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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세인트존스 대학 영어 토론 수업에서 어떻게 말하기를 하는지 넘어가자. 토론의 종류에 따라 말하기의 개념도 약간씩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말로 싸워서 이겨야 하는 토론에서의 말하기와 세인트존스 대학 토론 수업에서의 말하기는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따라서 지금 살펴볼 말하기에 대한 이야기 역시 내가 세인트존스에서 토론 수업을 하며 느꼈던 주관적인 견해일 뿐임을 미리 밝힌다.

토론 수업을 할 때 좋은 말하기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할까? 어려운 질문 같지만 사실 전혀 어렵지 않다. 좋은 말하기는 질문하기다. 토론 수업 중 할 수 있는 질문은 여러 종류가 있다. 토론에서 할 수 있는 질문 네 가지를 봐보자.

좋은 말하기는 질문하기다

우선 주제를 정리하는 '정리 질문'이 있다. 많은 생각들이 모여 토론을 하고 있다 보면 테이블 위에 던져진 토론의 내용이 한두 개가 아니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하늘은 파란색이야."
"아니야, 빨간색이야."
"그럼 왜 바다는 파란색인데?"
"하늘은 하늘색이니까 하늘이고 바다는 바다색이라서 바다인 거야."

이 예시를 보고 있으면 도대체 하늘의 색깔에 대한 이야기인지, 바다의 색깔에 대한 이야기인지, 아니면 색과 관련된 이름에 대한 이야기인지 알기 어렵다. 대화들이 비슷해 보이지만 다 다른 내용들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말하고 있는 친구들은 자신들의 의견에 집중하느라 정작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 걸음 조금만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토론 내용을 점검해 보면 얼마나 많은 주제들이 테이블 위에서 나뒹굴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이런 때 "잠깐!" 을 외치며 토론을 멈춰 세우고 정리 질문을 해 보자.

"도대체 그래서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게 하늘이야? 바다야?"

친구들의 토론을 열심히 들으며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토론을 중단시키고 이런 정리 질문을 해주면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내가 묻고 싶은 게 그거야!' 이 질문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에게도 언제나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교수들 또한 자주 한다. 좋은 토론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질문 중 하나다.

소통일 뿐이다
▲ 영어 말하기 소통일 뿐이다
ⓒ Anyi G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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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요구 질문'이다. 상대방의 의견을 더 확실히 하도록 만드는 질문이다. 토론을 하는 학생들은 자주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의견을 말하고 있을 때가 많다. 책 내용도 어려울 뿐더러 생각이 명확히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하늘이 하늘색인 이유는 그 하늘색이라는 게 꼭 파랑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음... 해가 질 때는 빨간색이 하늘색일 수도 있는 거고 주황색이 하늘색일 수도 있는 거잖아? 음...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으로 하늘색이 파랑색이라는 선입견이 있기 때문에..."

이런 횡설수설을 듣고 있다 보면 흐름을 놓칠 때도 있고 놓치지 않았더라도 무슨 말인지 정확히 감을 잡기 힘든 경우가 많다. 이런 때 하는 질문이 바로 '요구 질문'이다. 말 그대로 상대방에게 "그래서 너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데?"라고 묻는 거다.

물론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친구의 기를 꺾을 수 있기 때문에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니다. 나 또한 횡설수설할 때가 올 수 있다. 이런 때에 선택할 수 있는 발화법이 바로 '내 탓 하기'다.

"미안해! 네 말을 따라가지 못했어. 다시 한 번 말해 줄래?"

다시 한 번 의견을 명확하게 정리해서 말해 줄 수 있냐는 요구가 암시적으로 들어있는 질문이다. 그 친구가 정말로 횡설수설하고 있었던 거라면 십중팔구 다른 친구들 역시 내 질문을 고마워할 것이다.

내 관심분야로 유도하고 따라 말하게 하자

세 번째 방법은 내가 더 생각해보고 싶은 내용으로 돌아가는 '유도 질문'이다. 첫 질문이었던 정리 질문과 비슷한 경우에 할 수 있지만 종류는 다르다. 사공이 많아 토론이 산으로 가고 있을 때가 있다. 만약 지금 논의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불타는 열정이 있고 이 내용들을 더 명확하게 정리하고 싶다면 정리 질문으로 테이블을 정리하면 된다. 하지만 지금 테이블에 수많은 내용들이 던져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관심이 없을 때가 있다.

"도대체 얘들은 바다가 바다색인지, 하늘이 하늘색인지가 왜 궁금하지? 바다가 하늘색이든 하늘이 바다색이든 그게 뭐가 중요해? 책의 가장 결정적인 내용은 바다에서 사람들이 수영을 하면서 실례를 하면 바다의 색이 바뀌냐는 것이었잖아?"

내가 너무나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정작 수업에서 이야기 되지 않고 친구들은 다른 주제들에만 집중해 있는 때가 제법 많다. 지루해진 토론 테이블에 앉아 만약 내 영혼이 육체를 이탈하려고 할 때 할 수 있는 질문이다.

"얘들아, 이 책의 핵심 내용은 이게 아니야!"

토론을 잠깐 세우고 돌아가서, 자신이 관심이 있는 분야와 관련한 얘기를 좀 더 해 볼 수 있도록 물으면 된다. 토론의 주제를 내가 관심 있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이미 이 이야기가 한 번 나왔었더라도 상관없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다시 한 번 그쪽으로 흐름을 유도하면 된다. 왜 나는 이 부분이 책 내용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지 설명하면 된다.

수업 테이블에 둘러앉아
▲ 그리스어 수업 테이블에 둘러앉아
ⓒ The Johnnie Ch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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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기에서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한창 테이블 위에 다른 내용으로 토론이 불타고 있는데 그건 듣지도 않고 내가 관심 있는 부분에만 집중하면 모든 흐름을 끊어버리게 된다. 흐름을 잘 보고 있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질문을 하는 게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들은 내용을 내 문장으로 정리하는 '따라 말하기 질문'이 있다. 아마 지금까지 나온 질문들 중 제일 중요한 질문이 아닐까 싶다. 이 질문을 통해 토론의 흐름 속에 나를 넣어 둘 수 있다. 이 질문은 말 그대로 따라 말하기다. 하지만 앵무새처럼 따라 말하는 게 아니라 내 문장을 써서 말해야 한다.

수학 문제도 어떻게 풀었는지 말로 설명할 수 없다면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고 하지 않는가. 내 문장으로 바꿨을 때 말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 친구 말을 이해했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어떤 친구가 의견을 냈을 때 그 말을 열심히 듣고 있다가 되물으면 된다. 위의 횡설수설했던 친구의 예시를 다시 봐보면 다음과 같다.

"그러니까 하늘이 하늘색인 이유는 그 하늘색이라는 게 꼭 파랑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음... 해가 질 때는 빨간색이 하늘색일 수도 있는 거고 주황색이 하늘색일 수도 있는 거잖아? 음...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으로 하늘색이 파랑색이라는 선입견이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네 말은, 하늘색이라는 단어는 하늘이 가지고 있는 색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 거야? 따라서 하늘이 가지고 있는 색은 어떤 때는 빨강이 될 수도, 파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지?"

이렇게 되물으며 "내가 들은 것이 맞아, 안 맞아?" 하고 확인하는 질문이 바로 '따라 말하기 질문'이다. 이 질문은 친구가 우왕좌왕하던 의견을 내 문장으로 다시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좀 더 명확하게 이해가 된다. 직접 친구와 소통하면서 내가 이해했는지 확인을 받을 수도 있다. 동시에 수업 친구들에게 횡설수설했던 내용을 정리해 주는 '똑똑이' 역할도 할 수 있게 된다.       

질문에 내 의견이라는 양념을 뿌려라 

이렇게 스피킹을 위한 네 종류의 질문들을 알아봤다. 질문은 여러모로 토론 수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질문은 "나도 의견을 말해야 하는데"하는 부담을 덜어준다. 다른 사람들이 한 말을 따라 말해보고 질문함으로써 좀 더 쉽게 수업에 참여할 수 있다. 또 다른 친구들이 한 말을 내 말로 바꿔보는 과정은 말하기 실력을 향상 시킨다.

이쯤 되면 "이렇게 질문만 하면 이게 토론이야 청문회야?"하는 궁금증이 생길 것 같다. 사실 그렇다. 토론은 질문만 하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는 자리다. 그럼 언제 내 의견을 말해야 할까? 간단하다. 저 네 가지 질문을 종류별로 하면서 양념 뿌리듯이 내 의견을 첨가해주면 된다.

"지금 우리 이야기의 주제는 이거지? (질문) 근데 내 생각에는 이 부분에 좀 더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그니까 너 말은 이렇다는 거야?(질문) 내 생각은 이런데(내 의견)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토론 배틀이 아닌 이상, 내 의견만을 주야장천 말하며 내 의견 속에만 빠져 있으면 이전 기사에서 언급했던 '돈 래그(Don Rag)' 때 교수에게 깨지기 십상이다. 토론 수업의 목적은 서로 맞짱을 뜨자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의견을 '들어보자'는 것이다. 듣기 위해서 토론자들이 '말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말이다.

내가 이번 기사에서 설명하는 내용은 직접적이고 쉬운 말하기 비법이 아니다. 그런 것을 기대하고 왔다면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기사에 쓴 내용들은 내가 정말로 세인트존스 대학에서 토론 수업을 통해 배운 중요한 방법들이다. 이 방법들은 언어의 문제를 떠나서 어떤 문화에서든 적용될 수 있고, 어떤 언어로든 가능한 '소통의 기술'이다.

영어 말하기는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어라는 도구를 이용해 나와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며 공감하기도, 반대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진짜 중요한 능력이다.

우리가 영어 말하기를 잘 하고자 하는 이유는 갈라파고스 섬에 가서 말귀도 못 알아듣는 펭귄들에게 유창하게 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따라서 이 질문하기 방법들은 영어 말하기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자세이다. 질문이라는 현명한 방법을 통해 좀 더 쉽게 학생을 영어 토론 수업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니 이 얼마나 좋은 말하기 방법인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조한별 기자의 개인 카페(http://cafe.naver.com/nagnegil)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세인트 존스 대학, #ST.JOHN'S COLLEGE, #고전 100권, #영어 토론 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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