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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협동조합을 쉽게 정의할 수 있는 3가지 키워드를 말씀드렸습니다. 기억나시나요? 잊어버리신 분은 지난 기사를 다시 봐주세요(관련기사 : 우리는 '스티브 잡스'를 원치 않습니다). 이번에는 예고했던대로 협동조합의 중요한 원칙을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협동조합 7원칙은 ICA에서 1995년에 재정립하기도 했고, 우리나라 협동조합기본법에도 규정되어 있어 협동조합을 하시려는 분이라면 모두 알고 지켜야 하는 원칙들입니다.

현재 5500개의 협동조합이 설립되며 바야흐로 협동조합의 시대를 맞이했지만, 협동조합의 특성을 이해하지 않고 기존 벤처열풍처럼 협동조합을 설립하신 분들은 뒤늦게 실망과 후회를 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협동조합을 사랑하지만 협동조합이 결코 만능이 아니며 협동조합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자신이 하려는 일이 이러한 특성에 맞는지 심사숙고한 다음에 결정할 것을 권해드립니다.

협동조합은 앞의 기사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사업을 구상하면서 선택할 수 있는 3가지 법인격 중 하나이며, 내가 추구하는 바가 주식회사나 비영리법인에 더 잘 맞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시험 당했던 3가지 유혹...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우리 입장

자, 그럼 오늘의 주제인 협동조합의 7원칙을 말씀드릴까합니다. 하지만 이에 앞서 예수님이 광야에서 시험 당했던 3가지 유혹을 얘기해볼까 합니다.

얼마 전에 교황님이 우리나라를 다녀가시기도 했지만, 종교적인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요. 다만 잘 곱씹어 볼수록 묘하게 연결되는 이야기이기에 연결시켜 얘기해볼까 합니다. 광야에서의 악마의 유혹은 부조리한 세상에서 우리가 어떤 입장을 취해야하는가에 대한 답을 주는 대목입니다.

예수는 빵의 유혹, 권세의 유혹, 기적의 유혹을 받습니다. 협동조합을 하시려는 분들 역시 비슷한 유혹을 겪게 됩니다.
▲ 광야에서 유혹 받으시는 예수 예수는 빵의 유혹, 권세의 유혹, 기적의 유혹을 받습니다. 협동조합을 하시려는 분들 역시 비슷한 유혹을 겪게 됩니다.
ⓒ 두치오 디 부오닌세냐(Duccio di B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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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는 대심문관인 추기경이 예수를 만나 나약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예수가 3가지 유혹을 받아들였어야 했다고 비난하며 본 구절의 의미를 되새김질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가 받았던 3가지 유혹은 협동조합을 설립하려는 이들이 나중에 받게 될 유혹과도 연결되어 있으며, 여기에 협동조합 7원칙의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자본의 유혹, 창업자금 모금 과정에서 이윤분배

3가지 유혹과 연결지어 하나씩 얘기해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예수가 배고픔에 시달릴 때 빵의 유혹을 받았듯이 협동조합을 설립하려는 이들은 자본의 유혹을 받습니다. 자본의 유혹은 다시 두 가지 측면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창업자금 모금과정에서의 유혹과 이윤배분에서의 유혹입니다.

창업 시 한 푼이라도 아쉬운 상황에서 협동조합은 한 조합원이 전체 출자금의 30% 이상을 출자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협동조합 기본법 제22조 제2항).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처럼 돈 잘 버는 게 특기인 사람이 나타나 출자금을 왕창 내고 싶다고 해도 현행법상 금지되는 부분입니다. 괜시리 법이 야속하게 느껴지는 대목이지만, 우리가 협동조합을 하려고 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당연히 준수해야 할 협동조합의 원칙입니다.

만약, 한 조합원이 30% 이상 많은 금액을 출자하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 조합원이 탈퇴하면 사업체의 물적 기반이 흔들려 금세 위기에 빠질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의사결정을 할 때 항상 실질적인 대주주에 해당하는 이 조합원의 눈치만 살피게 되겠죠. 돈이 우선이 아닌 사람이 우선인 기업을 하고자 협동조합을 하려는 건데, 본래의 목적을 잊고 돈을 우선시하려 했던거죠.

협동조합의 힘은 자본이 아닌 사람에 있습니다. 협동조합의 설립 목적에 동의하고 조합원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자라면(동법 제20조), 정당한 사유없이 조합원의 자격을 갖추고 있는 자에 대하여 가입을 거절하거나 가입에 있어 다른 조합원보다 불리한 조건을 붙일 수 없습니다(동법 제21조) (협동조합 1원칙: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제도). 새로운 사람이 계속 들어오며 눈덩이 굴리듯이 사람의 힘이 커져나갈 때 협동조합은 성장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윤 배분에서도 협동조합은 출자금을 많이 낸 사람을 우선시하지 않고 실제로 필요에 따라 그 사업을 이용한 사람을 우선시합니다.

납입한 출자액에 대한 배당은 납입출자금의 10%이하로 제한되고, 이용실적에 대한 배당이 전체 배당의 50%이상이 되도록(동법 제51조 제3항) 하고 있습니다. 역시나 자본을 많이 가진 사람을 우선하기보다는 해당 사업을 정말 필요로 하고, 자신의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을 우선하는 원칙입니다(3원칙: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

협동조합 역시 사업체로서 수익창출이 중요하고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안정적인 재정구조를 가져야 합니다(4원칙: 자율과 독립). 하지만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는 것처럼 협동조합 역시 자본에 매몰되어 더 중요한 사람을 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권세와 영광의 유혹, 사업체 운영에 대한 독점적 권한

두 번째로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는 악마의 유혹에 대비되는 사업체 운영에 대한 독점적 권한을 행사하고 싶은 욕구입니다. 협동조합은 출자금액과 상관없이 1개의 의결권과 선거권을 갖습니다(동법 제23조 제1항, 2원칙: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관리). 또한 이사장이 아무리 훌륭해도 4년 범위에서 임기를 정해야 하고, 2차에 한해 연임을 할 수 있어 최대 12년 이상을 할 수 없습니다(동법 제35조).

우린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를 당연시 여기게 되었지만, 경제에 있어서는 아직도 독재주의를 당연시합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같이 훌륭한 CEO가 기업을 성공시키고, 많은 종업원들의 생계를 책임진다고 생각합니다. 협동조합을 하려는 사람은 1명의 뛰어난 천재보다 2명의 보통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빨리 가기 위해선 혼자 갈 수도 있지만, 멀리 가기 위해 여럿이 함께 가려는 사람입니다. 결과적으로 내가 맞더라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하고, 지위와 부로서 상대방의 의견을 누르려 하기보다는 끊임없는 소통으로 상대방과 교집합을 만들어 가려는 사람입니다. 협동조합을 하려는 사람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작년에 공동체 상영으로 히트한 협동조합 영화. 이탈리아에서 1981년에 설립된 논첼로(noncello)라는 사회적협동조합을 모티브로 삼고 있습니다. 논첼로는 정신과 의사 3명과 치료를 받던 환자 6명이 만든 협동조합입니다. 협동조합 정신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재미난 극영화로 추천드립니다.
▲ 위캔두댓 작년에 공동체 상영으로 히트한 협동조합 영화. 이탈리아에서 1981년에 설립된 논첼로(noncello)라는 사회적협동조합을 모티브로 삼고 있습니다. 논첼로는 정신과 의사 3명과 치료를 받던 환자 6명이 만든 협동조합입니다. 협동조합 정신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재미난 극영화로 추천드립니다.
ⓒ 위캔두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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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정신병원 환자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었던 실화를 다룬 <위 캔 두 댓!> 영화에서는 장애인들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결정하는 과정이 나옵니다.

처음에는 자기 의견을 얘기하기 어려워하고, 엉뚱한 얘기도 많이 하던 이들이 차츰 차츰 의견을 내고 이에 책임지는 법을 배웁니다.

나중에는 장애인들이 처음 협동조합 설립을 도왔던 노조 활동가와 반대되는 의견을 내고 이를 관철시킵니다. 실망한 노조 활동가에게 친구가 말합니다. 너가 원하던 바가 이게 아니었냐, 사실은 더 기쁘지 하면서요.

정치적 민주주의가 정착해가는 과정에서 보듯이 처음에는 시행착오가 있지만, 시행착오를 겪으며 사람들은 배우고, 결국엔 집단 지성을 통한 집단 결정이 큰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자신들이 결정한 것이기에 실패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고, 다음 번에 더 잘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조합원의 역량을 키워주기 위한 끊임없는 교육과 훈련이 중요하며 중요한 정보를 계속 공유하여 조합원들이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5원칙: 교육,훈련 및 정보제공, 동법 제7조).  

기적을 행해보라는 유혹, 벤처창업 붐 일확천금

마지막으로 성전 꼭대기에 뛰어내려 기적을 행해보라는 유혹을 받았던 예수처럼 협동조합도 성과에 대한 유혹을 받습니다. 올 초 언론에서는 협동조합이 실업난, 자영업자들의 위기, 복지 문제를 금새 모두 해결해 줄 대안처럼 얘기하기도 했고, 몇 년 전의 벤처창업 붐처럼 일확천금을 노리는 한때의 붐으로 묘사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협동조합을 한다고 해서 갑자기 수익이 확 늘어나거나, 사회가 갑작스레 변화되진 않습니다.

앞서 얘기한 특징에도 나오듯이 협동조합은 모두와 함께 천천히, 하지만 단단하게 나아가는 기업모델입니다.

중소기업청의 소상공 협업화 사업과 마을기업 설립 관련해 해당기관의 지원금만을 타기 위해 갑작스레 만들어진 협동조합도 있지만, 이런 협동조합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협동조합이 불신이 쌓이는 정보가 비대칭한 분야, 주인노동이 필요한 분야에서 일반 기업보다 경쟁력이 있지만 그렇다고 협동조합을 통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뛰어든 이들은 실망하게 됩니다.

협동조합은 투자자를 위한 이윤 창출이 아닌 조합원들의 불편을 해소시키고, 나눔을 통해 공생을 모색하는 기업모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협동조합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기적이 이뤄진다고 하면, 오병이어와 같은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의 사람이 배불리 먹은 건, 처음 나눔이 시작되자 저마다 감춰뒀던 식량을 꺼내 함께 먹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협동조합을 통해 사람들은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아닌 삶에 기반한 필요에 따른 생산으로 전체 사회 자원을 적정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고, 각자의 자원을 공유함으로써 더 많은 것을 누리게 되는 것이죠. 이를 위해서는 같이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동료들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협동조합들은 개별 협동조합만 생각하지 말고, 6원칙인 협동조합간의 협동과(동법 제8조) 7원칙인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동법 제2조)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즉 협동조합 생태계 구축이 협동조합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협동조합의 특성을 3가지 유혹에 비교하여 설명해 보았습니다. 협동조합을 하려는 이들은 이처럼 자본, 권력, 기적으로 사람을 다스리고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유혹을 물리친 이들일 것입니다. 협동조합 7원칙은 협동조합을 협동조합답게 규정지음과 동시에 협동조합이 성공하려면 반드시 지켜야하는 원칙입니다.

7원칙을 지킨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공한 협동조합은 모두 7원칙을 준수하고 있습니다. 어떠세요? 3가지 유혹을 이겨내며 7원칙을 지켜낼 자신이 있으신가요? 지난시간 3가지 키워드와 함께 여러분에게 협동조합을 입문하기 앞서 3.3.7을 얘기해보았습니다.

다음 호에서는 조금 더 쉬운 비유를 들어 협동조합이 가지는 장점에 대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그럼 추석 연휴 잘 보내시고, 다음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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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주수원 기자는 오마이스쿨에서 <협동조합 A to Z>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을 보다 쉽고 재미나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에도 <협동조합 A to Z> 연재를 통해 협동조합 관련한 이야기를 쉽고 재미나게 풀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태그:#협동조합, #3가지유혹, #7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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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및 사회적경제 연구자, 청소년 교육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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