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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일 오후 5시 30분, 11개 언론현업단체와 언론시민단체들이 함께 '방송의 날 축하연'이 치러지는 63빌딩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애초에 63빌딩 앞 교차로에서 열기로 된 기자회견은 길목을 막아선 수십 명의 경호원들에 막혀 63스퀘어 앞 쪽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 가본 기자회견 중 가장 삼엄하고 긴장된 분위기였다.

하얀 셔츠와 까만 양복바지를 똑같이 맞춰 입고 4열종대로 양쪽으로 늘어선 경호원들과 정복 경찰들의 호위 아닌 호위를 받게 된 셈이었다. 심지어 여성 경호원들도 보였다. 그들은 왜 그 자리에 있는 것일까? 나처럼 기자회견에 참석한 여성들을 혹 끌어내고 연행할 때 여성이라고 배려하는 차원에서?

지난 9월 2일 오후 5시 30분, 63빌딩 앞에서 열린 "세월호 보도참사, 민심 조작해 놓고 축하연이 웬말이냐"
▲ '방송의 날 축하연 규탄 기자회견' 모습 지난 9월 2일 오후 5시 30분, 63빌딩 앞에서 열린 "세월호 보도참사, 민심 조작해 놓고 축하연이 웬말이냐"
ⓒ 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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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개판의 날', 세월호 단식장에 먼저 가라

기자회견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적나라하고 강한 규탄 발언으로 이어졌다. "방송 개판의 날", "정권비호에 여념이 없는 방송, 칭찬하러 오는 대통령", "대통령은 세월호 유가족 단식농성장에 먼저 가라"는 등의 발언이었다. 공공재인 전파의 주인이자 방송운영 재원인 세금을 내는 국민들의 아픔은 모르쇠하며 오직 대통령의 안녕만을 추구하는 오늘의 방송현실과 거짓과 기만으로 세월호 가족들의 눈에 눈물이 마를 날 없도록 만드는 대통령에 대한 단호한 비판으로 가득했다.

김종철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장은 방송이 그 어느 미디어보다도 정권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하는데, 이런 책무를 저버리고 있다며 "이렇게 염치없는 잔치는 처음 본다."고 했다. 또 "대통령은 뮤지컬을 보러 다니고 방송의 날 잔치에 올 것이 아니라 세월호 단식농성장으로 가라!"고 일갈했다.

이완기 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대표 역시 "작금의 방송사들은 현 박근혜 정권이 관권부정선거, 대선공약 파기, 간첩조작 사건 등 온갖 패악을 해도 정권비호에만 여념이 없다"고 비판했다. 특히 "세월호 참사 당시 '전원구조'의 오보를 냈고, '구조가 잘 되고 있다'고 거짓방송을 했다"며 세월호 참사에 대한 방송의 책임과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의 필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열띤 기자회견의 와중에 잠시 경호 대열이 술렁이며 움직이는가 싶더니,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하 방심위) 무리가 기자회견 대열의 뒤편을 빠르게 지나갔다. 9월 4일에 방심위는 'KBS의 문창극 강연영상 보도'에 대해 중징계를 내릴 것으로 알려졌다. 박효종 방심위원장은 축하연 자리에서 대통령에게 줄 선물을 미리 준비한 동시에 방송사들에게는 무언의 경고를 준 것이기도 하다.

특히 최근에 KBS 이사장이 돌연 사퇴한 뒤 지난 3일 새로 임명된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에 대해 언론계는 공분하고 있다. 이인호 이사장에 대해 권오훈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위원장은 "KBS구성원이 원치 않는 뉴라이트 낙하산 인사는 받지 않겠다, 대통령이 도로 갖고 가라!"고 외쳤다. 권 위원장은 또한 이번 인사에 대해 "문창극 강연영상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는 등 이인호 이사장이 최근 정권 입맛에 맞는 언행을 한 것에 대한 보상인 동시에 KBS에 대한 정권의 장악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인사행태라고 비판했다.

'국가의 부재'와 번듯한 '자유민주주의 국가'

'방송의 날'이 존재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공공재인 방송이 국민들에게 공공봉사를 거듭 다짐하는 날이어야 한다. 또한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은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며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확인되었지만, 대한민국의 공권력은 10여대의 경찰버스와 수백 명의 경찰들을 동원해 대통령의 안위를 위한 '경호'라는 명목으로 국민들의 발언과 행동을 막아섰으며 감시했다.

이날 485만 명의 '세월호특별법 요구 서명용지'를 청와대에 전달하려던 세월호 가족들의 '삼보일배'도 경찰들에게 포위되어 한발도 나아가지 못했다. 대한민국은 그저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 국가'일 뿐, 지금 국민의 '자유'와 '민주'는 현실의 그 어디에도 없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가 거듭 확인하게 되는 것은 '국가의 부재'이다. 또한 매번 대통령에 집중된 '모든 것에 대한 결정권'에 가로막힌 '국민들의 자유와 권리'가 짓밟히는 현실을 본다. 국가가 부재한 오늘의 대한민국은 마치 세금이라는 명목의 합법적 '삥'을 뜯는, 공권력을 빙자한 '깡패집단'에 장악된 허울뿐인 나라와 같다. 그래도 이 나라가 번듯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국민들이 속으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대통령에게 "잘했다"며 칭찬받는 잘난 '방송들'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거짓방송', '쓰레기방송', '정권비호방송'이라는 별명을 달고 대통령과 웃으며 사진 찍는 바로 그 방송들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김경아 민언련 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민언련 웹진 [e-시민과 언론]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태그:#방송의 날, #세월호, #박근혜, #민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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