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작 <노예 12년>으로 알려진 스티브 맥퀸 감독은 이 영화로 흑인 감독으로는 최초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며 대중과 평론단 모두로부터 인정받는 데 성공한다. 맥퀸 감독은 <노예 12년> 이전에도 <헝거(2008)>와 <셰임(2011)>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다. 세 작품은 각각 '굶주림'과 '섹스', '노예로 전락하는 신세'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의 삶을 그려낸다. '신념'과 '욕망', '평등과 자유'라는 각기 다른 무게감을 가진 단어들로 말이다.

그 중에서 <헝거>는 그의 데뷔작이면서 또한 문제작이라 불리며 화제를 일으킨 작품이다. 소재가 충격적이면서 동시에 많은 고찰을 불러낸 메시지가 굵직한 울림을 남겼기 때문이다.

영화 <헝거>는 '바비 샌즈(1954~1981, Bobby sands)'라는 남자의 실화를 다룬다. 그는 1981년 북아일랜드 메이즈 교도소에서 단식투쟁을 벌인다. 당시에는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이 영국군의 철수를 주장하며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바비 샌즈는 무기 소유가 발각돼 테러 혐의로 구속된다. 당시 총리였던 마가렛 대처는 IRA를 타깃으로 대대적인 단속을 지시하고, 그 결과 샌즈뿐만 아니라 많은 IRA 조직원들이 체포된다.

 영국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바비 샌즈의 실화를 다룬 영화 <헝거>의 한 장면. 그는 66일간의 단식투쟁 끝에 결국 사망했다.

영국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바비 샌즈의 실화를 다룬 영화 <헝거>의 한 장면. 그는 66일간의 단식투쟁 끝에 결국 사망했다. ⓒ 스티브 맥퀸


테러리스트 소탕을 전면에 내세운 대처 정부는 "정치범으로 인정해 달라"는 수감자들의 요구를 철저하게 무시한다. 그 대신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우도 않는 가혹행위가 뒤따랐다. 간수들은 죄수들을 구타하고, 고문을 비롯한 인권유린도 마다하지 않는다. 계속되는 인신공격과 폭력의 나날 속에서, 어느날 분홍색의 우스꽝스러운 죄수복이 지급되자 마침내 수감자들은 극도로 분노한다.

항의하는 차원에서 그들은 대변을 뭉쳐서 벽에 던지고, 죄수복을 찢어서 휘날린다. 복도로 소변을 흘려보내는가 하면, 먹던 음식을 교도소 벽에 투척하고 4년의 긴 시간 동안 '안 씻기' 운동을 벌인다. 정치범으로서의 대우를 원하던 이러한 시위에 교도관들은 가혹한 물고문으로 대응한다. 구타도 더 강해지고 강제로 세척을 시키는 등 탄압의 수위를 높인다.

그러자 바비 샌즈를 중심으로 한 IRA 죄수들은 최후의 방법을 선택한다. 바로 목숨을 건 단식투쟁이다. 그는 식음을 전폐하고 마지막 저항의 수단으로 단식을 결심한다. 면회를 온 신부에게 한 바비(마이클 패스벤더 분)의 대사는 자신의 굳은 신념을 드러낸다.

"할 일이 없어서 목숨을 거는 것이 아닙니다. 옳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66일의 단식, 결국 사망한 바비 샌즈

 영화 <헝거>의 한 장면. 바비 샌즈 역을 맡은 배우 마이클 패스벤더는 실제로 극한의 감량을 하며 사실적인 연기를 보였다.

영화 <헝거>의 한 장면. 바비 샌즈 역을 맡은 배우 마이클 패스벤더는 실제로 극한의 감량을 하며 사실적인 연기를 보였다. ⓒ 스티브 맥퀸


영화 속의 주인공이자 실존인물이었던 바비 샌즈는 결국 66일간의 단식투쟁 끝에 사망한다. 매일 지급되는 따끈한 음식을 마다하고, 의료진의 권고였던 수액 투여마저도 거부한 결과였다. 영화는 이 부분에 있어서 효과음이나 배경음악, 대사마저도 가급적 줄이면서 사실적인 묘사를 보여준다.

카메라의 현란한 움직임도 없다. 그저 죄수의 피멍이 든 사지와 감옥 안의 구더기들, 쇠약해진 죄수들을 차분하게 비출 따름이다. 느릿한 움직임으로 스크린이 감옥을 보여주는 동안, 바비 샌즈는 천천히 말라간다. 아무런 영양이 공급되지 않아 장기에 손상을 입고, 혈변을 보고, 누워 있는 동안 침대에 닿는 부위가 욕창으로 짓무르는 고통에도 바비 샌즈는 자신의 시위를 멈추지 않는다.

<헝거>는 바비 샌즈를 영웅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앙상하게 말라가면서 뼈마디가 드러나는 장면, 침대에 힘없이 누워서 멍하게 천장을 바라보는 부분에서는 '과연 이게 최선일까'하는 의문마저도 든다. 마지막 즈음에 영화는 자막으로 그를 포함한 여러 인물의 죽음으로 교도소 수감자의 처우가 '다소' 나아졌다고 설명한다. 바비 샌즈를 비롯해 단식으로 사망한 7명의 목숨을 희생한 대가라고 하기에는 허망할 정도의 변화였다. 물론 그나마도 이런 요구가 없었다면 더 미루어졌을 발전이지만 말이다.

맥퀸 감독은 사안에 대한 가치판단을 자제하고 단식투쟁의 현상적인 부분에 더욱 골몰한다. 바비 샌즈의 단식투쟁이라는 사건을 해석하는 영화의 자세는 열정적이기보다는 다분히 관조적이다. 인위적인 요소의 삽입을 배제한 대신 디테일한 묘사와 사실성을 부각한다.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마저도 고통스러울 정도로, <헝거>는 바비 샌즈의 단식투쟁을 실감나면서도 묵묵히 담아낸다. 정치적인 측면에 있어서 한 쪽을 전적으로 옹호하거나 비판하지도 않으며, 단지 신념이라는 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어디까지 감내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려는 듯하다.

목숨을 건 인물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

쓰러진 아빠 걱정에 달려 온 유민이 동생 유나 세월호침몰사고 단원고 희생자 고 김유민양의 동생이 22일 오후 특별법제정 촉구 단식 40일째 건강 악화로 병원에 후송 된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의 병실을 찾아 누워 있는 김씨의 손을 잡아 주고 있다.

세월호침몰사고 단원고 희생자 고 김유민양의 동생이 지난 8월 22일 오후 특별법제정 촉구 단식 40일째 건강 악화로 병원에 후송 된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의 병실을 찾아 누워 있는 김씨의 손을 잡아 주고 있다. ⓒ 이희훈


최근 한국에서도 긴 단식투쟁을 한 인물이 있다. 바로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씨의 사례다. 그는 병원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40여일간 단식했으며, 이를 토대로 '세월호 참사의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사고로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동안 국가는 왜 무기력했는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밝히자는 것이었다.

김영오씨가 단식을 멈추기는 했지만, 여전히 광화문 농성장에는 단식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알아내고 사고의 재발을 막자는 것은 그저 한 사람의 뜻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바람이라는 방증일 것이다. 이에 사회 각계의 인사들이 단식농성에 동참하며 참여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보수언론과 여당의 인신공격은 도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한 개인에 대한 뒷조사와 흠집내기, 노조 가입을 근거로 불순세력으로 몰아가는 작태가 그러하다. 유가족들은 사고가 일어난 지 한달 지난 뒤인 5월에 대통령이 직접 발언한 특별법 관련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수십억을 보상으로 갈취하려는 유가족의 떼쓰기라며 근거없는 흑색선전도 이어졌다.

김영오씨의 단식투쟁에 대해서도 비난이 쏟아졌다. '실제로는 굶지 않는다'는 뜬소문이 퍼지기도 했고, '차라리 죽으라'는 막말이 나오기도 했다.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카톡으로 유포된 메시지는 '이제는 세월호 사건을 잊자'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사안에 대한 피로도가 커진 만큼, 이런 유언비어를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사람도 꽤 생겨났다. 선거가 끝나고 교황도 돌아갔으니 보수단체와 새누리당도 이런 흐름에 가세하는 듯했다. 한 사람이 목숨을 걸고 싸웠으나 특별법 제정은 여전히 표류하고 있다.

사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는 발생한 사건과 더불어 사안을 대하는 구성원들의 태도일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덧 140일을 훌쩍 넘긴 오늘날,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의 반응이 어떤지를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가족의 죽음에 진상을 알려달라는 시위를 그저 교통 혼잡의 원인으로 받아들이고, 고통스러운 단식투쟁을 앞에 두고 '피자 파티'를 벌이는 행동은 과연 어떤 의도인지 묻고 싶다.

무관심에 기반해 타인의 고통을 무시하고, 목숨을 건 인물을 조롱하며 '반대를 위한 반대'에 불과한 행위가 이어지는 사회에서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까? 공감능력이 부재한 상태로, 그저 골치 아프다는 이유로 사건과 원인해결을 덮고 넘어가자는 자세야말로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일 것이다. 단식으로 진실을 요구하는 사람 앞에서 폭식을 하겠다는 사람들에게,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으로 메말라가는 사람을 비하하며 진정성을 묻는 세력에게 되물어보자. 세월호 유가족을 고립시키고 비웃는 보수진영의 작태야말로 한국을 야윈 몰골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헝거 스티브 맥퀸 감독 단식 투쟁 바비 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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