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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1학기 성적을 본 엄마는 2학기에는 용돈을 완전히 끊겠다고 선언했다. 울며 겨자먹기로 알바를 시작해야 했다. 이런 내 사정을 알게 된 친구가 인력업체에서 일하는 자신의 이모에게 부탁해 마트 시식 알바를 소개해줬다. 세금 떼고 일당 5만8천원이라기에 바로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받게 된 계약서가 조금 생소했다. 표준 근로계약서가 아니라, '위탁행사계약서'라는 문서가 온 것이다. 계약서 내용을 읽어보니, 나는 그 인력업체에 고용된 게 아니라 그 인력업체와 대등한 지위를 가지는 '사업자'로서 위탁수수료를 받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일반 알바와 달리 고용의 관계가 성립되지 않아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을 수 없고, 취업규칙 및 노동 관련 법률의 보호를 전혀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거기에다가 내가 매출을 제대로 올리지 못할 시 회사에 의해 계약이 파기될 수 있으며, (계약이 파기 되지 않는 한) 내가 매출을 얼마나 올리든 일정하게 6만 원을 받을 수 있고, 거기서 세금도 뗀다고 했다. 얼핏 들어도 부당한 계약이었다. 그러나 어딜 가서 일당 5만8천 원 짜리 알바를 구하겠나 싶어서 결국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위탁행사계약서'를 쓰고 시작한 마트 시식 알바

마트에서 시식알바를 하기 전 업체에서 보내온 위탁행사계약서. 갑과 을은 고용의 관계가 아니라 도급의 관계가 성립된다.
▲ 업체가 보내온 위탁행사계약서 마트에서 시식알바를 하기 전 업체에서 보내온 위탁행사계약서. 갑과 을은 고용의 관계가 아니라 도급의 관계가 성립된다.
ⓒ 알바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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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하게 된 마트 알바는 정말 힘들었다. 마트에 간 첫 날, 나는 정말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한 채 시식 알바를 시작해야만 했다. 시식 알바를 하려면 우선 판매대(매대)가 있어야 한다. 고객들이 음식을 집어먹을 수 있도록 이쑤시개도 마련되어 있어야 하고, 음식을 자를 칼도, 그것을 담을 접시와 도마 등 필요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처음 이 일을 했을 당시 이런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옆에서 일하는, 마트에서 더 오래 일한 '여사님'들 어깨 너머로 배워 눈치껏 해야 했다.

신체적인 고통도 만만치 않았는데, 하루 종일 파인애플을 자르고 썰다 보면 온 손가락이 저려왔다. 단단한 과육을 자르다보니 익숙하지 않은 칼질과 가위질에 손에 굳은살이 생겼고, 날카로운 파인애플 껍질에 찔린 손가락은 독이 올라 퉁퉁 부어올랐다. 그런 손에 물이나 과즙이 묻으면 엄청 쓰리고 따가웠다.

게다가 가끔은 파인애플도 내가 알아서 진열해야 했는데, 그 무거운 박스를 혼자 들어 진열하고 나면 정말 온몸에 힘이 다 빠졌다. 일하다가 날카로운 파인애플 껍질에 다리가 긁히거나 칼에 손이 베이거나 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내 다리는 온통 멍들고 상처가 났다.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 다리가 성한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 다리로 7시간 정도를 내내 서서 일하다 보면, 일을 마치고 집에 갈 때쯤에는 누군가가 몽둥이로 온 몸을 때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육체적 고통보다 참을 수 없는 건 인간적인 모멸감

마트 시식 알바. 파인애플 파는 것도 고된 일이지만, 모욕감은 견디는 일은 더 참기 힘들다.
 마트 시식 알바. 파인애플 파는 것도 고된 일이지만, 모욕감은 견디는 일은 더 참기 힘들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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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이런 육체적 고통은 첫 주가 지나자 조금 나아졌다. 그러나 곧 다른 시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트 내 위계 질서가 바로 그것. 가부장제 유교 질서가 그대로 녹아든 것 같은 마트에서 나이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이의를 제기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한테 까이는 게 당연한 곳이었다.

어떤 합리적 근거나 이성적 논리는 없었다. 힘도 없고 나이도 어리면 욕먹고 성희롱 당하는 게 당연했다. 그게 너무 힘들었다. 어디 가서 하소연 할 곳도 없고…. 다른 사람들은 '어쩔 수 없지' 하고 넘기는데 그렇게 넘기지 못하는 내가 잘못된 건가 싶었다.

하루는 알바를 할 수 없어서 다른 친구가 대신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 내가 서울에 있는 A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라고 소문이 났나 보다. 그때부터 여사님들의 태도가 이상했다.

한 번은 고참 여사님이 "너가 A대라며? 어쩜 공부도 잘 하는 애가 파인애플도 잘 파니?"라며 친한 척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 저는 B대학에 다니는데요"라고 대답을 하니 그 뒤부터는 태도가 싹 달라졌다. 대놓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래, 공부도 못하는데 파인애플이라도 잘 팔아야지."

한 달 전에는 같이 알바를 하는 마트 여사님들에게 아주 큰 수모를 당했다. 파인애플을 자를 때 큰 칼과 작은 칼 두 개를 사용하는데, 큰 칼이 없어 마트 준비실에 있던 것을 가져다 쓴 게 문제가 된 것이다. 별 문제없이 사용한 지 좀 되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허가서' 같은 것을 받아서 사용해야 하는 모양이었다.

여느 때처럼 설거지를 하는 곳에서 큰 칼을 씻고 있는데, 고참 여사님이 씩씩 거리며 들어오더니 나를 향해 소리를 '꽥' 지르면서 "야!! 너 누가 멋대로 칼 가져가래! 내가 이것 찾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라며 욕을 했다. 이어 "공부도 못하는 게 말이야, 머리가 그렇게 멍청해서 되겠어?"라며 고함을 지르고 가는 것이다. 낯이 뜨거워졌고 수치심으로 고개가 숙여졌다. 모기만한 소리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곤 그 자리를 뛰쳐나왔다.

아무리 잘못했더라도 고함을 지르는 것은, 그리고 내가 명문대에 다니지 않는 것을 두고 멍청하다고 한 것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순간 너무 화가 나고 서러웠다. 순간 그 여사님께 반박을 하고 싶은데 머리가 이성적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자존감 떨어뜨리는 진상 고객, 어떻게 존중하죠?

'고객은 무조건 왕이다'라는 마트의 지침도 이해할 수 없었다. 손님의 비이성적인 언어폭력에 가까운 말에도 무조건 '네네' 하며 웃으면서 친절하게 굴어야 한다는 마트의 교육에는 노동자에 대한 배려 따위는 전혀 고려되지 않아 보였다. 심지어 그런 요구에 대한 극복방법이라고 내놓은 것이 '고객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스스로의 자존감을 높이기' 따위였다. 한심하다 못해 우스웠다.

손님의 욕설이 내 자존감을 하락시키는데, 어떻게 스스로의 자존감을 높이며 방어하란 말인가. 그러나 이런 의문을 가지는 것은 그야말로 '채용해줬더니 감히 대들려드는 건방진' 행동이었다. 이런 수직적이고 딱딱한 사고 방식이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우울감이 심해졌다. 몸도 정신도 고되다보니 일상생활도 완전히 망가졌다. 무슨 일을 해도 우울하고, 예민해져서 지나가는 말에도 쉽게 상처 받았다. 무엇보다 내가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다른 일을 구하고 싶지만 다른 곳은 다 최저임금 정도만 주는 터라, 선뜻 그만 둘 수가 없다.

너무 우울했다. 얼른 이 일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집에서 학교까지 매일매일 통학하는 내 입장에서는, 최저임금 5210원을 받는 알바를 하다가는 밥값은커녕 교통비나 겨우 채울 정도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알바노조 조합원입니다.
* 알바노조(02-3144-0936, www.alba.or.kr)



태그:#알바, #마트알바, #알바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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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아르바이트 노동조합. 알바노동자들의 권리 확보를 위해 2013년 7월 25일 설립신고를 내고 8월 6일 공식 출범했다.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인 시급 10,000원으로 인상, 근로기준법의 수준을 높이고 인권이 살아 숨 쉬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알바인권선언 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 http://www.alb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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