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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강 : 9월 5일 오전 9시 5분]

지난해 10월 3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람페두사섬 해역에서 500여 명의 아프리카 난민을 태운 배가 침몰해 임산부와 어린이를 포함해 최소 103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 3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람페두사섬 해역에서 500여 명의 아프리카 난민을 태운 배가 침몰해 임산부와 어린이를 포함해 최소 103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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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이탈리아가 무거운 짐을 벗게 되었다. 그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지중해상의 난민선 구조 활동을 혼자 도맡았던 이탈리아는 오는 10월 19일을 기해 난민 구조 활동을 유럽연합(EU)에 넘기기로 했다.

이탈리아는 지난해 10월 람페두사 섬 인근에서 발생한 난민참사(승선자 500명 중 350명 실종·사망)를 계기로 지중해상의 난민선 사고 처리를 도맡아왔다. 당시 국제사회에선 이탈리아 북부연합당 등 보수여당 등이 제정한 일명 '피니보씨법'으로 인해 난민들에 대한 구명 활동이 늦어졌다는 비난이 쏟아졌고, 이후 난민선 사고 처리에 이탈리아가 적극 개입하는 계기가 됐다(관련기사 : <지금 이탈리아에는 관이 부족하다>)

유엔 난민 고등 판무관 사무소(UNHCR)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람페두사 사고 이후 이탈리아는 현재까지 매달 900만 유로를 구조 활동에 썼다. 반면 유럽연합국의 지원은 1년에 총 890만 유로에 불과하다. 유럽연합 28개국 중 난민 문제에 관여하는 국가는 19개 국가뿐이다. 특히 난민들의 과반수는 독일, 스웨덴, 프랑스 순으로 이주를 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허가를 받는 사람은 신청자 중 15%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난민들은 첫 도착지인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을 떠나 이주희망국가로 옮길 때 일인당 500유로를 이주정착금 명목으로 지급받는데, 이 돈은 이탈리아가 부담하고 있다. 또 이주 신청 결과가 나올 때까지(법적으로 3개월)의 해당 국가 현지 체류 비용도 이탈리아가 부담하게 된다. 이주 신청이 거부돼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으로 되돌아오는 난민들의 체류 비용 청구서를 가장 빈번하게 보내는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은 그동안 난민들에 대해 '유럽의 복지정책혜택을 누리려는 사람들'이라며 부정적 시선을 보내왔다.

난민선에 실린, 난민들의 안타까운 사연

그동안 난민선 사고는 끊임없이 발생했다. 앞서 언급한 람페두사 사고 이후 2014년 8월까지 이탈리아 국경 지중해상에서 사고로 숨진 난민숫자는 1899명이다. 이에 대해 이탈리아 여,야 정당은 물론 언론까지도 합심해서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마레 노스트룸(우리들의 바다)가 공동묘지가 되고 있다'는 항변이었고, 지중해 난민문제는 유럽전체의 문제이기에 유럽연합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호소였다.

2013년 10월 3일 람페두사 참변(350명 실종, 사망)이후 언론에 언급된 사고들의 리스트다.

- 2013년 10월 11일, 람페두사 참변이 발생한 같은 지역에서 30여명 사망(200여명 승선)
- 2014년 5월 11일, 난민선 침몰사고로 27명 사망. 해양구조작업에 나섰던 이탈리아 해양경찰대 및 조셉 무스카트 몰타국 총리는 유럽연합차원의 이민법개정촉구를 제안하며 전 세계에 난민문제 해결을 다시 호소.
- 2014년 7월 23일, 튀니지에서 유럽으로 향하던 난민선(560명 승선)에서 난민간 다툼으로 100여명이 집단으로 학살 당하는 사건 발생. 50명은 산채로 바다에 던져지고, 60여명은 칼에 찔린 뒤 바다에 던져짐. 사건용의자인 모로코인 2명,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팔레스타인인 등이 이탈리아 경찰에 체포됨
- 8월 22일, 리비아연안서 170여명의 난민이 탄 목선이 전복됨. 17명만 구조된 것으로 알려져, 최소 수십여 명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
- 8월 23일, 또다시 엔진고장으로 난민선 침몰해 20여명 사망하고 73명 구조됨.

난민선 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이와 관련된 사연들도 속속 공개돼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난민들의 안타까운 상황은 선원들과 난민보호소 봉사들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특히 자신 눈앞에 있는 생후 3개월 된 아이를 구하기 위해 한 손으로 통나무를 잡고 버티다가 결국 힘이 다해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은 한 여인의 이야기와 함께 배에 탔던 부모를 찾기 위해 관들의 행렬을 헤집고 다닌 만 4살 된 아이의 사연은 많은 이들의 눈물을 자극했다. 선원인 카를로 실리우초(43)와 코라도 알폰소(46)는 현지 언론들과 한 인터뷰에서 난민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전하며 눈물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처럼 난민선을 타고 이주를 감행하는 것이 목숨을 걸 정도로 위험한 일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지중해를 통해 유럽으로 밀입국한 사람들의 수는 갈수록 늘고 있다. 2014년 8월 기준으로 12만 4380명이 난민선을 이용한 이주를 시도했는데, 이는 지난해 약 4만 3000명에 3배에 달한다. 일각에선 최근 가자지구 사태로 밀입국 난민들이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난민선 문제 이탈리아 혼자 감당할 수 없다"

난민선 문제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결국 이탈리아 내무장관 안젤리노 알파노(44)는 지난 8월 "더 이상 이 같은 비참한 상황과 막대한 경비를 이탈리아 혼자 감당할 수 없"음을 EU측에 전달했다. 그러면서 '오는 10월 18일 이후 이탈리아는 구조작업에서 손을 떼겠으니 이젠 EU측에서 알아서하라'고 통보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유럽국경관리청 프론텍스 대변인 에바 모큐어는 독일 한 일간지와 한 인터뷰에서 "애쓰는 건 알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탈리아의 문제다"라며 "우리는 예산이 없다"라고 말해 이탈리아의 감정을 자극했다.

반면 EU 대변인 안토니 그라빌리는 "이탈리아는 그동안 최고로 멋진 구조작업을 펼쳤다"면서 "오는 10월 이내로 전 유럽 국가들은 경제적 인적 도움을 보태야만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유엔 난민 고등 판무관 사무소(UNHCR) 대변인 멜리사 플레밍은 "지중해상의 비참한 난민 문제는 더 이상 이탈리아만의 문제가 아니"라며 "모든 유럽국가가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구체적인 해결안을 제시해야만 한다"고 발표하는 등 이탈리아 여론을 달랬다.

결국 지난달 27일 이탈리아 내무장관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세실리아 말름스트룀 EU 내무담당 집행위원과 협상을 벌여 지중해상의 난민구조 활동을 유럽연합에 인계하는 데 성공했다. 협상 내용에 따르면, EU국경관리청은 프론텍스 플러스(Frontex Plus)를 신설해 지중해 난민 구조 활동에 투입할 것이며 그와 함께 유럽 국경지대에 대한 순찰활동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탈리아 남부 람페두사섬의 모습.
 이탈리아 남부 람페두사섬의 모습.
ⓒ 위키피디아 공동자료 저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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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지난달 27일과 28일 이탈리아 내무장관은 현지 시사뉴스와 한 생방송 인터뷰에서 "프론텍스 플러스가 맡게 될 새로운 작업 중에는 난민들이 타고 왔던 배를 즉시 분해해 처리하는 일도 포함된다"면서 "열악한 배를 다시 이용해 난민관련 불법사업을 벌여온 불법단체들 및 침몰사고, 불법난민 등을 전면 봉쇄키 위한 작업"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프론텍스 플러스는 이탈리아 해양경비대와는 별도로 독자적인 노선과 체계를 갖게 될 것"이라며 "구조인계를 맡았다 해서 지금 당장 이탈리아가 해오던 임무를 모두 떠맡든 건 아니고, 점차적으로 인계를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내무장관은 이어 "이후 지중해상에서 일어나는 빈번한 난민 참사로 이탈리아 전체가 국상을 치르는 비극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며 "난민참사의 트라우마로부터 전 국민이 벗어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필립보 부비코 내무성 수석비서도 프론텍스가 그간의 소극적 작업에서 인권 보호 차원의 더욱 적극적인 구조작업까지 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번 성과에 대해 이탈리아 정계 원로들은 현 총리인 마테오 렌치(39·중도좌파 PD당)와 내무장관인 안젤리노 알파노(44·중도우파 PdL당)간 연정체제가 힘을 발휘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아울러 합리적이고 협조적인 신세대 공조체제로 인해 앞으로 정치권의 대대적인 새대교체 바람이 불 것이라고 점쳤다. 

한편 EU내무담당 집행위원 세실리아 말름스트룀은 4일 오후(현지시각) 이탈리아 정부측에 프론텍스 플러스 활동과 관련한 새로운 제안을 했다. 그는 프론텍스 플러스 활동 중 지중해 국정지대 순찰을 목적으로 추진하는 '트리톤 프로젝트'에 이탈리아 해경의 기술과 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도움을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탈리아 내무장관은 이 제안을 검토중이다.


태그:#이탈리아, #난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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