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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만에 금융권이 들고 일어섰다. 지난 3일 서울 목동종합운동장에서 총파업을 결행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은 '관치금융 철폐'를 내세웠다. 2000년 7월 11일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단행된 총파업 때도 금융노동자들은 '관치금융 철폐'를 외쳤다. 강산도 변한다는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대한민국 금융권은 여전히 '관치금융'에 몸살을 앓고 있다. 금융권은 정부의 금융통제를 일컫는 '관치금융'에 왜 이토록 치를 떠는 것일까.

 "우리는 더 이상 관치금융으로 금융산업이 망가지는 것을 지켜볼 수 없다...(중략)...정부는 그동안 공공기관 뿐만아니라 민간은행에까지 전문성이 결여된 낙하산 인사로 채워서 금융기관을 입맛대로 주물러왔다. 낙하산 금융기관장들은 시스템의 안전성과 조직의 장기적 발전보다는 정부의 보여주기식 각종 정책에 동원되어 잠재적 부실을 키웠다.(금융노조 9.3 총파업 선언문 중)"

관치금융의 대표적인 꼬리표는 '낙하산 인사'다. 최근 금융당국의 제재로 행장이 물러나고, 금융지주 회장은 최종 징계양형 확정을 기다리고 있는 KB가 낙하산 인사의 폐해를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직원들로부터 명분을 얻지 못한 '낙하산 인사'는 내부통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삐걱되는 내부통제 시스템은 KB를 금융권 사건·사고의 주인공으로 등극시켰다. KB라는 금융권 최대 조직을 사실상 양분해 이끌고 있는 지주 회장과 은행장이 서로 다른 끈을 통해 내려오다보니 화합보다는 갈등이, 장기적인 성과보다는 단기 실적주의가 우선되고 있다. 조직보다는 개인의 안위가 우선되는 분위기인 셈이다. 결국 '리딩뱅크'라는 KB국민은행은 최근 영업이익 규모가 하위권으로 떨어지는 수모를 당했다.

윤창현 한국금융연구원 원장은 KB사태에 대해 "외부에서 들어온 경영진끼리는 작은 문제가 생겨도 더 크게 싸울 수 있다"며 "가뜩이나 지주회사 내 은행의 사업비중이 80∼90%나 차지하고 있어 지주회사 회장과 은행장 간의 권력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정부 정책에 거수기 역할을 강요받는 금융권 현실도 관치금융의 주요한 단면이다. 금융위원회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기술금융 활성화 방안'이 '관치금융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금융당국은 기술신용평가 대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금융회사는 불이익을 감내해야 한다는 신호를 직·간접적으로 보내고 있다. 수익성 악화로 인해 건전성 관리가 시급한 금융회사들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기술금융 분위기에 동참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각 시중은행들에게 기술금융 실적을 할당할 것이라는 소문이 금융권에 팽배하다. 

시장논리를 무시한 과도한 금융당국의 개입은 시장 질서 교란은 물론 국가경제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채권금융기관 중심의 기업구조조정은 금융당국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른바 '막후(幕後) 관치금융'인 셈이다. 최근 STX, 동부 그룹 사례에서 보듯이 정부의 개입으로 경쟁력을 상실한 부실 기업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정리되지 못하면서 일개 회사 차원의 문제를 넘어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는 최근 10여년 동안에도 수차례 경제위기와 이에 따른 부실기업 처리 문제를 경험했지만, 아직도 파산법원이나 시장기구에 의한 구조조정 메커니즘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다. 그 결과 워크아웃 등의 방식으로 채권금융기관이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중략)...말이 자율협정이지 감독당국의 암묵적 개입을 정당화하는 통로가 되었다는 것이 공지의 사실이다. 이래서는 관치금융의 폐해를 근절할 수 없으며, 구조조정 과정에 대한 이해관계자들의 신뢰를 확보할 수 없거, 종국에는 국민경제 전체의 효율성과 안정성도 담보할 수 없다.(김상조 교수의 '종횡무진 한국경제' 중)"

관치금융의 해결방안은 무엇일까. '낙하산 인사 근절'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관치금융의 뿌리를 뽑는 본질적인 처방전은 '법치금융'이다. 낙하산 인사, 정부정책 강요, 시장질서 훼손 등은 관치금융으로 발생된 현상이라는 얘기다. 이런 현상이 가능케된 원인은 금융당국의 과도한 재량권에 있다는 것이다. 금융회사에 대한 검사권·제재권이 법과 제도로 통제되지 못하는 상황이 관치금융의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검찰 권력의 근원이 기소권과 수사권에서 나오는 것처럼, 관치금융이 작동되는 권력의 권원은 금융기관 및 임원에 대한 검사권과 제재권입니다...(중략)...정부가 주식을 '단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KB금융지주회사 회장과 하나은행 그리고 농협에 대해서 금융감독 당국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그리고 누구든지 '주저앉힐 수도' 있고, 동시에 마음만 먹으면 본인들이 원하는 사람으로 '낙하산 인사'를 내려 보낼 수 있는 힘의 근원 역시도 과도한 재량권 남용이 법·제도적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국회 관치금융 토론회,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발언 중)"


태그:#관치금융, #금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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