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가을 소나타>에서 에바를 연기하는 서은경과 샬롯을 연기하는 손숙.

연극 <가을 소나타>에서 에바를 연기하는 서은경과 샬롯을 연기하는 손숙. ⓒ 신시컴퍼니


<가을 소나타>는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이 연출한 잉그리드 버그만의 유작 영화를 연극으로 만든 작품이다.

배우 서은경이 연기하는 에바는 어릴 적부터 엄마에게 충분한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주부다. 40여년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엄마 샬롯에게 섭섭했던 부분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을 담력도 없지만, 에바는 술기운을 빌려 평생 엄마에게 맺힌 상처를 일갈하고 터트리기에 이른다.

세월이 지나면 육체의 상처는 아물지만 마음의 상처는 트라우마로 남은 탓이다. <가을 소나타>에서는 엄마와 딸이라는 따스한 관계 안에 숨겨진 아픈 상처가 곪을 대로 곪다가 샬롯이 딸의 집을 방문했을 때 터지는 파열음을 무대 안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숫기 없었지만 연극 무대에서 자유로움 느꼈다"

- 극 중 남편 빅토르는 여주인공 에바와 20살 차이가 난다.
"에바는 어릴 적 많은 시간을 보낸 아버지에게 의지하며, 아버지의 외롭고 힘든 모습을 보고 자랐다. 에바를 위로해주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아버지는 마음속에 특별한 존재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어머니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 걸 아버지에게 받는 애정결핍의 인물이 에바다.

저도 남자를 볼 때 편안하고 친구가 되어줄 것 같은 남자보다 아버지 같은 느낌이 나는 남자를 선호한다. 친구들 가운데서도 어른답게 의젓한 친구를 만날 때 무의식 중에 편안해지는 게 있다. 에바는 남편 빅토르를 통해 아버지처럼 보호받는 느낌을 받는다."

- 에바는 엄마 샬롯에 대해 마음의 응어리가 있다. 결혼하기 전에 응어리를 엄마에게 솔직히 털어놓는 게 좋지 않았을까.
"결혼하기 전에는 엄마에게 속내를 털어놓을 기회나 용기가 없었을 것 같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서 정신적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샬롯과 에바는 자라나지 않고 어릴 적 엄마와 딸의 관계로 그대로 남았다. 극 중에서도 7년이 지나서야 엄마에게 마음의 응어리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에바가 술기운을 빌리지 않았다면 마음의 응어리를 털어놓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털어놓는 가운데서도 에바는 엄마 샬롯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다. 에바가 샬롯에게 마음의 응어리를 털어놓기 전에 이미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에바는 아들을 잃고, 엄마 샬롯은 음악적 동지 레오나르도를 잃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공감대가 모녀 사이에 형성된 거다."

서은경  '이 장면에서는 웃어주고, 저 장면에서는 눈물을 보여야지' 하는 계산된 연기보다는 몸이 기억하는 연기가 있을 테니 해보자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우는 연기를 하려고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니라 저절로 눈물이 흐른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 서은경 '이 장면에서는 웃어주고, 저 장면에서는 눈물을 보여야지' 하는 계산된 연기보다는 몸이 기억하는 연기가 있을 테니 해보자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우는 연기를 하려고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니라 저절로 눈물이 흐른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 신시컴퍼니


- 커튼콜 때 눈가가 벌겋게 달아오른 게 눈에 띄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연기의 틀을 없애는 것 같다. 계원예고를 나온 후부터 연기를 계속 해서 연기만 20년 이상 했다. 어릴 적에는 반드시 이렇게 연기해야 한다는 연기에 대한 틀이 있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로에서 공연할 때 많은 연출가를 만났는데 그때마다 연기를 요구하는 스타일이 모두 달랐다. 학교 다닐 때에는 등을 보이면 안 되고 얼굴도 가리면 안 된다고 연기를 배웠다.

하지만 대학로에서 연기하면서 제가 연기적으로 알고 있던 부분이 하나씩 깨지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남아있는 것 중의 하나는 연기에 대한 진실이다. 학생 때에는 테크닉이 뛰어난 배우의 연기를 대단하다고 감탄하며 보았다. 하지만 계속 공연하며 느낀 건, 배우가 진실한 연기를 할 때 감동이 온다는 것이다.

슬픈 연기를 할 때 배우가 정말로 슬픔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않고 연기하면 객석에도 슬픔을 전달할 수 없다. '이 장면에서는 웃어주고, 저 장면에서는 눈물을 보여야지' 하는 계산된 연기보다는 몸이 기억하는 연기가 있을 테니 해보자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우는 연기를 하려고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니라 저절로 눈물이 흐른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서은경 "19살에 드라마에 혜성같은 신인이 나타났으니 신기했던 거다. 연예가에서 대서특필된 후 밥을 먹으러 거리로 나갔을 때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는 게 좋지만은 않았다. 당시 드라마를 계기로 방송가에 계속 있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인생이 펼쳐졌을 테지만 평생을 연극하며 살고 싶었다."

▲ 서은경 "19살에 드라마에 혜성같은 신인이 나타났으니 신기했던 거다. 연예가에서 대서특필된 후 밥을 먹으러 거리로 나갔을 때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는 게 좋지만은 않았다. 당시 드라마를 계기로 방송가에 계속 있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인생이 펼쳐졌을 테지만 평생을 연극하며 살고 싶었다." ⓒ 신시컴퍼니


- 방송에도 출연한 적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학교 다닐 때에는 숫기가 너무 없었다. 오죽하면 유치원생 때 앞에 나가서 노래를 부르지 못해서 유치원에 나가지 않을 정도였다. 발표라는 걸 도통 한 적이 없었지만 연극 무대를 통해 저 자신이 자유로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계원여고 다닐 때부터 평생 연극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계원여고 시절 많은 매니저에게 러브콜을 받을 때 연극을 위해 방송 활동이 필요하면 하겠지만 방송을 위해 연극이 소홀해지면 안 된다는 소신을 항상 이야기했다. 고3 때, 숱한 배우들이 출연하고 싶어 하던 드라마가 있었는데, 매니저 언니가 저를 출연시키기 위해 오디션을 보게 했고 바로 합격했다.

매니저 언니가 오디션이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저를 데리고 가서 덜컥 붙은 거다. 당시 그 장소에 있었던 사람들이 엄청나게 긴장하고 있어서 오디션하는 장소라는 걸 알 수 있었다. 1회가 방송되었을 때 드라마의 새로운 샛별이 떴다고 연예가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19살에 드라마에 혜성같은 신인이 나타났으니 신기했던 거다. 연예가에서 대서특필된 후 밥을 먹으러 거리로 나갔을 때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는 게 좋지만은 않았다. 당시 드라마를 계기로 방송가에 계속 있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인생이 펼쳐졌을 테지만 평생을 연극하며 살고 싶었다.

드라마 두 번 촬영하고 제가 갑자기 안 한다고 하면 큰 방송 사고가 나니 대타를 구하라고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이러다가는 계속 방송해야겠다 싶어서 (방송에 나오지 않으려고) 삭발에 가깝게 머리를 커트하고는 대학 시험을 준비해서 중앙대로 진학했다.

사람은 오래 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명품 옷을 걸치고 외제차를 끌고 다니며 유명해지는 것보다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을지언정 마지막에 당당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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