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인투더스톰

인투더스톰 ⓒ 위너브라더스 코리아


여기, 학교에서 교감 일을 하는 중년의 사내가 있습니다. 아내와 사별했고, 사춘기 두 아들과는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그는 토네이도가 온다는 소식에 예정된 졸업식을 미루려 하지만, 교장은 그 건의를 무시하고 졸업식은 예정대로 진행됩니다.

이 중년 사내의 큰아들은 같은 학교 여학생이 마음에 드는 모양입니다. 그는 교감 아버지를 위해 졸업식 비디오 촬영을 하기로 돼 있으나, 캠코더가 필요하다는 여학생의 말에 졸업식 촬영은 동생에게 맡기고 여학생을 따라 시 외곽의 버려진 공장으로 나섭니다.

여기, 토네이도만 따라다니며 전문적으로 촬영하는 다큐멘터리 제작자들도 있군요. 감독이라는 자는 365일 넘도록 토네이도 촬영에 실패하자 있는 대로 예민해졌고, 감독과 함께 일하는 기상학자 앨리슨은 다섯 살배기 딸을 못 본 지가 너무 오래됐습니다.

그리고 딱 봐도 '얼간이'란 표현 외엔 다른 수식이 떠오르지 않는 두 사내가 있습니다. 직업조차 없는 이들의 유일한 목표는 끝내주는 토네이도를 찍어 유튜브에 올리는 것. 유튜브 조회 수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여자들한테 인기도 얻고 돈도 벌 수 있을거란 이상한 희망을 품고 무모하다 못해 무식한 토네이도 사냥을 시작합니다.

뻔하다 못해 뻔뻔한 이야기

본격적인 비평에 앞서, 여러분께 한 가지 묻겠습니다. 아들이랑 사이 안 좋은 아빠와 그런 아빠 말을 안 듣고 위험한 곳으로 가버린 사춘기 아들로 이야기를 만든다면, 어떤 식으로 풀어갈 수 있을까요?

토네이도 촬영에 정신이 나간 나머지 팀원의 생사보다 좋은 장면이 더 중요한 다큐멘터리 감독과, 그런 감독 밑에서 일해야 하는 기상학자의 갈등은 어떻게 확장하고 어떻게 소강 시킬 수 있을까요? 그리고 세간의 이목을 끌기 위해 무모한 짓을 일삼는 청년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풀어야 흥미로울까요?

나름의 몇 가지 답을 생각하셨다면, 그중 제일 뻔한 답이 바로 영화 <인투 더 스톰>이 택한 답안입니다. 아들은 아빠 말 안 들은 걸 후회하며 울고, 아빠는 그런 아들을 위해 죽을 각오를 하고 폐공장으로 달려갑니다. 유튜브 얼간이들은 모두의 비웃음에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기어이 얻어내고, 다큐멘터리 감독은 자신의 비인간성을 만회할 극적인 순간을 보임으로써 기상학자와 극적인 화해의 순간을 만들어냅니다.

 인투더스톰

인투더스톰 ⓒ 위너브라더스 코리아


스포일러 맞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알고 가셔도 영화를 보는 덴 조금도 지장이 없습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니까요. 이건 영화 <명량> 이순신의 전쟁이 승리로 끝난다는 사실만큼 뻔합니다. 물론 뻔한 게 나쁜 건 아닙니다. 뻔하다고 느껴질 만큼 반복적으로 회자하는 이야기들. 뻔한 이야기들은 다 재밌고 힘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하도 반복돼서 지겨울 뿐, 그 지겨움만 걷어내면 이야기의 힘과 재미는 조금만 부지런하면 얼마든 복원시킬 수 있지요.

놀랍게도 <인투 더 스톰>은 지독히 뻔한 데다 게으르기까지 합니다. 뭔가 색다른 이야길 만들어 볼 야심은 애초에 없었던 듯, 뻔한 이야기가 가진 가능성의 최대한을 끌어내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그 지독히 뻔한 이야기를 네 개(학교 학생들을 구해야 하는 교감, 아버지와 화해해야 하는 큰아들, 유튜브 얼간이, 다큐멘터리 전문가 팀)씩이나 얽어놓은 각본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죄다 끌어모으면 뭔가 재밌는 한 덩어리가 나오리라 기대한 모양입니다만, 산만하기만 합니다. 더 심각한 건 각각의 이야기들이 서로의 발목을 붙잡고 개별 이야기가 가진 가능성을 서로 끌어 내리고 있다는 겁니다.

문제는 장면전환입니다. 관객은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은 걸 후회하는 아들의 구구절절한 눈물에 미처 젖어들기도 전에 유튜브 얼간이들이 나와 말 같지도 않은 코미디를 하고, 아들을 구하기 위해 절박하게 달리는 아버지의 모습에 제대로 감동 받기도 전에 기상학자와 다큐멘터리 감독의 기 싸움 장면이 나오는 꼴을 두 시간이나 지켜보고 있어야 합니다.

 인투더스톰

인투더스톰 ⓒ 위너브라더스 코리아


여러 의미에서, 같은 소재를 다뤘던 장 드봉 감독의 명작 <트위스터>가 그리워집니다. <트위스터>의 이야기 역시 뻔하다면 뻔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불필요한 곁가지가 없어 이야기는 명료했고 감정은 깊었습니다. 두 주인공이 허리를 묶고 맨몸으로 토네이도 내부를 체험하는 명장면은 지금의 CG 기술로 보면 다소 조악해 보이나, 훨씬 나은 기술과 자본으로 만들어진 <인투 더 스톰>의 클라이막스 씬과 비교할 수 없이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전 그 차이를 진정성의 차이라고 봅니다. 여기서 한 입, 저기서 한 입씩 떼어와 블록버스터 구색만 갖춰놓은 영화가, 클라이맥스를 향해 묵직한 걸음을 떼는 영화를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이제 더 이상 '뻔하지 않은' 토네이도 영화를 기대하긴 어려운 걸까요.

인투더스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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