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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만들기'는 어렵다.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마을을 새로 만드는 방법은 난해하다. 체계나 공정도 복잡하다. 마을 만들기를 지원하는 법이나 제도는 주변에 넘친다. 하지만 법이나 제도를 실천할 주체인 '사람'이 부족하다. 조직력은 취약하기 그지없다. 

근본 원인은 마을 만들기의 3대 사업주체에서 비롯된다. 바로 '행정, 주민, 전문가'의 역량의 한계다. 일단 행정은 진정성과 공정성이 미흡하다. 주민은 이해와 참여도가 부족하다. 마을 도우미로서 전문가의 전문성은 기대에 못 미친다. 상업적 사업체로 수지타산을 맞추다 보니 현장에서 성실성과 도덕성마저 놓치기도 한다.

마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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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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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한국의 마을 만들기는 태생적 한계마저 떠안고 있다. 정책 모델이나 사업 구조가 합리적이지도 혁신적이지도 않다. 마치 '마을 만들기'를 '농촌 관광지화' 또는 '생태 공원화'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짙다. 지난 10여 년 이상 도시민 체험객, 선진지 견학단, 공무원 시찰단 등을 다투어 호객하기 급급했다. 재미도 감동도 소득도 없는 잔치판이 마을마다 벌어졌다.

그 결과 외부인의 구경거리나 체험 거리에 불과한 관광지, 공원 등이 전국 곳곳에 양산됐다. 하드웨어 조성 위주의 토건사업에만 집중하고 만 것이다. 본디 마을은 관광지나 공원이 될 수 없다. 마을주민들이 대대로 생활하고 생존해온 박물관 같은 생활공간이다. 후손을 위해 삶의 터전으로 보전해야 하는 미래의 땅이다.

법이나 제도 보다 '마을 만들기'의 개념과 방법론부터 먼저 수정하는 게 순서다. 기왕의 '토건적 마을 만들기'는 사회 생태적 마을 살리기로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원주민, 귀농인, 출향인 등의 인간다운 생활과 생존을 보장하는 삶의 질 높이기를 과제로 삼아야 한다. 그렇게 '만드는 마을'에서 '사람 사는 마을사회'로 사회적으로, 인문적으로, 문화적으로 진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마을 살리기'를 하려면 마을공동체를 이끄는 사업조직이 가장 중요하다. 지도자와 도우미 몇 명으로는 결코 잘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사업의 책임주체로써 '잘 조직된 지속가능한, 마을을 먹여 살리는 마을기업'이 먼저 준비되어야 한다. 이때 마을기업을 세우고 꾸릴 '잘 훈련된 책임감있는, 정의롭고 선량한 마을시민'이 함께 준비되어야 함을 물론이다. 거기에 마을기업의 창업과 경영을 지원하고 마을시민들을 발굴하고 교육할 '유능하고 성실한 중간지원조직'도 지역마다 든든히 자리 잡아야 한다.

이렇게 마을시민과 마을기업을 바탕으로 마을 살리기를 하는 마을은 '마을사회'의 모습을 띌 것이다. 여기에서 마을사회란 '1차 친환경농산물 생산, 2차 농특산물 가공, 3차 도농교류와 도농직거래 서비스 등 6차 융·복합형 농업, 농촌 발전전략을, '마을시민'과 '마을기업'을 중심으로 주체적이고 사회 혁신적으로 실천하는 지속발전가능한 '농촌·지역공동체마을'을 뜻한다.

무엇보다 도시민 체험관광객 등 외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구경거리나 놀이터를 만드는 '마을 만들기'가 아닌 원주민, 귀농인 등 내부인의 생활과 생존을 위한 삶의 질을 높이는 '마을 살리기' 또는 '마을 살이'를 실천하는 마을을 지향한다. 한마디로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사람으로서 능히 살아갈 만한 공동체마을'을 말한다.

그러자면 이제 '마을 만들기'라는 무모하고 공허한 선동적 구호부터 고치는 게 좋을 것이다. 마을은 '만드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마을의 품격을 체험 거리나 구경거리 정도로 전락시키는 기왕의 '마을 만들기' 수법은 이쯤에서 중단해야 마땅하다. 결코 날로 공동화되는 우리 농촌 마을을 활성화하거나 재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행정 편의적이고 기술 만능적인 '마을 만들기' 방법론에서 벗어날 때다. 오히려 우리 마을이 품고 있는 사회적이고, 인문적이고, 문화적인 요소와 자원들은 융․복합적으로 결합해 종합예술 작품처럼 승화시킬 필요가 있다. 마침내 '마을사람이 잘 살아갈 수 있는 마을사회'에서, 모두 함께 살아가기 위한 '마을 살리기' 또는 '마을 살이'로 바뀌어야 한다.

확신을 갖고 단언한다. '잘 훈련된 마을시민'과 '잘 조직된 마을기업'이 없이 '사람 사는 마을사회'는 가능하지 않다. 설사 요행히, 무리하게 덤벼들어도 반드시 실패한다. 마을사람도, 마을도 크게 상처를 입는다. 가는 숨을 몰아쉬며 겨우 버티던 마을공동체의 뿌리마저 송두리째 뽑히고 만다.

그래서 거듭 힘을 주어 말한다. 마을에는 당부하고 정부에는 제안한다. 마을시민들과 마을기업이 없는 마을은 마을공동체 사업을 욕심내면 안 된다. 그러자면 농사박사인 늙은 할머니, 할아버지 농부만으로는 안 된다. 인구수로나 국민 소득으로나 5%도 안 되는 농업인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기획박사, 교육박사, 마케팅박사, 영업박사, 가공박사, R&D박사, 회계박사, 관리박사 등 나머지 95%의 젊은 도시민들이 함께 나서야 한다. 다양한 재주와 특기를 가진 귀농인들이 농촌으로 들어가 다채로운 마을시민으로 용기 있게 결합해야 한다. 마을은 귀농인들을 흔쾌히 공동체구성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정부는 농·도 교류와 상생의 물꼬를 시원하게 트고 튼튼한 토대를 다져야 한다. 그래야 협동과 연대의 100% 대안국민농정의 해법에서 바라는 답을 구할 수 있다. 그렇게 농촌과 도시가 만나는 '마을 사회'의 접점에서 얽히고설킨 농정의 실타래를 풀 수 있다.

'마을 살리기', '마을 살이'라야 한다. '마을시민'들이 '마을기업'으로 함께 꾸리는 '마을사회'라야 한다. '만드는 마을'에서 '사람 사는 마을사회'로 가야 한다. 살기 좋은 국가와 사회는, 사람 사는 마을이 모여 이룬다.

덧붙이는 글 | 정기석 시민기자는 마을연구소의 소장이자 시인입니다.



태그:#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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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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