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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련 서적이 전시된 서울 아트선재센터 라운지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 2014' 예술총감독을 맡은 김선정 큐레이터(왼쪽)
 미술관련 서적이 전시된 서울 아트선재센터 라운지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 2014' 예술총감독을 맡은 김선정 큐레이터(왼쪽)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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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디엠지 프로젝트 2014(Real DMZ Project 2014)'가 2012년, 2013년에 이어 3번째로 강원도 철원 디엠지 접경지역과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 8월31일부터 9월27일까지 열린다. 사진·설치·영상·사운드 퍼포먼스 등이 펼쳐지는 이번 전시 중 월-일요일(화요일 휴무) 아침8시30분 아트선재에서 철원 가는 전시투어버스가 떠난다.

이번 디엠지 프로젝트는 김선정씨가 총감독을 맡았고, 2013 광주폴리II 총감독이었던 독일 건축대학 학장이자 기획자인 '니콜라우스 히르쉬(N. Hirsch)'씨가 협력큐레이터로 활동한다. 이번 투어에는 독일문화원 홍보·문화·언론 담당자도 동참했다.

이번 디엠지 프로젝트에는 백승우, 최재은, 정서영, 김주현, 구정아, 이옥경 등 6명의 한국작가와 플로리안 헤커(독일), 딘큐레(베트남), 마크 루이스(캐나다), 잉고 니어만(독일), 알버트 삼레스(미국), 토마스 사라세노(아르헨티나), 존 스코그(스웨덴), 아드리안 비야 로하스(아르헨티나) 등 8명의 외국작가가 참여한다.

우리가 지구상 남은 유일한 분단국이라는 관점에서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 기획위원회는 몇 년 전부터 디엠지에서 새로운 형태의 전시를 타진하며 꾸준히 철원 디엠지 접경 지역을 연구하고 탐색해왔다. 그동안 관여한 기획위원으로는 한예종 건축과 이종오 교수, 성공회대 역사학과 한홍구 교수, 소설가 서해성 등이 있다.

전시된 국내외 미술서적 사이로 사운드와 영상이

국내외 미술관련 전문잡지와 서적이 전시된 서울 아트선재센터 라운지에 설치된 사운드아트에 대해 설명하는 정서영 작가
 국내외 미술관련 전문잡지와 서적이 전시된 서울 아트선재센터 라운지에 설치된 사운드아트에 대해 설명하는 정서영 작가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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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디엠지 프로젝트의 특징은 강원도 철원 디엠지 접경지역 양지리 마을주민과도 교류를 통해 현지상황을 리얼하게 반영한 '장소 특정적(site specific)' 설치미술이 많다는 점이다. 또 '디엠지 평화프로젝트'같은 연계 프로그램도 연말까지 이어진다.

현대미술이 '쓰레기 콜라주'를 뒤지다 '노이즈'에서 그 활로를 찾는데 '보는 것' 중심에서 '읽는 것(text)'과 '듣는 것(sound)'과 '줍는 것(objet)'으로 방향이 전환된다. 위에서 보듯 라운지엔 국내외 미술서적이 총망라해 전시되고 있는데 '정서영(1964-)' 작가가 3명의 음악가와 철원을 다니며 채취한 사운드아트 <낮잠>이 여기 설치됐다.

이번 전시의 또 하나의 콘셉트는 현대미술의 '비가시성'이다. 소리, 읽기, 녹음 등을 사용하는 사운드아트가 그런 것인데 이런 작품은 관객의 참여 없인 감상할 수 없다.

또한 사진작가로 시작해 지금은 영상작업을 하는 캐나다작가 '마크 루이스(1957-)'의 <타이거>라는 영상작품이 라운지 책 사이로 보인다. 이 작가는 디엠지를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고 찍은 것으로 디엠지의 현대적 의미를 되묻는다.

투어버스 속 니콜라우스 히르쉬의 전시설명

투어버스에서 이번 프로젝트의 여러 사항에 대해 설명을 한 후 질문도 받는 니콜라우스 히르쉬 협력큐레이터
 투어버스에서 이번 프로젝트의 여러 사항에 대해 설명을 한 후 질문도 받는 니콜라우스 히르쉬 협력큐레이터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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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소개한대로 이번 전시에는 니콜라우스 히르쉬가 협력큐레이터이다. 그가 버스 안에서 이번 프로젝트를 개괄적으로 설명하면서 건축가인 그는 마치 언어의 건축가나 된 듯 이번 전시에 의미를 부여하며 시각언어를 문자언어로 풀어내는 솜씨가 여간 아니다. 같은 분단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더 애착이 있어 보인다.

히르쉬는 이번 프로젝트가 리움미술관이나 광주비엔날레와 같은 일반적 전시와는 다르게 안보상 위험성이 높고 엄격한 규제를 받는 장소에서의 불편한 투어형식의 전시이긴 하지만 그래서 도전적이고 도발적인 요소가 많아 오히려 더 매력적이란다.

그가 특히 강조해서 독일의 풍자와 아이러니의 소설가이자 설치미술가인 '잉고 니어만(1969-)'에 관해 설명한다. 잉고 니어만은 남북의 디엠지를 다 방문한 증인으로 그걸 경험을 바탕으로 쓴 텍스트 중 일부를 이번에 '퍼포머'로 낭독한다. 이 책은 내년에 독일에서 출간된다. 니어만의 키워드는 '비무장'이 아니고 '비기계화'다.

디엠지 양지리 마을에도 레지던시가 생겨

철원 양지리 마을에 처음 레지던스가 생겼는데 그 앞에서 자신이 여기서 1달간 거주하며 진행한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아드리안 비야 로하스 아르헨티나 작가[왼쪽에서 2번째]
 철원 양지리 마을에 처음 레지던스가 생겼는데 그 앞에서 자신이 여기서 1달간 거주하며 진행한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아드리안 비야 로하스 아르헨티나 작가[왼쪽에서 2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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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겸 재미 첼리스트 이옥경은 더 이상 쓰이지 않는 정미소 앞에서 첼로 포퍼먼스를 하고 있다. 첼로의 울림이 얼마나 큰 지 주변 사람을 놀라게 한다. 이 연주는 정미소 안에 들어가서도 계속되었다
 작가 겸 재미 첼리스트 이옥경은 더 이상 쓰이지 않는 정미소 앞에서 첼로 포퍼먼스를 하고 있다. 첼로의 울림이 얼마나 큰 지 주변 사람을 놀라게 한다. 이 연주는 정미소 안에 들어가서도 계속되었다
ⓒ 정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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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일의 분단국가 그리고 디엠지 그 이면에 치열한 냉전을 치루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물 좋고 공기 좋은 이곳은 그저 아름답고 평온한 마을로만 보인다. 철새도래지로 유명하고 철원 쌀이 유명한 것은 이런 환경 때문이리라. 우리가 이념 때문에 이렇게 분단된 채로 살아가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예측불허의 위험한 장소에 대한 관심은 국내 작가보다 국외 작가에 더 큰지 모른다. 이번 프로젝트가 누가의 아이디어인지는 모르나 지구상에 하나 밖에 없는 이런 전시장에서 전혀 새로운 형태의 전시가 열린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번 프로젝트가 3번째인데 한 가지 달라진 건 이곳 양지리에 작은 레지던시(작가작업실)가 생겼다는 점이다. 지금 아르헨티나 작가 '아드리안 비야 로하스(1980-)'는 여기서 <전쟁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는 제목으로 1달간 조수와 함께 동네에서 수집한 농산물과 점토를 가지고 장소 특정적 작품을 만들고 이를 영상에 담는다.

바로 그 옆에 설치미술가 '김주현(1965-)'의 <굴집>이 보인다. 재료는 각목이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나무를 벤다는 건 부분적으로 생태를 파괴할 수도 있지만 결국 이로 인해 우리의 의식을 바꿀 수 있다면 더 큰 피해를 막을 수도 있다"면서 예술작품에서는 쓸데없는 것이 오히려 쓸데 있는 것이 된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일러준다.

한편 뉴욕에서 활동하는 재미 첼리스트 '이옥경(1975-)'은 폐 정미소에서 <부서진 하늘>을 연주한다. 제목이 암시하듯 죽은 공간을 되살리고 긴장에 시달리는 이곳 주민의 혼을 달란다고 할까. 이 버려진 곳이 바로 예술의 공간이 됨을 입증한다.

자연은 경계 없는데 왜 우린 경계가 있지

철원 월정리 역 뒷편에 있는 '역마는 달리고 싶다' 팻말. 여기서 서울과 평양의 거리가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 옆으로 625 전쟁 통에 파괴되고 녹슨 열차의 잔해가 보인다
 철원 월정리 역 뒷편에 있는 '역마는 달리고 싶다' 팻말. 여기서 서울과 평양의 거리가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 옆으로 625 전쟁 통에 파괴되고 녹슨 열차의 잔해가 보인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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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월정리 역 정면모습. 이 곳에 최재은 작가의 '자연에는 경계가 없다'라는 제목의 작품이 역사 안에 설치되어 있다
 철원 월정리 역 정면모습. 이 곳에 최재은 작가의 '자연에는 경계가 없다'라는 제목의 작품이 역사 안에 설치되어 있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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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철색선 군인들의 검문검색을 통과해 녹슨 파괴된 기차가를 전시된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팻말이 보이는 월정리 역에 도착했다. 이 역으로 들어서면 설치미술가 '최재은(1953-)'의 네온작업인 <자연에는 경계가 없다(No Borders Exist in Nature)>라는 문구가 보인다. 이것이 주는 메시지는 매우 강렬하고 의미심장하다.

바로 옆 디엠지 평화문화광장에는 '구정아(1967-)' 작가가 작년 철원지역의 현무암을 사용해 만든 작품을 이번에는 <의식 확장>이라는 제목을 붙여 재구성한 설치미술이 보이는데 작가는 처음 돌이 있던 장소와 지역에 사는 주민들 이름 써놓은 지도를 최종 결과물로 만들어 이곳이 낯설고 색다른 공간이 될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한반도의 중원, 철원은 어떤 곳인가

철원 소이산 접경에 있는 옛 북한 노동당사. 이곳이 과거에 북한의 중요한 요충지임을 알려준다.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가 처음 열린 2012년엔 여기에 '김량' 작가의 설치작품 '나의 성스러운 처소'를 선보이기도 했다
 철원 소이산 접경에 있는 옛 북한 노동당사. 이곳이 과거에 북한의 중요한 요충지임을 알려준다.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가 처음 열린 2012년엔 여기에 '김량' 작가의 설치작품 '나의 성스러운 처소'를 선보이기도 했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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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중원에 위치한, 휴전선 철원은 도대체 어떤 곳인가? 이곳은 서울에서 2시간 30분 거리로 일제 때 땅이 비옥해 수탈의 거점이었고 당시 교통요충지로 경원선(서울-원산) 철로가 깔렸다. 해방 후 노동당사가 있을 정도로 북한이 중시한 곳이다. 625 때 24번의 주인이 바뀌는 혈투 끝에 우리가 백마고지 탈환해 이곳이 남쪽 땅이 됐다.

역사적으로 보면 삼국의 격전지로 궁예가 왜 이곳을 도읍지로 정했는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공장이 없으니 청정지역이고 넓은 평야와 아름다운 지세를 갖춰 만경창파를 이룬다. 이 지역관계자는 이곳이 디엠지 평화공원으로 최적지라고 믿는다. 그러나 남북은 아직 '국제대인지뢰금지협약'에 가입 안 돼 주변이 온통 지뢰밭이다.

디엠지를 보는 관점에서 큰 변화가 있어야 함을 이런 프로젝트가 절박하게 말해준다. 우리에게 보다 인류 보편적 가치에 근거해 이 문제를 냉정하게 봐야한다. 한반도의 통일문제를 정치나 이념보다는 문화와 예술로 푸는 게 더 효과적일 것이다. 

철원평야 소이산에서 내다보는 설치작품

미국작가 알버트 삼레스(A. Samreth)의 '평면 위의 무용수들(Dancers on a Plane, DMZ)' 장소특정적 설치작품 복합매체 가변설치2014. 철원평야가 한 눈에 들어와 그 광경이 장관이다
 미국작가 알버트 삼레스(A. Samreth)의 '평면 위의 무용수들(Dancers on a Plane, DMZ)' 장소특정적 설치작품 복합매체 가변설치2014. 철원평야가 한 눈에 들어와 그 광경이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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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사를 뒤로 하고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소이산 정상에 올랐다 거기서 보는 철원평야는 절경이다. 마치 백두산 천지에 오른 듯 만감이 교차한다. 탄성이 터지고 온몸에 전율이 온다. 우주의 기가 여기 다 모인 것 같다. 세상에 이렇게 넓은 미술전시장도 있나 싶다. 자연이 연출한 가장 아름다운 예술품 중 하나이다.

한반도 중원에 서서 이 나라의 통일을 염원하는 역사에 대한 상상력이 절로 떠오른다. 고지로 가는 길은 힘들었으나 이곳에 닿으니 모든 수고가 상쇄된다. 철원평야 전체가 서울면적의 1.2배 크기라니 이 평야의 파노라마를 혼자 보기엔 너무 아깝다.

이 광활한 평야가 보이는 해발 362미터가 되는 곳에 2012년 캘리포니아 미대를 졸업한 미국 젊은 작가인 '알버트 삼레스(1987-)'가 8월 1달 한국전쟁 때 격전지이고 바로 미군 발칸포 기지였던 이곳 지역을 샅샅이 리서치한 후 작업을 하고 있다.

여기서 받은 영감을 가지고 이 작가는 철원지역 청년들 10여 명이 함께 <평면 위에 무용수>라는 제목이 붙은 비좁은 농구장 같은 조형물을 설치하고, 거기서 댄스퍼포먼스로 벌려 분단된 몸이라는 게 얼마나 불편한가를 관객에게 경험하도록 유도한다. 그 이면엔 이곳이 평화의 땅이 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염원도 엿보인다.  

덧붙이는 글 | 2014.9.6(토)에는 스페셜 투어가 있다. 버스투어로 가는 분은 점심, 교통비. 입장료, 모노레일 탑승료 등 포함 3만원이다. [투어문의] 02)733-8948 www.realdmz.org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 기획위원회] 269-813 철원군 동송읍 양지2길 34 전화 02)739 7067 info@realdmz.org



태그:#리얼 디엠지 프로젝트, #철원 소야산, #김성원, #니콜라우스 히르쉬, #장소특정적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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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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