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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액션스타 성룡이 한국에서 두발 단속을 당했다. 1970년대 영화 <취권(1978년 작> 촬영을 위해 장발인 상태로 한국에 체류하면서 벌어진 상황으로, 경찰은 성룡의 유창한 한국어 실력 때문에 홍콩 사람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고 한다. 다행이 여권을 보여주고 풀려날 수 있었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 시대는 두발 단속, 즉 장발 단속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군대도 아니고, 시민들의 두발 상태를 왜 국가가 나서서 단속한다니 말이다. 그럼 박정희 정권은 왜 두발 단속을 했을까? 공식적인 이유는 장발이 사회퇴폐 풍조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1960년대 말 국제적으로 6.8혁명(1968년 5월 프랑스에서 시작된 대규모 사회변혁운동. '5월 혁명'이라고도 한다)이 벌어졌고, 베트남전에 대한 반발에 따른 반전 시위도 벌어지고 있었다. 국내에서는 전통의 구속에서 벗어나려는 새로운 풍조인 청년문화가 태동하는 시기였다. 1967년 가수 윤복희가 미니스커트 선보인 이래, 거리는 미니스커트 열풍이 번졌다.

1969년 10월 영국의 세계적인 팝송 가수 클리프 리차드 등 외국 스타들의 한국 공연 이후에는 남자들에게 장발이 유행했다. 미니스커프와 장발은 주류 문화에 저항하면서 새로운 문화, 새로운 시대를 바라는 젊은이들의 열망이 함축돼 있었다. 변혁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집단이 바로 당시 10년 가까이 장기집권하고 있던 박정희 정권이었을 것이다.

특히 군인정신으로 무장된 박정희는 '두발 불량'을 광적으로 싫어했다. 그가 TV를 보다가 장발의 연예인을 지적 하면, 내무부, 문공부, 문교부에서 난리가 나고 방송국에는 바로 불똥이 떨어졌다고 한다. 외국인이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장발 외국인은 공항에서 머리를 깎지 않으면 입국이 불허됐다.

박정희 정부는 1972년 클리프 리처드의 재공연에 대해 그의 장발을 문제 삼아 공연을 불허했다. 장발단속에 대해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유신체제를 공고히 하던 박정희 정권이 이를 들어줄리 없었다. 두발 단속은 더욱 노골적으로 진행됐다. 각 경찰서에 아예 단속 전속반을 만들어 일제 단속에 들어갔다.

정부는 1971년 10월 한 달 동안 퇴폐풍조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장발족, 비밀요정 등을 단속해 5만3천명을 적발했다. 1970년대 당시 경찰은 한 손에 미니스커트 길이를 재는 자와 장발족을 보면 바로 깎아 버릴 수 있도록 가위를 들고 다녔다. 나중에는 일명 '바리깡'으로 머리 한 가운데 고속도로를 냈다. 이런 처분에 저항하면 즉결 심판에 넘겨져 벌금을 내야 했다.

심지어 머리 깎기를 거부한 예비군은 구속되는 일까지 있었다. 예비군도 전력강화를 위해서 용모가 단정해야 한다는 것으로, 동원예비군은 현역장교 기준으로 두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 정권의 지침이다. 사실 이건 국민을 국민이 아닌 하나의 병사로 보는 광기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모호한 단속 기준에 대한 사회적 비판의식은 여전했다. 더욱이 장발을 유지하는 것이 저항 아닌 저항의 문화로 인식 되는 경향도 있었다. 1975년 개봉한 우리 영화 <바보들의 행진>을 보면, 거리는 장발족이 넘쳐난다. 영화에서는 심지어 이를 단속하는 경찰마저도 장발을 하고 있다. 실제 유신독재 말기인 1970년대 말 장발을 단속하는 경찰이 장발을 하고 있어 경찰서장이 호통을 쳤다는 기사도 볼 수 있다.(경향신문 1971.1.12)

시민의 개별성이 철저히 무시된 독재 시대가 바로 박정희 정권이었다. '두발' 단속은 박정희가 죽고 난 뒤 1980년에 중단됐다. 그로부터 30년이 넘게 지난 현재, 이번에는 정권이 국민의 '두 발'을 단속하고 있다. 청와대 민원을 제기하러 가는 사람을 경찰이 나서서 막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은 아무런 제지 없이 통과되는데, 정작 우리 국민들은 막혀서 못 가는 일이 거듭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자식 잃은 고통을 호소하는 세월호 유가족의 '두 발'을 막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대통령 스스로가 국가를 대개조하겠다고 약속했고, 유가족에게 언제든 만나러 오라고 했음에도 경찰은 유가족을 막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사회는 '두발자유화'도 필요하지만, '두 발 자유화'가 지금은 더 절실한 것 같다. '두 발 자유화'가 절실한 걸 보면, 박근혜 정권도 박정희 정권 못지않은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blog.naver.com/ecocinema)에도 올립니다.



태그:#두발 단속, #박정희, #세월호,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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