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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대통령 퇴진 주장을 '중대한 범죄'로 취급하는 나라가 될 모양이다. '멘붕'이다. 교육부는 4·16 세월호 참사 교사선언과 조퇴투쟁을 주도한 혐의로 김정훈 전국교직원노동조합(아래 전교조) 위원장과 이영주 수석부위원장, 서울 상도중학교의 이민숙 교사 등을 고발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해 검찰과 경찰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사안의 중대성과 재범가능성,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 등을 청구 근거로 들었다고 한다.

신체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인신구속은 국민 기본권 문제와 직결된다.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최후의 수사 수단으로 활용되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도 검찰은 이들 세 명의 피고발인들을 구속 수사해야 한다며 칼을 벼리고 있다. 지금껏 경찰 출석요구와 조사에 성실하게 임했는데도 말이다.

김정훈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위원장이 지난 7월 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사무실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2차 교사선언 기자회견'에 회견문을 읽고 있다.
▲ 김정훈 전교조 위원장 "무능한 정부에 분보하지 않을 수 없다" 김정훈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위원장이 지난 7월 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사무실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2차 교사선언 기자회견'에 회견문을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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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영장 청구 근거, 납득하기 어려워

지난 8월 30일 전교조가 낸 성명서에 따르면 전교조 전임자와 교사들은 총 20여 일에 걸쳐 종로경찰서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7월 28일 김정훈 위원장을 시작으로 8월 18일까지 중앙집행위원과 본부·서울지부 전임자 37명의 조사가 마무리되었다. 청와대 게시판 글과 관련된 6명의 조사도 지난 8월 11일에 완료되었다. 도대체 이 과정 어디에서 구속해야 할 불가피한 사유가 발생했는가.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근거는 납득하기 어렵다. 검찰은 교사선언과 조퇴투쟁 등에서 나온 대통령 퇴진 주장을 중대한 범죄로 보고 있는 듯하다.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도 사전구속영장 청구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전교조는 이미 지난 몇 번의 먼지털이식 압수수색으로 인멸할 증거도 전혀 없다. 신분과 지위가 확실한 6만 조직의 수장이 도주하여 사태를 악화시킬 이유도 없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가 일반적인 논리와 사리에 두루 맞지 않는 이유다.

검찰의 이번 구속영장 청구는 지금까지 전교조를 향해 수차례 행해져 온 부당한 탄압 중 하나다. 구속영장을 청구할 만한 납득할 만한 이유나 배경을 찾기가 어렵다. 시국선언과 관련한 대법원 판례는 벌금형에 불과하다. 이번 사안은 구속영장청구 요건에 맞지 않는다. 지난 2009년 교사시국선언도 불구속 기소에 그쳤다. 이번 구속영장 청구를 전교조 탄압과 분쇄를 위한 표적 수사의 일환으로 해석할만한 방증들이다.

4·16 세월호 사건은 전무후무한 학생 참사였다. 교사는 학생을 가르치는 공교육의 한 주체다. 그런 교사들이 비극적인 학생 참사에 가슴 아파하고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세월호 교사선언은, 교사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공적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서의 신념과 양심을 담은 고백문으로 볼 수 있다. 범죄 성립의 사유가 될 수 없다.

검찰은 교사들이 대통령 퇴진 의견을 밝힌 것을 중대한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국가공무원법상의 정치 중립 조항을 어겼다는 이유에서다. 이 또한 납득하기 힘들다.

교사는 국민의 하나다. 국민은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이다. 주권자인 국민은 원칙적으로 표현의 기본권을 보장받는다. 여기에는 대통령 퇴진 주장도 포함된다. 대통령은 지고한 절대존재가 아니다. 정책적으로 실기를 범할 수 있다. 상황을 판단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과정에서 국민과 얼마든지 충돌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국민은 대통령을 비판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7시간 미스터리' 의혹에 휩싸여 있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지난 4월 16일, 박 대통령은 청와대 경내에 있으면서 서면과 유선으로 모두 21차례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보고를 받고 적절한 지시를 내렸다고 하지만 석연찮은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진도 팽목항 앞바다에서는 300명의 목숨이 수장되고 있었다. 대통령은 얼굴을 전혀 드러내지 않은 채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렸다. '상식적'인 상황이라고 볼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대통령이 제 할 일을 하지 않았다며 퇴진하라는 비판이 나온 배경 중 하나다. 대통령 퇴진 주장에 대해 중대 범죄 운운하는 검찰의 논리는 헛웃음을 짓게 만든다.

법원이 정부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통보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교육부와 전교조와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7월 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사무실에서 조합원들이 분주히 업무를 보고 있다.
▲ 긴장감 도는 전교조 사무실 법원이 정부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통보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교육부와 전교조와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7월 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사무실에서 조합원들이 분주히 업무를 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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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중립 강요야말로 정치적이다

검찰과 경찰은 정치 중립 의무라는 올가미로 교사의 입을 틀어막으려 하고 있는 듯하다. 이를 위해 검·경이 꺼내든 카드는 사전구속영장 청구라는 위압적 '퍼포먼스'다. 이를 통해 교사들로 하여금 정치성을 자기검열하게 만든다. 이들의 정치적 표현을 최소화시키려는 의도다.

무모하고 비논리적이다. 교육은 지식과 도덕을 다룬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은 본질상 보수적이다. 도덕은 더욱 그렇다. 과거의 지적 유산을 총망라해 놓은 교과서를 보라. 교육과정에 간단없이 출몰하는 도덕 규범과 윤리의 언어들을 보라. 지식과 도덕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모든 교육은 보수적이다. 그러므로 정치적이다. 보수를 진보와 더불어 우리의 정치성을 판별하는 최소한의 잣대로 본다면 말이다. 정치성은 교육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흔히 교육은 정치 중립적이어야 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 정치 중립조차도 정치적이다. 다수의 정치 세력이 격돌하는 현실 세계에서 비정치적 것이 때로는 가장 적극적인 정치성의 표현인 것처럼, 무색무취의 정치 중립 역시 권력과 권력자에 복무하는 가장 비겁한 정치적 태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사들의 세월호 선언과 조퇴투쟁은 평화적인 호소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 전문가이자 양심적인 지식인의 하나로서 마땅히 해야할 사회적 책무다. 세월호 선언과 조퇴투쟁에 참여한 그 모든 전교조 교사들이 이런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미국 흑인 민권운동의 이정표가 된 1964년의 '프리덤 섬머(Freedom Summer)'를 기획한 밥 모지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가 여기 온 건 우리의 도덕성에 정치를 입히려는 게 아니라 우리 정치에 도덕성을 입히기 위해서입니다."

대한민국 검찰이 음모와 술수가 판치는 우리 정치에 참된 도덕성을 입히는 데 일조하기를 바란다. 나는 우리나라 사법부 또한 우리 정치에 도덕성의 찬란한 옷을 입히는 데 큰 구실을 담당했으면 좋겠다. 그것은 아마도 양심적인 세 명의 교사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하는 일로부터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은균 기자의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전교조, #김정훈 위원장, #이영주 수석부위원장, #서울 상도중학교 이민숙 교사, #사전구속영장 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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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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