 가을이 시작되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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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우울한 시대의 그림자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이유는 기꺼이 고난을 감내하면서라도 옳은 긿을 가려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이 희망이고 동시에 절망인 것이다. 늘 시대의 희망의 빛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빛처럼 작았을 뿐이었고, 어두울수록 빛의 존재는 더욱더 강렬했으며, 기어이 꺼지지 않고 신새벽을 맞이했던 것이다.

시절이 하수상하니 모든 것이 심드렁하다. 출판업을 하는 후배의 넋두리가 떠올랐다.

"세월호 참사 이후 책이 거의 안 팔렸어요. 책을 읽을 심리적인 상태가 아닌 것이죠. 가을이 되면 좀 나을려나 모르겠어요. 이것도 세월호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건 맞는 말이죠. 그러나 세월호 유족들 때문은 아니지요. 경제사정이 안좋고 대형마트 때문에 재래시장 장사가 안되는 것을 가지고 세월호 유족 들먹이는 것과 같지요."

작은 꽃들이 옹기종기 모여 보랏빛 강물을 이루었다.
▲ 물봉선 작은 꽃들이 옹기종기 모여 보랏빛 강물을 이루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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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뒤가 구린 힘 있는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유족들의 요구를 묵살하고자 하고, 진상규명을 위한 일련의 노력들을 훼손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이것이 어느 정도 성공한 것일까?

점점 대담해진다. 일베뿐 아니라 어버이연합, 소위 보수단체들의 언행은 도를 넘었다. 이런 세상이라고 실망하지 않고 시절을 따라 꽃이 피어난다는 사실, 야속한 듯하면서도 '너라도 피어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힘들었겠니?'하며 고마워 한다.

깨순이 물봉선, 활짝 피어난 모습은 마치 함성을 지르는 듯도 하다.
▲ 물봉선 깨순이 물봉선, 활짝 피어난 모습은 마치 함성을 지르는 듯도 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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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추석이라 그런지 그리 풍성하지는 않다. '지랄만 풍년'인듯 하여 마음이 불편하다. 우리는 왜 이렇게 부끄러운 현실을 마주하고 살아가야 하는가?

세월호 참사와 같은 불행한 일들이 줄지어 우리를 겨냥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것들로부터 우리가 자유로울 수 있는 한 방편은 '세월호 진상규명과 이에 따른 책임자 처벌'이다. 이 고리를 풀지 못하면 우리는 줄지어 우리를 겨냥하고 있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며, 끊임없이 위협을 당하고, 우리의 삶 전체를 그저 운에 맡기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작은 꽃, 물봉선이 피어나 보랏빛 강물, 바다를 이뤘다. 그 작은 꽃 한 송이가 그리 될줄을 알았을까? 아주 작은 양심의 행동이 필요한 이유를 본다. 그 작은 이들이 모이고 모여 바다를 이루는 날, 그날을 꿈꾼다. 물봉선을 보면서.


태그:#물봉선, #일베, #세월호 참사, #폭식투쟁, #단식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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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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