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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성에 귀농인 체험학교를 개설한 귀농인 정재근씨. 7년 전 자신이 귀농하면서 마을 어르신들한테서 받은 은혜를 되돌려주기 위해 체험학교를 개설했다고 했다.
 전남 장성에 귀농인 체험학교를 개설한 귀농인 정재근씨. 7년 전 자신이 귀농하면서 마을 어르신들한테서 받은 은혜를 되돌려주기 위해 체험학교를 개설했다고 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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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캠프가 되면 좋겠어요. 등산을 하려는 사람들의 캠프처럼요. 귀농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근거지죠. 여기 와서 며칠이든 몇 달이든 머물면서 직접 농사를 체험해보고 결정을 하라는 거죠."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에 귀농인 체험학교를 연 정재근(57)씨의 말이다. 체험학교 개설에 행정기관의 도움도 받지 않았다. 순수하게 자신의 부담으로 5000㎡ 부지에 귀농인 체험용 하우스를 설치했다. 이름도 '풀향기 귀농인 체험학교'로 붙였다.

정씨는 귀농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기서 머물며 먹고 잘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농사기술도 직접 가르쳐 줄 생각이다. 농촌과 농사를 직접 체험해 본 예비 귀농인들이 농촌에 무사히 뿌리내리도록 도와주는데 목적이 있다.

"도시에서 살던 사람들이 내려오려면 힘들어요. 막연하기도 하고요. 누구보다도 제가 그 어려움을 잘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돕겠다는 거죠. 그 분들이 성공적으로 농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이요. 그걸로 족합니다. 다른 뜻은 없어요."

정재근 씨가 귀농인들의 터전으로 만들기 위해 정비한 토지. 지난 2월의 모습이다. 지금은 이 자리에 비닐하우스가 들어서 있다.
 정재근 씨가 귀농인들의 터전으로 만들기 위해 정비한 토지. 지난 2월의 모습이다. 지금은 이 자리에 비닐하우스가 들어서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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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의 귀농인 지원은 체험학교 개설이 전부가 아니다. 벌써 여러 해 전부터 귀농인 체험장을 운영해 왔다. 자신이 농촌에 정착하면서 마을 어르신들에게 받았던 도움에 보답하자는 생각에서였다. 시쳇말로 예비 귀농인들에게 '비빌 언덕'이 돼준 셈이다.

정씨의 도움을 받아서 농촌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귀농인이 벌써 20여 명에 이른다. 그들은 대부분 억대 부농의 길에 들어섰다. 지금도 귀농을 꿈꾸며 그의 하우스에서 땀 흘리고 있는 도시민도 여럿이다.

"귀농인들은 대부분 농사지을 기반이 없어요. 땅도 없죠. 집도 없죠. 그렇다고 무턱대고 땅을 사고 집을 지을 수도 없잖아요. 그 사람들이 기반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거죠. 농사법도 가르쳐주고요. 필요하면 보증이라도 서줘야죠."

정씨는 예비 귀농인들에게 '선생님'으로 통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농사법은 물론 생활습관까지도 관여를 한다. 잔소리가 많은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듣는 사람들이 전혀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 정씨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다.

정재근 씨가 운영하고 있는 풀향기미술학교 내부 모습. 장애인 친구들이 와서 미술을 즐기는 공간이다. 정씨의 시설하우스 옆에 있다.
 정재근 씨가 운영하고 있는 풀향기미술학교 내부 모습. 장애인 친구들이 와서 미술을 즐기는 공간이다. 정씨의 시설하우스 옆에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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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듯하죠. 온갖 잔소리 다 참고 땀 흘리며 일하는 모습이 고마울 뿐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 사람들이 농촌에 정착하면 제 보람이고요. 일은 힘들지만 모두가 형님 동생처럼 아들 잘 지내고 있어요."

정씨는 이들에게 틈나는 대로 영업전략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고품질 농산물 생산 못지않게 중요한 게 판로 개척이라는 판단에서다. 작업일지도 꼬박꼬박 작성할 것을 당부한다. 그 자료가 쌓이면 자기만의 농사기술이 되기 때문이다.

정씨는 사회적 농업의 필요성도 역설한다. 소비자와 늘 공유하고 공감하면서 농사를 짓자는 취지에서다. 수익의 일부분을 떼어내 사회사업에 써야한다는 것도 강조하고 있다.

"오갈 데 없는 빈털터리였죠. 그때 우리 마을의 어르신들이 도와주셨어요. 저에게 비빌 언덕이 돼주신 거죠. 이제는 제가 그 역할을 하려고요. 어르신들이 저한테 베풀어 준 고마움에 조금이라도 보답을 해야죠."

정씨가 귀농인 체험학교를 만든 이유다.

그는 지금 시설 하우스에서 딸기를 재배하고 있다. 한쪽에 컨테이너를 가져다놓고 풀향기미술관도 차렸다. 여기서 장애인들에게 미술을 가르쳐준다.

"제가 지닌 재주가 그것밖에 없어요. 농사하고 미술이요. 이걸로 도움을 줄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나누면서 같이 웃고 산다는 게 행복이고요. 언제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시설하우스에서 딸기의 모종상태를 살피고 있는 정재근씨 부부. 지난 2월에 찍은 것이다.
 시설하우스에서 딸기의 모종상태를 살피고 있는 정재근씨 부부. 지난 2월에 찍은 것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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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의 삶은 곡절이 컸다. 한때는 미술사업가로 살면서 돈을 많이 벌었다. 부도가 나면서 경제사범도 돼 봤다. 복역하고 나와서 피붙이 하나 없던 고향 장성으로 내려왔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한동안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자살도 시도했다. 그때 한쪽 눈을 잃었다. 마음을 다잡고 새벽마다 마을청소를 했다. 낮에는 농사기술을 익히러 다녔다. 그러다가 마을 어르신들의 도움으로 농사를 시작했다. 마을에 배정된 지원사업도 받았다.

7년 전이었다. 정씨는 그날부터 하우스에서 먹고 자며 부지런히 농사를 지었다. 다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수익금의 일정부분을 떼어내 형편이 어려운 이웃도 도왔다. 재능 기부를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미술교육을 하고 양로원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도 했다. 장애인단체와 요양원을 돕고 공동모금회를 통해 기부를 한 것도 다반사다.

지금은 '성공한 귀농인'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귀농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한 달에 몇 번씩 전국을 돌아다니며 강연도 나간다. 귀농 성공사례를 얘기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터에 귀농인 체험학교를 만든 것도 이의 일환이다.

서울에서 미술사업가로 살다가 우여곡절 끝에 전남 장성으로 귀농한 정재근씨. 지금은 예비 귀농인들의 길라잡이를 하며 귀농 전도사로 살고 있다.
 서울에서 미술사업가로 살다가 우여곡절 끝에 전남 장성으로 귀농한 정재근씨. 지금은 예비 귀농인들의 길라잡이를 하며 귀농 전도사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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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정재근, #풀향기귀농인체험학교, #풀향기미술학교, #귀농, #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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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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