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이 되면 각 방송에서는 거의 킬링타임용으로 여러 편의 영화를 방영한다. 때에 따라서는 극장에 걸린 지 얼마 안 되는 흥행영화를 보여주는 쾌거(?)가 종종 있지만 대부분 재탕, 삼탕인 경우가 많다.

그중 40대 중반 이후 중장년세대에게 <벤허>, <십계> 같은 기독교 스펙터클 영화가 단골 중의 단골이었다. 이 세대 중에서 개인 취향이든 아니든 학창시절 의무 관람에서부터 명절용 방영 등을 통해 많게는 십수 번까지 봤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기독교 스펙터클 영화들의 경우 종교성이 강함에도 명절용으로 지속해서 상영된 이유는 가족들이 함께 볼 수 있는 교훈적인 면과 당시에는 어떤 영화에서도 보기 힘든 스케일과 서사구조가 흥미를 끈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흥미 있는 것은 고전적인 기독교스펙타클 영화들이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초반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 당시 대표작들은 폴란드 작가 센키에비치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던 <쿼바디스>(1951년), 최초의 시네마스코프 영화인 <성의>(1953년), 할리우드 명감독 계보를 잇는 세실 B. 데밀의 <십계>(1956년)와 윌리엄 와일러의 <벤허>(1959년), 니콜라스 레리의 <왕중왕>(1961년)이다.

그중에서도 <벤허>는 스케일이나 영화적 서사구조와 예술성에 거의 완벽에 가까웠기 때문에 아카데미 역사상 최다인 11개 부문을 수상했고, 흥행에서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전차 경주 장면은 60년이 지난 지금도 CG로는 범접할 수 없는 생생함과 박진감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많은 영화에서 패러디되고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스타워즈 에피소드 1편 '보이지 않는 위험>에서 나오는 포드레이서 경주다.

기독교 스펙터클 영화가 맹위 떨치던 시대는?

영화 <벤허>와 <노아> 포스터 1950년대 대표적 기독교 스펙타클 영화인 <벤허>와 대런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이 연출하고  러셀 크로우, 안소니 홉킨스, 제니퍼 코넬리 등이 출연한 <노아>의 포스터(2014년)

▲ 영화 <벤허>와 <노아> 포스터 1950년대 대표적 기독교 스펙타클 영화인 <벤허>와 대런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이 연출하고 러셀 크로우, 안소니 홉킨스, 제니퍼 코넬리 등이 출연한 <노아>의 포스터(2014년) ⓒ 영화사


이렇듯 기독교 스펙터클 영화가 맹위를 떨치던 1950년대에서 1960년대 초반은 공교롭게도 냉전이 본격화되던 시기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구권에 철의 장막이 이후 1950년대부터 미국과 소련 양측 동맹국 사이에서는 갈등, 긴장, 경쟁 상태가 이어진 대립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당시에 냉전 주축 국가의 군대가 직접 서로 충돌한 적은 없었으나, 두 세력은 군사 동맹, 재래식 군대의 전략적 배치, 핵무기, 군비 경쟁, 첩보전, 대리전(proxy war), 선전, 그리고 우주 진출과 같은 기술 개발 경쟁의 양상을 보이며 서로 대립했다.

이 당시 소련은 자국이 점령한 유럽 국가 중 어떤 지역은 일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병합시키고 그 밖의 지역은 위성 국가로 삼아 공산권을 형성하였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 나라는 나중에 바르샤바 조약으로 뭉치게 된다.

한편 미국과 여러 서유럽 국가들은 공산주의를 봉쇄하는 방어 정책을 펴 결국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를 만들었다. 본격적인 위기의 시작은 소련의 베를린 봉쇄와 2차 대전 승전국이자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던 장개석 정부가 모택동에게 밀려나 대만으로 쫓겨나면서부터였다.

당시 냉전 중 일어난 국제적 위기로는 베를린 봉쇄(1948~1949), 국공 내전(1949), 한국 전쟁(1950~1953), 1961년 베를린 위기, 쿠바 미사일 위기(1962), 베트남 전쟁(1959~1975) 등이었다. 냉전은 미국사회 내부에도 영향을 끼쳤는데, 그 대표적 흐름이 매카시즘이었다. 매카시즘은 당시 상원의원이었던 조지프 매카시로부터 연원하는데, 그는 1950년에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미국에서 활동하는 공산주의자들의 명단을 가지고 있다"라는 발언으로 관심을 모으고 이는 전국적인 이슈가 됐다.

이에 민주당은 자신들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이 주장에 동참했다. 이 때문에 미국 전역에서 반공주의가 득세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 혐의로 체포되거나 심문받았으며 심지어 할리우드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 과정에서 증언을 거부하거나 전력이 의심되는 영화계의 수많은 인력들과 스타 배우들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거나 해외로 추방되는 시련을 겪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영영 미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찰리 채플린 경우 미 의회에 설치된 반미활동조사위원회에 공산주의자라는 혐의로 소환되어 심문을 받고 영화홍보를 위해 영국으로 나갔다가 1972년 아카데미가 바치는 평생공로상을 수상하기전까지 귀국하지 못했다.

매카시즘이 득세하는 가운데 기독교계도 빌리 그래함 같은 부흥사들이 맹활약하면서 교계도 반공주의의 최선봉에 섰고, 미국 정부는 이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1952년부터 달러에 "In God We Trust"라는 표어를 넣었다. 당시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었던 트루먼은 신앙심이 깊지 않았지만 냉전을 위해서는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의회 역시 같은 해 '전국 기도의 날'을 정해 대통령에게 이를 시행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매카시즘은 CBS의 전설적인 에드워드 머로 기자가 매카시의 주장은 거짓이라고 주장하고, 이후 열린 청문회에서도 제대로 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 메카시의 영향력을 상실했지만, 할리우드에 남긴 상처는 깊고도 컸다.

당시 동료들을 공산주의자로 고발했던 엘리아 카잔 감독(<에덴의 동쪽>, <워터프론트> 등 연출)이 1999년 아카데미 평생공로상을 받으러 무대에 올랐을 때 일부 참석자들은 기립은 고사하고 그냥 의자에 눌러앉아 박수조차 치지 않았고, 카잔의 밀고로 인생을 망친 영화인과 후손들은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카잔만큼은 용서할 수 없다"고 분노할 정도였다.

매카시즘에 의한 난관 극복 위해 영화사들이 찾아낸 묘수

매카시즘의 한창일 때 당시 문화계에서는 검열이 대폭 강화되었고 다룰 수 있는 소재도 극히 제한되었다. 그 결과 같은 시기에 활성화되기 시작한 TV와 겹쳐 고전을 겪고 있었던 영화계는 걷잡을 수 없는 관객 감소로 많은 영화사들이 파산했다.

이에 각 영화사들은 어떻게든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묘수를 찾아야만 했는데, 그래서 찾아낸 것이 1920년대에 이미 흥행에 성공했던 <십계>(1923), <벤허>(1926), <왕중왕>(1927) 등의 '성서 스펙터클' 장르였다. 1920년대 기독교 스텍터클 영화가 흥행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독교근본주의와도 관계가 있다.

기독교 근본주의는 다윈의 진화론, 자유주의 신학의 대두, 이민의 증가, 사회주의의 득세 등에 반발한 사조로 19세기 말 등장해 1920년대 말까지 득세한 바 있다. 19세기 말에서 제1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당시의 종말적인 상황에 대한 나름의 종교적 해석이었던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1920년대 기독교 스펙터클 영화는 신앙부흥운동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950년대 성서영화들은 오로지 매카시즘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성서에 근거한다는 이유로 상당히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장면들이 들어가기도 했다. 아마도 그에 현혹된 관객들도 많았을 것이다. 할리우드식 기독교 스펙터클 영화는 매카시즘의 망령이 완전히 사라진 1960년대 초에 마침표를 찍게 됐다.

이후 성서영화로 주목받은 것이 이탈리아의 좌파감독인 파졸리니 <마태복음>(1964)이다. 사회주의자였던 그는 교황청을 비롯한 가톨릭교회를 비판했던 사람으로 복음서에 가장 근접한 영화를 만들어 기독교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는 네오리얼리즘의 후예답게 예수를 비롯한 제자들이 블루 칼라 출신인 것을 감안해 출연자들의 대부분을 일반 노동자나 농부 중에서 골랐고, 성모 마리아 역할도 이마에 주름으로 가득한 자신의 어머니를 썼다.

파졸리니의 마태복음은 할리우드 영화들이 흥행을 위해 캐릭터를 극화하는데 대부분 할애하는 것과 달리 복음서 내용 그대로 거의 다큐에 가깝게 연출해 내면서 보수적인 관객까지 제대로 된 성서영화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파졸리니가 교회 당국에 고발당할 정도로 반교회적 인물의 동성애자였던 것을 감안하면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 2005년 국내에서 상영됐을 때 대형교회에서도 관람운동이 벌어질 정도였으니 파졸리니의 마태복음이 주는 메시지가 어느 정도 강렬했는지 알 수 있다.

최근의 기독교 영화 르네상스, 왜?

 영화 <선 오브 갓> 한 장면.

영화 <선 오브 갓> 한 장면. ⓒ <선 오브 갓>


그렇다면 <선 오브 갓>, <노아>, <엑서더스> 같은 영화들로 일기 시작한 최근의 기독교 영화 르네상스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은 명확한 결론은 내기 어렵지만 2004년 멜 깁슨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미국에서만 3억7000만 달러, 판권까지 포함하면 전 세계에 걸쳐 9억 달러를 벌어들일 정도로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소재 고갈로 빨간 불이 켜진 할리우드가 새로운 흥행 소재로 삼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최근 한국영화까지 리메이크할 정도이니 이미 검증됐던 소재를 놓칠 리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요소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현실이 더욱 팍팍해지자 종교를 통해 위안받고자 하는 욕구와 함께 점증하는 이슬람주의에 대한 반발도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여하튼 앞서 거론한 영화 외에도 브래드 피트 주연의 <본디오 빌라도>,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하고 크리스찬 베일이 모세를 연기하는 <엑서더스: 신과 왕>이 올 연말과 내년 초에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카인과 아벨>과 <마리아> 등이 기획되거나 촬영 중이다.

이렇듯 명절 때마다 우리를 찾아왔던 1950년대 <벤허>나 <십계> 같은 영화에서부터 최근 극장가에서 상영됐던 <노아>나 <선 오브 갓> 같은 기독교를 배경하는 영화들은 종교적 목적보다는 철저히 할리우드의 상업 전략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한편으로 할리우드 영화제작자들의 대부분이 유대 자본이기 때문에 '마태복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성서를 왜곡했다는 비판에 시달리기도 한다.

<노아>를 만든 대런 아로노프스키도 유대인인데 그는 <허핑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노아>를 기독교인의 성경이 아닌 유대인의 경전주석서 '미드라쉬'를 참고해서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의 말대로라면 왜곡이라기보다는 기독교인들의 기대와는 달랐던 것이다. 말 그대로 영화는 영화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스타워즈> 시리즈나 <조스>, <타이타닉>, <아바타> 같은 외화에서 <쉬리>, <괴물>, <실미도> 같은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출현한 이후 TV에서 거의 사라진 1950년대 기독교 스펙터클 영화를 추석이나 설에 방영된다면 앞서 서술한 대로 시대 상황을 조명하면서 보기 바란다. 특히 종교성 짙은 영화이기는 하지만 <글래디에이터> 같은 단순한 복수극보다 더 원숙한 내용을 담은 시대극으로서 암울한 시대를 돌파하며 걸작으로 남은 <벤허>는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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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모.함석헌 선생을 기리는 씨알재단에서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씨알정신을 선양하고 시민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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