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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보기가 역겨워 / 가실 때에는 /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
영변에 약산 / 진달래꽃 /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
가시는 걸음걸음 / 놓인 그 꽃을 /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
나 보기가 역겨워 / 가실 때에는 /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

'진달래꽃'은 수십 년 동안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빠지지 않고 실리고 있다. 교육현장에서 사용하는 거의 모든 교재에서 이 시는 전통적인 여인이, 사랑하는 임이 떠나갈 때, 이별을 순종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별의 아픔을 안으로 삭이며, 임을 축복한다는 단 하나의 틀로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진달래꽃'에는 '나'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존재가 가시는지, '나'와 가시는 존재는 어떤 관계인지, 언제 가시는지, 왜 역겨운지를 표현한 시어가 없다. 따라서 이 시는 독자들이 시적 상황을 자유롭게 상상하면서 읽을 수 있다.

'역겨워 가실' 사람이 '나'와 연인 사이라고 가정할 경우

① 역겨워 – 오해인가? 배신인가?

나 보기가 역겨운 이유가 표현된 시어가 없으므로, 독자들이 역겨움의 이유를 무엇으로 상상하고 읽느냐에 따라 이 시는 매우 다르게 읽힌다. 연인 사이에 속이 메슥메슥하고 구역질이 날 만큼 거슬리게 싫은 '역겨운' 감정이 생기는 일반적인 이유는 '배신'이다.

'나'가 배신했다고 오해받는 상황으로 가정하면 '나'를 여필종부(女必從夫)의 삶을 살아가는 전통적인 여인이라 할 수 있다. 오해로 인해 사랑이 깨지고 이별을 당하는데도 눈물을 속으로 삼키며 꽃을 뿌리고,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는 모습에서 너무나 사랑하기에 슬픔을 속으로 삭이며, 떠나가는 임을 축복하는 화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오해가 아니라 배신이 사실이라고 시적 상황을 가정하면, '나'는 전통적인 여인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고,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는 화자의 행위에서 독자들은 죄책감에 고통스러워하는 여인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기를 바라는 모습에서는 임의 용서를 구하는 여인을 읽을 수도 있다.

② 가실 때 – 지금? 곧? 언젠가는?

1990년대 이후, '가실 때'를 미래의 이별을 가정한 것이라고 설명하기 전에는 '지금' 이별을 하는 것으로 이 시를 설명하였다. 오해든 사실이든, '나' 보기가 역겨워 지금 떠나가는데, '나'가 꽃을 뿌리며 '임'이 가시는 길을 축복해주면, '임'은 어떤 마음일까? '나'의 변함없는 사랑에 감동할까? 두려움을 느낄까? '나'뿐만 아니라 떠나가는 '임'의 마음을 자유롭게 상상하면 색다른 느낌으로 이 시를 읽을 수도 있다.

'가실 때'가 '곧'이라고 가정하면, 현재 '나'와 '임' 사이에 이별의 조짐이 보이는 상황이라고 할 수도 있다. 다가오는 이별 때문에 불안해하면서, 이별을 당할지라도 변치 않는 임에 대한 사랑을 다짐하며, 사랑을 지키려 애쓰는 여인의 모습을 읽을 수도 있다.

'가실 때'가 '언젠가는'이라고 가정하면, 현재 '나'와 '임'의 사랑은 절정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사랑의 절정에서 먼 미래의 이별을 상상해야지 '나 보기가 역겨워' 사랑이 깨질지라도 '임'의 가시는 길을 축복해드리겠다는 마음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랑의 절정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주저 없이 바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므로 나 보기가 역겨워 떠나가는 임을 축복하는 것은 별것도 아닌 일이다.

한편, 사랑의 절정에서 이별을 상상하는 까닭은 한용운이 '님의 침묵'에서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이라고 말했듯이, 모든 사랑은 언젠가는 이별이 닥치므로 사랑할수록 이별이 더 두려워지고, 두려울수록 이별을 더 상상하기 때문이다. 

'역겨워 가실' 사람이 '나'와 연인 사이가 아니라고 가정할 경우

나 보기가 역겨워 떠나가는 존재마저도 축복(사랑)하고자 하는 김소월의 이상적 자아를 떠올리며 이 시를 읽을 수도 있다. 이렇게 읽으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며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고자 했던 윤동주의 이상적 자아와 김소월의 이상적 자아는 닮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윤동주의 현실적 자아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롭다. 김소월의 현실적 자아 또한 자신을 역겨워 하는 존재에게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너무 괴로워 눈물을 속으로 삼킨다. 이런 현실적 자아가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고, 나를 역겨워 하는 존재가 떠나가는 길에 꽃을 뿌리며 축복하는 이상적 자아를 추구하고 있다고 읽을 수 있다.

'모든 죽어가는 것' 중에는 나를 사랑하는 존재부터 나를 역겨워하는 존재까지 있을 수 있고, 내가 사랑하는 존재부터 내가 역겨워하는 존재까지 있을 수 있다. 나를 사랑하는 존재를 사랑하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니지만, 나를 역겨워하거나 내가 역겨워하는 존재를 사랑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려한 윤동주. 나 보기가 역겨워 떠나가는 존재를 사랑하려한 김소월. 이기적 사랑이 가득한 진흙탕 속에서 피어난 연꽃을 보는 듯하다.    

이처럼 '진달래꽃'은 독자들이 시적 상황을 자유롭게 상상하며, 저마다 다른 느낌으로 읽을 수 있는 함축성이 탁월한 시이다. 여필종부의 삶을 사는 전통적 여인에서 벗어나 '진달래꽃'이 여러 색깔로 읽히길 김소월도 기대할 것이다.


태그:#진달래꽃, #김소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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