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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2월 18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개인정보 대량유출 관련 실태조사 및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 참석한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맨 왼쪽)과 신제윤 금융위원장, 임종룡 NH농협금융지주 회장.
 지난 2월 18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개인정보 대량유출 관련 실태조사 및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 참석한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맨 왼쪽)과 신제윤 금융위원장, 임종룡 NH농협금융지주 회장.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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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록 회장, 스스로 나갈 만도 한데… 쉽게 나갈 사람 같지 않다."

5일 금융당국 한 관계자가 내뱉은 말이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4일 제재심의위원회의 경징계 결정을 뒤집고 임영록 KB금융지주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에게 '문책 경고'를 결정했다. 국내 최대 금융그룹인 KB금융의 두 수장을 한꺼번에 중징계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문책경고를 받은 사람은 2~3년간 금융기관 재취업이 금지된다. 사실상 두 사람에게 'KB 사태'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고 권고한 셈이다.

두 사람 모두 중징계를 받았지만 징계 사유에 대한 온도차는 있었다. 이 행장에게는 주전산기 전환사업에 대한 감독 의무 소홀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반면 임 회장에게는 감독 의무 소홀뿐만 아니라 새로운 주전산시스템으로 전환 시 발생할 수 있는 심각한 시스템 리스크를 은폐해 이사회에 허위 보고한 책임까지 물었다.

최수현 원장은 임 회장에 대해 '중대한 위법 행위'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또한 임 회장이 부당하게 인사에 개입했다고도 지적했다. 금감원이 내놓은 징계 사유를 보면 이 행장보다는 임 회장의 잘못이 더 무거워보였다.

이를 두고 기자들은 "이 행장은 보고만 받았고 금감원에 자진 신고한 점 등 감경 사유가 있는데도 왜 임 회장과 같은 중징계인가"라고 묻기도 했다. 이에 박세춘 금감원 부원장보는 "행장의 책임이 회장보다 가볍다 하더라도 낮지는 않기 때문"이라는 모호한 대답만을 내놓았다.

당국 결정 존중한다는 이건호... 당국에 섭섭하다는 임영록

그러나 징계 발표 후 사의를 표명한 것은 임 회장이 아닌 이 행장이었다. 금감원에서 중징계가 결정되자 1시간이 채 안 돼 자진 사의를 표명한 것. 사실 그의 사의는 기자들 사이에서 크게 놀랍지 않았다. 그는 지난 1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자리에 연연하지 않음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 행장은 이날 "일부 임원들이 교체 예정인 유닉스 시스템의 안전성 검사에서 문제가 있는데도 이를 왜곡해 허위보고서를 작성한 점은 중대한 범죄"라며 "행장으로서 절대 넘어갈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금감원의 징계 수위 결정에 대해서도 "감독당국에서 최종 결론이 나면 그 제재 수위에 따라 조직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결정하겠다"고 말해 자진 사퇴 가능성을 내비쳤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이 1시간 넘도록 계속되자 직원이 질문을 그만 받겠다며 제지했다. 그러나 이 행장은 "기자들의 질문을 끊지 말라"며 2시간동안 기자들의 질문에 끝까지 대답하고 자리를 떠났다. 또한 금감원의 중징계가 확정되자 "금융당국에서 올바른 판단을 했을 것"이라며 깔끔하게 인정한 뒤 바로 사퇴한 모습에선 진정성이 느껴졌다.

오히려 임 회장은 금감원의 중징계 결정과 이 행장에 불만을 쏟아내며 사퇴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자회사인 은행장은 책임을 지겠다는데도 자신은 억울하다는 얘기만 반복했다.

임 회장은 5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일부 매체 기자들만 따로 불러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최 원장 결정은) 정서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라 금감원의 중징계 결정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또한 "KB금융그룹 전체가 범죄적 혐의가 있는 집단이라는 취급을 받지 않도록 그룹 수장의 입장에서 명예 회복을 하기 위해 절차에 따라 명명백백하게 소명하겠다"며 불복 의사를 분명히 했다.

자리를 떠난 이 행장에 대해서도 "조직을 흔들고 떠났다"며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그는 "그룹 수장 입장에서 은행장이 내부 직원을 고발하고 조직을 흔든 다음에 떠났다, 안타깝다"면서 "조직원을 추스르고 직원 마음을 안정시키는 등 경영 정상화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건호 국민은행장이 지난 7월 3일 오후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제재심의위원회에 출석하기에 앞서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건호 국민은행장이 지난 7월 3일 오후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제재심의위원회에 출석하기에 앞서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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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유출 때 청문회에서도 아랫 사람에 책임 떠넘기기

임 회장이 수장으로서 책임을 지기보다는 자리에 연연하는 듯한 모습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바로 올해 초 대규모 카드사 정보 유출 사태가 터졌을 때 열린 국정조사 청문회 자리였다.

지난 2월 18일 열린 개인정보 대량유출 관련 실태조사 및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임 회장은 국회의원들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임 회장은 정보유출 당시 고객정보관리인으로 법적,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하는데 부하 직원들에게 사표를 받고 있다"며 "조직의 수장인 본인은 빠지고 다른 경영진들만 징계한다면 국민들이 어떻게 신뢰를 가질 수 있겠는가"라고 비판했다.

이에 임 회장은 "계열사간의 정보를 공유하는 것에 대한 관리를 담당했다"며 "이번 사태는 카드사의 정보가 나간 것"이라며 자신은 책임이 없다고 피력했다.

임원들의 집단 사표 제출에 대해서는 "임원들이 심기일전해 사태를 수습하자는 차원이었고 나는 수습이 먼저였다"고 밝혔다. 임 회장이 정해진 발언시간을 초과해 자신의 해명을 계속 이어 나가자 김 의원은 "금융지주회장이 국회 위에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버티기일까, 억울하다는 호소일까. 그 판단은 금융위원회에서 이뤄질 것이다. 임 회장은 금융위원회 의결 과정에서 자신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을 경우 법적 다툼까지도 고려하겠다는 각오다. 그러나 아랫 사람들에게만 책임을 떠넘기고 정작 자신은 어떻게든 책임을 벗으려는 모습은 안타깝다 못해 씁쓸하기까지 하다.


태그:#임영록, #이건호, #KB금융, #국민은행, #최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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