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오랫동안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총 7권으로 완성된 국내 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는 '평양의 날은 개었습니다'와 '다시 금강을 예찬하다'라는 북한 문화유산 답사기도 포함되어 있다. 최근에는 일본 편까지 출간되었고 인기는 여전한 것 같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우리 문화를 대중화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고, 유홍준 교수 자신은 아주 막강한 문화 권력을 쥐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책이 되었다. 국민들은 답사 지침서가 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들고 우리나라 곳곳의 문화유적지를 찾으면서 열광했다. 당시 답사 열풍은 가히 강력한 태풍급이었다.

그런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두 권째를 읽으면서 무척 속이 상했다. 아니 자존심이 상했다. 정확하게는 '옛길과 옛 마을에 서린 끝 모를 얘기들' 편에 실린 글 때문이었다.

우리 지역 사람들이 읽게 되면 누구라도 속이 상할 것이다. 유홍준 교수는 수많은 지역을 답사하면서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설명하여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그런데 우리 지역을 지나면서는 유독 좋지 못한 기억만 되뇌고 무진장을 지나갔다.

유홍준 교수는 함양·산청을 답사하는 길에 우리 고장 소양·화심을 지나면서 '가든'이 즐비하다면서 비웃었고, 무진장을 지나면서는 더욱 넋두리가 심해진다. 모랫재는 사뭇 험하다 하면서 사고가 잦다느니, 두 번의 답사 실패를 무진장의 많은 눈에서 내린 것에 연유를 찾는 등의 넋두리이다.

다른 계절에 올 생각을 하지 않고 오직 '무진장'이란 말을 사용하기 위해 별일을 다 끌어들인 느낌이다. 더욱 압권인 것은 아주 어두웠던 시절의 캄캄한 시골동네 이야기라며 1972년 11월 유신 찬반투표에서 우리 고장 무진장 지역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투표율을 보여 주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조금은 번잡스럽지만, 그 대목은 이렇다.

"내가 잊지 못할 무진장의 또 다른 추억은 1972년 11월 유신헌법 찬반 국민투표 때 일이다. 사상 유례없는 투표율과 유례없는 지지율을 얻어 내기 위해 대리투표, 유령투표 등 유례없는 관권 부정선거가 자행됐던 이 선거에서 …… 무진장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투표율을 보여 주었는데, 투표율은 자그마치 103%였다. 무진장 쏟아져 나온 것이다. 그 캄캄했던 시절의 캄캄한 시골동네 얘기가 이제는 캄캄한 옛이야기로 전설이 되어 들려온다."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18쪽.

'무진장'이란 단어를 사용하기 위하여 순박하게 살아가는 무진장 사람을 조롱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참으로 자존심 상하는 글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수백만 독자가 이 대목을 읽었을 터인데, 그 독자들이 우리 고장 전북 무진장 지역을 어떻게 생각할까 끔찍한 느낌이 든다.

글 내용으로 캄캄했던 시절이라 하지만 무진장 지역은 대단히 순진함을 넘어서 미개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대목이다. 특히 정치적으로 우매한 국민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기회가 된다면 유홍준 교수와 출판사에 수정 개정판에 새롭게 기술할 것을 제의한다. 너무 자존심이 상하는 대목이라 해본 생각이지만 반드시 개정되기를 바란다.

<진안군사에 의하면, 1972년 11월 21일 선거에서 진안군은 투표인수 44,306명, 투표수 41,689명 투표율 93.5%라 기록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E-진안신문에(2014.9.1)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문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는 전북 전주고에서 한국사를 담당하는 교사입니다. 저는 대학때 부터 지금까지 민속과 풍수에 관심을 갖고 전북지역 마을 곳 곳을 답사하고 틈틈히 내용을 정히라여 97년에는<우리얼굴>이란 책을 낸 바 있습니다. 90년대 초반에는 전북지역의문화지인 <전북 문화저널> 편집위원을 몇년간 활동한 바도 있습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전남 해남 서림에 가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