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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일병 사건 담당) 검찰관은 한 달 여에 걸친 폭행, 가혹행위와 사망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가능한 범위에서 완벽하게 특정하여 공소를 제기했다." (8월 11일 육군 법무병과장 김흥석 준장이 육군 내부망에 올린 글)

"이번 수사와 관련하여 가해자를 일벌백계해야 할 군 사법기관이 사고 은폐를 시도하거나 은폐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8월 28일 국방부 대변인)

28사단 윤 일병 구타 사망사건과 관련, 헌병의 수사와 군 검찰의 기소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 군과 국방부의 일관된 입장이지만,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만 놓고 보면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특히 윤 일병의 정확한 사망원인, 헌병에서 핵심증인이 진술한 주요 폭행 내용이 군 검찰 공소장에서 빠진 사실, 군 검찰관이 재판부에 제출했던 자료에 대한 위·변조 의혹 등은 과연 군사법원에서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냐는 근본적 회의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당초 28사단 보통군사법원에서 진행됐던 재판이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으로 옮겨졌고, 이조차 재판의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가해자 측 변호인의 문제제기로 (재판)관할이전 신청이 제기된 상태다.

무엇보다 군 당국은 윤 일병이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인을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서 질식하는 바람에 뇌사상태에 빠졌다'고 판단했지만, <오마이뉴스>가 관련자들의 진술을 모두 살펴 본 결과 아무도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금까지 제기된 윤 일병 사건에 대한 의혹들을 정리했다.

윤 일병 사인, '기도폐쇄에 의한 질식사'가 맞나?

윤 일병 집단 구타 사망사건과 관련해, 군 헌병대가 윤 일병 사망 5일 뒤인 지난 4월 11일 실시한 현장 검증 사진.
 윤 일병 집단 구타 사망사건과 관련해, 군 헌병대가 윤 일병 사망 5일 뒤인 지난 4월 11일 실시한 현장 검증 사진.
ⓒ 군 수사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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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 전입 직후부터 한 달 넘게 선임병들로부터 지속적인 구타와 가혹행위를 당하던 윤 일병은 지난 4월 6일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가, 하루 만에 숨졌다. 윤 일병이 사망한 7일 의정부 성모병원이 작성한 사망진단서에는 직접사인은 미상으로 기재돼 있다.

하지만 당일 오후 7시 51분, 육군은 국방부 출입기자들에게 윤 일병 사망사실을 공개하면서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뇌손상을 일으킨 것이 사망 원인으로 추정된다'(기도폐색에 따른 뇌손상)고 발표했다. 윤 일병 시신에 대한 부검은 이날 오후 10시 8분에야 시작되었으니, 부검을 하기도 전에 사인을 발표한 것이다.

이해 못할 상황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헌병 수사관이 작성한 4월 8일자 사체처리지휘요청서에 "기도폐쇄에 의한 뇌손상 등으로 사망했다"고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망원인에 대해 법적인 효력을 갖는 국방부 조사본부 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감정서는 5월 12일에야 제출됐다.

부검의가 "기도폐쇄에 의한 뇌손상"으로 판단한 부분도 의혹에 휩싸여 있다. 윤 일병의 부검감정서에 따르면 피멍이 윤 일병 시신의 거의 모든 곳에서 발견됐고, 갈비뼈가 15개나 부러져 있었다. 몸 안의 흉강과 복강에서 출혈이 발견됐고 비장도 파열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몸속 깊숙이 있는 비장이 파열된 사실은 사인과 관련, 예사로이 넘길 수 없는 것이란 게 법의학자들의 견해다. 유성호 서울의대 법의학과 교수는 부검 감정서를 검토하고 "비장 파열은 교통사고 수준의 큰 충격이 있을 때나 발생하는 것"이라며 "윤 일병이 심한 구타로 인한 쇼크로 사망했다"는 소견을 밝혔다.

지난 7월 28사단에서 열린 3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부검의는 "이 피해자(윤 일병)만큼 온몸에 멍이 많이 든 사람을 본 적 있나"는 질문에 "추락사의 경우에는 본 적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부검의 스스로도 윤 일병의 시신에 추락사한 시신과 맞먹는 정도의 구타 흔적이 있었다는 말을 한 것이다.

또 부검의는 '윤 일병의 기도 및 인두에 음식물이 많았던 점'을 들어 이를 질식사의 증거라고 판단했지만, 사망자의 경우 근육긴장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이동이나 심폐소생술로도 음식물이 기도로 역류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음식물이 기도 막고 있었다'고 진술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엇보다 윤 일병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을 당시 음식물이 윤 일병의 기도를 막고 있었다는 증거는 아무데도 없다. 가해자 지아무개 상병은 '(윤 일병의) 턱을 벌렸다'고만 했고, 또 다른 가해자 하아무개 병장과 핵심증인 김아무개 일병(조기 전역)의 진술서에는 '기도를 확보했다'는 얘기만 나올 뿐 손으로 음식물을 꺼냈다는 내용은 없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달 13일 군 검찰의 보강 조사에 응한 김 일병의 진술을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진술조서에 따르면 김 일병은 "(윤 일병의 턱이 굳어져서) 공기를 주입하려면 입을 열어야 하기 때문에, 지 상병이 피해자의 입을 열고 플라스틱 관을 집어넣었다"고 말을 했을 뿐, 직접 손으로 음식물을 꺼냈다는 내용은 없다.

오히려 음식물이 윤 일병의 기도를 막았다는 것은 가해자들이 입을 맞춘 결과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런 정황은 의무기록지에도 나타나 있다.

사고 당일 윤 일병은 연천군 보건의료원과 국군양주병원을 거쳐 의정부 성모병원으로 이송됐다.

최초로 윤 일병이 도착한 연천군 보건의료원 의무기록지에는 윤 일병에 대해 '인튜베이션(기관내관 삽관)과 석션(흡입)을 실시했다고'만 되어 있을 뿐 '입안에 음식물에 차 있었다'는 언급이 없다.   

그런데 국군양주병원의 기록지에는 앞서 윤 일병이 거쳐 온 연천군 보건의료원 도착 당시 '윤 일병의 입에 음식물이 가득 차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마지막으로 이송된 의정부 성모병원 기록지에는 '윤 일병이 떡을 먹었다'고 되어 있다.

이미 연천군 보건의료원의 심폐소생술로 자발 호흡이 돌아온 후여서, 국군양주병원이나 의정부 성모병원 의료진 모두 윤 일병의 기도를 막은 음식물을 볼 수 없었음에도 이렇게 기재되어 있다는 것은 누군가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의료진에게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방증이다.

'기도 막은 음식물' 얘기는 포대장 진술서에만 나와

윤 일병 집단 구타 사망사건과 관련해, 군 헌병대가 윤 일병 사망 5일 뒤인 지난 4월 11일 실시한 현장 검증 사진.
 윤 일병 집단 구타 사망사건과 관련해, 군 헌병대가 윤 일병 사망 5일 뒤인 지난 4월 11일 실시한 현장 검증 사진.
ⓒ 군 수사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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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가해자들과 핵심증인 중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던 '기도를 막은 음식물' 얘기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놀랍게도 이 얘기는 가해자들과 피해자가 소속된 본부포대장 김아무개 대위의 진술서에 처음 등장한다.

김 대위는 사고 당일 밤 10시 40분경, 이 사건의 결정적 제보자 A상병으로 부터 구타·가혹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가해자들과 핵심증인을 불러 조사한 지휘관이다.

김 대위의 진술서에는 '윤 일병이 입에 음식물을 물고 있어 (가해자들이) 강제로 입을 벌리게 하여 손가락으로 입에 있는 이물질을 제거했다는 얘기를 (핵심증인) 김 일병에게 들었다'고 되어 있지만, 정작 김 일병의 진술서에는 이런 이야기를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김 일병의 추가 진술서에는 '윤 일병이 뺨을 맞을 때 음식물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고, 그가 침상에서 헐떡일 때에도 음식물이 목에 걸려서 숨이 찬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도, 4월 7일자 헌병 수사관의 보고서는 "입안에 있던 음식물을 강제로 입을 벌려 손가락을 넣어 이물질을 제거"라고 적시하고 있다. 이는 지휘관의 진술서만 믿고 정작 이 말을 했다는 핵심증인에게는 사실 확인도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헌병의 초동수사에 중대한 허점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수리 8대 맞은 윤 일병이 쓰러졌다"는 진술은 왜 공소장에서 빠졌나?

군 당국은 이번 사건을 은폐할 아무런 이유가 없고, 수사와 기소과정에도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핵심증인 김 일병이 목격한 폭행 사실이 헌병대에서 작성한 진술서에는 나오지만, 정작 군 검찰의 기소 내용에서는 빠져 있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이같은 태도는 비판을 받고 있다.

즉, 김 일병이 헌병대에서 진술했던 진술서와 진술조서에는 "이아무개 상병이 손바닥으로 피해자의 정수리 부분을 8대 폭행하였고 그 충격으로 피해자(윤 일병)가 침상에 쓰러졌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만, 군 검찰관이 작성한 공소장에서 이런 내용은 빠져 버렸다.

4월 6일 오후 4시 이후 윤 일병이 의식을 잃기까지 가해졌던 20여 분 동안의 폭력의 강도는 이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는 점에서 이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다.

김 일병의 추가 진술조서에 따르면, 폭행을 당하던 윤 일병이 침상 위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물이 먹고 싶다'고 하자 주범 이 병장은 3초를 줄 테니 물을 먹고 오라고 했다. 윤 일병은 필사적으로 뛰어가려 했지만 3초 안에 물을 마시는 것은 불가능했다. 또다시 선임병들의 구타가 계속됐고, 바지에 소변을 지리며 침상에 쓰러졌던 윤 일병은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이런 폭행이 가해지던 와중에 이 상병이 윤 일병의 정수리를 소리나게 8차례나 때렸고, 이 충격으로 윤 일병이 침상에 쓰러졌다는 증언은 적어도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입증하는 데 있어 종합적인 판단근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왜 이런 폭행사실이 공소장에서 빠졌는지는 반드시 규명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에 제출된 자료는 과연 믿을만한 것인가?

그렇다면 28사단 보통군사법원에서 진행된 재판에서 이런 의혹들은 제대로 규명될 여지가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그렇지 못하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 사건의 실체 규명과 관련, 가해자들 일부에게는 살인죄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재판 내내 고수했던 사람은 오히려 가해자중 한 사람의 변호인이었다.

가해자 하아무개 병장의 변호를 맡은 김정민 변호사는 재판부에 제출된 윤 일병 시신 부검감정서의 일부가 은닉 또는 폐기되었다는 의혹도 아울러 제기했다.

즉 국방부 조사본부 국방과학수사연구소에서 송부한 최종(부검)감정서에 포함된 감정의견 부분을 누군가 의도적으로 은닉 또는 폐기했다는 주장이다. 윤 일병이 기도폐쇄에 의한 질식으로 사망했다는 국방부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와는 다른 결론을 내리고 있는 감정의견서와 뒤바꿔버렸을 가능성이 제기된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그 근거로 부검사진 하단에는 국방과학수사연구소의 천공이 찍혀 있지만, 감정의견서 하단에는 천공이 찍혀 있지 않았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실제 <오마이뉴스>는 윤 일병 사건 관련 국방부 조사본부의 감정서를 입수해 다른 사건의 감정서와 비교를 해봤다. 다른 사건의 경우에는 감정서와 부검사진, 부검 감정결과 통보라는 공문까지  모두 하단에 국방부 조사본부를 나타내는 CIC라는 천공이 찍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윤 일병 사건의 경우 부검사진 밑에는 CIC 천공이 찍혀 있었지만, 감정서 하단에는 아무런 천공이 찍혀 있지 않았다. 반대로 감정서 하단에는 쪽 번호가 있지만, 부검사진에는 쪽 번호가 없었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윤일병의 부검 감정서 하단에는 국방부 조사본부를 뜻하는 CIC 천공이 찍혀 있지 않았다.
▲ 윤 일병 부검감정서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윤일병의 부검 감정서 하단에는 국방부 조사본부를 뜻하는 CIC 천공이 찍혀 있지 않았다.
ⓒ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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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일병의 부검 사진 하단에는 국방부 조사본부를 뜻하는 CIC 천공이 찍혀 있다.
▲ 윤 일병 부검 사진 윤 일병의 부검 사진 하단에는 국방부 조사본부를 뜻하는 CIC 천공이 찍혀 있다.
ⓒ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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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조사본부는 감정의견서는 5월 12일에 인트라넷으로 먼저 보냈고, 용량이 큰 부검사진은 5월 20일 우편으로 송부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의구심을 풀기에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 감정의견서와 부검사진을 합철해서 천공을 찍기 때문에, 송부한 날짜와 상관없이 최종감정서를 이루는 모든 문서에는 CIC 천공이 찍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이미 3군사령부 보통검찰부에 '사인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하여, 부검의가 허위공문서 작성, 동행사, 위증의 죄를 범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밝힌 바 있고, 여러 차례 헌병 수사관의 직무유기와 허위공문서 작성에 대하여 수사할 것을 촉구하였지만, 구체적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또 "사인을 정확히 규명하는 것은 피해자의 원혼을 달래고 피고인들에게 자신들의 죄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린 후 적절한 형벌을 가하려는 사법절차의 출발점"이라며 "위에서 지적한 의문점들에 대해 신속히 수사에 착수할 것을 다시 한 번 간곡히 요청한다"고 말했다.


태그:#윤일병, #군대 폭력, #김정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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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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