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성(35·205㎝)은 원주 동부의 심장이자 구단 역사상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다. 김주성은 특급 토종 빅맨이 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준 사례다. 그가 입단하기 전까지 동부는 우승을 노리기에는 힘든 전력이었다. 때문에 항상 6강 혹은 4강에서 고배를 마시기 일쑤였는데 그의 입단 이후 동부는 늘 우승후보 혹은 다크호스로 평가되고 있다.

서장훈이 화려한 '슈팅형 센터'라면 김주성은 전형적인 '블루워커형 빅맨'이다. 아마시절과 달리 프로에 와서는 주로 파워포워드로 뛰고 있지만 골밑을 탄탄하게 지켜주고 궂은일을 잘한다는 점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때문에 김주성의 가치는 서장훈과 달리 기록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 더 크다.

김주성은 '런닝 빅맨'이라 불릴 정도로 기동력이 매우 뛰어난 선수다. 205cm의 신장으로 코트를 뛰어다니는 탓에 상대 입장에서는 매우 버거운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자신이 직접 골을 넣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도 언제나 이타적인 플레이로 팀 동료들에게 찬스를 제공한다. 따라서 김주성은 외국인선수 조합시 파워형-득점형-수비형 등 어떤 스타일과도 잘 융화가 된다. 이렇듯 전력에 절대적인 선수였던 만큼 동부 용병 역사는 김주성 등장 전후로 확연하게 갈리는 모습이다.

김주성 등장 전 / 골밑-득점, 모두 외국인선수에게 의존

농구대잔치 시절 산업은행 선수들을 주축으로 만든 동부(당시 나래 블루버드)는 정인교 정도를 제외하고는 널리 알려진 스타도 없었거니와 선수층도 얇았던지라 프로농구 원년 최약체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익히 잘 알려져 있다시피 당시 동부는 챔피언결정전까지 진출하는 기염을 토하며 준우승이라는 깜짝 성적을 얻었다.

여기에는 전 선수가 하나가 되어 똘똘 뭉친 조직력의 영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전력의 반절 이상이라는 외국인선수의 힘이 컸다. 칼레이 해리스-제이슨 윌리포드가 이끌던 나래의 화력은 타 팀의 경계대상 1호였고 정인교는 이들에게 수비가 몰렸을 때 적절하게 빈 공간을 찾아가 오픈슛을 꽂아 넣었다.

해리스-윌리포드 콤비의 활약은 대단했다. 다소 독단적이다는 평가를 받기는 했지만 해리스는 득점원이 많지 않은 동부에서 전천후로 득점을 이끌며 상대 수비를 내외곽에서 괴롭혔다. 윌리포드는 묵묵하게 골밑을 지키는 것은 물론 외곽슛까지 쏘아대며 전천후 빅맨으로서의 위상을 과시했다. 결국 해리스는 득점왕, 윌리포드는 최우수 외국인선수상을 수상했으며 이들을 지원했던 정인교 역시 3점슛 타이틀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1998년 동부는 간판스타인 정인교를 허재와 바꾸는 대형 트레이드를 성사시키며 대대적인 팀 개편작업에 들어간다. 신인 포인트가드 신기성이 이때 들어왔고 양경민과 김승기가 주희정-강병수와 트레이드 되어 팀으로 합류한 때이기도 하다. 외국인선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간판 용병 윌리포드를 데릭 존슨(43·205.4cm)과 바꿨고 주득점원으로 토니 해리스(2007년 사망·188.7cm)를 새로이 영입했다.

데릭 존슨은 버지니아 유니온대를 졸업하고 아르헨티나, 폴란드, 브라질리그 등을 두루 거친 베테랑 용병센터다. 205.4cm, 122kg의 거대한 체구에 틈만 나면 펑펑 찍어대는 강력한 슬램덩크는 파워형 센터로서의 위용을 톡톡히 과시했다. 힘을 바탕으로 한 몸싸움에서는 어지간해서는 밀리지 않았지만 순발력이나 세세한 팀플레이 등에서는 낙제점에 가까웠다. 그로 인한 실책도 잦았다.

당시 존슨의 플레이를 대표하는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다. 동료의 아울렛 패스를 받은 존슨은 노마크 상태에서 레이업슛을 구사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공은 링을 맞고 퉁겨져 버렸고 화들짝 놀란 존슨은 다시 공을 잡아 골대로 던졌다. 그러나 공은 다시 한번 림을 빗나가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만다.

이때 상대편 선수들이 득달같이 골밑으로 2명이나 들어왔다. 이에 존슨은 오기가 치솟았는지 수비수들을 몸으로 밀어내고 리바운드를 재차 낚아채더니 그대로 직선 점프 후 강력한 투핸드 덩크를 림이 부서져라 작렬시켰다. 이도 저도 안 되니까 가장 자신 있는 덩크로 마지막 마무리를 해버린 것이었다. 당시 동부를 응원하는 팬들 입장에서는 참으로 난감한 순간이었다.

전반기에는 득점과 리바운드에서 그럭저럭한 성적을 내며 넘치는 파워를 맘껏 과시했으나 후반기 들어 체력이 떨어지면서 득점-리바운드의 수치가 현격하게 떨어졌다. 이에 존슨은 생존본능(?)이 발동했는지 안에서 바깥으로 빼주는 패스의 빈도를 높히며 어시스트에 열중했다. 단순한 골밑 파워만으로는 10개 구단 용병센터 중 최고수준이었다.

동부 입장에서는 크게 나쁘지 않은 수준의 용병이었으나 시즌이 거듭될수록 성격문제가 부각되며 재계약에는 실패한다. 시즌 초반에는 그다지 두드러져 보이지 않았으나 경기가 거듭될수록 다혈질의 성격이 드러나 보이더니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팀에 치명타를 주는 경우가 많이 생겼다. 자주 어필하고 짜증내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싶으면 경기 중 갑자기 코트를 나가버리는 등 돌출행동을 일삼으며 팀을 곤란하게 했다.

원년 득점왕 칼레이 해리스 이후 2년 만에 뽑은 또 한 명의 해리스(?) 토니 해리스는 전형적인 슈팅가드형 득점원이었다. 영국의 맨체스터를 비롯 중국리그 등에서 뛴 경험이 있는지라 동양농구에 익숙했고 그에 부응하는 수준급 플레이를 과시했다.

당시의 단신 용병들이 그렇듯 해리스 역시 뛰어난 개인기에 스피드, 탄력 등을 고루 갖춘 선수였다.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는 드라이브인은 물론이거니와 어지간한 토종슈터 뺨치는 외곽슛 능력까지 보유, 정규시즌에서 동부 공격의 첨병으로 맹활약했다.

1999년 1월 20일에 있었던 SK 나이츠전은 해리스의 명경기 중 하나다. 해리스는 당시 '간판스타' 허재(5득점, 2어시스트)가 부상으로 6분밖에 뛰지 못하고 물러난 상황에서 25득점, 6리바운드, 9어시스트, 6스틸의 성적을 거두며 공수에서 동부의 경기를 이끌었다. 이런 해리스의 활약에 힘입어 동부는 SK를 101-78로 여유 있게 물리쳤다.

이 경기에서 해리스는 1쿼터에서만 4개의 덩크슛을 차례로 성공시키며 쾌조의 컨디션을 뽐냈다. 거기에 2쿼터 종료 1초 전 보여준 22m 버저비터는 스포츠신문의 농구란을 그의 기사로 꽉 채우기에 부족함이 없는 화제거리를 제공해주었다.

그러나 해리스 역시 상당한 다혈질의 성격으로 시즌 내내 심판 판정에 불만을 표시, 동부의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을 많이 힘들게 했다. 이런 선수가 한 명만 있어도 감당하기 힘들거늘 존슨에 해리스까지 성격을 과시하자 한창 상승세를 타며 경기를 리드해갈 때도 어이없게 역전패하는 경우까지 종종 벌어지고는 했다.

플레잉코치로 승격한 허재가 두 용병을 다독이며 팀을 이끌어나갔으나 나중에는 지쳤는지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모습까지 종종 비추어졌다. 더불어 존슨-해리스는 시즌 초중반의 활약상을 후반기까지 꾸준하게 보여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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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원주 동부 역대 외국인선수들>

칼레이 해리스, 제이슨 윌리포드, 윌리엄 헤이즈, 데릭 존슨, 토니 해리스, 워렌 로즈그린, 제런 콥, 브라이언 리스, 레지 타운젠드, 아미누 팀버레이크, 모리스 조던, 존 와센버그, 디온 브라운, 안드레 페리, 해리 리브즈, 조나단 비어봄, 찰스 맨트, 해리 리브즈 대체, 패트릭 은공바, 데이비드 잭슨, 리온 데릭스, 얼 아이크, 앤트완 홀, 자밀 왓킨스, 처드니 그레이, 아비 스토리, 마크 데이비스, 로베르토 버거슨, 앨버트 화이트, 레지 오코사, 로저 워싱턴, 윌리 팔리, 더글러스 렌, 카를로스 딕슨, 크리스 다니엘스, 웬델 화이트, 앤서니 윌킨스, 저스틴 앨런, 마퀸 챈들러, 개리 윌킨슨, 조나단 존스, 로드 벤슨, 빅터 토마스, 브랜든 보우만, 줄리안 센슬리, 저마레오 데이비슨, 리처드 로비, 허버트 힐, 크리스 모스, 키스 렌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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