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트넘과 리버풀의 3R이` 열리기 전, 리버풀의 압승을 예상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언제나 리버풀을 외치는 극성 지지자들조차도 최근 토트넘의 좋은 흐름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시즌 초반을 대단히 잘 보내고 있는 토트넘은 개막전에서 웨스트햄에 1:0, QPR에 4:0으로 승리를 거두며 2연승을 달리고 있었다.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샤들리와 라멜라의 선전 등 경기 내용 면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분위기만 유지한다면 토트넘이 리버풀을 잡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예상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달랐다. 무려 리버풀의 3:0 대승이다. 나름 3연승을 기대한 토트넘 팬들에겐 충격적인 패배였고, 반대로 큰 기대 없이 경기를 지켜본 리버풀 팬들은 열광에 휩싸였다. 경기 내용에서도 결과에서도 모두 승리를 챙긴 쪽은 리버풀이었다.

또한, 시즌 개막전이었던 사우스햄튼전에서 간신히 2:1로, 맨시티전에서 1:3으로 패배하는 등 불안한 출발을 보인 리버풀은 이날 경기의 승리를 통해서 얻게 된 점도 많았다. 단순한 승점 3점 그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고 볼 수 있는 토트넘전의 승리를 통해 리버풀이 얻은 승점보다 더 귀중한 것들은 무엇일까?

'무난한 데뷔전' 발로텔리의 존재감

지난여름 이적시장에서 리버풀의 가장 큰 빅 샤이닝을 꼽는다면 역시 1600만 파운드(약 268억)에 영입해온 마리오 발로텔리를 꼽을 수 있다. 리버풀은 실력에서나, 이슈에서나 언제나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요주의 중심 '마리오 발로텔리'를 영입하면서 많은 축구 팬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과연 리버풀이 발로텔리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로저스 감독이 발로텔리를 제대로 장악할 수 있을지가 관심의 포인트였다.

리버풀로의 이적부터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던 발로텔리는 이번 토트넘전을 통해 데뷔전을 치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데뷔전을 무난하게 소화하며 팀 내에서 자신의 역할과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냈다. 그전까지 '리버풀의 발로텔리 영입은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다'며 비판적인 시선을 보인 이들도 대부분 만족할 수 있는 활약이었다.

이날 발로텔리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특히 상대가 볼을 소유한 상황에서 수비에 가담해주는 적극성이 돋보였는데, 토트넘이 측면을 활용한 공격에 능하다는 것을 막기 위한 사전 전술에 따라 주로 측면으로 이동하며 상대의 공격을 연달아 차단했다. 이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일화도 있는데, 처음에는 발로텔리가 로저스 감독의 지시를 불이행하려는 태도를 보였다가 로저스 감독의 한마디로 발로텔리가 확실히 설득당했다는 것이다.

로저스 "마리오! 오늘은 코너 지역에서 수비에 가담해!"
발로텔리 "저는 코너에서 수비하지 않는데요?"
로저스 "이제부터는 하는 거야"

발로텔리가 대단히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그에게 우려를 표하던 리버풀 팬들도 한시름 걱정을 놓을 수 있었다. 그간 리버풀 팬들이 나타낸 가장 큰 우려는 발로텔리가 팀 내에서 적극성을 띄지 않아 자신의 전술적인 임무를 수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실제로 팀의 승리를 위해 헌신적인 플레이를 하는 유형과 발로텔리의 평소 기행은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발로텔리의 영입에 우려를 표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보여준 발로텔리의 헌신적인 플레이와 적극성은 그가 리버풀에서 활약할 태도의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그래서 발로텔리의 이 날 플레이는 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적극적인 수비 가담 이외에도 발로텔리가 보여준 인상적인 모습은 높은 제공권을 활용해 공중볼을 모두 장악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발로텔리는 자신에게 올라온 크로스를 모두 헤딩으로 연결하며 득점에 가까운 장면들을 만들어냈다. 발밑으로 주고받는 짧은 패스를 중심으로 공격을 전개하는 리버풀의 플레이에서 발로텔리의 제공권을 통해 더욱 활용해볼 수 있는 공격 루트가 다양해졌다는 점은 충분히 희망적이다.

발로텔리를 앞으로 어떻게 활용할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이날 경기처럼 공수 양면에서 폭넓은 활동량을 요구하며 경기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선수로 활용할 것인지, 아니면 중앙공격수로 상대 중앙수비수들을 유도하며 문전에서의 포스트 플레이와 득점에 집중하는 이른바 타겟형 스트라이커의 임무를 수행하는 선수로 활용할 것인지 주목된다. 확실한 건 어떠한 역할을 주문받던 발로텔리는 이 역할들을 모두 수행할 수 있는 최고의 재능을 가졌다는 것이다. 토트넘전과 같은 팀을 위한 적극성과 헌신을 띌 수 있는 태도의 준비만 되어있다면, 이제는 발로텔리에 대한 걱정은 불필요할 것이다.

'다이아몬드의 꼭짓점' 라힘 스털링의 새로 찾은 역할

이날 경기에서 라힘 스털링은 평소와 같은 측면 공격수가 아닌 다이아몬드의 꼭짓점 역할을 맡았다. 다이아몬드 꼭짓점이란 리버풀이 주로 활용하는 4-3-1-2 포메이션에서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배치된 세 명의 미드필더와 한 명의 공격형 미드필더 중, 꼭짓점 위치에 놓여있는 한 명의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의미한다. 최근 좋은 활약을 보이며 올 시즌 가장 주목해야 할 선수로 떠오른 스털링이기 때문에, 새로운 역할에서 그가 얼마나 좋은 활약을 남길 수 있을 지도 이날 경기에서 주목해봐야 할 포인트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다이아몬드의 꼭짓점 역할을 맡은 스털링은 사실상 공격 작업에서 자유로운 역할을 맡으며 경기장 이곳저곳에서 공격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이미 지난 경기들에서 스털링은 동료 선수에게 패스를 주는 능력과 연계에 참여하는 모습 등 찬스 메이커로서의 기질도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한 바 있다. 로저스 감독은 이러한 스털링의 찬스 메이킹 능력을 극대화하고자 다이아몬드의 꼭짓점 역할을 부여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로저스 감독의 기대대로, 스털링은 자신의 위치에서 마음껏 창의적인 패스를 배급하며 위협적인 찬스를 만들어주었다.

또한, 스털링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장점 중 하나는 종방향의 드리블에 있다. 워낙 빠른 발을 자랑하는 스털링이다 보니 속도를 살려 치고 나가는 드리블에서는 최고 수준에 해당한다. 상대 수비수가 알면서도 못 막는 유형의 스타일이다 보니, 수비하기에 있어 굉장히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스털링이 다이아몬드 꼭짓점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측면 공격수에 있을 때보다 플레이 영역이 넓어졌고, 이는 이전보다 더 넓게, 더 자유로운 곳에서 종방향 드리블을 여러 차례 시도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됐다. 역할의 범위가 더욱 넓어지고 자유로워진 스털링은 중앙과 측면을 오가며 자유롭게 드리블을 시도했기 때문에 상대 수비수는 스털링의 드리블을 예측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스털링의 드리블 능력은 후반전에 들어서 더욱 빛이 났다. 드리블 하나로 상대 수비수를 따돌리며 단독 찬스를 여러 번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품인 드리블 실력과 비교하면 과감하게 슈팅을 때릴 수 있는 마무리 능력만큼은 조금 더 가다듬어야 할 필요성이 보였다. 어찌 됐건 스털링이 부여받은 새로운 역할은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다. 앞으로 많은 경기를 남겨놓은 리버풀 입장에서는 올 시즌의 큰 전환점이 되어준 경기로 이번 토트넘전을 꼽을 가능성이 현재로써는 대단히 높아졌다.

불안감이 가득했던 수비진의 첫 클린시트, 자신감을 가지다

최근 경기에서 리버풀의 수비는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여름 이적시장에서 만퀴요, 로브렌, 모레노 등 새로운 선수들을 대거 영입한 탓에 수비진의 조직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베테랑으로서 안정적인 플레이를 통해 동료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줘야 했던 글랜 존슨은 되려 새로운 이적생들 앞에서 여러 차례 실수를 보이며 베테랑의 체면을 구겼다. 최근 경기들에서 수비진의 조직력에 문제를 드러낸 리버풀은 사우스햄튼전에서 1실점, 맨시티전에서는 확실히 무너지며 3실점을 허용했다.

새로운 이적생들 간의 조직력이 갖춰지기 위해서는 먼저 선수 개개인이 자신감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플레이에 자신감이 생기면 자연스레 선수의 폼도 올라가기 마련이고, 이는 동료들과의 조직력 향상으로도 연결되어 안정적인 수비진을 구축할 수 있다. 새로운 이적생들이 자신감을 가지기 위해서는 과연 시즌 첫 클린 시트를 어느 시점에 기록하느냐가 중요했는데, 3R에서 토트넘을 상대로 클린시트를 거뒀기 때문에 리버풀 수비진은 최근 좋지 않던 분위기를 이른 시간에 전환할 수 있었다.

비록 이날 경기에서 로브렌은 빌드 업 상황에서 자주 실수를 범했고, 사코 역시 아직은 몸 상태가 확실히 올라오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선수들이 이날 경기를 통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에 다음 경기에서만큼은 한층 더 달라진 수비진의 모습을 기대해 볼 수 있게 됐다.

특히 폭발적인 오버래핑으로 데뷔골을 넣은 알베르토 모레노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를 것 같다. 리버풀에서의 데뷔전이었던 맨시티전에서도 약간의 가능성을 보이더니, 토트넘전에서는 확실하게 적응을 마친 모습이었다. 그는 빼어난 활동량과 폭발적인 공격력, 투지 넘치는 수비력을 보이며 좋은 활약을 펼쳤고, 이날 경기를 통해 완전하게 자신감을 가졌을 것으로 기대된다.

토트넘전의 대승을 통해 리버풀은 승점 3점 이상으로 더 귀중한 것들을 얻었다. 다소 불안한 모습이 있던 개막 직후의 모습을 확실하게 뒤바꿀 수 있는 계기들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리버풀이 승리를 통해 많은 것을 얻은 것에 반해, 좋은 흐름을 이어가던 토트넘은 이날 경기를 통해 개선해야 할 과제를 수두룩하게 얻었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목된 것은 선수들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점이다. 3실점 이후 선수들이 목적의식을 잃은 듯한 모습으로 경기에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기를 지켜보던 토트넘 팬들과 축구 팬들은 크게 실망했다. 이후 행보를 위해서라도 토트넘은 종료 휘슬이 울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서 뛰어줄 필요가 있었다. 3실점이라는 결과가 토트넘의 팀 분위기를 상당한 수준으로 가라앉게 한 것은 아닐지가 우려스럽다.

또한, 에릭센이 공격 작업에 참여해주지 않았다는 것도 문제로 지목됐다. 대부분의 공격이 라멜라와 샤들리의 측면에서 전개됐으며, 중앙 공격은 아데바요르에게 의존한 것이 전부였다.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공격을 풀어주고 찬스를 만들어줘야 했던 에릭센은 제대로 볼을 터치하는 모습도 없이 경기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시즌 개막전과 2R에서 좋은 경기 내용을 보여준 토트넘은 3R 리버풀 전에서의 패배를 잊고 하루빨리 분위기를 회복하는 것이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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