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로 에서 주인공 조로를 연기하는 비스트 양요섭

▲ 조로 에서 주인공 조로를 연기하는 비스트 양요섭 ⓒ ㈜엠뮤지컬아트 | CJ E&M㈜


<조로>는 '구원자'를 필요로 하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20년 전에 조로는 민중을 억압하던 독재자를 물리친 적이 있었지만, 사회 시스템이 바뀌지 못한 탓에 사람들은 다시금 라몬이라는 독재의 마수에 단단히 얽혀들어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영웅 조로가 민중을 구해줄 구원자로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회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다면 히드라의 머리처럼 다른 독재자가 새롭게 나타나 민중을 억압할 것이다.

하지만 조로가 쉽사리 나타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운동선수도 30대에 접어들면 은퇴를 바라볼 나이인지라,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40대 혹은 50대 중년의 나이로는 독재자로부터 대중을 구할 방법이 요원하기 때문이다. 대중은 자신들을 구해줄 구원자 조로를 바라지만 진짜 조로는 세월의 무게 앞에 선뜻 가면을 다시 쓰고 나타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20년 후에 나타난 신세대 조로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스칼렛 핌퍼넬>이 자신이 구원자라는 진짜 모습을 숨기고 호색한 연기를 했던 것처럼 요즘은 영웅이 '엄숙주의'를 버리는 시대인가 보다. 3년 전 조승우가 연기하던 조로도 그렇지만 이번에도 조로는 '허당' 영웅에 가깝다.

대중과 거리가 있는 영웅의 모습이 아니라 도리어 대중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빈틈투성이 영웅으로 불의에 맞서고 있다. 다른 뮤지컬에 비해 농담 따먹기 식의 대사가 많은 건 연출가의 재간도 있겠지만 조로가 얼마만큼 허당인지 보여주는 설정이다.

주인공이 허당 영웅인 것처럼 여주인공 루이사도 통상적인 여성 캐릭터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보통의 히로인은 극 중 남자주인공의 부수적인 역할을 담당하거나 수동적인 인물로 전락하기 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루이사는 여성이 주체가 되는 <메노포즈>나 <위키드>처럼 남성의 목소리에 잠식되지 않는 주체적이고 당당한 여성상을 보여준다. 아버지가 추진하는 정략결혼에 당당하게 '아니요'를 외치고, 욕실에 무단 침입한 조로의 중요한 부위를 승부차기하듯 걷어차고, 심지어는 조로의 뒤통수를 서슴없이 때리기까지 한다.

극 중 독재자 라몬의 감언이설은 전직 대통령의 감언이설을 연상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해 보인다. 4대강 사업이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홍수 예방은 물론이려니와 건설 분야 고용 시장 창출, 환경 보호가 저절로 이루어질 것만 같은 장밋빛 공약을 내세웠지만 지금 우리에게 돌아온 건 4대강의 녹조라떼 현상과 막대한 예산 지출 낭비 아니던가.

라몬 역시 캘리포니아 철도 사업을 통해 캘리포니아의 경제적인 발전을 위한다고는 하지만 알고 보면 캘리포니아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한 사업이 아니라 자신의 유익을 위한 수단이다. 극 중 독재자를 통해 전직 대통령의 폐해가 보인다는 건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닌 듯하다.

<삼총사>를 제작해오던 공연제작사라 그런지 조로와 앙상블의 칼싸움 장면은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조로 역을 소화하는 남주인공은 가창력과 연기 소화는 물론 칼싸움 같은 액션을 무리 없이 소화해야 하니 보통의 뮤지컬보다 이중의 수고를 곁들여야 한다. 묵직한 비장함이나 엄숙주의와는 이별을 고한 지 오래라 관객의 흥을 돋우는 장면이 몇몇 눈에 띄는데, 그 가운데 백미는 조로와 라몬이 결투를 벌이는 '기차 결투' 장면이다.

무대 세트인 철도는 한 쪽 면만 보여주기 쉽지만 조로의 기차는 영화 앵글마냥 왼쪽에서 중앙, 오른쪽의 모습을 180도 돌려가며 다양하게 보여준다. 기차를 돌려가며 보여주는 덕에 관객은 다양한 시각에서 영웅과 악당의 결투를 실감나게 감상할 수 있다.

이네즈를 연기하는 소냐가 선사하는 플라맹고는 관객의 어깨를 절로 들썩이게 만드는 매력을 갖고 있다. 이네즈와 루이사, 가르시아는 어느 캐스팅으로 감상하더라도 탄탄한 가창력과 연기력을 선사하니 조로는 김우형과 비스트 양요섭, 샤이니 키와 휘성이라는 쿼드러플 캐스팅 중 입맛에 맞는 배우로 관람하면 될 듯하다.

조로 양요섭 김우형 KEY 4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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