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창원 LG 세이커스는 팬들의 열기가 가장 뜨거운 팀 중 하나다. 시즌이 시작되면 체육관은 수시로 만원 관중으로 가득차기 일쑤고, 팬클럽이나 매니아 층도 잘 구축되어있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G팬들은 항상 마음이 아프다. LG가 단 한 차례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 그로 인해 정상에 대한 목마름은 그 어떤 팀보다도 강렬한 편이다.

문제는 우승을 못한 것이 전력이 약해서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프로 농구 초창기부터 LG는 전력 보강을 위해 상당한 공을 들였고 꾸준히 좋은 선수과 지도자들이 오갔다. 하지만 김응룡-선동렬이 합류하기 전 과거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가 그랬듯 큰 경기에서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이며 두 차례 있었던 챔피언 결정전에서 모두 고배를 마셨다.

지난 시즌같은 경우는 더욱 안타깝다. LG는 가뜩이나 두터운 선수층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탱킹(Tanking)'의혹까지 받으며 김시래, 김종규 등 젊은 특급 선수들을 품에 안았다. 거기에 FA를 통해 최고 혼혈 선수 문태종을 데려왔으며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선 러시아리그 득점왕 출신 데이본 제퍼슨까지 합류시켰다.

기존 선수들까지 합치면 두 개로 팀을 나눠서 시즌에 참여해도 될 정도였다. 그만큼 엄청난 선수층을 갖추고 있었으며 '겉으로 보이는 전력은 우승 0순위'라는 평가까지 흘러나왔다. 정규리그 우승을 달성할 때까지만 해도 전력에 맞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으나 챔피언 결정전에서 또다시 고배를 마시며 멀고도 먼 우승 반지에 울어야했다.

외국인 선수를 보면 LG농구 역사가 보인다

그간 LG를 거쳐간 외국인 선수들 가운데, 뛰어난 용병들은 많았지만 KCC의 맥도웰-민랜드, 동부의 로드 벤슨 등 팀을 대표할 만한 간판급 외국인 선수는 떠오르지 않는다. 성적에 대한 조바심이 컸던 만큼, 새 얼굴-검증된 경력자 등 다양한 실험을 거듭했고 또 포기하는 속도도 빨랐다. 이는 토종 선수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해당되는 부분으로, 타팀에 비해 LG는 프랜차이즈 스타를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LG를 대표하던 용병들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동안 우승을 위해 시도했던 수차례의 팀자체적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수 전원이 펼치는 팀 디펜스가 중심이 되는 수비 농구에 다수의 슈터진이 포진한 공격 농구까지 극과 극의 팀컬러를 오가는가 하면, 대어급 선수들로 라인업을 짜서 힘과 세기를 바탕으로 한 밸런스 농구를 펼치기도 했다.

이충희 초대 감독은 강력한 압박을 바탕으로 한 수비 농구를 펼쳤다. 현역 시절 슈터로 명성을 날리던 이충희 감독과 다소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당시 LG의 선수층을 생각했을 때는 어쩔 수 없는 자구책이었다.

당시 LG는 양희승 정도를 제외하고는 공격 능력을 갖춘 선수가 없었던 것이 사실. 설상가상으로 양희승은 고질적인 부상에 시달리며 풀타임을 소화하기 어려웠다. 양희승을 제외하면 이름값 있는 선수들로는 박재헌, 박규현, 박훈근 등 '박 트리오'가 있었고 그 외 김태진, 윤호영 등이 뒤를 받치고 있었다.

따라서 이충희 감독은 한발 더 뛰는 압박형 수비 농구를 주문했고, LG 선수들은 충실하게 요구에 부응해갔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을 깬 정규리그 2위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이러한 LG 수비 농구의 중심에는 '득점 머신' 버나드 블런트(43·187㎝)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아무리 수비를 잘한다 해도 누군가는 득점을 해줘야 경기를 이길 수 있었고, 그러한 역할을 블런트가 착실히 수행해줬다.

블런트는 어차피 득점할 선수가 거의 없던 팀 상황 속에서 고군분투했다. 이충희 감독은 아이솔레이션을 통해 블런트에게 몰아주는 전략을 택했는데 지역방어가 허용되지 않았던 당시 프로농구에서 1:1로 블런트를 막아낼 선수는 거의 없었다.

블런트는 신장은 크지 않았지만 운동 능력이 탁월하고 내외곽을 모두 갖추고 있던지라 어떤 상황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득점이 가능했다. 그렇다고 블런트는 독불장군은 아니었다. 자신에게 득점을 몰아주는 팀 사정상 적극적으로 나섰을 뿐이지 수비가 몰린다 싶으면 빈공간의 동료들에게 볼을 빼주는 등 영리한 플레이에도 능했다.

하지만 블런트에 대한 LG팬의 감정은 좋지 않다. 1999~2000시즌을 코앞에 두고 돌연 구단을 이탈해 미국으로 '야반도주'한 것을 비롯, 미국 하부리그인 IBL의 트렌튼 스타즈와 이중계약을 체결하며 소속팀에 치명타를 안겨줬기 때문이다. 어쩌면 초창기부터 LG를 대표하는 용병이 될 수 있었던 선수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사실 블런트는 KCC(당시 현대) 신선우 감독이 점찍어놓은 선수였다. 분위기 자체도 KCC로 블런트가 뽑히는 흐름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이충희 감독은 과감히 블런트를 선택했고 신 감독이 어쩔 수 없이 울며겨자먹기로 뽑은 선수가 조니 맥도웰이다. 결과론이지만 프로농구 최다 우승팀 KCC와 우승에 목마른 LG의 운명은 이때를 기점으로 갈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수비 농구에 이어 LG가 꺼내든 또 하나의 비장의 카드는 다름 아닌 공격 농구였다. 이는 이충희 감독의 수비 농구와는 상반된 패턴으로 이 같은 전술은 아마무대 명장출신 김태환 감독의 손에서 이뤄졌다.

김태환 감독은 조성원과 조우현의 '국가대표급 쌍포'에 이정래 등 뛰어난 슈터들을 속속 영입하며 외곽위주의 막강한 화력 농구를 펼쳤다. 포지션 불문 언제 어디서든 외곽슛이 터질 수 있는 라인업이었다. 여기에는 내외곽을 불문하고 정교한 슈팅력이 일품이었던 백인용병 에릭 이버츠(40·198㎝)가 화룡점정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버츠는 흑인 용병들처럼 탄력 넘치는 플레이는 펼치지 못했지만 기본기에 착실한 기복없는 플레이로 LG 공격 농구를 이끌었다, 외국인 선수로서는 드물게 3점슛 타이틀까지 차지한 적이 있을 정도였던 만큼 당시 LG 외곽 농구와 찰떡궁합이었다.

이후에도 우승을 향한 LG의 다양한 변화는 계속해서 시도됐다. KCC 왕조의 지도자 신선우 감독, 국가대표 출신 거물 조상현, 현주엽 영입 등 기회가 닿을 때마다 공격적인 전력 보강에 심혈을 기울였다. 라이언 페리맨, 찰스 민랜드, 올루미데 오예데지 등 우승을 경험했던 외국인 선수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LG는 아직까지 우승의 달콤한 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현재의 LG는 10개 구단 중 최고의 선수층을 가지고 있다. 타팀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최강 용병콤비 데이본 제퍼슨(28․198cm), 크리스 메시(38․199cm)와 모두 재계약에 성공했다. 전력만 놓고 따졌을 때는 현재가 LG 팀 역사상 최강이다.

과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LG가 이번에야말로 우승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돌아올 시즌의 흥밋거리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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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LG 크리스 메시 버나드 블런트 야반 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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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디지털김제시대 취재기자 / 전) 데일리안 객원기자 / 전) 홀로스 객원기자 / 전) 올레 객원기자 / 전) 이코노비 객원기자 / 농구카툰 크블매니아, 야구카툰 야매카툰 스토리 / 점프볼 '김종수의 농구人터뷰' 연재중 / 점프볼 객원기자 / 시사저널 스포츠칼럼니스트 / 직업: 인쇄디자인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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