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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 무렵 기름에 튀긴 프라이드(후리이드) 치킨을 처음 먹었다. 그 당시는 치킨이라고 하지 않고 통닭이라고 불렀다. 대여섯 개의 통닭집들이 밀집한 후미진 시장통에서 주머니가 가벼운 친구들과 함께 한 마리에 4000~5000원하는 프라이드 치킨을 먹었다. 크리스마스나 한 해를 마감하는 송년회 때 먹어보는 고급 음식, 회사 야유회 때나 맛을 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평소에는 1000원짜리 닭목 튀김 한 접시면 소주 서너 병 안주로 충분했다. 간혹 옆자리에서 연인들이 한두 조각 남기고 자리를 일어서면 얼른 가져다 먹는 재미도 있었다.

1990년대 들어서도 치킨은 특별한 날에 먹는 아주 특별한 음식이었다. 군대에 간 아들의 면회를 오는 가족들의 공통적인 음식이 치킨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치킨展(전)>은 이러한 치킨의 역사와 맛의 변천에 대해 재미있게 고찰한 책이다. 흥미가 가득한 이 책을 단숨에 쉬지 않고 읽어 내려갔다.

하지만 마냥 밝게 볼 수 있는 책은 아니다. 닭은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이 35일 만에 만들어진다. 양계산업은 산란계를 제외하고, 한 해에 8억 마리의 고기용 닭들을 생산한다. 갑과 을의 사슬로 엮어져 있는 치킨 프랜차이즈의 내막을 읽어가다 보면 치킨집 사장님이 휴일도 없이 쉬지 못하고 닭을 튀길 수밖에 없는 속사정이 보인다.

대한민국은 치킨 전쟁 중

<대한민국 치킨展(전)> (정은정 지음 / 따비 / 2014.07 / 1만 4000원)
 <대한민국 치킨展(전)> (정은정 지음 / 따비 / 2014.07 / 1만 4000원)
ⓒ 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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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치킨展(전)>을 치킨戰(전)으로 바꿔 읽어도 될 만큼 국내 치킨시장은 이미 전쟁터가 된 지 오래다. 다섯 곳 중에 네 곳은 망하는 자영업의 무덤이라며 언론 보도도 수시로 나온다. 하지만 왜 아직도 유명 프랜차이즈의 간판을 달기 위한 경쟁이 치열할까?

"프랜차이즈 본사의 횡포가 사회문제로 심심찮게 다뤄지지만, 그래도 프랜차이즈 열풍이 꺾이지 않는 것은 초반 모객(고객 모집)에 이만한 '안전빵'이 없기 때문이다... 치킨점의 성공 여부는 맛이 아니라 브랜드 인지도와 상점이 입점한 상권의 수준에 달렸다." (본문 중에서)

4강 신화를 썼던 2002 한일 월드컵 당시에는 닭이 없어서 튀기지 못했을 정도였다. 치킨 프랜차이즈가 외식업의 선두로 올라섰다. 황금알을 낳는 사업으로 인식되면서 당시 1만 개였던 치킨 가맹점은 월드컵을 거치며 2만 5000개로 늘어났다. 지금은 3만 6000개의 치킨점이 그야말로 '치킨 게임'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재료비 상승에도 소비자가격은 좀처럼 올리지 못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본사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서 공급가격과 각종 수수료 부담을 가맹점에 돌린다. 이처럼 불합리하고 일방적인 방침에도 제대로 따져들지 못하는 것이 '을'의 입장에 있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현실이다.

이 책의 저자는 취재를 통해 치킨의 원가를 분석했다. 프랜차이즈마다 차이는 있지만 지난 3월을 전후로 조류독감과 물류비 상승으로 가맹점에 공급되는 염지닭(닭살 속에 소금간을 하고 맛을 조미한 닭) 한 마리의 가격은 5000원 선에서 가격이 형성됐다. 여기에다 식용유나 파우더 등의 부재료 등을 더하면 치킨 하나를 튀겨내는 재료비 원가는 8000원을 넘어간다.

최근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새로운 프랜차이즈 치킨점이 생겼다. 오븐에 굽는 치킨 가게인데 배달을 하지 않고 손님이 매장에서 직접 찾아가는 방식이다. 8000~9000원대의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아무리 배달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기본재료원가를 제하면 남는 이윤이 있을까 싶다. 1000원 남기는 장사가 치킨이라는 말이 엄살만은 아닌 것 같다.

공장식 축산 양계장
 공장식 축산 양계장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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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되는 8억 마리의 닭은 누가 키우나

한 해에 8억 마리의 닭을 소비할 수 있게 된 것은 급속하게 커진 양계산업 덕분이다. 그 이면에는 카길과 같은 거대 다국적 식량기업들이 있다. 농업의 녹색혁명으로 불리는 1960년대를 지나면서 점차 곡물 생산량이 남아돌자, 다국적 식량기업들은 곡물사료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이 흐름은 한국에도 공장식 축산을 유도했다. 원조와 차관을 통해 공장식 축산이 국내에 정착하고, 축산업이 점차 커지면서 어느새 특별한 음식이었던 계란과 닭고기는 일상적인 음식이 됐다.

"기존에 도계장을 갖고 있던 육계회사들은 정부의 지원으로 더더욱 탄력을 받아 성장했고 그 중 가장 큰 수혜를 받은 기업이 바로 하림이었다. 수입개방에 맞서 축산을 현대화하고 합리화한다는 목적으로 실시된 지원이 실제로 닭을 키우는 양계 농민에게가 아니라 기업에 집중된 것이다. 계열화를 촉진하고 지원하는 자금은 분명 국민의 세금이었는데 말이다." (본문 중에서)

닭고기의 대명사로 불리는 하림은 닭뿐만 아니라 오리와 돼지의 축산업유통에서 절대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양계농민들과의 불평등 계약 등이 문제가 되서 국회청문회장에 회장이 불려나가기도 했다. 이른바 수직계열화와 상대평가를 통해 수익배분에 차이를 두는 경쟁 시스템 등이 지적됐지만 아직도 그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 사장들은 본사에 찍히면 재료공급을 못 받거나 트집을 잡혀 길들이기를 당한다. 양계농민들 역시 부당한 일을 겪어도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는 구조에 갇혀있다. 사장이면서 동시에 노동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 둘은 서로 닮았다.

창문이 없는 무창계사에는 햇볕이 들어오지 않는다. 35일 만에 본 햇빛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닭의 평균 수명은 본래 20년이다. 프라이드 치킨이 그다지 고소하게 느껴지지만은 않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대한민국 치킨展(전)> (정은정 지음 / 따비 / 2014.07 / 1만 4000원)



대한민국 치킨전 - 백숙에서 치킨으로, 한국을 지배한 닭 이야기

정은정 지음, 따비(2014)


태그:#치킨, #후라이드치킨, #양계, #통닭, #프렌차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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