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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고추가 가을햇살에 제 몸을 말리고 있다. 제 몸의 물이 적어질수록 붉은 빛은 더욱더 진해진다.
▲ 고추 붉은 고추가 가을햇살에 제 몸을 말리고 있다. 제 몸의 물이 적어질수록 붉은 빛은 더욱더 진해진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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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청년기였던 4월 16일, 봄은 어리지도 늙지도 않았기에 봄 중에서 으뜸이었다. 그러나 피어나는 봄같던 아이들이 진도 앞바다에서 영문도 모른채 '가만있으라!'는 말을 고분고분 들은 죄로 인생의 봄날을 마감했다.

그렇게 아프게 맞이한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가물었고 햇살은 뜨거웠으며, 달궈진 아스팔트는 가히 살인적인 무더위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 거리에서 수많은 이들이 반성의 눈물을 흘렸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마음을 모았다. 그렇게 봄부터 여름이 끝날때까지 거리에서 서성이며 안타까워했다.

한방에서 설사를 다스리는 약재로 사용된다. 일반인들도 쉽게 사용하여 설사를 다스리라고 다소 불경스럽지만, 약효를 알 수 있는 이름을 붙여준 것이 아닐까?
▲ 이질풀 한방에서 설사를 다스리는 약재로 사용된다. 일반인들도 쉽게 사용하여 설사를 다스리라고 다소 불경스럽지만, 약효를 알 수 있는 이름을 붙여준 것이 아닐까?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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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여름도 지나고 가을빛이 완연해지는 지금, 허탈하다 못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들이 지속되고 있다.

우매한 이들은 거짓 유언비어를 진실인냥 믿고, 유족들을 모욕하고 있다. 이렇게 조금만 더 버티면 자신들의 각본대로 대한민국이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에 충만한 권력은 조금도 물러섬없이 유족들과 그들을 위로하는 이들을 압박하고 있다.

이런 불의한 현실에서도 가을이 무심한듯 온다는 것이 슬프다. 아니, 본래 계절은 무심한 것이다. 그 무심함이 슬프고 서러운 이유는 봄, 여름, 가을이라는 계절을 맞이하면서도 진실규명이나 사고의 원인규명조차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시작인 '특별법'조차 농락당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가을이 슬프고 서럽다.

물봉선이 피어난 아침, 이슬방울을 달고 있는 물봉선의 보랏빛이 아름다운 아침이다.
▲ 물봉선 물봉선이 피어난 아침, 이슬방울을 달고 있는 물봉선의 보랏빛이 아름다운 아침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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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상이 죄만 같다. 온갖 유언비어로 난도질 당하는 유족들, 곡기를 끊고 진실규명을 외치다 쓰러진 유민 아빠 김영오씨, 그리고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그곳으로 모여드는 이들....

그들과 함께하지 않는 것이 죄인듯 하여 그곳에 서기도 하지만, 그것 이상 그 무엇도 하지 못하는 자책감에 시달리며 또다시 미안하고 부끄럽다. 사람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태연하게 하는 이들을 보면서 인간의 잔인성이 섬뜩하기도 하다.

잠이 덜 깨었는지 인기척에도 가만 앉아 렌즈를 응시하고 있다. 맥문동 꽃줄기와 잘 어울린다.
▲ 맥문동과 잠자리 잠이 덜 깨었는지 인기척에도 가만 앉아 렌즈를 응시하고 있다. 맥문동 꽃줄기와 잘 어울린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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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런 가운데서도 가을이 오고 있다니 너무 무심한 것 아닌가? 이 계절이 우리에게 주고자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그것은 희망일까, 절망일까? 희망이길 바랄 뿐이다.

작고 큰 차이만 있었을 뿐,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으며, 그래서 늘 불의가 판을 치고, 아주 작은 진실만이 간혹 어둠 속의 빛처럼 이어졌던 것이다.

4월 16일 이전과 이후를 이야기하려면, 4월 16일 이전의 낡은 구태를 벗어버려야 한다. 그러나 나느 그 이후로 이어진 지금까지의 과정들을 보면서 이전의 구태보다 더 잔인한 구태를 보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이럴 수 없다'는 절망감이 압도하는 세상에서 분노심만 더욱 커지고 있는 것이다.

하얀 참취가 무성하게 피어나는 가을의 숲, 참취는 순백의 미와 단순함의 미를 고루 갖춘 꽃이다.
▲ 참취 하얀 참취가 무성하게 피어나는 가을의 숲, 참취는 순백의 미와 단순함의 미를 고루 갖춘 꽃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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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런데 가을빛 타령 꽃다령이나 한다고? 아주 조금씩이라도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었다. 그런저런 핑계로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인가 싶으면서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 일을 해주길 바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부단히 일상을 찾으려 노력을 했다.

그러나 이 현실을 묵과한 일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파도 일상 속에서 껴안고 가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껴안고 가도 아프거나 슬프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평생 고단한 짐을 내려놓지 못할 것이다. 계절의 바뀜에 '넌 왜 그리도 무심하니?'라는 마음이 아니라, 계절만큼 성숙한 마음일 것이다.

숲가의 습지에 무성지게 자라나는 물봉선, 보랏빛 꽃밭에 햇살이 들면 물고기 꼬리를 흔들며 하늘을 유영하는 듯 하다.
▲ 물봉선 숲가의 습지에 무성지게 자라나는 물봉선, 보랏빛 꽃밭에 햇살이 들면 물고기 꼬리를 흔들며 하늘을 유영하는 듯 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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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들을 바라보아도 흥이 나질 않았다. 그러나 흥이 나질 않아도 그들이 자기의 때를 잊지않고 피어나 주었다는 것은 희망의 편린이었다. 이런 꿈을 꾸었다.

저마다 다른 가을 빛들이 물고기 비늘처럼 이어지고 이어져 마침내 물고기가 되어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 그 물고기의 밥은 이 땅의 불의한 모든 것들, 이 땅의 불의한 것들조차도 그 물고기의 밥이 되어 하늘이 되는 기회를 얻고, 마침내 물고기는 더는 먹을 것이 없자 하늘의 별이 되어 올라가는 꿈.

여름 내내 자신의 몸을 보시하면서도 이내 꽃줄기를 내고 꽃을 피웠다. 하늘의 별 같은 부추의 꽃, 손님이 찾아와 그들의 노고를 치하한다.
▲ 부추 여름 내내 자신의 몸을 보시하면서도 이내 꽃줄기를 내고 꽃을 피웠다. 하늘의 별 같은 부추의 꽃, 손님이 찾아와 그들의 노고를 치하한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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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내내 신비로웠다.

밑둥까지 잘라도 또 자라고 또 자라는 부추의 싹에는 베어낸 상처의 흔적이 없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아무리 바라보아도 새순이 아니라, 잘린 곳에서 올라온 것임에도 부추의 이파리에는 베어낸 상처의 흔적이 없었다.

그러더니 여름의 끝자락부터는 꽃줄기를 내기 시작했다. 그것만큼은 자르면 안 된다고 시위를 하듯 하룻밤 사이에 길게 자랐다. 그렇게 두었더니만, 이젠 자라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는지 몇날며칠 꽃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피어날듯 피어날 듯 거반 일주일이 지나자 화들짝 피어났다. 하얀 별이다.

아, 그 물고기가 별이 되었어. 희망의 편린 하나 둘 모여 하늘을 나는 물고기가 되더니, 그 물고기가 별이 되었네!

아직은 가을 초입이라 푸른 빛이 많지만, 이내 풍경소리 높게 들려오는 날 잦아지면 가을빛도 완연할 것이다.
▲ 풍경 아직은 가을 초입이라 푸른 빛이 많지만, 이내 풍경소리 높게 들려오는 날 잦아지면 가을빛도 완연할 것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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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의 시를 광화문 광장에서 지난 여름 내내 읽었다.

'먼데서 바람 불어와 /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 찾아간 줄 알아라....'

보이지 않느 바람이 소리로 자기를 들려준다는 것은 신비다. 그래서 바람은 보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구나 싶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바람이 불어와 풍경을 흔들어 놓듯이, 그렇게 바람 불어와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희망의 소리를 들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누군가 그 바람이 되라고 하기 전에, 내가 그 바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겠지.....

아직은 본격적인 겨울준비를 하지는 않겠지만, 도토리와 밤 등 견과류가 익어갈 즈음이면 분주하게 월동준비를 할 것이다.
▲ 다람쥐 아직은 본격적인 겨울준비를 하지는 않겠지만, 도토리와 밤 등 견과류가 익어갈 즈음이면 분주하게 월동준비를 할 것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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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살만하겠지? 아직은 가을 초입이니 긴 겨울처럼 춥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이내 겨울잠을 자고 깨어날 것이다.

우리네 역사는 춥다. 겨울잠을 자야만 할 것처럼 춥다. 그러나 계절이 그렇게 무심하게 바뀌듯이 역사의 겨울도 그렇게 무심하게 가고 봄이 올 것인가? 아니, 역사의 겨울은 그렇게 오는 것이 아닐 터이다.

가을이 이젠 빛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몸도 가을을 느낀다. 어느새 봄,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건만 여전히 우리네 역사는 꽁꽁 얼어붙어있는 듯하다. 이 겨울을 녹이는 빛만이 2014년 가슴시린 봄과 여름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태그:#가을, #가을빛, #참취, #꽈리,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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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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