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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인구밀도> 출처 :  통계청 「장래인구추계 시도편 : 2010-2040」, 국토해양부「지적통계」
▲ 지역별 인구밀도 통계(2013년도) <지역인구밀도> 출처 : 통계청 「장래인구추계 시도편 : 2010-2040」, 국토해양부「지적통계」
ⓒ 통계청, 국토해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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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도시란? 인구밀도가 높은, 즉 인구가 집중된 곳에 경제, 행정, 문화, 교통 등이 발달하여 좁은 공간에서 집적된 경제활동을 하는 곳이었다. 이에 서울은 '도시'인가요? 에 대한 물음에 의심이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물음조차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당연히 서울은 도시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의 생각이 깨진 책 한권을 소개하고자 한다.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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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도시가 아니다>의 저자 이경훈은 사람 많고 건물이 많이 모여 있다고 모두 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마치 숯과 다이아몬드가 성분은 같지만, 어느 것은 땔감이 되고 어느 것은 보석이 되는 것처럼 도시는 환경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관계하는 방식이며 기존의 관습이나 시골의 관계 방식과 다를 뿐 그보다 저열하다거나 우월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도시란 스포츠카처럼 최첨단 기술로 이뤄낸 문명의 결정판인 동시에 짬뽕 대신 자장면을 택한 것처럼 취향과 선택의 결과물이다.

저자가 정의한 '도시'를 읽어 내려가면서 나의 생각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도시를 주거지로, 일터로 선택한 것이 '기억의 공간'으로 남아 있어서 또 다시 찾게 된 것이라고.

추억은 장소 지향적이거나 최소한 장소라는 배경에 의존한다. 장소는 주관적 지점을 가리키며 대부분 건물과 연관되어 있다. 처음 등교한 학교의 건물, 책을 읽던 벤치 등 우리의 기억은 장소에 머물러 있다. 도시는 이런 기억의 배경인 동시에 현실의 삶이 실행되는 공간이다.

걷고 싶은 거리와 걷고 싶은 길은 다르다

길을 숲이나 벌판을 가로지르는 자연의 영역으로 본다면, 거리는 인공적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도시의 일부로 구분할 수 있다. 시골길에 고요가 있다면 도시의 거리에는 활기가 있다. 사진이나 영화 속 노천카페의 낭만은 모두 거리가 낳은 것이다. 따라서 도시가 삭막하다는 것은 거리가 삭막하다는 뜻이다.

길과 거리의 차이점에 대해 감이 왔는가?

길은 길 '路'이며 'Road(로드)'이고, 거리는 거리 '街'이며 'Street(스트리트)'다. 길은 한 점과 다른 점을 연결하는 통로를 의미하며 반면에 거리는 길의 한 범주에 속하는 개념이다. 한마디로 구경거리가 있는 길로서 양편에 늘어선 구경거리들이 만들어내는 수동적인 통로인 것이다. 그래서 거리는 연결보다 그것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경험의 배경, 공간적 장치로서 더 의미가 있다. 길이 이동과 도착이라는 목적 지향에 충실하다면, 거리는 경험이라는 과정 지향적 성격을 띤다.

도시는 기본적으로 상업적인 공간이다. 신사동 가로수길은 도시의 거리가 지닌 기본적인 역할과 그로써 형성된 도시적 공간의 전형을 보여준다. 넉넉한 주차장과 쾌적한 공원이 없는 가로수길은 도시의 거리가 갖춰야 할 조건을 모범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적당한 폭의 인도와 거리를 메우고 있는 상점이야말로 가장 도시적이며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상점의 쇼윈도는 교류와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적인 요소인 데다 무엇보다 '걷게 하는' 도시의 장치로서 의미가 크다.

도시에 대한 오해 중 하나가 사람들이 쇼핑몰을 도시적 공간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그러나 쇼핑몰은 현대적이며 서구적이긴 하지만 도시적이지는 않다. 사실 쇼핑몰은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에 건물을 지어 그 안에 도시의 거리를 재현하려는 의도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태어난 가상의 거리에 상점들이 즐비하게 들어서고 쇼핑객들이 북적거리는 동안 실제 도시의 거리는 텅 비고 점점 피폐해지고 있다.

아파트는 도시의 미래가 아니다

가장 도시적인 주거 형태인 아파트가 서울에서는 오히려 도시를 해치는 주범이 되었다. 여기에는 도시, 건축적 고려를 넘어선 사회경제적, 정치적 요인이 작용하지만 무엇보다 아파트가 주거라기보다는 재산 증식의 의미가 강하기 때문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아파트는 자신의 취향보다는 시장이 원하는 바를 추구하는 '타자의 건축'으로 성립한다. 모든 세대가 남향일 것을 요구하고, 울창한 자연에 둘러싸여 있기를 원하며, 방음벽으로 도로와 차단돼 고요한 환경이기를 원한다. 도시의 문화적, 경제적 혜택은 고스란히 누리면서도 도시의 번잡함은 멀리하겠다는 이중적인 태도가 주거와 도시를 모두 망치고 있다.

저자는 미래지향적인 아파트는 가로수길에서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고 말한다. '가로수길에 아파트, 즉 주거 기능이 들어온다면'과 같은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주거는 도시를 24시간 깨어 있게 한다. 물론 아파트 형태라도 서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지형 아파트는 아니어야 한다. 현재 2~3층으로 되어 있는 가로수길 건물들은 5층 높이가 되더라도 별 문제가 없다. 5층이라고 해 봐야 길의 폭과 주변 건물의 높이가 같아지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가로수길이 남북으로 뻗어 있다는 점도 많은 가능성을 시사한다. 가로수길의 거리는 남향이지만 어느 건물도 남향이 아니다. 즉, 거리는 하루 종일 밝은 빛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건물에 해가 안 드는 것은 아니다. 상쾌한 아침 햇살과 석양은 여전히 즐길 수 있다. 말하자면 집이 비어 있는 낮 시간 동안 거리에 따스한 햇볕을 양보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타워팰리스를 누르고 최고가의 아파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을버스에는 마을이 없다

여느 도시에는 없지만 서울에만 있는 요소로 마을버스를 꼽는 까닭은 도시와는 좀체 어울리지 않는 '마을'이라는 단어가 붙었기 때문은 아니다. 마을버스 때문에 서울이 도시가 되지 못한다는 뜻 또한 아니다. 그보다는 서울엔 마을버스라는 기형적인 교통수단이 생길 수밖에 없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편리함을 위해 생긴 마을버스는 마을과 마음을 서로 멀게 만든다. 마을버스는 이 동네를 가장 값싸게 벗어나는 방법이다. 걸으면서 얻을 수 있는 이웃과 마주할 기회보다는 지하철이 가까이 있지 않다는 불만이 더 크다. 그 불편함과 박탈감을 절대 걷지 않음으로써 없애려 한다. 편리하고 빠르다는 믿음 속에서.

그러나 마을버스는 좁은 길에서 다른 자동차와 마주칠 때마다 비켜주고 기다리느라 어떤 때는 걷는 것보다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린다. 매일 보는 운전사 아저씨와 인사하고 '마을'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는 정겨운 시골버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마을버스는 정감 어린 '마을'을 없애고 있다.

서울이 안고 있는 중요한 문제는 '살고 있는' 도시와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도시가 다르다는 것이다. '살고 있는' 도시의 현실은 거리를 걸으면서도 인도 위를 침범한 차들의 눈치를 봐야 하며 엘리베이터에서 상냥한 눈인사 대신 무표정으로 서로를 대한다. 마주치는 이웃에게 웃으며 인사하는 간단한 일에서부터, 유모차를 밀며 산책하는 젊은 부부의 뒷모습, 거리에서 사랑을 나누는 젊은 연인의 위로 아련하게 켜지는 가로등과 같은 광경은 사실 광고에서나 볼법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도시이다.

이것이 실재였으면 하는 가상의 공간 사이 간극이 바로 서울을 도시에서 멀게 만들고 있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일반적인 도시의 어쩔 수 없는 문제로 간주하고 더 많은 녹지 환경과 여유를 외치는 차이, 서울은 도시에서 점점 멀어져간다.

서울에 살고 있다고 우쭐대지 마! 아직, 서울은 도시가 아니야.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이경훈 지음, 푸른숲(2011)


태그:#서울, #도시,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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