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최다우승에 빛나는 전통의 명가 전주 KCC는 의외로 엄청난 기량의 외국인 선수는 많이 보유해 보지 못했다. 크리스 윌리엄스-피트 마이클-크리스 랭-리벤슨-단테 존스 등 많은 팬들이 '역대급 용병'으로 꼽는 선수들은 모두 타 팀 소속이었다. 그나마 찰스 민랜드 정도만이 그러한 라인에 어깨를 견줄 만한 유일한 외인으로 평가된다. 신선우 감독에서 허재 감독으로 사령탑이 바뀌면서부터는 이러한 성향이 더욱 두드러졌다. 어떤 면에서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2차례의 왕조를 이뤄낸 게 더 대단해 보인다.

하지만 KCC 역시 많은 우승을 쌓아가는 데 있어서 외국인 선수 덕을 많이 본 편이다. 그간 KCC를 거쳐간 용병들로는 초창기 토드 버나드, 라펠 맥길버리, 제이 웹 등을 시작으로 조니 맥도웰, 재키 존스, 로렌조 홀, 마이크 채프먼, 데이먼 플린트, 토시로 저머니, 레지 타운젠드, 크리스 화이트, 르나드 존스, 켄드릭 브룩스, 클라이드 엘리스, 제런 콥, 드미트리스 몽고메리, 요나 에노사, 벤 퍼킨스, 칼 보이드, 찰스 민렌드, 무스타파 호프, R.F 바셋, 그레고리 스템핀, 제로드 워드, 쉐런 라이트, 아써 롱, 바비 레이저, 마이크 벤튼, 마르코 킬링스워스, 타이론 그랜트, 아이지아 빅터, 브랜든 크럼프, 제이슨 로빈슨, 마이카 브랜드, 브라이언 하퍼, 칼 미첼, 아이반 존슨, 크리스 다니엘스, 실베스터 세이, 제러드 메릴, 에릭 도슨, 드숀 심스, 자밀 왓킨스, 코트니 심스, 안드레 브라운, 크리스 알렉산더, 존 토마스, 타일러 윌커슨, 아터 마족, 대리언 타운스, 델본 존슨 등이 있다.

올 시즌에는 재계약에 성공한 타일러 윌커슨을 중심으로 다시 돌아온 드숀 심스 체제로 운영될 전망이다.

역대급 없지만, 상황에 맞는 적임자들 펄펄 날며 우승 이끌어

KCC는 역대급 괴물 용병들은 없었지만 상황에 맞게 적재적소에서 뛰어난 적임자들이 등장하며 우승 반지 획득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조니 맥도웰, 재키 존스, 찰스 민랜드-마이카 브랜드, 에릭 도슨 등이 대표적 외국인 선수들이다.

'탱크' 조니 맥도웰(43·194cm)은 역대로 따졌을 때는 모자람이 많은 선수지만 프로농구 초창기 당시에는 KBL의 트렌드 자체를 바꿔 버릴 만큼 무시무시했던 최고의 용병이다. KCC(당시 현대) 전설의 시작은 맥도웰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팬들 사이에서의 이름값이나 유명세만 놓고 따졌을 때는 그 어떤 선수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다는 평가다.

맥도웰의 가장 무서웠던 점은 신장 대비 골밑 파워였다. 그는 고릴라를 연상 시키는 엄청난 가슴 둘레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을 바탕으로 골밑 플레이의 정석을 보여줬다. 비슷한 신장의 타 팀 선수들이 가드 혹은 포워드형이었던 것에 비해 파워 포워드였던 맥도웰은 포스트를 마치 내 집처럼 드나들며 센터 용병과 함께 KCC표 '파워 트윈타워'를 형성해 냈다.

맥도웰은 미국 무대에서 뛸 당시에도 그렇게 유명한 선수도 아니었으며 테크닉적으로도 특출날 것은 없었다. 하지만 강한 몸싸움 능력과 스피드-파워를 동시에 겸비한 기본기는 국내리그에서만큼은 공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어지간한 센터와 맞붙어도 힘에서 밀리지 않았다. 이상민의 컴퓨터 패스를 받아 안정적으로 골밑 슛을 성공 시키는가 하면 리바운드, 탭슛, 속공해결 등 팀내 주포로 꾸준히 활약했다. 이러한 공헌도를 인정 받아 3년 연속 외국선수 MVP를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상대팀들에서는 맥도웰을 견제하기 위해 비슷한 유형의 외국인선수들을 뽑는 등 당시 외국인선수 선발의 흐름이 바뀌기도 했다.

프로농구 외국인선수의 흐름을 주도해간 팀답게 KCC가 맥도웰의 파트너로 뽑았던 재키 존스(47·201㎝)는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신개념 센터였다. 존스는 특유의 탄력과 집중력으로 골밑에서 리바운드-블록슛에 매우 능했다. 센터로서는 다소 호리호리한 체형이었지만 골밑에서 충분히 제몫을 해주었다.

존스는 센터로서의 기본플레이 외에 3점슛과 '베이스볼 패스(아울렛 패스)'라는 자신만의 특기를 가지고 있었다. 센터가 외곽으로 나와 어지간한 슈터 못지않게 외곽슛을 펑펑 꽂고 수비 리바운드 후 빠르고 정확한 롱패스를 뿌린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다. 상당수 올라운드 빅맨들이 거쳐간 지금까지도 존스같은 유형의 선수는 찾아보기 힘들다.

당시 KCC는 최고의 패스 마스터 이상민-아울렛 패스의 달인 존스라는 최고의 패서들 덕분에 리그 최강의 속공팀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이들에게서 나온 패스는 추승균-맥도웰의 속공 레이업 및 조성원의 속공 3점슛으로 이어지며 상대팀들의 맥을 빠지게 했다.

약사 자격증 소지자로도 유명했던 '민둘리' 찰스 민랜드(41·195cm)는 KCC 역사상 최고의 테크니션이다. 이스라엘 프로농구리그 득점왕 2회, 2003년 이스라엘 프로농구리그 정규리그, 올스타전 MVP 등 국내리그 입성 전부터 화려한 경력으로 화제를 모았던 그는 묵직한 이름값을 증명하듯 KCC에서도 펄펄 날며 역대급 특급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민랜드는 파워-스피드 등 어느 한쪽에서 특출 나지는 않았지만 특유의 능글능글한 꾀돌이 플레이로 내외곽에서 고르게 활약했으며 팀 전술 이해도나 패싱게임에도 강점을 보였다. 컨디션 여부에 상관없이 팀에 공헌해 줄 수 있는 타입으로 어떤 팀이든지 탐낼 만한 농구 기술자였다는 평가다.

맥도웰-존스-민랜드처럼 빼어난 포스는 없었지만 '전주 노예' 마이카 브랜드(34·207cm) 역시 KCC 우승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용병이다. '공룡센터' 하승진(29·221cm)의 맞춤형 파트너로 뽑혔던 그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묵묵함과 성실함으로 KCC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브랜드는 팀의 취약한 부분을 요소요소에서 긁어줬다. 그는 정통센터가 아닌 만큼, 힘에서는 상대팀 빅맨에 밀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센스가 뛰어나고 스피드와 운동능력을 고르게 갖추고 있어, 파워의 열세를 다른 부분에서 커버하며 자신의 몫을 해냈다.

그는 골밑에서 상대를 등지고 펼치는 1:1 능력이 상당히 뛰어났다. 부드러운 피벗 동작으로 수비수를 따돌린 채 성공시키는 훅슛은 KCC의 주요 전술 중 하나로 활용됐다. 여기에 탑에서의 3점슛과 양사이드에서의 미들슛 등 긴 슈팅 거리를 자랑해 어떤 상황에서도 득점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자신의 공격이 원활치 않으면 골밑으로 대쉬해 들어오는 동료들에게 칼날 같은 패스를 찔러줬다. 또한, '컷인플레이(cut in play)'를 성공 시키는 등 패싱 게임에 있어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해냈다. 이러한 다재다능함 덕분에 정통 빅맨인 하승진과 동선이 겹치지 않고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KCC팬들 역시 "그보다 뛰어난 기량을 갖춘 외국인 선수는 많겠지만 하승진과 그 정도로 호흡이 잘 맞는 파트너는 많지 않았다"며 지금까지도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

'전천후 마당쇠' 에릭 도슨(30·201㎝)을 잊지 못하는 KCC팬들도 많다. 냉정히 말해 그는 앞서 언급한 외국인 선수들에 비해 활약한 기간도 짧고 잘 알려지지도 않았다. 타팀 팬들 같은 경우 도슨이라는 존재를 기억하는 이들도 많지 않다. 그러나 KCC팬들 사이에서 그는 고마운 이름이다.

도슨의 최대 장점은 뛰어난 농구센스를 바탕으로 한 팀플레이였다. 그는 타 팀의 테크니션 용병들에 비해 개인기나 탄력 면에서 크게 돋보이지 않았기에 상대팀에서도 경계에 소홀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도슨은 누구보다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잘 알고 있고 그것을 훌륭히 소화해냈다. 팀내에 득점할 수 있는 선수들이 많아 무리하게 공격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자신에게 찬스가 오면 3점 혹은 미들슛을 안정적으로 마무리 짓는다. 전술 이해도가 좋아 받아먹는 패턴에도 능했다.

도슨의 필살기는 다름 아닌 '공격 리바운드'였다. 그는 상당수 외국인 선수와 달리 수비나 몸싸움 등 궂은일부터 챙기며 동료들의 슛이 림을 맞고 튀어 오르면 누구보다도 먼저 골밑으로 달려가 공을 잡아냈다.

당시 팀내 주전센터였던 하승진은 순발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상대팀 빅맨들이 한꺼번에 달려들 경우 허둥지둥 대는 경우가 많았는데 바로 이 순간 도슨의 진가가 발휘됐다. 도슨은 높이 뛰지는 않지만 위치선정이 워낙 좋아 동료의 슛이 실패할 경우 곧잘 리바운드를 잡아 바로 '팁인슛 (tip in shoot)'으로 연결시켰다. 하승진에게 상대 수비가 몰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를 잘 이용하는 것도 능력이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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