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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4일 오후 서울시교육청에서 자사고 운영성과 종합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자사고 개선에 대한 호소문을 발표하고 있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4일 오후 서울시교육청에서 자사고 운영성과 종합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자사고 개선에 대한 호소문을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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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의 자사고 8곳의 지정 취소 결정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교육청은 지정 취소 결정을 반려하겠다는 교육부와 법적 권한을 놓고 다퉈야 하는 한편, 연일 거세게 항의하는 자사고 학부모들을 상대해야 하는 처지다.

그런데, 어른들의 볼썽사나운 모습에 정작 아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자녀들을 대신해서 학부모들이 싸우는 게 아니라면, 그들의 목소리도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각각 광주에 있는 일반고와 자사고 1학년에 재학 중인 아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들 둘은 중학교 동창으로, 지금 자사고생인 용재(가명)의 학교는 내년 일반고로의 전환을 앞두고 있다. 오랜만에 만났다는 그들은 서로 중학교 때의 학교성적과 고등학교 진학 후의 생활에 대해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었다. 일반고생인 하성(가명)이는 내가 지금 가르치고 있는 아이지만, 용재는 처음 알게 된 사이다.

달랑 재학생 두 명의 경험담이 첨예한 이번 갈등의 모든 것을 설명해줄 수는 없다. 다만, 자사고든 일반고든 학교의 진짜 주인이 아이들일진대, 몇 명이 됐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게 먼저라는 생각에서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니, 그들더러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라며 무시하는 건, 기성세대의 어쭙잖은 편견임을 알겠다. 공부 못한다며 혼날지언정, 아이들의 머리는 이미 '굵어 있다'.

일반고와 자사고, '노는 물이 다르다'

자사고 운영성과 종합결과 발표 기자회견이 열릴 예정인 4일 오후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폐지 절차에 포함이 된 8개 자사고 학부모들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자사고 운영성과 종합결과 발표 기자회견이 열릴 예정인 4일 오후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폐지 절차에 포함이 된 8개 자사고 학부모들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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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둘의 중학교 때 성적은 엇비슷했다. 사는 곳도 이웃인데다 활달한 성격도 비슷해 지금껏 단짝 친구로 지낸다. 하성이도 자사고에 너끈히 갈 수 있는 성적이었고, 생각이 없지도 않았지만, 결국 지원을 포기했단다. 몇 배나 되는 등록금에다 '용의 꼬리가 되기보다 뱀의 머리가 되겠다'는 생각에서다. 부모님도 자녀의 자사고 진학에 대한 바람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고 한다.

용재는 '명문고'에 대한 의지도 나름 강했고, 무엇보다 부모님이 중학교 입학 당시부터 은연중에 강조해오던 터라 '당연한 수순'처럼 자사고에 진학한 경우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험을 치르고 들어가는 '영재 학원'을 다녔다는 그는, 하성이가 이름을 정정해주기 전까지 자사고를 '명문고'라고 불렀다. 이 또한 오랫동안 입에 밴 듯 자연스럽게 여겨졌다.

이들이 느끼는 자사고와 일반고의 간극은 얼마나 될까. 자사고와 일반고에 대한 용재의 정의는 간명했다. 상위권이 모인 '명문' 학교와 '나머지' 아이들의 학교. 기준은 오로지 학업성적이었다. 그런데, 하성이 역시 명료하긴 했지만 결이 조금 달랐다. 소수 부잣집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와 대부분의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가는 학교. 각자 자신의 입장과 경험에 따른 구분이다.

달리 표현했을 뿐, 학업성적이 가정의 경제력과 정확히 비례하는 현실이고 보면 같은 의미다. 공교육 기관인 학교는 이미 그렇게 갈라졌다. 용재와 하성이는 자기들처럼 자사고와 일반고를 다니는 친구가 계속 친구로 남기란 점점 드문 일이 돼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이 제도가 도입될 때부터 예측했던 바지만, 보통 자사고와 일반고 아이들은 '노는 물이 다르다'고 표현한다.

놀라운 건, 둘 모두 어른들에 의해 조장돼온 이런 '서열'과 '차별'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공개된 입학사정관제(학교생활기록부 종합) 전형 합격률 비교에서 자사고가 일반고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통계를 '새삼스럽지 않다'고 했다. '아이들 중 그걸 예상 못한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며 외려 문제 삼는 게 우습다고까지 말했다.

"교육과정에 자율 편성권이 있으니 정시든 수시든 대학입시에 맞춤형으로 대비할 수 있고, 그것이 내신의 불리함을 충분히 벌충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니, 누구나 비싼 등록금에도 자사고를 선호하는 것 아니겠어요? 솔직히 모든 자사고가 오로지 '대학입시용 고등학교'라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잖아요."

자사고의 강점에 대한, 놀랍게도, 일반고생 하성이의 분석이다. 그 정도는 기꺼이 감수하고 일반고를 선택했다는 투다. 외려 자사고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용재로부터 나왔다.

"일반고라고 해서 크게 다를 바 없겠지만, 자사고는 대학입시가 '절대 선'이에요. 3학년 선배들에게 들으니,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은 어디까지나 '전시용'일 뿐이고, 수시 접수일과 수능일자에 맞춰 3년 과정이 '깔맞춤' 돼있다고 하더라고요. 자사고라는 '네임 밸류'에다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만 죄다 모여 있으니, 일반고와의 입시 경쟁은 이미 끝난 거라고 봐야죠."

"머지않아 '명문중', '명문초'도 등장할지 모른다"

자사고 운영성과 종합결과 발표 기자회견이 열릴 예정인 4일 오후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폐지 절차에 포함이 된 8개 자사고 학부모들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자사고 운영성과 종합결과 발표 기자회견이 열릴 예정인 4일 오후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폐지 절차에 포함이 된 8개 자사고 학부모들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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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맞춤'의 구체적인 내용을 듣고 싶었다. 등록금이 비싼 만큼, 일반고와는 다른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사고의 입학사정관제 전형 합격률이 높다는 것은 독서나 진로 체험 등 다양한 비교과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홈페이지 등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홍보 자료'에 불과하므로, 재학생으로부터 직접 듣는 게 가장 정확하다는 생각에서다.

"일반고와 별반 다를 건 없어요. 딱히 시설이나 환경이 좋은 것도 아니고. 굳이 찾는다면, 유명 인사 초청 특강이 마련돼 있고, 국영수 수업이 정말 많다는 것, 그리고 방과 후 수업 때 외부 강사가 와서 강의한다는 점 정도?

그러나 아이들이 느끼기에 그런 것들은 사실 별 것 아니에요. 자사고의 '유일한' 강점은 학습 분위기가 다르다는 거죠. 다들 중학교 때 우등생들이잖아요. 수업시간은 물론 자습시간에도 부담스러울 만큼 정숙해요. 솔직히 우리 반 아이들 일반고 교실에 그대로 데려다 놓으면 그곳이 자사고인 거죠."

하성이도 100% 동의를 표시하며, '뼈 있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자사고에 진학하려는 아이들이 어디 그 학교의 커리큘럼이나 시설, 환경을 감안하고 지원하나요. 과거 일반고 시절의 선생님들인데, 강의 수준이 차이가 난들 얼마나 나겠어요? 거기 가면 대학에 가기 유리하고, 또 남들이 '알아주며', 또 비슷한 수준의 아이들끼리 모여 있으니 면학분위기가 낫지 않을까 해서 비싼 등록금에도 가려는 거죠."

용재도 고개를 끄덕이며, 하성이의 말을 받았다.

"반 친구들끼리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머지않아 '명문중'과 '명문초'가 등장할지도 모른다고. 학벌이 계급인 사회에서 '명문대'를 희망하듯 '명문고'를 가려는 거잖아요. 결국, 연이어 '명문고'를 입학시키기 위한 경쟁이 뜨거워질 테고, 그런 분위기가 확산되면 유치원에까지 이르지 않겠어요? 얼마 전 엄마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명문대' 진학 여부는 유치원 때부터 결정된다는 말도 있대요."

순간 화제가 옮겨졌다. 두 친구의 어머니는 자사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일반고 전환 소식에 용재 어머니는 적잖이 당황하셨단다. '아들이 자사고에 다니고 있다'며 뿌듯해 하셨는데, 아무리 내년 입학생들부터 적용된다고 해도 앞으로 더 이상 자사고 '프리미엄'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에 무척 속상해 하셨다고 했다. '혜택'이 사라졌다고 여기는 셈이다.

"어머니는 이번 서울시교육청의 자사고 지정 취소 소식을 듣고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셨어요. 특히 교육과정이 입시 위주로 과잉 편성된 것이 감점 요인이라는 보도에 대해 발끈하셨어요. 명문대가 요구하는 입시 제도는 손도 못 대면서, 애꿎게 거기에 충실히 발맞춰 따라가려는 자사고만 탓해서야 되겠느냐는 거죠. 그리고 요즘 세상에 자사고고 일반고고 '건학 이념'에 따라 운영하는 학교가 몇이나 되겠느냐며 헛웃음 지으셨어요."

이때 이러한 어머니의 생각과는 달리 의외로 덤덤했던 용재도 일반고 전환에 대해 일말의 아쉬움을 나타냈다. 내년에 '막 들어올' 후배들과 같은 건물과 운동장에서 공부나 비교과 활동을 하면서 뒤섞일 일을 생각하면 조금 우려가 된다고 했다. 자칫 '공부 못하는' 1학년과 '공부 잘하는' 2, 3학년 사이의 갈등이 표면화될지도 모르고, 학년 교과 담당이 확연하게 갈리면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불협화음이 생길 수 있지 않겠냐며 반문했다.

하성이 어머니의 반응은 어땠을까. 자사고의 우등생 싹쓸이로 일반고가 쑥대밭이 됐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TV에서 본 자사고 어머니들의 성난 모습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고 하셨단다. 자신도 그 입장이면 그랬을지도 모른다면서. 자기 자식 좋은 밥 먹이고 비싼 옷 입히고 싶은 마음은 똑같다면서, 분명 이기적인 모습이지만 많지도 않은 자녀를 좋은 환경에서 교육시키겠다는 부모의 욕심을 어찌 나무랄 수 있겠냐는 거다. 모두가 오로지 간판만 따지는 학벌 사회의 피해자라면서.

자사고에는 없지만 일반고에는 있는 것

애초 자사고라는 제도 자체가 개인의 이기적 욕망을 자극해 대다수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게 하는 것이다. 어떤 자사고 학부모들은 '자사고에서 공부를 잘 가르치든 말든, 질 나쁜 아이들과 격리돼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안심이 된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물론, '질 나쁜 아이'란 공부 못하는 아이를 가리키는 것으로, 대개는 가정 형편도 변변치 않은 경우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사고 폐지 운운하기에 앞서, 일반고 아이들의 수준을 높이라'며 훈수를 둔다. 교육이 더 이상 계층 이동의 수단이기는커녕 자신이 속한 계층을 안팎으로 공인받는 절차로 변질됐음을 선언하는 말이다. 교육과정의 다양화로 교육제도의 개선과 발전에 기여한다며 문을 열었지만, 자사고는 명문대에 가기 전 조금 일찍 시작된 '그들만의 리그'일 뿐이다.

"TV나 인터넷에서 매일 시끄럽게 떠들어서 그렇지, 그것이 자사고와 일반고의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솔직히 '자사고'는 일반고 울타리 밖에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자사고에는 없지만, 일반고에는 있는 것'이 뭔 줄 아세요?

바로 '심화반'이에요. 말이 그렇지, 그나마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을 따로 모아놓은 거잖아요. 대학 입시 실적에 목매단 채 어떻게든 성적으로 아이들을 구분 지으려는 모습이 남아있는 한, 이런 갈등은 사라지지 않을 걸요."

헤어질 즈음, 억울하다는 듯 내뱉은 용재의 이 말에, 하성이는 씁쓸한 얼굴로 말을 이어받았다.

"반 친구들끼리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세월호에 탄 아이들이 일반고생이 아니라 자사고생이었다면, 어디선가 '슈퍼맨'이 날아와 구조했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어요. 단원고가 경기도 안산에 있느냐, 서울 강남에 있느냐보다 훨씬 더 중요한 목숨 값의 기준이라면서요."

교사로서 두 아이의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창피하고 괴로웠다.


태그:#자사고 지정 취소, #일반고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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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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