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올해 행사에 대해 설명하는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집행위원장

2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올해 행사에 대해 설명하는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집행위원장 ⓒ BIFF


19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 10월 2일~ 11일)가 지난 2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올해의 주요 상영작을 공개했다. 상영작은 79개국 314편으로 지난해 70개국 299편보다 늘어났다. 대만 영화 <군중낙원>이 개막작, 홍콩영화 <갱스터의 월급날>이 폐막작으로 각각 선정돼 개·폐막작이 모두 중화권 작품들로 구성됐다.

이에 대해 이용관 위원장은 "개막작 선정은 일찍 완료됐고, 여러 프로그래머들의 의견을 수렴해 폐막작을 선정했다"며 "좋은 영화를 골랐을 뿐 특정지역을 배려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영화제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영화들이 선보인다. 세계 각국에서 골라온 영화들은 풍성한 영화 축제를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 유명 감독과 배우들이 부산을 방문하고 다양한 행사들이 예정돼 있지만, 올해 특징적인 부분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세월호 참사 관련 영화로 가장 먼저 완성된 다큐멘터리 <다이빙벨>과 대형마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에 맞서 싸우는 과정을 담은 영화 <카트>, 한국영화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으나 대표적 원로 보수영화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정진우 감독 회고전이다. 적절한 시의성을 엿보이면서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을 조명하고 신구영화계의 화합을 이루고자 하는 영화제의 의지가 두 편의 영화와 한 감독의 특별전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2년 연속 이란 감독이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을 맡는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지난해 락산 바니에테마드 감독에 이어 올해는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이 심사위원장을 맡게 됐다. 아시아 국가들 중 같은 나라 영화인을 연이어 심사위원장으로 선정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란은 정치적 환경으로 인해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제약을 받고 있는 상태다. 한국과 비슷하게 영화인들이 저항의 중심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하다.

해외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이란의 대표 감독 모흐센 마흐발바프는 부산영화제의 도움으로 신작을 완성했다. 민중봉기로 도망자 신분이 된 독재자의 말로를 그린 <대통령>인데, 거장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갈라 프레젠테이션에서 선보인다. 영화의 내용도 주목할 만하지만 이들을 챙기고 지원하는 부산영화제의 행보도 의미 있게 보인다.

<다이빙벨>과 <트랙 143>, 세월호 참사 잊지 않겠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의 한 장면

세월호 참사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의 한 장면 ⓒ BIFF


세월호는 올해 한국 사회를 강타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다. 4개월이 넘었지만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여러 대의 다큐 카메라가 현장을 지키고 있는 상태에서 처음으로 완성된 <다이빙벨>이 부산영화제를 통해 첫 선을 보이는 것은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제목처럼 '다이빙벨'에 초점을 맞췄다. 사고 이후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다이빙벨 투입을 둘러싼 진실을 밝힌다. 희망의 끈으로서 진실의 벨이 되길 바랐던 다이빙벨이 정부와 언론에 의해 왜곡되고 해체되는 과정을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으로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기대되는 작품이다.

하지만 영화의 궁극적인 내용은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에 맞춰져 있다.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해 각계각층의 단식농성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세월호 관련 영화가 부산에서 공개되는 것은 각별하다.

<다이빙벨>은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의 첫 감독 데뷔작으로, 다큐 저널리스트이기도 한 안해룡 감독이 공동연출을 맡았다. 부산영화제 직후 개봉을 계획하고 있어 세월호 관련 다큐의 물꼬를 튼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실상을 국제적으로 알리겠다는 다큐 진영의 첫 산물이다.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는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페이스북 이미지.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는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페이스북 이미지. ⓒ BIFF


'아시아 영화의 창' 섹션에서 상영될 이란의 신인감독 나르제스 압야르의 <트랙 143>도 세월호 참사와 맞닿아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전쟁터에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를 담고 있다. 라디오에서 포로로 잡힌 이란군 병사들의 이름을 불러주기 때문에 밤낮으로 라디오를 허리춤에 차고 무려 17년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이야기다.

작품을 선정한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트랙 143>에 대해 "칸 영화제에서 처음 봤을 때, 그야말로 심장을 요동치게 만든 영화"라고 말했다. 이어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위안이 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관객들이 슬픔과 고통을 함께 기억하게 하는 역할은 하리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세월호 피해 유가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잊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잊지 말자'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부산영화제의 페이스북 대표 이미지가 여전히 세월호 노란리본이라는 점도 올해 영화제에 임하는 부산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광화문에서 세월호 특별법을 요구하는 영화인들의 릴레이 단식 농성이 이어지고 있어, 올해 부산영화제 역시 영화인들이 퍼포먼스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란의 모흐센 마흐발바프 감독은 지난 8월 한국을 잠시 방문했을 때 광화문을 찾아 농성중인 영화인들과 유가족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사회적 약자에 관심...제2의 <파업전야>로 기대되는 <카트>

 영화 <카트>의 한 장면

영화 <카트>의 한 장면 ⓒ 명필름


올해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영화는 <카트>다. 대형마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이야기로, 수년 전 사회적 이슈로 부각됐던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모티브로 했다. 서울 시내 중심에서도 비정규직 농성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부산영화제를 통해 국내에서 첫 공개된다는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

1990년대 한국 독립영화의 대표작 흥행작 <파업전야>를 만든 명필름의 이은 대표가 제작자로 나섰기에 제2의 <파업전야>라는 기대감도 있는 작품이다. 2011년 <부러진 화살>과 지난해 <또 하나의 약속>에 이어 사회적 약자들을 그린 영화들이 부산에서 주목받는 전통을 이어가게 됐다.

<카트>는 일반 상영관이 아닌 가장 좌석이 많은 야외극장에서 상영된다. 그만큼 재미와 대중성이 있는 영화임을 영화제가 보장하고 있다는 의미다. 부산영화제에 앞서 4일 개막하는 캐나다 토론토영화제에서 먼저 상영된 <카트>는 11월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부산영화제에서 사회적인 문제를 다룬 작품들은 주로 다큐멘터리와 단편 등을 모아 놓은 '와이드앵글' 섹션에 집중돼 있다. 이 시대 불안과 공포의 징후를 감독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와 결합해 실험적으로 구성한 <붕괴>는 문정현 감독과 젊은 여성감독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원우 감독이 함께 만들었다.

지난해 제주 4.3을 주제로 한 <비념>을 공개했던 임흥순 감독의 신작 <위로공단>은 평화시장 봉제노동자 신순애부터 한진중공업 김진숙까지, 196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한국 여성노동운동사를 인터뷰와 공간, 미술의 조합을 통해 재구성한 작품이다.

<그라운드의 이방인>은 재일동포 야구선수들을 통해 우리가 몰랐던 한국 야구 역사를 이야기 하는 영화다. 2007년 개봉해 크게 흥행했던 다큐멘터리 <우리학교> 김명준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후쿠시마의 자장가>는 쓰나미에 이어진 원전누출 사고현장을 카메라에 담던 다큐멘터리 감독이 뒤늦게 자신이 임신 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스스로를 카메라에 담은 영화다. 노후화 된 고리 원전 안전문제가 이슈화 되고 있는 부산의 지역 현실에서 의미심장에게 다가서는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영화뿐만 아닌 시의성 있는 주제로 한 학술 행사도 준비돼 있다. 영화평론가협회가 주관하는 '영화심의기구의 민간 자율화와 그 해법' 포럼이 눈에 띤다. 영화계 현안에 대해 깊이 있는 토론과 의제 설정을 주도하고 있는 영화평론가협회 행사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 평론가협회 관계자는 이 자리에서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 문제에 대해 공개적인 문제제기를 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영화계 신구세대 화합을 위한 정진우 감독 회고전

 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회고전을 갖는 정진우 감독

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회고전을 갖는 정진우 감독 ⓒ BIFF


정진우 감독의 특별전은 사회적 현안에 반응하는 부산의 모습과는 조금 각도를 달리하는 부분이다. 정진우 감독이 보수 원로 진영의 대표적인 인사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영화사에서 그가 갖는 의미는 상당히 크다. 정진우 감독은 1960~7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으로서 총천연색 영화를 처음 만들었다. 따라서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늦은 회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젊은 영화평론가는 "작품으로만 따질 때 한국 영화에서 크게 평가받아야 할 분"이라고 말했다.

정진우 감독의 회고전은 영화계가 진보와 보수로 구분돼 신구세대간 갈등이 있는 데 대해 화합을 도모하는 목적도 내포돼 있다. 이용관 위원장은 "감독님에 대한 음양과 공과가 있지만 치유하고 화합하고 봉합해서 크게 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며, 이번 회고전을 통해 영화계의 세대 간 갈등이 조금이나마 해소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타냈다.

보수원로진영 인사들에 대한 비리와 횡령 등 각종 추문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정진우 감독은 거리가 있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춘사영화상도 올해부터는 정진우 감독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영화감독협회가 주관하면서 정상화 됐다, 공정성이나 영화상 운영에 대한 각종 의혹이 사라진 것이다.  

올해 특별전은 102번째 영화 <화장>을 공개하는 임권택 감독과도 맞닿은 부분이 있다. 회고전에 상영되는 정진우 감독의 <자녀목>이 1985년 베니스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진출했는데, 2년 뒤인 1987년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 때문에 당시 <자녀목>이 <씨받이> 수상의 길을 닦아놨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임권택 감독의 <화장>은 지난달 27일 개막한 베니스영화제에서 먼저 상영된다.

 2일 부산국제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올해 특징으르 설명하고 있는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

2일 부산국제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올해 특징으르 설명하고 있는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 ⓒ BIFF


정진우 감독의 회고전 외에 터키 특별전이나 우리에게는 그루지야가 더 익숙한 이름의 조지아 특별전 역시 부산영화제가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다. 영화제 관계자는 "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영화제의 영역을 확장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특별전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밖에 올해 개·폐막식 관객 수를 1000석 늘린 것은 관객들에게 더 다가가려는 부산영화제의 노력으로 평가된다. 개·폐막식 좌석을 주로 초청된 인사들에게 할당하는 과정에서 관객들이 상대적으로 소외당하는 현실이었으나, 초청을 줄이고 대신 관객 배려를 결정한 것이다. 덕분에 치열한 예매 전쟁에서 다소 숨통이 트일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어린이 관객들에 대한 배려도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 영화제 측은 와이드앵글 작품 중 다섯 편의 영화를 선정해 상영하고, 씨네키즈 상영을 통해서는 자막을 읽기 힘든 어린이들을 위해 읽어주는 자막을 준비했다. 내년에 하나로 통합할 예정인 부산어린이영화제와 부산국제단편영화제 등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읽힌다.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양영철 집행위원장은 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 심사위원으로 선정됐다.

부산국제영화제 카트 세월호 비정규직 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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