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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릴러의 사전적 정의는 이러하다. '관객이나 독자에게 공포감을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만든 연극·영화'. 스릴러의 미덕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 혹은 온몸의 털을 쭈뼛 세우는 긴장감에 있다. 연극 '도둑맞은 책'은 그러한 스릴러적 함량에선 조금 아쉽지만, 묘한 매력을 가진 작품이다.

연극 '도둑맞은 책'은 2011년 대한민국 스토리공모대전을 수상했던 시나리오를 원작으로 한다. 이야기는 저명한 작가 서동윤이 그의 제자였던 조영락에게 납치되면서 시작된다. 영락은 '슬럼프에 빠진 작가가 살인을 하고 작품을 훔친다'를 주제로 그에게 시나리오를 쓰게 한다. 이유도 없이 갇힌 동윤은 영락의 제안에 따라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하고, 이야기는 한 유명 작가의 배신과 탐욕에 관한 이야기로 완성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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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 치열하게 호흡하는 두 명의 배우

소극장 무대에는 '동윤'과 '영락'만이 존재한다. 공간도 넓지 않다. 지하실을 작업실처럼 꾸며놓은 원 세트뿐이다. 작업실은 결핍을 채우는 공간이다. '동윤'에게 이곳은 그동안 진심으로 몰두할 수 없었던 '글쓰기'를 할 수 있게 된 곳이고, '영락'에게는 그가 동윤에게 빼앗겼던 것들에 대한 복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쉴 틈 없이 오가는 대사들, 퉁기고 퉁겨져 나가는 시선들은 단 두 명의 배우에 의해서만 빼곡하게 그려진다.

무대에 오른 두 명의 배우는 치열하게 연기한다. '동윤' 역은 많은 시간 휠체어에 묶여 있기 때문에 갈등을 유발하는 인자는 대사뿐이다. 두 배우는 쉴 새 없이 말을 던지고, 받고, 밀어내고, 뱉어내며 복잡한 감정들을 연기한다. 무대에서 격렬하게 뒤섞이는 두 배우의 에너지는 이야기를 몰아붙이는 동력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 동력은 꽤 강력하게 작품의 오묘한 매력을 배가시킨다.

DOWN↓ 너무나 익숙한 장치들

작품은 시작과 동시에 '왜?'라는 물음을 던진다. '왜 영락은 동윤을 가두었을까', '그는 왜 동윤에게 시나리오를 쓰게 한 것일까', '둘 사이의 관계는 무엇일까'. 작품은 두 사람의 관계를 역추적하며 그들의 과거와 진실을 서서히 드러낸다.

연극 '도둑맞은 책'은 '왜'라는 질문이 주는 초반부의 추동력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한다. '왜'라는 물음은 '키'다. 관객들은 그 키를 갖고 일련의 복선들을 통해 이야기를 따라간다. 연극 '도둑맞은 책'은 '왜'라는 질문을 열쇠 구멍이 맞춰 잘 끼워 넣지만, 여는 데에서 조금 머뭇거린다. 이야기의 각 지점을 장식하는 반전, 복선, 수사적 장치들이 너무 뻔해서다. 관객은 극중극으로 펼쳐지는 시나리오와 시나리오 바깥 인물들의 공통점을 찾다 보면 금세 결말에 도달하게 된다. 쉽게 쥐어진 결말은 허탈감만이 들락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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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 영상 일러스트를 활용한 연출

연극 '도둑맞은 책'은 연극 '필로우맨', '날 보러 와요' 등의 변정주가 연출을 맡았다. 그는 연극 '필로우맨'에서 효과적인 영상 연출을 이미 한 차례 보여준 바 있다. 이번 공연도 일러스트 영상을 활용한 연출이 돋보인다.

영상은 '동윤'과 '영락'이 시나리오 속 인물을 연기할 때 사용된다. 스크린에는 장면을 묘사한 일러스트가 흘러나오고, 무대 위에는 배우들이 시나리오 속 인물들을 연기한다. 텅 빈 일러스트 속의 얼굴과 묘하게 겹쳐지는 배우들의 표정은 자연스럽게 관객을 극 속으로 끌어들인다. 스크린과 무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지는 상황은 보는 재미를 더한다. 일러스트는 실제 이 작품에 출연 중인 배우 정순원이 그린 것이다.

DOWN↓ 스릴러의 한 방

연극 '도둑맞은 책'은 드라마적으로 차곡차곡 단계를 밟아나간다. 극이 흘러가는 리듬도 자연스럽고, 크게 흔들림도 없다. 단단한 이야기 구조에는 걸고넘어질 부분이 딱히 없다. 문제는 이 작품의 장르가 심리 스릴러라는 데 있다. '심리 스릴러'라 이름 붙인 순간, 이야기는 스릴러로서의 책임감을 등에 업는다. 극은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긴장과 이완을 해야 하고, '감정'을 유발할 의무가 생긴다.

연극 '도둑맞은 책'은 이야기의 맥락을 얻은 대신 스릴러의 장르적 재미를 놓치고 만다. 오가는 대사는 빠르고 격정적이지만 상투적이고, 반전은 예측 가능하다. 결국 '전율'의 타이밍은 쉽게 사그라지고, 서운함이 길게 남는다. 배우들의 열연도 스릴러의 한 방을 메우기에는 다소 아쉽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테이지에 동시 게재됩니다.



태그:#연극, #도둑맞은 책, #변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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