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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사단 윤 일병은 군 입대 후 112일 만에 부모 한 번 못 만나보고 선임병들의 구타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사망을 계기로 육군이 단 18일간 조사한 결과 3919건의 군내 가혹행위가 적발됐습니다.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은 가혹행위가 자행되고 있다고 추정됩니다. 군이 병영문화를 개선하겠다고 한 지 15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여전히 심각합니다. 이제 군에만 맡기지 말고 외부에서 본격적으로 감시하고 개입할 때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병영에 햇빛을' 기획 연재기사를 싣습니다. [편집자말]
"모든 군인들은 내부 절차를 거치지 않고 바로 국방감독관(국방옴부즈맨)을 이용할 권리가 있다. 국방감독관에게 청원했다는 이유로 견책을 받거나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

독일 연방의회의 국방감독관법률에 명시된 내용이다. 이 법률에 따라 독일 연방군 군인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언제든지 군대 관련 사안에 대해서 국방감독관에게 고충을 털어놓거나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

최근 한국 군대에서 사건 사고가 잇따르면서 독일식 국방감독관 제도의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보안'을 이유로 한 한국 군 조직의 폐쇄성과 비민주성이 군대의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되면서다. 독일군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연방군으로 재탄생하면서 처음부터 '국회의 민주적 통제'를 근간으로 했다. 한국의 국군과는 탄생 배경과 철학이 다르지만, 군대의 민주적 통제와 군인들의 권리 보호에 관한 한 대표적인 '교과서'로 견줄 만하다.

2013년 말 기준 독일 국방감독관 조직도로 총 6개 부처에 50~60여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 독일 국방감독관 조직도 2013년 말 기준 독일 국방감독관 조직도로 총 6개 부처에 50~60여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 독일 연방의회 국방감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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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연방군이 국회의 통제를 받는 대표적인 장치가 이 국방감독관(Wehrbeauftragter)제도다. 우리나라에서는 이해하기 쉽도록 옴부즈맨이나 국방감독관으로 부르지만, 엄밀히 해석하면 '(국회의) 국방위임관'에 더 가깝다. 독일연방 국회의원들이 일일이 군대를 방문해서 살필 수가 없기 때문에 그 임무를 '위임'하는 직책을 법률로서 제정했는데, 그것이 독일의 국방감독관이다. 단순한 외부 고충처리기관이 아니라, 군대를 통제하고 지휘하는 한 차원 높은 개념인 셈이다.

연방 국회의 비밀투표로 선출되는 국방감독관은 국무차관급의 지위를 갖는다. 사전 고지 없는 부대 방문권, 군대에서 작성되는 모든 서류에 대한 접근권이 있다. 국방감독관의 서류 열람을 거부할 수 있는 직책은 국방부장관뿐이다.

2010년 국방감독관에 취임한 독일 국방감독관 헬무트 쾨니히스하우스(Hellmut Köenigshaus)는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국방감독관의 권고에는 구속력이 없지만, 다양한 장치를 이용해 필요한 정보를 모두 모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 국방감독관에 접수된 민원 살펴봤더니...

독일 국방감독관은 최소 매년 1회 보고서를 작성해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이 보고서에는 1년간 접수된 민원 및 청원에 대한 분석, 처리 결과 등이 나온다. 이 보고서는 국회 및 독일 연방군부대 곳곳에 배치되고, 미디어 보도를 통해서 여론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 2013 국방감독관 연례보고서 독일 국방감독관은 최소 매년 1회 보고서를 작성해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이 보고서에는 1년간 접수된 민원 및 청원에 대한 분석, 처리 결과 등이 나온다. 이 보고서는 국회 및 독일 연방군부대 곳곳에 배치되고, 미디어 보도를 통해서 여론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 독일 연방의회 국방감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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쾨니히스하우스 국방감독관이 펴낸 2013년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총 5095건의 민원이 접수됐다. 군인 1000명당 27건 정도로 국방감독관이 생긴 이래 가장 많은 건수다. 그 중 '월급과 이에 관련된 사안'과 '리더십/상관의 지휘체계'에 대한 불만이 각각 19.1%, 17.2%로 가장 많았다. 그 외에도 가족과 일의 양립, 업무에 대한 불만 등이 뒤를 이었다. 이 연례보고서에는 국방감독관의 군대 방문 활동과 사안별 민원 접수 및 처리 현황이 세세하게 나와 있다.

국방감독관에 접수된 민원을 보면 독일 연방군 개개인의 한 차원 높은 권리의식과 민주성을 엿볼 수 있다. 한국에서 번번이 발생하는 신체적 폭력행위 등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술을 먹고 이탈리아 국적을 가진 군인에게 '이 군복을 입을 자격이 없다'고 말하고,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했던 연방군의 한 상관은 직위 해제됐다. 선임이 후임 병사의 페이스북에 명예를 훼손하는 댓글을 달거나, 군부대의 공식 홈페이지에 동의 없이 자신의 사진을 올려 불만이라는 내용도 접수됐다. 직접적인 피해자가 없어도 인종 차별적이거나 극우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면밀히 보고되고, 처벌의 대상이 된다.

연도별 독일 연방군인이 독일 국방감독관에 민원을 접수한 건수. 1000명당 건수로 나와 있으며 지난해 최다 건수를 기록했다.
▲ 독일 연방군 1000명당 민원 접수 건수 연도별 독일 연방군인이 독일 국방감독관에 민원을 접수한 건수. 1000명당 건수로 나와 있으며 지난해 최다 건수를 기록했다.
ⓒ 독일 연방의회 국방감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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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감독관에게도 어려운 과제가 있는데, 바로 자살사건이다. 쾨니히스하우스 국방감독관은는 "민간의 자살률 통계보다는 낮지만 독일 연방군 내에서도 자살 사건이 발생한다"며 "자살의 원인이 과도한 업무 등 공적 영역에 있는지, 사적인 영역에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국방감독관을 이용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 것도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돼 있다. 이 경우 불이익을 준 상관은 최대 3년의 징역형에 처한다. 국방감독관의 활동과 그 절차가 모두 법에 규정된 원칙에 따라 잘 지켜지고 있다.

독일 연방군은 흔히 '제복을 입은 시민들'로 묘사된다. 군복만 입었을 뿐 시민으로서의 권리는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쾨니히스하우스 국방감독관의 말에도 이 가치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군인들도 저기 길을 걷고 있는 시민들과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어요. 인권존중, 표현의 자유, 가족과 자신을 불안정함으로부터 지키는 것 등을 말합니다. 이 원칙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감시하는 것이 국방감독관의 역할입니다."


태그:#독일 국방감독관, #독일 옴부즈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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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을 공부했다. 지금은 베를린에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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